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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90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90화

 

190화

 

 

 

 

 

 

쩌저저적! 콰르릉!

 

일순간 두 사람을 중심으로 숨조차 쉴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휘돌았다.

 

독고무령은 미세하게나마 자신이 유리함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네 번째 춤사위를 펼쳤다.

 

“차아아앗!”

 

등후양도 본신의 모든 진기를 짜내 연검을 떨쳤다.

 

고오오오오…….

 

찰나 간, 대기가 진공 상태가 된 것마냥 귀청이 먹먹해졌다.

 

그러나 그도 한순간에 불과했다.

 

곧 천지를 뒤집는 굉음이 터지며 두 사람이 뒤로 튕겨졌다.

 

콰아앙! 

 

독고무령은 삼 장가량을 튕겨진 후에야 겨우 몸을 세웠다.

 

안색이 창백해진 그는 목구멍을 뚫고 솟구치는 핏덩이를 억지로 삼키고는 등후양을 쏘아보았다.

 

등후양도 거의 같은 거리를 물러선 상태였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비치는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수염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핏물.

 

자신 못잖은 내상을 입은 듯했다.

 

‘포위되기 전에 떠나야겠군.’

 

그런데 그가 전장을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스멀거리는 음악한 기운이 뒤에서 엄습했다.

 

언젠가 느껴본 기운!

 

그 기운의 정체를 깨달은 독고무령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이것은…… 혈왕!’

 

바로 그때, 한 사람이 거짓말처럼 독고무령의 뒤에 나타났다.

 

“후후후, 그는 나에게 맡기시지, 늙은이.”

 

머리가 흐트러지고 얼굴과 옷을 비롯해 전신이 피로 붉게 물든 청년.

 

독고무령의 짐작대로 혈왕이었다.

 

계곡 안에 없었던 그의 행색이 피로 물들었다는 게 괴이했지만, 그 사실을 인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누군지 아는 사람도 몇 없었지만.

 

등후양은 건방지기 짝이 없는 혈왕의 말에 눈썹을 치켜 올렸다.

 

“네놈은 누구냐?”

 

혈왕은 대답 대신 하얗게 웃었다.

 

“후후후후, 늙은이는 저놈을 죽일 수 없어. 저놈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지.”

 

“건방진 놈이 어디서 감히!”

 

등후양은 이를 갈았지만, 막상 혈왕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중간에 독고무령이 있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혈왕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한 기운이 신경에 자꾸 거슬린 것이다.

 

‘은룡산장의 무사 같은데, 어디서 저런 놈이……?’

 

독고무령은 두 사람이 자신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공력을 한 바퀴 휘돌렸다.

 

혈왕과 등후양이라는 벽을 넘기도 힘든 판에 근 백여 명의 적이 몰려들고 있었다. 찰나의 시간조차 아까운 상황.

 

어느 정도 내력을 안정시킨 독고무령은 홱 몸을 돌리고, 혈왕을 향해 신형을 날리며 검을 뻗었다.

 

“혈왕! 어디 이걸 받아봐라!”

 

“크크크,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혈왕은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쌍수를 휘둘렀다.

 

일순간 그의 두 손에서 붉은 핏빛 기운이 구름처럼 흘러나왔다.

 

두 사람의 기운이 일 장의 간격을 두고 부딪친 순간!

 

떠덩!

 

둔중한 소리와 함께 독고무령의 몸이 옆으로 밀려났다.

 

바로 그 순간.

 

독고무령은 혈왕의 상황을 보지도 않고 신형을 날렸다.

 

얼굴이 전과 조금 다른 게 이상했지만, 펼친 무공으로 봐서 혈왕임이 분명했다. 

 

그가 등후양과 함께 손을 쓴다면 벗어날 가능성이 그만큼 희박해질 터. 지금으로선 도주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그가 향한 방향이 의외였다.

 

그는 등후양을 향하지도, 혈왕을 향하지도 않고 전장의 중앙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가 왜 적진의 중앙으로 뛰어든단 말인가!

 

하지만 독고무령도 무작정 그리한 것이 아니었다.

 

비록 모험이 될지 몰라도, 정면 돌파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에 결정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에는 또 하나의 노림수가 있었다. 걸려들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저놈이!”

 

등후양이 먼저 몸을 날리며 독고무령의 뒤를 쫓았다.

 

거의 같은 순간에 혈왕 역시 땅을 박차고 허공을 날았다.

 

“너는 도망갈 수 없다, 암천사신!”

 

독고무령을 향해 포위하려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미처 대응치 못했다.

 

그 사이 독고무령은 두 번의 도약으로 삼십여 장을 날아갔다.

