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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70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70화

 

170화

 

 

 

 

 

 

이제 정양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그곳이라면 약간이나마 소식을 들을 수 있을 터, 쉬는 것은 정양에 도착한 후 쉬어도 될 것이었다.

 

정오를 막 넘긴 시각.

 

독고무령은 정양에 도착하자 외곽의 허름한 국수집으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소면으로 배를 채우고 곧장 대우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가 도청진 등과 소면을 먹고 있을 때였다. 구석진 자리에 있던 두 낭인의 이야기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제왕성이 움직였다고 하더군.”

 

“그럼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건가?”

 

“그거야 더 두고 봐야지. 단순히 서연 분타를 강화하려고 움직인 건지도 모르니까.”

 

“하루에 은자 열 냥씩 준다는데, 한번 가볼까?”

 

“아서. 우리 같은 사람은 받아주지도 않겠지만, 잘못 끼어들면 그날로 이거네.”

 

낭인 중 하나가 손으로 목을 쓰윽 그었다.

 

반대편에 있던 낭인이 거칠게 젓가락질을 하며 투덜댔다.

 

“제길, 그놈들 배때기는 뭐 철판으로 되어 있다던가? 지들도 칼로 쑤시면 다 들어가게 되어 있다고.”

 

“쑤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으니까 문제지.”

 

그들의 대화를 듣던 독고무령은 대충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나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소.”

 

도청진과 천수옥이 펄쩍 뛰었다.

 

“여기까지 함께 왔는데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도 가겠소!” 

 

“어차피 가려고 했던 곳이니 같이 갑시다, 백 형.”

 

두 사람이 독고무령을 따라 일어나자 홍려려도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독고무령이 그녀를 보고 물었다.

 

“괜찮겠소?”

 

홍려려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대답했다.

 

“걱정 말아요, 이 정도에 쓰러지지는 않으니까.”

 

 

 

홍려려는 그녀의 말대로 대우에 도착할 때까지 쓰러지지 않았다. 다만 도청진과 천수옥의 손을 번갈아 붙잡았을 뿐.

 

홍려려를 도와주느라 진기를 소모해서인지 두 사람의 얼굴도 홍려려만큼이나 붉어졌다.

 

독고무령은 마을이 보이자 언덕 위에서 마을주변을 살펴보았다. 저 멀리 수만 평의 대지를 차지한 채 누워있는 적사보가 보였다.

 

그런데 적사보만이 아니고, 마을 전체의 분위기가 이상할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무사들이 대규모로 출동했다면 기대감으로 흥분하는 분위기여야 맞았다. 하지만 그가 느낀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살기와 긴장이 범벅된 느낌.

 

독고무령이 그 느낌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언덕을 내려가 대우로 들어설 무렵이었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술을 마시던 낭인무사 하나가 앞을 지나가는 독고무령 일행을 향해 주절거렸다.

 

“이보쇼, 안으로 들어가서 얼쩡거리면 잡혀가니까 조심하쇼.”

 

독고무령이 그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무조건 잡아가고 있소. 아침부터 그랬는데, 벌써 이십여 명이 잡혀가고 대여섯 명이 죽었소. 분위기가 하도 살벌해서, 나처럼 제왕성의 무사가 되어보기 위해 왔던 사람들도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오.”

 

순간 독고무령의 뇌리에 경고음이 울렸다.

 

‘간자색출?’

 

밀호방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대우에 파견되어 있다.

 

그들은 무사할까?

 

문득 걱정이 되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으니 내가 먼저 살펴보고 오겠소.”

 

강호경험이 없는 세 사람은 독고무령의 말에 멈칫했다.

 

독고무령은 그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외진 곳에서 인피면구를 꺼내 얼굴에 썼다.

 

 

 

마을이 그리 크지 않은 데도 여기저기서 무사들이 보였다.

