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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52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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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152화

 

152화

 

 

 

 

 

 

모용회가 마지막 기운을 짜내서 겨우 입을 열었다.

 

“내…… 품속에…… 정말 미안…… 하다…….”

 

모용설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모용회를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게, 그러게 왜 그런 거예요? 숙부가 그러지만 않았어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죽지 않고,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텐데……. 흑흑…….”

 

“미안…… 미안…….”

 

모용회는 끊임없이 미안하다는 말만 웅얼거리다 조용해졌다.

 

모용설은 눈도 감지 못한 채 숨을 멈춘 모용회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는, 천천히 그의 몸을 놓아주었다.

 

그제야 모용회의 눈이 감겼다.

 

모용설은 눈을 감은 모용회의 품에 손을 집어넣어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주머니에는 용이 금실로 수놓아져 있었는데, 손 안으로 들어갈 만큼 작았다.

 

그녀는 그 안에 든 물건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쨌든 상관없었다.

 

그녀에겐 그저 손에 들린 물건으로 소양이를 구할 수 있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모용설은 주머니를 꼭 쥐고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옆에 있던 독고무령이 씁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몰랐군. 그가 당신의 숙부였다니.”

 

모용설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회주께서 마음 쓰실 것은 없어요. 살이 너무 빠져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몰랐으니까요.”

 

숙부는 집에 거의 오지 않았다. 자신이 이어받을 가문을 차지했다고, 아버지를 원수처럼 생각했으니까.

 

그녀 역시 대여섯 살 때 한 번 보고, 가장 최근이라고 해봐야 육 년 전에 겨우 먼발치에서 봤을 뿐이었다. 

 

정면으로 봐도 잘 모를 텐데, 어둠속에서 싸우던 와중에 알아본다는 것은 그녀가 아무리 총명해도 힘든 일이었다.

 

쓱, 소매로 대충 눈물을 닦은 그녀는 고개를 들고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좌우간…… 고마워요, 회주.”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

 

물기를 머금은 그녀의 눈은 달빛이 반사되어 너무나 아름다웠다.

 

독고무령은 잠시 말을 잊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만일 진사혁이 부르지 않았다면, 한참 동안 그렇게 있었을지 몰랐다.

 

“회주,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독고무령은 흠칫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은 당황한 표정, 그것이 모용설의 눈에 그대로 들어왔다.

 

기쁨과 슬픔이 범벅되어 마음이 착잡하던 모용설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 없이 피식 웃었다.

 

독고무령은 언뜻 그녀의 웃음을 보았지만, 못 본 척 무거운 표정으로 명을 내렸다.

 

“일단 돌아가지. 정리할 일이 많으니까.”

 

 

 

 

 

 

 

제9장 위지천백의 욕망은 어디까지인가?

 

 

 

 

 

독고무령이 구양손의 행방불명을 안 것은 만금도국으로 돌아간 직후였다.

 

부상이 심한 여량삼호를 먼저 손보고, 운양과 구양조의 몸을 살펴보는데, 구양소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구양 숙부는 비밀통로로 함께 나오시지 않았대요.”

 

“그분이 비밀통로로 나오지 않았다고?”

 

“예, 회주. 숙부님은 다른 사람을 구해본다고 밖으로 나가셨대요.”

 

구양소현의 말에 독고무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풍운장의 시신 중 구양손의 것은 없었다. 적어도 장원 안에서는 죽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된 걸까?

 

북문의 혈투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다못해 암천삼당의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면 대충의 상황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사히 탈출했다면 지금쯤 찾아왔어야 했다.

 

어디 밖으로 나가서 멀리 가버린 걸까?

 

그렇다면 모를 수도 있었다.

 

“조금 더 기다려보지. 성 밖으로 나가셨으면 모를지도 모르니까.”

 

“정말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는데…….”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구양소현을 보고, 독고무령은 그녀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전이었다면, 근심에 앞서 투덜거리기부터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남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삼당과 밀호방의 사람들을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다. 정말 멀리 갔다면 백천산으로 가셨을지도 모르고.”

 

일리가 있다 생각했는지, 구양소현은 한숨을 내쉬며 독고무령의 말을 인정했다.

 

“후우, 알았어요. 그럼 나가볼게요.”

 

구양소현은 독고무령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독고무령은 그 모습에서 그녀에게 한 가지 더 변한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바라보는 구양소현의 눈빛이 예전과 다르다.

 

붙잡고자 하는 집착이 사라진 눈빛이다.

 

독고무령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자신은 구양소현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터다. 서로를 위해서도 구양소현이 집착을 버린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사혁과 잘 되면 좋겠는데…….’

 

그가 상념에 잠겨 있는데 마인걸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주, 백귀당주와 흑호당주가 왔습니다.”

 

“들어오시오.”

 

 

 

삼당의 당주와 밀담을 마친 독고무령은 일단 풍운장을 정리하기 위해 만금도국을 나왔다.

 

해가 뜰 때쯤에는 풍운장이 예전과 같은 겉모습을 되찾았다. 장원을 지키다 죽은 사람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살릴 수 없는 이상은 안타까워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풍운장으로 돌아온 독고무령은 정리가 끝나자 운양을 찾아갔다.

 

구양조 부부, 여량삼호와 함께 밀호방으로 돌아와 있던 운양은 창백한 얼굴로 독고무령을 맞이했다.