 

일부는 암천회의 사람들을 쫓고, 부상자는 약간의 여유를 이용해 부상 부위를 손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무사들 중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백여 명 남짓. 그나마도 느닷없이 달려드는 그의 움직임에 반응할 수 있는 자는 몇 되지 않았다.

 

“놈을 막아라!”

 

“철저히 둘러싸!”

 

제왕성과 은룡산장 양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면서 십여 명이 독고무령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암향호접무를 펼친 독고무령은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는 제왕성의 무사가 검을 휘둘러오자, 몸을 틀어서 피하며 상대의 손목을 홱 잡아당겼다.

 

제왕성의 무사가 내지른 검은 번개처럼 빠르게 한쪽으로 흘렀다. 찔러가던 기세에 독고무령의 진기마저 실리자 미처 제어할 새도 없었다.

 

푹!

 

그의 검이 반대편에서 공격하던 은룡산장 무사의 가슴을 꿰뚫고 반대편으로 삐져나왔다.

 

“크윽! 이, 이런 개…….”

 

현란한 독고무령의 신법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더구나 주위 사람들로 인해 더욱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그 바람에 제왕성의 무사가 쥐고 있던 검이 은룡산장 무사의 가슴에 꽂힌 이유를 제대로 아는 자가 없었다.

 

두 세력은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를 죽이기 위해 날뛰던 사이가 아니던가.

 

눈앞에서 제왕성 무사의 검에 자신들의 동료가 죽자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주춤거렸다. 몇 사람은 제왕성의 무사를 죽일 듯이 쏘아보며 이를 갈았다.

 

그 사이 독고무령은 다시 땅을 박차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놈을 잡아!”

 

“막아라!”

 

뒤늦게 삼십여 명의 무사들이 독고무령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독고무령은 그들의 공세를 무시하며 유령처럼 포위망을 벗어났다.

 

몇몇 무사의 도검이 그의 몸을 스치며 옷을 찢었다.

 

금방이라도 살점이 갈라지고 피가 튈 것 같은 모습!

 

하지만 금강불사공으로 단련된 그의 피부는 도검이 파고들 여유를 허락지 않았다.

 

“암천사신이 부상을 입었다!”

 

“죽여라!”

 

그가 옷이 찢겨진 상태에서 계속 피하기만 하자, 양편의 무사들은 독고무령의 부상이 심한 것으로 생각하고 더욱 세차게 달려들었다.

 

그 바람에 혈왕과 등후양은 앞이 가로막혀 발걸음이 늦춰졌다.

 

하찮은 무사들이 감히 자신의 앞을 막다니!

 

짜증이 난 혈왕이 눈을 치켜뜨고 냉랭히 소리쳤다.

 

“그는 내가 상대한다! 비켜라!”

 

그러나 이미 암천사신이 부상당했다고 생각한 무사들은 쉽게 비켜서지 않았다.

 

“비키라니까!”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혈왕은 허공을 걷듯이 날아가며 걸리는 족족 머리통을 터트렸다.

 

퍽! 퍽!

 

“켁!”

 

“끄어억!”

 

살심이 치민 그에게는 적도 아군도 없었다. 멋모르고 자신의 앞을 막는 자는 누구든 죽였다.

 

그중에는 은룡산장의 무사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의 손에 제왕성의 무사들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몇몇 제왕성의 무사들이 분노를 터트리며 욕을 해댔다.

 

“저놈들이 속셈을 드러내려 하는구나!”

 

“흥! 그럼 그렇지! 네놈들이 어디서……!”

 

특히 죽은 사람들의 가까운 동료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개자식들! 어차피 죽일 놈들, 이 자리에서 죽이자!”

 

화가 난 것은 은룡산장의 무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 자신들의 동료가 죽은 것도 참았거늘, 그걸 못 참고 자신들에게 검을 겨누다니!

 

“흥! 적반하장이구나! 좀 전에 네놈들은 본장의 사람을 죽이지 않았더냐?!”

 

“그건 실수였지만, 저자는 고의로 죽이고 있지 않느냐!”

 

“더 말할 것 없다! 암천사신은 혈왕께서 죽일 것인 즉, 네놈들은 우리가 맡아주마!”

 

“오냐, 이놈들! 누가 이기나 보자!”

 

갑자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암천회의 사람들 중 살아난 자들은 대부분이 도주한 상황.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조금 전까지의 동료의식이 사라지고 상대가 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듯했다.

 

그때였다. 그러잖아도 불이 붙어가는 판에 대고 혈왕이 기름을 부었다.

 

“더는 못 간다!”

 

일갈을 내지른 그는 전면에 사람들이 많음에도 망설이지 않고 쌍장을 휘둘렀다.

