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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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71화
171화
독고무령은 두 손을 들어 올려 어둠을 깎아내듯 둥글게 휘저었다.
쿵!
만근 바위가 떨어진 것처럼 둔중한 소리가 동굴을 흔들었다.
이어서 진사혁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제길, 배가 고파서 제대로 위력이 안 나오는군.”
독고무령은 얼얼한 손바닥을 두어 번 쥐었다 펴며 물었다.
“그게 무음관천인가?”
“쳇, 가르쳐 준 사람이 모르면 누가 아나?”
아무리 방어만 했다고 하지만, 팔성의 내력으로 막아냈는데도 손이 저리다.
솔직히 그조차도 관천뇌곤의 후삼식 중 첫 번째에 불과한 초식이 이 정도의 위력을 보일 줄은 예상치 못한 터였다.
‘이 정도라면 과거 오대세력의 주인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 같군,’
만일 부동(不動)과 무유(無有)를 익힌다면 어디까지 오를 수 있는 걸까?
독고무령은 새삼 놀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진사혁이 말끝마다 관천뇌곤이야말로 천하제일곤이라고 큰소리치더니, 그럴 만도 했다.
“사혁, 급한 일이 있으니 그만 가세.”
진사혁이 털레털레 걸어 나오며 말했다.
“나가면 일단 멧돼지부터 한 마리 잡아먹어야겠어. 물만 먹었더니 뱃속이 아우성이야.”
그러고 보니 진사혁의 살이 조금 빠진 것처럼 보였다.
독고무령이 돌아서며 진사혁을 향해 슬쩍 한마디 했다.
“살이 빠지면 구양 소저가 좋아할지도 모르잖은가?”
진사혁이 움찔하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살이 조금 빠진 걸 보고 웃었었다.
“정말…… 그럴까?”
구양소현만 좋다면, 까짓 거 이틀 정도는 더 굶을 수 있었다.
동굴을 나선 독고무령은 일단 이호를 먼저 만났다.
역시나 이호조차 정확한 소식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중간의 연락망조차 끊겼든지, 아니면 그들이 그만큼 철저히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었다.
독고무령은 이호에게 대우의 일을 알려주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비상체제로 움직여야 할 것이오.”
이호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알겠습니다, 회주.”
독고무령은 이호의 대답을 들으며 진사혁을 바라보았다.
“사혁, 일단 사람들을 불러 모으도록 하게.”
“알겠네.”
* * *
독고무령의 통나무집으로 사람들이 몰려들 무렵, 제왕성의 이백 무사가 서연과 우현의 중간에 있는 계곡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그곳에는 서연 일대를 감시하는 은룡산장의 전초대가 머물고 있었다.
숫자는 모두 백여 명.
계곡 안으로 들어간 제왕성 무사들은 광기에 사로잡힌 수라귀처럼 은룡산장의 무사들을 도륙했다.
비명이 어둠을 찢고 암공(暗空)에 울려 퍼졌다.
“으악!”
“제왕성 놈들이 쳐들어왔다! 놈들을 막아라!”
고함이 터져 나오며 수십 명의 무사가 임시로 만든 목옥에서 튀어나왔다.
하지만 철저한 계획 하에 계곡으로 난입한 제왕성 무사들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들을 휩쓸었다.
은룡산장 무사들은 제대로 된 대항조차 못한 채 살이 찢기고 뼈가 갈라지며 피를 뿌렸다.
팔다리가 잘려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자들. 온몸이 피로 뒤덮인 채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자들.
제왕성의 무사들은 그들을 쫓아가며 단호하게 목숨을 거두었다.
위지성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살려두면 적이 되어 검을 겨눌 자들이다. 전쟁에서 인정을 보이면 결국 자신의 피로 되돌아온다. 죽일 땐 확실하고 단호하게 손을 써야 한다.
전쟁에서는 승리만이 정의인 것이다.
‘지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아버님의 그늘을 걷어내고야 말 것이다!’
