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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67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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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167화

 

167화

 

 

 

 

 

 

한마디로 ‘금의위로는 나를 막을 수 없다. 막으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 것이다.’ 그 말이다.

 

동방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담담히 말하는 독고무령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놈의 말투하고는……. 누가 백씨 핏줄 아니랄까봐, 말 몇 마디로 남의 속 뒤집는 건 똑같군. 쯔쯔쯔.”

 

독고무령은 동방명의 말을 자르고는 대답을 재촉했다.

 

“시간이 없으니 핏줄 이야기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어떻게 제왕성과 연계된 겁니까?”

 

동방명은 첫 번째 신경전에서 자신이 졌음을 순순히 인정하고 입을 열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본격적인 싸움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누가 최후에 웃을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

 

그는 자신의 나이 반도 안 되는 청년에게 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오 년 전이었네…….”

 

 

 

제왕성의 누군가가 금의위에 연락을 해온 것은 오 년 전이었다.

 

동창에 눌려 기를 못 펴던 금의위로선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은룡산장의 무력이 워낙 엄청나 당장 손을 쓸 수는 없었다.

 

그들은 오 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은룡산장을 무너뜨릴 계획을 짰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다. 

 

자신들 외에 또 다른 힘이 제왕성과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다시 뒤통수를 맞을 수는 없는 일.

 

동방명은 암암리에 제삼의 세력을 조사해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자신들은 동창을 제거하기 위한 화살받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왕께서 도찰원과 함께 제왕성의 뒤에 있더군. 제왕성이 은룡산장을 무너뜨리고, 우리가 동창의 세력을 약화시키면, 그 기회를 틈타서 뭔가 일을 꾸며볼 생각인 게지.”

 

“그런데도 그들 뜻대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독고무령의 질문에 동방명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하긴 해야겠지. 결과는 그들의 생각과 조금 달라지겠지만.”

 

독고무령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금의위가 동창과 또 다른 자들을 막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 것 같았다. 문제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제가 이곳에서 해드릴 일은 없습니까? 제왕성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나와 있을 거 같습니다만.”

 

위지천백이라면 완벽한 기회를 노리기 위해서 고수들을 파견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을 제거한다면 조금 더 가능성이 올라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동방명은 천천히 고개를 저어서 독고무령의 도움을 거절했다.

 

황궁에서 강호의 무사들끼리 싸우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자존심 문제였다.

 

“그 일도 만반의 대책을 세워놓았네. 그 정도도 처리 못해서야 어찌 황제 폐하의 안전을 책임지는 금의위라 할 수 있겠나? 자넨 그보다 산서 쪽의 일에 신경을 써주게. 제왕성이든 은룡산장이든, 어느 쪽이 이겨도 최대한 피해가 많아야 저들의 야욕을 꺾을 수 있으니 말이야.”

 

자신만만한 표정. 생각보다 준비를 더 철저히 한 듯하다.

 

더구나 이곳에 며칠씩 머무를 수도 없는 일.

 

독고무령도 그 일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방명과 독고무령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위지천백이 누구를 황궁에 들여보냈는지. 그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그걸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은 일단 그쯤에서 이야기를 멈췄다.

 

독고무령은 공식적인 이야기가 대충 끝나자 개인적인 질문을 했다.

 

“조금 전에 이왕과 도찰원이 제왕성과 손을 잡고 있다 하셨는데, 혹시 도찰원의 첨도어사 정수교라는 사람에 대해 아십니까?”

 

그 이름을 듣고 동방명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정수교?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

 

독고무령은 동방명의 반응을 보고 조금 돌려서 대답했다.

 

“제 밑에 있는 사람 중 하나가 그와 먼 친척이라고 해서 한번 알아보려는 겁니다.”

 

동방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펴기를 반복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는 이 년 전에 부도어사(副都御史)가 되었네. 솔직히 말해서 조금 의심이 가는 인물이네. 당시 첨도어사 대부분이 파직을 당했는데, 오직 그만 승진했지. 뭔가 그만한 성과를 올렸다는 건데, 문제는 그가 어떻게 해서 승진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지.”

