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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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72화
172화
헌원조가 소리치는 사이 기마대가 전력으로 달리며 초혼단 속으로 뛰어들었다.
쾅! 콰광!
중병인 미첨도가 자유자재로 휘둘러질 때마다 폭음이 터져 나왔다.
강호의 고수들이라 해도 진기까지 주입된 미첨도는 위협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베어버리고 싶어도 미첨도가 휘둘러지는 반경이 워낙 넓어서 쉽지가 않다. 더구나 쐐기 형태로 달리는 그들의 속도가 질풍과도 같아서 공격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한순간에 초혼단을 통과한 기마대는 곧장 패령군 사이로 뛰어들고, 패령군을 휩쓴 기마대는 초혼단을 공격했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우습게 여겼던 기마대의 위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자, 패령군을 이끄는 구여청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헌원조 역시 이를 악물고 무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기마대는 놔두고 장원으로 들어가라!”
패령군과 초혼단의 무사들 중 기마대의 공격에서 벗어나 있던 자들이 신형을 날려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적은 기마대만이 아니었다.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대연무장으로 들어오자, 제왕성 무사들이 일사불란하게 그들을 공격했다.
“놈들에게 제왕성의 힘을 보여주어라!”
위지성은 냉랭히 소리치고는, 오연히 서서 전황을 주시했다.
제왕성의 장로인 사마초와 양무등 그리고 신무전에서 나온 여덟 명의 절정고수는 그의 옆에 버티고 서서 자신들이 나설 때를 기다렸다.
홍백과 묵귀자가 전면으로 나선 것은 그 즈음이었다.
“켈! 귀찮은 망아지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이놈들을 잡는 게 낫겠군!”
홍백은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제왕성 무사들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손을 좌우로 휘저으며 제왕성 무사들의 목을 움켜쥐었다.
우두둑!
피할 새도 없이 두 무사의 목뼈가 으스러지고, 심장에 구멍이 났다.
“컥!”
“허억!”
묵귀자도 뒤질세라 제왕성 무사들을 덮쳤다.
곧 비명과 신음이 이어지며 순식간에 대여섯 명이 쓰러졌다.
은룡산장 무사들은 그들로 인해 생긴 공백을 파고들며 제왕성 무사들을 공격했다.
위지성은 포위망 한쪽이 급격히 무너지자, 옆을 향해 소리쳤다.
“저들을 도와주십시오!”
그의 옆에 있던 여덟 명의 중년무사가 무기를 빼들고 홍백과 묵귀자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위지성은 신무전의 고수들이 두 노인을 막는 걸 보고 빠르게 상황을 살펴보았다.
적의 숫자는 백오십 명 정도. 쳐들어온 자들 중 반 정도가 장원 안으로 들어온 듯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군.”
이대로 가면 쉽게 승부를 보기 힘들 것 같다.
특히 괴상하게 생긴 두 노인의 악랄한 손속은 보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릴 정도다.
신무전의 고수 여덟 명이 막는데도 유리하기는커녕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위태하다.
“아무래도 장로님들께서 나서줘야 할 것 같습니다!”
위지성은 사마초와 양무등을 향해 소리치고 검을 뽑아들었다.
홍백과 묵귀자를 곤혹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사마초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생각했는지 애병인 풍마도를 빼들었다.
“소성주는 너무 앞으로 나서지 말게! 아무래도 저 늙은이들이 수상하네! 양 형, 가세!”
두 사람이 떠나자마자 헌원조가 소리치며 위지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네가 위지성이더냐!”
“흥! 그렇다! 내가 바로 위지성이다! 그대는 누군가?”
“나는 헌원조라 한다! 너의 목을 가지러 왔다!”
“으하하하, 그대가 불알도 없는 늙은이의 큰아들이라는 헌원조였던가! 헛소리 말고 내 검을 받아봐라!”
위지성은 검으로 헌원조를 가리키며 그대로 몸을 날렸다.
시퍼런 검기가 물결치며 헌원조를 향해 밀려갔다.
헌원조는 위지성의 놀림에도 분노하지 않았다. 분노하기에는 위지성의 검세가 예상보다 엄중했다.
“흥! 어디 잠시 후에도 그 말을 할 수 있는가 보자, 애송이!”
그 역시 전력을 다해 위지성의 검세에 맞섰다.