위지성은 이를 악물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자들의 목을 일 검에 베어냈다.
서걱!
뜨거운 피가 확 뿜어지며 암천을 더욱 검게 물들였다.
* * *
노태군이 전초대의 전멸 소식을 들은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는 그 소식을 듣고 은룡산장의 간부들을 모조리 불러들였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노태군의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흥! 위지천백이 먼저 움직였단 말이지?”
“암문의 말에 의하면, 아들인 위지성을 선봉에 내세웠다고 합니다.”
헌원조의 말에 노태군의 눈가로 싸늘한 살소가 떠올랐다.
“아들이라……. 좋아, 그 정도라면 첫 번째 제물로는 부족하지 않겠군. 지금 그들의 위치는?”
“서연으로 돌아가 있다 합니다.”
노태군은 붉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사사를 바라보았다.
“홍백, 묵귀. 그대들이 가서 도와줘야겠네.”
홍백이 킬킬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클클, 어린놈의 심장이 깨끗했으면 좋겠구려.”
“위지천백의 아들이네. 놈의 옆에는 분명히 한가락 하는 놈들이 있을 게야. 조심해야 할 거네.”
“킬킬킬, 너무 걱정 마시구려. 그깟 놈들에게 당할 거 같으면 나오지도 않았을 거요.”
노태군의 눈이 헌원조를 향했다.
“첫째가 초혼단과 패령군을 데리고 가라. 가서 놈들에게 본 군을 거역한 대가가 어떠한 것인지 철저히 알려주어라.”
“예, 아버님.”
* * *
귀원장에서 삼백여 명에 달하는 무사들이 쏟아져 나온 지 한 시진 후. 백천산에 그들의 움직임이 전해졌다.
“귀원장에서 무사 삼백여 명이 나왔습니다.”
이호의 보고에 독고무령의 표정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마침내 그들마저 움직였군.”
육풍원이 팔짱을 낀 채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말이 전초대지, 백여 명이나 되는 숫자가 전멸을 당했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겠지.”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제왕성에 이어 은룡산장마저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독고무령이 이호를 향해 물었다.
“그들이 바로 서연으로 갈 거라고 보시오?”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쪽에서 삼 할가량의 무사들이 출동했다. 조금만 더 끌어내면 전면전으로 돌입하기에 충분한 상황.
독고무령의 눈 깊은 곳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불을 더 키워야 돼. 어느 한쪽의 의지만으로는 끌 수가 없을 만큼!’
그 후에는 그 불구덩이에 모두를 집어넣을 것이다.
물론 자신도 그 안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완벽한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
독고무령은 마음을 정하고 이호를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당분간 은룡산장과의 거래를 끊을 것이오. 그러니 그들에게서 아무리 급박한 연락이 와도 외면하라고 하시오.”
이호가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그는 아는 것이다.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은룡산장은 그동안 암문의 정보를 토대로 자신들이 얻은 정보를 확인했다.
그 와중에 갑자기 정보를 차단하면, 확인을 하지 못함으로써 자신들이 얻은 정보에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정보에 대한 불신은 혼란을 가져오는 법.
촌각을 다투는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작은 것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전면전이 벌어지기 직전이 아닌가.
혹시 이러한 상황이 오기를 기다리며 은룡산장에 정보를 준 것이 아닐까?
이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도 놀란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장만익이 눈을 좁힌 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차라리 거래를 계속하면서 거짓 정보를 주는 게 낫지 않겠나?”
“거래를 끊으면 그걸로 끝이지만, 거짓정보를 주면 적이 됩니다. 자칫하면 제왕성과 싸울 전력의 일부가 우리 쪽으로 향할 수도 있습니다.”
북리사웅이 조소 띤 표정으로 콧소리를 냈다.
“훗! 어차피 많은 사람을 보내지는 못할 텐데,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 않소?”
