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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66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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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166화

 

166화

 

 

 

 

 

 

“도와주는 거야…… 도와줄 수 있지만…….”

 

전무호는 환장할 것 같았다. 

 

속에 있는 것을 다 털어놓자니 독고무령에게 끌려가는 것만 같고, 안 된다고 하자니 비겁한 사람으로 몰릴 판이다.

 

하지만 그가 결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끄응, 좋네. 내 화명 형님의 얼굴을 봐서 자네를 도와주지.”

 

스스로 생각해도 치졸한 변명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린 친구에게 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자존심이 있다고! 아암, 무조건 끌려갈 수야 없지!’

 

이유야 어떻든 독고무령은 전무호가 도와주겠다고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인.”

 

“감사는……. 허험.”

 

전무호는 헛기침을 하고는, 고개를 내밀고 넌지시 말했다.

 

“내일 나와 함께 도독을 만나러 가세. 아마 자네를 실망시키지는 않을 거네. 그분도 백이 어르신을 꽤나 따랐던 분이거든.”

 

 

 

밤이 늦은 시각. 독고무령은 전무호와 함께 전무호의 집을 나섰다.

 

전무호는 다음 날 가자고 했지만, 독고무령으로선 반나절의 시간조차 아까웠다. 

 

독고무령은 차라리 지금 가는 것이 동창의 눈을 피하기 쉬울 거라며 전무호를 설득했다.

 

그 말이 어느 정도 먹혔는지 전무호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 *

 

 

 

해시가 다 되어갈 무렵, 독고무령은 전무호를 따라서 동화문을 통과했다.

 

금의위 천호장인 전무호를 막을 배짱 좋은 어림군은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은 동화문을 통과하자마자 곧바로 금의위 도독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평소였다면 진무사를 만나 먼저 말을 전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였다.

 

그러나 밤에 그들을 찾아가는 것도 어정쩡했고, 사안이 사안인 만큼 직접 찾아가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해서 곧바로 도독의 거처로 찾아간 터였다.

 

다행히 금의위 도독인 동방명은 잠이 들지 않은 상태였다.

 

“이 밤에 무슨 일인가?”

 

 

 

독고무령을 밖에 세워두고 혼자서 동방명을 만난 전무호는 간략하게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동방명은 전무호의 이야기를 꼼꼼히 새겨듣고 가는 눈을 더욱 가늘게 좁혔다.

 

“그게 사실인가?”

 

“비록 성이 다르긴 하지만, 백이 어르신의 손자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제가 봐선 헛소리를 할 아이도 아닌 것 같고 말이지요. 한번 만나봐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허어, 백이 어르신의 손자가 살아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친구가 산서에서 소문이 자자한 암천사신이라는 것은 더욱 놀라운 사실이구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네가 그를 데려왔을 때는 그만한 믿음이 있으니까 데려왔겠지.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 하게. 내 직접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네.”

 

동방명의 명이 떨어지자 전무호가 밖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이보게, 그 사람을 들여보내게나.”

 

전무호가 부름과 동시, 경비무사가 독고무령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방 안으로 들어간 독고무령은 전무호와 마주 앉아 있는 백의노인을 바라보았다.

 

나이는 육십 전후에 꼬장꼬장한 노학사처럼 보였다.

 

그리 크지 않은 몸집.

 

하지만 두 눈은 어떤 절정고수 못지않게 맑고 힘이 있었다. 

 

그리고 독고무령이 잘못 보지 않았다면, 노인은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였다.

 

독고무령은 전무호의 옆까지 다가간 다음 포권을 취했다.

 

“독고무령이라 합니다.”

 

“이리와 앉게.”

 

독고무령이 자리에 앉자 동방명이 물었다.

 

“자네가 산서에서 암천사신이라 불리는 사람, 맞는가?”

 

“남들이 그리 불러주고 있습니다.”

 

독고무령을 바라보는 동방명의 두 눈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남들이 뭐라 부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곳은 천하의 중심지, 황궁이다. 그리고 금의위 제독의 앞이다. 제아무리 간덩이가 부었어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곳.