찰나 간에 십여 초의 검세가 맞부딪치며 두 사람을 휘어 감았다.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막상막하의 접전!
그제야 두 사람은 상대의 무공을 인정하고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 끄집어냈다.
그 사이 아수라장이 된 대풍장의 드넓은 마당에서는 수십 명이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패령군과 초혼단을 압박하던 기마대 무사들이 안으로 밀려들었다.
팽팽하게 진행되던 싸움에 그들이 가세하자 상황이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홍백과 묵귀자마저 막혀서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 위지성과 싸우던 헌원조는 뒤로 훌쩍 물러나서 홍백에게 소리쳤다.
“어르신! 일단 물러나지요!”
삼백의 무사들 중 남은 자가 반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적들의 숫자도 많이 줄었다. 끝까지 싸운다면 적들도 몇 명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자신들 역시 이곳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그것은 결코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헌원조가 소리치자, 홍백이 손에 묻은 피를 혀로 핥으며 킬킬거렸다.
“킬킬킬, 제법이군. 놈,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사마초는 이를 악물고 풍마도를 쳐들었다.
제왕성의 십이 장로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자신이 밀리다니.
더구나 자신이 가세했는데도 신무전의 고수 중 하나가 죽음을 당하고 하나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아마 그들과 합공하지 않았다면 내상을 입는 정도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화가 나는 한편으로 가슴이 서늘해졌다.
대체 저 노괴가 누군데 이토록 강하단 말인가?
그는 홍백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노괴! 알려지는 게 부끄럽지 않다면 정체를 밝혀라!”
하지만 홍백은 자신의 입으로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었다. 또한 죽이기 힘든 놈들을 상대하겠다고 힘을 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켈켈, 네놈의 견문이 얕음을 탓하거라!”
홍백은 훌쩍 몸을 날려 담장 위에 내려섰다.
“묵귀야! 그만 가자!”
그가 소리치자, 양무등과 신무전의 고수 셋을 상대하던 묵귀자도 유령처럼 몸을 날려 뒤로 빠졌다.
위지성은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걸 보면서도 뒤쫓지 않았다.
헌원조와 싸우며 입은 가벼운 내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차가운 코웃음을 터트렸다.
“흥! 확실하게 배웅해 주지! 갈 당주!”
그가 내지른 일갈에 한 사람이 앞으로 뛰어나왔다. 제왕기마군을 이끄는 갈궁이었다.
“예, 소성주!”
“즉시 제왕기마군을 움직여 놈들을 뒤쫓으시오! 단, 끝장을 보려하지는 말고, 몇 번 공격해서 놈들의 혼을 뺀 뒤 돌아오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소성주!”
갈궁이 힘차게 대답하고 돌아서자, 위지성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마초를 바라보았다.
“숙부님이 오신다고 하셨는데, 왜 안 오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분만 오셨으면 저 괴상한 늙은이들을 제거했을지도 모르거늘.”
사마초는 위지성이 말한 사람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하기에 위지성이 자신조차 상대하기 힘든 자들을 그가 제거했을지 모른다고 하는데도 반박하지 않았다.
사마초는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녁에 온다고 했는데, 놈들의 공격이 예상보다 빨랐네. 그 바람에 시간이 어긋난 것 같군. 음흉한 놈들이니 밤에 공격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헌원조는 반으로 줄어든 무사들을 이끌고 빠르게 서연을 빠져나왔다.
‘빌어먹을, 너무 쉽게 움직였어! 어둠을 이용해서 기습하는 게 더 나았는데…….’
놈들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느닷없이 전초대를 칠 때부터 계획된 일일지도 몰랐다.
자신은 그것도 모른 채 쉬지 않고 달려와 곧장 공격했다. 놈들이 자신들의 움직임을 알고 대처하기 전에 공격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하고서.
홍백과 묵귀자가 있는 이상 위지성이 이끄는 자들쯤이야 쉽게 이길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판단을 한번 잘못하는 바람에 서연을 무너뜨리지도 못했고, 위지성을 이기지도 못했다.
속이 쓰렸다. 목에 가시가 걸린 기분.
자신이 아는 한 위지성의 무위는 기껏해야 절정의 경지에 오른 걸로 알려져 있었다.
