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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77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77화

 

177화

 

 

 

 

 

 

사령귀안이 눈을 번들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렵게 생각할 게 뭐 있소이까? 그냥 적사보로 쳐들어가서 깡그리 죽이면 될 게 아니겠소?”

 

적수천이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피해가 커지면 저번처럼 엉뚱한 놈만 이득을 보게 됩니다. 적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닙니다.”

 

노태군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암천사신이라는 놈이 이끈다는 무천련의 잔당들 말이냐?”

 

“천룡방의 무사들도 아직 한단으로 돌아간 것 같지가 않습니다.”

 

“흥! 놈들이 엉뚱한 생각을 하면, 내 그놈들부터 쓸어버릴 것이니라.”

 

조용히 있던 백골마존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몇 사람이 가서 놈들 진영을 휘저으면 어떻겠소, 공공?”

 

“몇 사람이? 둘이 공격하고도 도왕이라는 놈 하나를 죽이지 못했다는 걸 잊었나?”

 

백골마존의 눈에서 하얀 광채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사실이 그러했으니 대꾸할 수도 없었다.

 

그때였다. 아직 내상이 회복되지 않아서 안색이 창백한 헌원조가 입술을 씹으며 의견을 내놓았다.

 

“군을 움직여서 놈들의 행동을 제어하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군을 움직이면 황궁에서 말 많은 놈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자칫하면 금의위나 우리를 싫어하는 놈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어.”

 

“물론 군병을 움직이는 것은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필을 제재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마필을?”

 

“제왕성의 기마대가 사용하는 것은 적사보의 마장에 있는 말들입니다. 그것은 분명 군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닙니까? 만일 그들이 거부한다면 명백히 황령에 반하는 사유. 그때 가서 군을 움직인다면 황궁의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할 겁니다.” 

 

노태군의 눈빛이 반짝였다.

 

“흠, 말을 빼앗고, 거부하면 그 명분을 이용해서 군을 움직인다? 그것도 괜찮군.”

 

하찮게 생각했던 제왕기마군의 무서움을 수백 명이나 잃은 후에야 깨달았다.

 

그들만 말에서 내리게 만들어도 적의 기동력이 현저히 줄어든다. 

 

물론 그들이 다른 말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말을 교체하려면, 그것도 수백 필의 말을 구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훈련이 안 된 상태에서는 이전과 같은 위력은 보이지 못할 것이다.

 

왜 여태 생각하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간단한 방법.

 

노태군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좋아, 유경.”

 

“예, 공공.”

 

뒤에 서 있던 방유경이 허리를 숙이며 명을 기다렸다.

 

“즉시 연락을 취해서 마필을 회수하라고 해.”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한단에 사람을 보내서 북리중현에게 분명하게 전하도록. 즉시 산서에 들어와 있는 자들을 거두지 않는다면, 천룡방을 봉쇄할 거라고 해.”

 

“그대로 전하겠나이다.”

 

노태군은 일사천리로 명을 내리고 적수천을 바라보았다.

 

“암문은 아직 연락이 되지 않느냐?”

 

“예, 아버님. 아무래도 놈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방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도무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빌어먹을 놈들. 쓸 만하면 키워보려고 했거늘, 꼭 필요한 때 연락이 끊기다니.”

 

노태군은 수염도 없는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악조응의 행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냐?”

 

“아무래도 암문 놈들에게 제거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일 때문에 놈들이 연락을 끊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태군의 입에서 나직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으음, 어째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이대로 돌아간다면 위지천백에게 굴복한 거나 마찬가지.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위지천백만 무너뜨릴 수 있으면 되거늘…….’

 

설령 모두가 죽더라도 상관없다. 자신만 살면 되니까.

 

그리고 그는 제아무리 위험이 닥쳐도 자신의 목숨만큼은 보전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도 자부심이지만, 그에게는 혈왕이 있지 않은가.

 

노태군은 고개를 돌려서 옆에 앉아 있는 혈왕을 바라보았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조금 누그러졌다.

 

다시 고개를 돌린 그가 방유경에게 말했다.

 

“유경, 물건은 도착했느냐?” 

 

“예, 주군. 쇠뇌 삼백 개와 특수하게 제조된 화살 삼만 개가 오늘 아침 도착했사옵니다.”