 

모두가 적사보에 거점을 마련한 제왕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잔뜩 긴장한 채 객잔과 주루에서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독고무령도 주루로 들어가서 탁자 하나를 차지했다.

 

그가 주루에 들어온 것은 단순히 긴장된 분위기에 편승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혹시나 밀호방의 표식이 없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위를 살피던 중 주루의 기둥에서 작은 여우 그림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 앉은 독고무령은 간단하게 술과 안주를 주문하고는, 탁자 위에 올린 손을 구부려 여우 모양을 만들고 주루 안의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때 구석진 곳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던 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삼십 대 초반의 장한이었는데, 뭔가를 망설이는 듯하더니 천천히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밀호방의 표식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독고무령의 전음이 곧장 그에게 전해졌다.

 

멈칫한 장한은 술잔을 내려놓고 전음으로 물었다.

 

<누구십니까?>

 

긴장이 완연한 목소리.

 

독고무령은 그것만으로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감지했다.

 

<독고무령이오.>

 

다시 술을 따르려던 장한의 몸이 잘게 떨렸다.

 

<저, 정말 회주십니까?>

 

<그렇소. 말해보시오. 무슨 일이 있었소?>

 

<십삼호가 회주께 인사드립니다. 본래 이 일대에는 본방의 사람이 다섯 명이나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셋이 저들에게 죽고 이제 둘만 남았습니다.>

 

독고무령은 엽차로 목을 축이며 다시 물었다.

 

<현재 상황은?>

 

<워낙 감시가 심해서 꼼짝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저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들이 움직였다는 소식은 전했소?>

 

<처음 적사보를 나온 자들에 대해서만 겨우 전했습니다.>

 

<그럼, 그들 말고 또 나온 자가 있단 말이오?>

 

<죄송하게도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마장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도 두 사람이 나가 있었는데, 아직 그들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 역시 제거되었을지 모른다는 말.

 

독고무령은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함을 알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때 점소이가 주문한 술과 요리를 가져왔다.

 

독고무령은 두어 잔의 술을 마시며, 장한에게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그리고 술병이 반도 비워지지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령 이곳에 있는 정보원들이 미처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해도 운양과 이호는 연락을 받았을 가능성이 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움직인 이상, 이중 삼중으로 감시하던 다른 정보원들이 연락을 취했을 테니까.

 

문제는 시간 차이였다.

 

짧으면 일이 각, 길면 한 시진의의 차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닐 수도 있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승부가 갈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위지천백이 정보를 차단하려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정보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뭔가 더 큰 목적이……. 으음, 앞으로는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겠어. 아무래도 바로 돌아가야 할 것 같군.’

 

다가온 점소이에게 열 문의 철전을 건네준 독고무령은 주루를 나서기 위해 입구 쪽으로 갔다.

 

그때 그보다 한발 먼저 무사 셋이 주루로 들어섰다.

 

감청색 무복에 무표정한 얼굴, 둘러보는 눈빛에서 남을 억압해본 경험이 절로 느껴지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독고무령이 주루를 나서려 하자 앞을 막아섰다.

 

“잠깐!”

 

“왜 그러시오?”

 

세 무사 중 땅딸막한 자가 소리쳤다.

 

“우리는 제왕성 집법전의 집법무사다. 잠시 우리의 질문에 대답해줘야겠다.”

 

독고무령은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소. 비켜주시오.”

 

“흥! 협조하지 않겠다는 건가?”

 

“시간이 없을 뿐이오.”

 

“이 건방진 놈이!”

 

땅딸막한 무사가 냉랭히 소리치고는 손을 뻗었다.

 

단순히 가슴을 밀치려는 것인지, 멱살을 잡으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의 목적이 무엇이든 신경 쓰지 않았다.

 

빨리 백천산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을 나누면 수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

 

그럼 시간만 지체될 뿐이다.

 

촌각이 아까운 독고무령은 마주 손을 뻗어 상대의 손목을 거머쥐고, 다른 한 손으로 가슴을 후려쳤다.