 

그런데 눈빛 한 점 흔들림이 없는 것이 아닌가.

 

동방명은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흠, 시간이 늦었으니 돌리지 않고 묻겠네.”

 

“그러시지요.”

 

“제왕성이 황궁의 세력과 연관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가?”

 

“저와 관계가 있는 분이 제왕성에 있습니다. 그분이 오랫동안 관찰하며 나름대로 정리해서 짐작한 것에 제 생각을 보탠 것입니다.”

 

동방명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단지 추측이라는 건가?”

 

“은룡산장의 정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위지천백이 은룡산장과 적으로 돌아설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아예 은룡산장을 괴멸시킬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맞을 겁니다. 저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철저한 그가 후환도 생각지 않고 그런 일을 벌였을 거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해서 황궁의 세력과 손을 잡았다? 증거도 없이?”

 

“바로 그 증거를 찾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지요.”

 

“그게 무슨 말인가?”

 

“백부님께선 금의위가 참고 있지만은 않았을 거라 하더군요. 그 말씀을 듣고, 저는 금의위가 뭔가 알고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지요. 동창에 대한 정보를 얻다보면 부수적인 정보도 딸려올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독고무령은 거기까지 말하고 동방명의 두 눈을 직시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제가 금의위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것이 되겠지요.”

 

동방명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말이 꽤나 매섭군.”

 

“그 정도 말에 흔들릴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군자도 때로는 분노하는 법일세.”

 

“어린 사람의 말에 흔들리고 분노할 정도라면, 어찌 대명을 쥐고 흔드는 금의위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동방명은 눈에 힘을 주고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전무호는 안절부절못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저…… 도독……. 이 사람아, 너무 심하게 말하지 말게. 어느 안전이라고…….”

 

하지만 독고무령은 물러설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솔직히 황궁의 일에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수많은 양민들의 생사가 걸리지 않았다면,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저에게는, 황궁의 세력다툼보다 산서의 일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러니 불필요한 신경전은 그만 벌이지요.”

 

동방명의 고개가 조금씩 옆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더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정말 닮았군. 그 옛날 백이 어르신께서 황상께 진언하던 모습과 똑같아.”

 

독고무령의 눈빛이 보일 듯 말 듯 잘게 흔들렸다.

 

정말 핏줄은 어쩔 수 없는 걸까?

 

그때 동방명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을 이었다.

 

“좋아, 신경전을 그만 벌이자고 하니 나도 솔직히 말하지.”

 

전무호는 내심 안도하고, 독고무령은 다시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동방명의 말이 이어졌다.

 

“제왕성이 황궁의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자네 생각이 맞네.”

 

‘역시!’

 

“그리고 나는 그 세력이 어딘지도 알고 있지.”

 

독고무령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였다.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동방명의 표정이 묘하게 이지러졌다. 웃음이었다.

 

“못 알려줄 것도 없지. 그중 하나가…… 바로 금의위니까.”

 

쿵!

 

난데없는 말에 독고무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왕성이 손을 잡은 세력이 금의위였단 말입니까?”

 

“말이 잘못되었군. 정확히는 제왕성이 손을 잡은 세력 중 하나지. 물론 그들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야.”

 

독고무령의 표정이 다시 가라앉았다.

 

동방명은 분명 ‘그들의 착각’이라 했다. 그것은 손을 잡은 이면에 또 다른 뜻이 있다는 말. 그 내막을 알면 모든 게 드러날 것 같았다.

 

어쨌든 동방명이 극비라 할 수 있는 사실을 털어놓았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우리와 같은 길을 가야만 한다! 그 말이다.

 

만일 거부한다면 엉뚱한 곳에서 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었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

 

기호지세(騎虎之勢)다.

 

독고무령은 무심한 표정으로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갔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군요.”

 

“그걸 안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겠지?”

 

친구가 되면 살고, 적이 되면 죽는다. 둘 중 하나를 결정하라는 말.