 

“화약은?”

 

“금의위 놈들의 감시가 워낙 심해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거라 하옵니다.” 

 

“기마대 놈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기에는 화약이 최곤데…….”

 

“입수하는 대로 보내올 것이니 너무 심려 마십시오, 공공.”

 

“할 수 없지. 마필만 회수해도 당분간 기마대는 움직이지 못할 테니…….”

 

노태군은 불만을 접고 적수천을 바라보았다.

 

“수천, 너는 산장에 연락해서 남은 적검단의 아이들 중 반을 보내라고 해.” 

 

 

 

 

 

 

 

제9장 장소천, 그리고 혈왕(血王)

 

 

 

 

 

천천히 뜨여지는 눈이 파르르 떨렸다.

 

‘또 하루가 갔나?’

 

아침을 알리며 떠오르던 태양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

 

그런데 다시 눈을 뜬 지금은 밤이 되어 있다.

 

자신도 모르게 지나간 한나절.

 

그동안 자신은 무엇을 했을까?

 

자신의 몸 어디에서도 피 냄새는 나지 않았다. 적어도 피 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뜻.

 

장소천은 암울한 표정으로 어둠을 응시했다.

 

하루하루가 지옥에서 사는 기분이다.

 

차라리 정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혼신을 다해서 정신을 잃지 않으려 해보았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비웃듯이 시간이 되면 혈왕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 버렸다.

 

-크하하하! 장소천, 너는 영원히 나를 벗어날 수 없다! 너는 나 혈왕의 종일 뿐이다!

 

고뇌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혈왕의 비웃음이 울리는 듯했다.

 

오늘따라 그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꺼져라, 혈왕! 나 장소천의 몸에서 꺼져 버려!’

 

미칠 것 같았다. 함부로 벗어나면 노태군이 눈치 챌지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장소천은 벌떡 일어나서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어! 곧 노태군은 혈왕을 내세워서 제왕성을 칠 거다. 잘못해서 내가 장가장의 사람이라는 것이 들통 나기라도 하면, 장가장은 그날로 끝장이야!’

 

자신이 노태군의 곁을 벗어난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혈왕의 정신으로 돌아올 경우, 다시 노태군에게 돌아올 거라는 것도 자신의 짐작일 뿐 확실하지는 않다.

 

그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한 시진이다. 전력을 다한다면, 그 시간 안에 수백 리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문득,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맞아! 내가 혈왕이었을 적의 일을 기억 못하니, 혈왕도 장소천이었을 때의 일을 기억 못할지 몰라!’

 

그렇다면 혈왕이 대풍장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설령 찾아온다 해도, 자신이 왜 그 먼 곳에 가 있었는지 모를 수도 있고.

 

아마 노태군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머리가 빠지게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눈치를 챈다 해도 기껏해야 자신에 대한 감시밖에 더할까?

 

그래, 은룡산장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어! 일단 저지르고 보자!

 

장소천은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는 세 벌의 옷이 걸려 있었다. 피가 묻었을 때 갈아입기 위해 여벌로 준비해 놓은 옷이었다.

 

백의를 벗은 그는 세 벌의 옷 중 감청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려면 아무래도 백의보다 감청색의 옷이 나았다. 사람들이 몰라볼 수도 있고.

 

옷을 갈아입은 그는 얼굴을 매만졌다. 

 

턱 근육이 비틀어지고, 볼 살이 이지러졌다. 그리고 이마까지 좁혀졌다.

 

상승의 변용술. 과거 천면귀마가 남겼다는 백변귀환공이었는데, 은룡산장의 지하서고에서 얻어 재미로 익힌 것이었다.

 

처음으로 써보는 무공이어서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잘해야 한 시진 정도?

 

그래도 그냥 나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앞머리를 살짝 흐트러뜨리는 것으로 준비를 마친 그는 망설이지 않고 창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대풍장을 벗어난 장소천은 대소라도 터트리고 싶었다.

 

‘으하하하! 진작 이럴 것을!’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한 시진 뒤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그저 장소천으로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을 뿐.

 

날듯이 서연을 벗어난 그는 대충 남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삼십여 리를 가자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서연과 능정 사이의 동양(東梁)이었다.