 

우두둑! 퍽!

 

“커억!”

 

땅딸막한 자가 입을 떡 벌린 채 그대로 쓰러졌다.

 

좌우에 있던 두 명의 집법무사들은 땅딸막한 무사가 쓰러진 후에야 뒤로 물러나며 무기를 뽑아들었다.

 

“네놈이 감히!”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로구나!”

 

독고무령은 스윽, 한 걸음을 내딛으며 두 손을 휘둘렀다.

 

두 무사는 상대가 맨손임을 알고 곧장 도검을 휘둘러 독고무령의 몸을 양단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도검이 독고무령의 몸을 가르기도 전에 뼈 부러지는 소리가 그들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퍽! 빠각!

 

“꺽!”

 

“크윽!”

 

독고무령은 단숨에 두 무사를 마저 꺼꾸러뜨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주루를 나섰다.

 

주루 안에 있던 이십여 명의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독고무령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제왕성의 집법무사들이 정체 모를 괴청년에게 수수깡처럼 부러지다니!

 

청년의 강함도 놀랍지만, 정작 큰 문제는 그가 제왕성의 집법무사를 쓰러뜨렸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제왕성의 장악 하에 있는 이곳에서!

 

누군가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곳에서 도망가자고! 제왕성에서 가만 안 둘 거야!”

 

사람들은 그제야 엉덩이에 불붙은 망아지마냥 벌떡 일어나 주루를 빠져나갔다.

 

독고무령은 뒤에서 벌어지는 소란에 아랑곳없이 도청진 등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급히 가야 할 데가 있으니, 그대들은 태원으로 가서 풍운장을 찾아가 운양을 찾으시오.”

 

독고무령의 말에 도청진과 천수옥이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럴 필요 있겠소? 그냥 함께 가면 될 텐데.”

 

독고무령이 그들에게 넌지시 한마디 더 했다.

 

“그곳에 가면 암천사신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이오.”

 

“정말이오?”

 

천수옥이 눈을 크게 뜨고 묻자, 도청진과 홍려려도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독고무령의 대답을 기다렸다.

 

독고무령이 확신한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물론이오.”

 

세 사람의 표정이 환해졌다.

 

“좋소, 그렇다면 일단 백 형 말대로 하겠소. 그런데 백 형도 그곳으로 올 것이오?”

 

독고무령은 실소가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요.”

 

 

 

그들이 떠날 즈음, 마을 쪽에서 급박한 호각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곧 삼십여 명의 집법무사들이 독고무령을 쫓아 마을을 나섰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 독고무령은 이미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제6장 불을 더 키워라!

 

 

 

 

 

독고무령은 제왕성 무사들이 서연으로 가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어디로 간 걸까? 왜 갑자기 정보까지 차단하면서 움직인 걸까?

 

하지만 그들의 뒤를 밟을 시간이 없었다.

 

독고무령은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은 직후 백천산 계곡에 도착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동굴로 향했다.

 

철통같이 동굴을 지키고 있던 호위무사대는 독고무령이 앞에서 나타났는데도 의아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동굴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독고무령과 진사혁이 아니라 진사혁 혼자라는 걸.

 

“다녀오셨습니까, 회주?”

 

한무종과 염부중이 인사하자, 독고무령은 시커먼 동굴 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별일 없었소?”

 

한무종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예, 회주. 며칠 굶은 것을 제외하면 아주 조용했습니다.”

 

“굶었다고? 훗, 지금쯤 배가 등에 붙었겠군요.”

 

“저도 진 대주가 저렇게까지 참을성이 강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독고무령은 피식 웃으며 동굴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굴의 길이는 이십 장 정도 되었는데,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만이 그를 반겼다.

 

그런데 그가 십오륙 장쯤 들어갔을 때였다.

 

전면에서 아무 소리도 없이 묵직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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