 

독고무령은 담담한 말투로 역공을 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를 잡아두려면 황궁이 조금 시끄러워질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내 거처 주위에는 금의위와 어림군이 이백 이상 있네.”

 

“그 정도로는 갈대로 담을 친 거나 마찬가지일 뿐이지요.”

 

금의위와 어림군이 갈대라고?

 

자존심이 상한 듯 동방명의 눈꺼풀이 위로 말려 올라가고, 그의 입에서 은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내 곁에는 강호물을 먹은 사람들도 제법 있다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사람들도 상당히 있지. 자네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들을 이기기는 쉽지 않을 거네.”

 

황궁과 오랜 세월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해온 문파들이 있다.

 

천자의 불심이 깊었을 때는 소림이 그랬고, 천자가 도에 심취했을 때는 무당과 화산이 그랬다.

 

아마 정파세력의 결맹인 삼성맹의 대부분 문파들이 조금씩은 황궁과 연관이 있을 터였다. 그들은 황궁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앞장섰던 자들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 황궁과 함께하던 그들도 동창이 권력을 틀어쥔 후부터는 소원해졌다.

 

아마도 암암리에 그들을 끌어들인 듯했다.

 

물론 독고무령은 그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기에 그들을 자신 마음대로 비유하는 걸 서슴지 않았다.

 

“갈대 사이에 막대기 몇 개 꽂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강호의 절정고수들이 막대기?

 

어이가 없는지 동방명의 콧등이 씰룩였다.

 

“정말 오만하군.”

 

“제 친구들은 그 말을 들어도 절대 저를 오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였다. 무형의 기운이 벽과 천장에서 아침안개처럼 밀려나오는가 싶더니, 방의 중심을 향해 밀려들었다.

 

스멀거리며 밀려드는 기운은 대여섯 줄기.

 

분노가 스민 기운은 하나하나가 강철조차 우그러뜨릴 만큼 강맹했다.

 

대기가 비틀리며 방 안이 오그라드는 느낌!

 

이를 악문 전무호와 달리, 동방명은 묘한 눈빛을 반짝였다.

 

그의 주위에는 상시 다섯 명의 호법이 존재했다.

 

겉으로는 금의위의 옷을 입고 있긴 해도, 진정한 정체는 삼성맹에서 파견한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십여 장의 거리를 두고 움직였지만, 손님이 왔을 때는 지척에 접근해서 보호했다.

 

모두가 동창의 강함을 알기 때문에 취한 조치였다.

 

그런데 그들이 분노했다.

 

‘흠, 어디 저들의 분노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지 볼까?’

 

그 사이 주위를 휘돌던 거센 기운이 독고무령을 짓눌렀다.

 

순간, 독고무령이 손을 뻗는가 싶더니, 탁자를 내려쳤다.

 

탕!

 

찰나였다. 태천일심의 기운이 탁자를 중심으로 휘돌며, 독고무령을 향해 밀려들던 기운들을 튕겨냈다.

 

화아악! 

 

대기를 짓누르던 기운이 빛의 폭발처럼 밀려나간다.

 

“으음…….”

 

“흡!”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경악에 찬 나직한 신음.

 

전무호는 눈을 부릅뜨고, 동방명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암천사신에 대한 소문을 듣긴 했다. 산서에서 위지천백에 대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수라 했다.

 

물론 다 믿지는 않았다. 

 

이제 이십 대라는 그가 강하면 얼마나 강할까?

 

진짜 고수를 보지도 못한 놈들이 과장해서 떠벌리는 헛소리에 불과할 뿐.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어이가 없군. 어떻게 이런 일이!’

 

동방명이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지끈거리는 머리를 굴릴 때다. 

 

독고무령이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담담히 말했다.

 

“사실 이건 비밀입니다만, 제왕성의 내성에 들어가서 한 사람을 죽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를 둘러싼 사람들이 모두 오백이 넘었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도 상당히 많았지요. 하지만 저는 두 발로 걸어서 나왔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그날 저를 막다가 죽은 사람들 중 이름 꽤나 날리던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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