 

장소천은 그곳을 지나치려다 걸음을 멈추었다.

 

‘음?’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겉으로 드러나 느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속에 깃든 혈왕의 기운이 절로 반응한 것이다.

 

이런 외진 마을에 혈왕의 기운을 긴장시킬 자가 있단 말인가?

 

산서에서 그럴만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제왕성의 주인 위지천백, 노태군, 그리고 신비인 밀천객. 

 

굳이 하나를 더한다면 제왕성에 합류했다는 도왕 정도?

 

설마 저곳에 그들 중 하나라도 와 있단 말인가?

 

갈등이 일었다.

 

계속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기운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볼 것인가.

 

본래 목적대로라면 그냥 가야 했다.

 

그런데 혈왕의 기운이 가만 놔두지 않았다.

 

천적(天敵)!

 

그랬다. 마치 천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혈왕의 기운이 그의 정신을 옥죄며 재촉했다. 

 

빨리 그를 만나보라고, 그리고 제거하라고.

 

지끈거리는 머리. 장소천은 몸을 틀었다.

 

‘확인하는 것 정도는 상관없겠지.’

 

이제 남은 시간은 반시진이 조금 넘는 정도.

 

만약 시간이 걸려서 멀리 도망가지 못하게 생겼으면, 대풍장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면 된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보지만, 그의 행동은 이미 그의 의지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 * *

 

 

 

독고무령은 젓가락을 놓고 고개를 들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

 

진사혁이 입 안에 든 것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왜 그래? 입맛에 안 맞아?”

 

독고무령은 대답하지 않고 객잔의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인피면구를 쓴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진사혁도 독고무령의 눈길을 따라 문 쪽을 힐끔거렸다. 하지만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는지 고개만 갸웃거렸다.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 옆 탁자에 따로 앉아 있던 네 사람이 식사를 멈추었다.

 

그러나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진사혁과 네 사람은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때 주렴이 걷히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장소천이었다.

 

장소천은 객잔에 들어가서 빈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객잔에 있는 탁자라고 해 봐야 겨우 열 개.

 

독고무령과는 겨우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었다.

 

재빨리 다가온 점소이가 엽차 잔을 놓고 주문을 받았다.

 

“공자, 뭘 드시겠습니까?”

 

“백주 한 병. 구운 오리 고기 조금.”

 

“알겠습니다요.”

 

점소이가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가자, 장소천은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엄청난 자군.’

 

혈왕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그다. 그런데 상대도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 것 같다.

 

누군데 저리도 강한 걸까?

 

‘세상은 역시 넓군. 저런 자를 이런 작은 마을에서 만나다니.’

 

독고무령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는 경악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긴장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적 진영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절대고수를 만났다. 

 

적인지 아군인지는 아직 모른다.

 

문제는 정심한 기운이 아닌 사악한 기운을 지닌 자라는 것이다.

 

‘적이라면 최악이군.’

 

독고무령은 일행을 차례차례 바라보았다.

 

누구도 상대의 강함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한번 바라보고 난 후 더 이상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담담한 표정으로 봐서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 같다.

 

다섯 사람이 모를 정도면 산서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저토록 강한 절대고수가!

 

그 말인 즉 저자가 산서의 사람이 아니던가, 강호초출이든가, 그도 아니면 다른 성 먼 곳에서 온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그때 장소천이 전음으로 물었다.

 

<정말 대단하군, 그대와 같은 자를 이런 외진 곳에서 보다니. 어디서 왔소?>

 

독고무령은 일단 생각을 접고 장소천을 바라보았다.

 

말을 나누어보면 뭔가 실마리를 얻을지도 몰랐다.

 

<남쪽에서 왔소. 그러는 귀하는 어디서 왔소?>

 

<북쪽에서 왔소.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것이오?>

 

<지나가던 길에 잠시 들른 것뿐이오. 그런 당신은 무슨 일로 온 거요?>

 

<나는 온 것이 아니오. 떠나는 길에 잠시 들른 것뿐.>

 

비슷하면서도 모호한 대답.

 

다시 질문을 던지는 독고무령의 눈이 깊어졌다.

 

<혹시 은룡산장의 사람이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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