“그들을 제거하면 제왕성에 좋은 일만 시켜주는 셈이 되오. 우리에게는 두 세력 간의 균형이 무너져서 좋을 게 없소. 그렇다고 해서 도망칠 수도 없는 일 아니오?”
북리사웅은 마땅히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꼴 보기 싫은 육풍원이 혀를 찰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괜히 나섰다는 자책감만 들었다.
‘그래, 어디 너 좋을 대로 해 봐라.’
독고무령은 방 안이 조용해지자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마침내 제왕성도, 은룡산장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었소. 나는 저들을, 물러나고 싶어도 물러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을 생각이오. 와중에 수백, 수천의 죽음이 있을지 모르오. 어쩌면 이곳에 있는 우리들 역시 그 여파에 휩쓸릴지도 모르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저들을 공멸시킬 기회가 없소.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따라주기를 바라겠소.”
나직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
방 안을 흐르던 공기마저 고개를 숙이고 바닥으로 내려앉은 듯하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천룡방의 사람들조차 침 한 번 삼키지 못했다.
‘위험해. 너무 위험한 놈이야!’
북리사웅은 이를 악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처음에 만났을 때만 해도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싫었다.
천룡방의 소방주인 자신에게 패배감이 들게 하다니.
더구나 용설이라는 여인도 저놈을 좋아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대로 물러서면 북리사웅이 아니다! 두고 봐라! 언제고 지금까지 겪은 마음의 고통을 모두 돌려주고 말 테니까!’
그때 독고무령의 시선이 북리사웅을 향했다.
북리사웅은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는, 뒤늦게 고개를 돌린 것을 후회하며 이를 악물었다.
‘제길……!’
독고무령이 그런 북리사웅에게서 눈을 떼고 이호에게 말했다.
“귀원장에서 나온 자들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가 들어오면 즉시 보고하도록 하시오.”
“예, 회주!”
* * *
그날 석양이 지고 어스름이 깔릴 무렵, 은룡산장의 삼백 무사가 서연으로 진입했다.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대풍장으로 향했다.
어스름이 밀려드는 시각.
그들을 발견한 순찰무사들이 호각을 불어댔다.
삐이익!
“은룡산장의 침입이다!”
“은룡산장 놈들이 쳐들어온다!”
요란한 고함소리가 어스름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은룡산장의 무사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더욱 빨리 달려갔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순찰무사들을 덮친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순찰무사들을 죽이고는, 대풍장을 향해서 신형을 날렸다.
질풍처럼 달린 그들이 대풍장에서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두두두두…….
갑자기 사방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며 대지가 진동했다.
일대를 이끌던 헌원조의 표정이 굳어졌다.
“기마대?”
순찰무사들이 소리치고 숨을 서너 번 쉬는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
너무 빠른 반응.
그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역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었다. 그리고 그럴지 모른다는 예상도 했던 터였다.
그럼에도 공격을 강행한 것은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마대가 와 있을 줄은 미처 몰랐지만, 그 역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이끄는 패령군과 초혼단은 은룡산장의 정예 중 정예. 일개 기마대로 막을 수 있는 힘이 아닌 것이다.
헌원조는 냉소를 흘리며 소리쳤다.
“거치적거리는 것은 모조리 제거해라!”
그때였다. 대풍장 정문이 활짝 열리고 기마가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백여 필의 말이 좌우의 담을 돌아 나왔다.
두두두두두…….
그들을 바라보던 헌원조의 눈이 한껏 커졌다.
“미첨도(眉尖刀)?”
기마무사들의 손에 길이가 열 자는 될 법한 미첨도가 들려있다. 중병 중에 중병. 일반 강호의 무인들이라면 절대 쓰지 않을 대도(大刀)다.
문제는 그것이 강호의 고수들 손에 들려 있다는 것이었다.
미첨도가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강호고수들에게는 별반 장애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기마를 타고 있다면 위력이 배가될 수도 있었다.
“놈들의 공격을 조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