엉터리였다. 자신과 박빙의 승부를 겨룰 정도라면 능히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상태라고 봐야 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나는지도 몰랐다.
세상에 이리도 기재들이 많다니!
‘위지성! 네놈만큼은 반드시 내가 직접 죽일 것이다!’
그가 위지성을 향해서 이를 갈고 있을 때였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어둠을 뒤흔들었다.
“이런 빌어먹을! 기마대가 또 오는 모양이오!”
패령군을 이끄는 구여청이 와락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리치자, 헌원조가 냉랭히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기마대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지형이 있다. 그곳까지만 가면 놈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자!”
서연으로 올 때 본 곳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별반 생각이 없이 지나왔다. 기마대만 아니었어도 그곳을 떠올릴 일이 없었다.
은룡산장 무사들은 전력을 다해서 달렸다.
헌원조의 말대로 이백여 장을 가자 굴곡진 지형이 나왔다.
황토가 빗물에 씻겨서 그물처럼 파여 있었다.
많이 파인 곳은 깊이가 서너 자까지 되어서, 말들이 제대로 달릴 수 없는 곳.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기마대가 백 장 뒤까지 쫓아온 상태였다.
헌원조는 곧바로 땅이 파인 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앞에서 기마대를 맞이했다. 적의 시선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으하하하! 이제 더 도망갈 곳이 없나 보구나! 모두 놈들을 쳐라!”
제왕기마군을 이끄는 갈궁은 대소를 터트리며 은룡산장의 무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두두두!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밀려든 순간,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일제히 뒤로 몸을 날려서 이십여 장을 물러났다.
갈궁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멈추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히히히힝!
선두에서 달리던 말들은 땅이 파인 것을 보고 주춤거리며 몸을 틀었다. 그러나 이미 움푹 파인 곳에 발목이 빠진 말들은 울음소리를 터트리며 그대로 꼬꾸라졌다.
순식간에 이십여 필의 말이 쓰러지고, 동시에 말에 타고 있던 자들의 몸이 말 등에서 튕겨졌다.
“허억! 조심하라!”
“땅이 갈라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기다렸다는 듯 은룡산장의 무사들은 꼬꾸라진 말에서 떨어진 자들을 공격해 추살했다.
“이런 개……. 크억!”
퍽! 스걱!
“크윽! 달아나…….”
당황한 외침과 비명이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갈궁은 미친 듯이 소리치며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라! 빨리 물러나!”
하지만 은룡산장의 무사들은 그들이 물러나도록 그냥 놔두지 않았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역공을 펼쳐 기마군을 공격했다.
특히 홍백과 묵귀자는 장난처럼 손발을 놀려서 제왕성 무사들의 목을 꺾고 심장에 구멍을 냈다.
말의 울음소리와 비명이 어우러지며 피바람이 몰아쳤다.
순식간에 오십여 필의 말과 사람을 잃은 갈궁은 대항할 생각도 못한 채 도주하기에 급급했다.
말발굽 소리가 멀어질 즈음에는 고통에 찬 말들의 울음소리만이 어둠이 깔린 황토고원을 맴돌 뿐이었다.
헌원조는 나타날 때만큼이나 빠르게 도망친 제왕기마군을 보고 차가운 냉소를 흘렸다.
‘훗, 고맙다고 해야 하나? 놈들 덕분에 추궁을 덜 받겠어.’
피해를 입지 않고 적의 숫자를 줄였다. 그것도 상대하기 껄끄러운 기마대 오십을.
거기다 구덩이에 발이 빠져 넘어지긴 했어도 크게 다치지 않은 말이 십여 필이나 된다.
생각지도 못한 성과에 헌원조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선물을 받았으면 써먹어야겠지. 부상자를 말에 태워라!”
제7장 백령천도(白靈天刀)의 주인, 그는……
독고무령은 삼십여 장 높이의 절벽 위에 서서 달빛이 쏟아지는 협곡을 내려다보았다.
협곡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듬성듬성 자라는 키 작은 나무들과 바람에 흔들리는 풀숲이 없었다면 사막이라 해도 될 정도.
어쩌면 그 바람에 멀리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더 잘 보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오는군.’
저 멀리 어둠속에서 사람들이 다가온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협곡 안으로 들어서는 자들. 은룡산장의 무사들이다.
인원은 백여 명쯤. 개중 십여 명은 말을 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