 

“금의위에서 파악한 게 있을 것 같습니다만.”

 

동방명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정확하지는 않은데…… 내가 보기에는 그가 이번 일을 주관한 것이 아닌가 싶네.”

 

독고무령의 눈빛이 깊게 침잠되었다.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정수교는 모용설의 어머니를 친동생처럼 아끼던 사람이라 했다.

 

그가 만약 모용설의 어머니가 은룡산장에서 부린 사람들에 의해 죽었다는 걸 알았다면 가만히 있었을까?

 

복수를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억지생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생각도 아니었다.

 

독고무령의 생각을 눈치 챘는지 동방명이 직시한 채 물었다.

 

“그를 만나볼 생각인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나보는 거야 나쁘지 않을 것 같네만, 설마 자네에 대한 것을 다 밝힐 생각은 아니겠지?”

 

“그 정도로 둔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그걸 의심한 나는 둔한 사람인가?

 

동방명은 독고무령을 바라보는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그가 정말 도찰원의 주관자라면 뭔가 얻을 수 있을 거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게야. 그는 다루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니까.”

 

독고무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전무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내 집에서 그리 멀지 않네. 가면서 알려주지.”

 

독고무령은 일어나기 직전, 지나가듯이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혹시 독고한이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독고한?”

 

“삼십 년 전쯤에 금의위에 있었다 들었습니다만.”

 

“음, 내가 금의위의 일을 본 것이 이십오 년 되었네. 아쉽게도 그 이름은 잘 모르겠군.”

 

아버지를 위해서 아버지의 형이라는 사람의 행방을 알아보려 했는데 동방명조차 모르는 것 같다.

 

하긴 세월이 삼십 년 가까이 흐르지 않았는가. 설령 함께 일했던 사람조차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면 모를 터였다.

 

독고무령은 아쉬움을 접고 대신 부탁을 했다.

 

“혹시라도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행방을 알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알겠네. 한번 알아보지.”

 

 

 

* * *

 

 

 

독고무령은 자금성을 나온 즉시 전무호와 함께 정수교의 집을 찾아갔다.

 

다음 날 아침에 찾아가도 되었지만, 황궁으로 등청하기라도 하면 만나기가 그만큼 어려워질 터. 자칫하면 하루를 더 소비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저 집이네. 조심하게나.”

 

전무호는 멀리서 정수교의 집만 알려주고는, 씩 웃으며 손을 흔들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독고무령은 전무호가 가리킨 장원을 둘러보고는 정문으로 다가갔다.

 

도찰원의 이인자인 부도어사의 장원답게 정문을 군병이 지키고 있었다.

 

독고무령이 가까이 가자 군병 중 하나가 거만한 표정으로 앞을 막아섰다.

 

“정지! 무슨 일로 온 것인가?”

 

“부도어사 어른을 만나러 왔소.”

 

“지금 이 시간에 말인가?”

 

“급한 일이라 시간 여유가 없어서 지금 온 거요. 일단 들어가서 말씀이라도 전해주시오.”

 

군병은 독고무령을 쓰윽 훑어보고는 턱을 치켜들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와라.”

 

“내일은 올 수 없소. 정 안 된다면 그냥 돌아가도록 하겠소. 대신 말이나 전해주시오. 동생 일 때문에 급히 왔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냥 갔다고 말이오.”

 

독고무령은 그렇게만 말하고 돌아섰다.

 

군병은 설마 그냥 돌아설 줄 몰랐는지 어정쩡한 자세로 손을 내밀며 독고무령을 불렀다.

 

“어? 이봐!”

 

하지만 독고무령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이, 이보쇼! 잠깐만!”

 

부도어사의 동생 일이라 했다. 급하다 했다. 만약 그 말이 부도어사의 귀에 들어갔다가는 그날로 자신의 인생도 끝장이었다.

 

군병은 후다닥 달려가서 독고무령의 앞을 막았다.

 

“자, 잠깐 기다려 보쇼. 아, 부도어사 어르신의 동생 분 일이라고 진작 말씀을 하시지.”