 

독고무령의 등을 향해 몰려가는 시뻘건 장력!

 

그 위력은 산조차 뒤집을 것처럼 엄청났다.

 

혈왕과 독고무령 사이에 있던 네 명의 무사가 처참한 비명을 토하며 튕겨졌다.

 

그중 셋이 제왕성 무사들이었다.

 

그 광경을 본 제왕성 무사들이 은룡산장 무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개자식들! 그럴 줄 알았다! 놈들을 죽여라!”

 

은룡산장 무사들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흥! 원한다면 얼마든지 받아주마!”

 

위지성과 적수천은 동상이몽에 젖어서 그 상황을 방치했다.

 

어차피 암천회를 치고 나면 상대를 칠 생각이었다. 단지 그 시간이 조금 앞당겨졌을 뿐.

 

“암천사신은 등 대협께 맡기고, 우리는 놈들을 상대하지요.”

 

사마초는 위지성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혈왕을 본 후부터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들었다.

 

‘어디서 저런 놈이!’

 

혈왕의 장력에 최고의 정예무사들이 대여섯 명이나 피떡이 되어 튕겨진다. 자신으로서는 흉내도 못 낼 엄청난 장력.

 

하지만 그는 등후양을 믿었다. 신주사대천왕 중 한 사람인 천궁신검을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는단 말인가.

 

“알겠네! 모두 놈들을 쳐라!”

 

머뭇거리던 제왕성 무사들은 명령이 떨어지자 은룡산장의 무사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갔다.

 

적수천은 그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승자는 우리가 될 것이다. 제아무리 천궁신검이라 해도 혈왕을 막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는 냉소를 지으며 완안격과 구여청을 바라보았다.

 

“시작하시오!”

 

 

 

한편, 독고무령은 암향호접무와 암천유성류를 섞어 펼치며 혈왕의 장력을 피했다.

 

그러고는 소란스러워진 틈을 타서 빠르게 적진을 가로질렀다.

 

그런데 조금 전과는 사정이 달랐다.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무사들은 독고무령이 다가가면 조금 전과 달리 한쪽으로 피했다.

 

옆에 있다가 혈왕에게 엄한 목숨을 잃고 싶지도 않았고, 적이 되어버린 상대가 언제 자신의 등에 검을 꽂을지 모르니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혈왕과 등후양은 끈질기게 독고무령을 뒤쫓았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독고무령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하긴 천궁신검 등후양과 몇 초를 겨루고, 혈왕과도 손을 나누었다. 

 

비록 상대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라지만, 그 충격이 적을 리 없었다. 아니, 오히려 상대의 힘을 이용하려 했기에 자잘한 충격이 쌓였다고 봐야 했다.

 

그 사실을 아는 두 사람은 암천사신을 상대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호승심이라면 호승심이었고, 오기라면 오기였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젊은 놈들이 이리도 강하다니! 몇 년만 지나면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죽여야 해!’

 

‘나와 상극이 되는 기운을 가진 놈. 이놈만큼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소리치며 독고무령을 향해 손을 썼다.

 

“더는 도망가지 못한다, 암천사신!”

 

“죽어라!”

 

등후양의 연검이 한 자루 화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가히 이기어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절대의 검공!

 

뒤이어 혈왕의 핏빛 장력이 공처럼 뭉쳐서 날아갔다.

 

독고무령은 이를 악물고 몸을 허공으로 띄웠다.

 

두 사람의 짐작대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칠팔 할의 내력만 겨우 쓸 수 있을 뿐.

 

그 정도로는 두 사람은커녕 한 사람도 상대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지는 않았다.

 

아니 절망이란 단어는 그의 머릿속에 아예 들어있지도 않았다.

 

이 정도는 그가 비옥십팔호실을 탈출할 때에 비하면 위험이라 할 것도 없었다.

 

“하앗!”

 

그는 허공에서 몸을 빙글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태천일심의 기운이 실린 검강이 허공을 길게 갈랐다.

 

눈이 달린 것처럼 급격히 꺾어져 치솟던 등후양의 연검이 먼저 동선에 걸렸다.

 

쾅!

 

등후양의 연검이 한쪽으로 튕겨지고, 독고무령의 몸도 일 장가량 옆으로 흘렀다.

 

순간 혈왕이 날린 강기덩어리가 방향을 틀며 독고무령을 덮쳤다.

 

검으로 막기에는 늦은 상황.

 

독고무령은 좌수를 들어 수천제마구겁무의 네 번째 춤사위를 펼쳤다.

 

쿠구구궁!

 

태천일심의 기운과 혈왕의 기운이 얽혀들며 천둥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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