 

“시간이 늦었다 하지 않았소?”

 

“그, 그거야 워낙 귀찮게 하는 자들이 많다 보니까 그런 거요. 헤헤, 그러지 말고 일단 이리 오쇼.”

 

“그럼 안에다 기별을 줄 수 있다는 거요?”

 

“헤헤헤. 물론이오. 걱정 마시고, 날 따라오쇼.”

 

군병은 땀을 찔찔 흘리며 독고무령을 정문 쪽으로 데려갔다.

 

정문 앞에 있던 다른 군병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차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에게나 목에 힘을 주더니 그럴 줄 알았다.’

 

 

 

정수교는 늦은 밤에 급히 찾아온 사람이 있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의아함을 금할 수 없었다.

 

‘동생이라고?’

 

그에게는 동생이 없었다. 있다면 십이 년 전, 전쟁터에 나가 죽은 동생밖에 없었다.

 

설마 십이 년 전에 죽은 동생의 일은 아닐 터.

 

도대체 누가 동생의 일이라 하며 찾아온 것일까?

 

어쨌든 만나보면 알 일.

 

방을 나선 그는 손님이 머물고 있다는 객방으로 갔다.

 

독고무령은 의자에서 일어나며 방으로 들어서는 정수교를 보았다.

 

오십 대 초반의 정수교는 상당히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길게 뻗은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데다 입술이 얇았는데, 어지간한 사람은 앞에서 쉽게 말도 꺼내지 못할 만큼 차갑게 느껴졌다.

 

“내가 정수교네. 자넨 누구지?”

 

“무령이라고 합니다.”

 

“급한 일로 나를 찾아왔다고?”

 

정수교가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독고무령도 앉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정수교가 독고무령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겐 동생이 없네. 단 하나 있던 동생이 십이 년 전에 오랑캐의 활에 맞아 죽은 후로는 말이야. 한데 갑자기 동생의 일이라니, 도무지 알 수가 없군.”

 

“저는 친동생의 일로 온 것이 아닙니다.”

 

정수교는 미간을 찌푸린 채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그럼, 어떤 동생을 말하는가?”

 

“일단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물려주시지요.”

 

정수교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

 

하지만 독고무령의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고는 짧게 명을 내렸다.

 

“십 장 밖으로 떨어져 있어라.”

 

곧 은밀한 움직임이 일더니 네 줄기 기운이 멀어졌다.

 

“이제 이야기해 보게.”

 

독고무령은 말하는 대신 품속에서 물건을 하나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모용설이 준 팔찌였다.

 

“이걸 아십니까?”

 

순간 정수교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잘게 떨리는 손을 뻗어 팔찌를 잡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팔찌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서 이걸……?”

 

“모용이라는 성을 쓰는 사람이 저에게 주며 부도어사 어른을 만나보라고 하더군요.”

 

정수교가 얇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단순히 소식이나 전하기 위해서 만나러 온 것은 아닐 터. 목적이 있을 것이었다.

 

“뭘…… 알고 싶은 건가?” 

 

“이 물건의 주인이 어떻게 돌아가신지 아십니까?”

 

“알지. 아주 잘…… 아네.”

 

독고무령은 그 대답으로 자신의 생각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복수가 이유의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수에 대한 마음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듯했다.

 

그는 정수교의 마음을 한번 떠보았다.

 

“복수를 하려는데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라 하더군요.”

 

정수교는 독고무령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잇새로 말했다.

 

“뭘 도와줘야 하는지 말해보게.”

 

“제왕성과 은룡산장이 싸우는 틈을 타서 은룡산장에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해서 그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면 합니다만.”

 

정수교의 입술이 길게 늘어졌다. 냉소였다.

 

“그 일은 내가 준비하고 있는 게 있네. 충분히 도움이 될 게야.”

 

“그러시다면 다행이군요.”

 

“다만 자세한 이야기를 해 줄 수는 없네. 워낙 중요한 일이어서 말이야.”

 

“단편적인 것이라도 알려주시지요. 그래야 저희도 손발을 맞출 수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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