 

독고무령은 운양의 명문혈을 통해 진기를 불어넣어서 충격을 입은 혈맥을 다스려주었다.

 

“무리하지만 않으면 낫는데 열흘 정도 걸릴 거네.”

 

운양이 반쯤 엄살을 피우며 약 타령을 했다.

 

“끄응, 어디서 영약이라도 뚝 떨어지면 좋겠는데…….”

 

약이라면 없지 않았다. 조금 걱정되어서 그렇지.

 

“선공의 약이라도 얻어다 줄까?”

 

운양은 당연히 펄쩍 뛰며 거부했다.

 

“차라리 나더러 그냥 죽으라고 하쇼.”

 

독고무령은 피식 웃고는 담담히 이야기를 돌렸다.

 

“이제부터는 굳이 감출 것 없네. 급박한 상황이 되면 삼당의 힘을 이용하도록 하게. 말해 두었으니 적절하게 이용하면 어지간한 위험은 피할 수 있을 거네.”

 

“제왕성이 알면 더 위험해질 텐데요.”

 

“최소한 태원 안에서는 그들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거네. 더구나 은룡산장과의 싸움을 앞두고 있으니 많은 인원을 투입하지도 못할 거고.”

 

“그건 그런데…….”

 

“위지천백이 내가 보낸 경고를 알아봤다면, 앞으로는 태원에서 쉽게 일을 벌이지 못할 거네.”

 

천검무왕 위지천백에게 경고를 보냈다고? 

 

운양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객잔에 벌어진 일을 떠올리고 눈을 크게 떴다.

 

“아, 객잔에서 그자의 몸에 남긴 상흔 말입니까?”

 

독고무령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거기다 태원의 흑도가 모두 우리 편이란 걸 알면, 제아무리 제왕성의 힘이 강하다 해도 당장 손을 쓰지는 못할 거네. 태원이 우리들의 본거지라 생각할 테니까.”

 

실력이야 어떻든 머릿수에서 일천이 넘는다. 거기에 무천련의 고수들이 모여 있고, 그중 절정고수들이 상당수라면 제왕성이라 해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당장 그러한 고수들이 태원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왕성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최고의 정예들이 하룻밤 사이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지 않았는가 말이다.

 

대답하는 운양의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실렸다. 이미 배에 올라탄 이상 폭풍우는 각오해야 했다.

 

“흠……. 알겠습니다.”

 

“은룡산장과의 약속이 있으니 저녁때 어둠을 틈타 떠날 생각이네. 조심하도록 하게, 운양.”

 

“걱정 마십시오. 회주가 없는 동안, 최대한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태원을 진짜 본거지처럼 만들어버릴 거요.”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독고무령과 운양은 서로를 마주보며 조용히 웃었다.

 

 

 

* * *

 

 

 

태양이 관제산으로 넘어가기 전인 유시 초, 제왕전이 침묵에 잠겼다.

 

처음에는 제왕전이 부서질 것처럼 큰소리가 오갔다. 그러나 일각이 지나기도 전에 모든 사람의 입이 닫혔다.

 

그리고 침묵만이 제왕전을 짓눌렀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아홉 명이나 모여 있는데도 제왕전의 침묵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제왕성의 주인, 위지천백이 입을 열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앞에는 남호종이 눕혀져 있고, 남호종의 옆에는 이정효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위지천백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호종의 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심지어 이정효의 보고를 듣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제왕성의 최고위 간부들이 이정효의 말에 분노의 표정을 드러낼 때도, 당장 태원으로 달려갈 것처럼 소리칠 때도, 위지천백은 오직 남호종만을 바라보았다.

 

위지천백의 말문이 터진 것은, 남호종이 그의 앞에 눕혀진 지 삼 각이 지나서였다.

 

“놀랍군, 정말 놀라워.”

 

무엇이 놀랍다는 걸까? 제왕밀전의 무사들이 당했다는 게 놀랍다는 걸까, 아니면 겁 없이 그들을 죽인 자들의 당돌함이 놀랍다는 걸까?

 

어쨌든 그의 입이 열리자, 한쪽에 앉아 있던 노태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성주, 그들을 그냥 놔둘 수 없는 일 아니옵니까? 명을 내리시지요.”

 

위지천백은 노태릉의 말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노태릉의 건너편에 앉아 있던 육순의 노인이 굵은 목소리로 물었다.

 

“성주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저희들이 알면 안 되겠습니까?”

 

신무전의 전주, 제왕성의 서열 구위인 북궁휘였다.

 

위지천백은 눈을 좁힌 채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르겠나?”

 

북궁휘의 눈빛이 흔들렸다.

 

뭘 모르냐고 묻는 것일까?

 

그때 간부석 중 가장 앞쪽에 앉아 있던 칠순의 노인, 제천각주 단리황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문을 열었다.

 

“대체 저게 어떻게 해서 생긴 흔적인지 모르겠구려.”

 

위지천백은 다시 시선을 남호종의 가슴에 두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그 내용만큼은 결코 담담하게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단 일수에 주 혈맥만 놔둔 채 근처의 모든 혈맥을 끊어 버렸소.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시전이 가능할지 확신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의 수법이오.”

 

또다시 제왕전이 침묵에 잠겼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의 침묵이었다.

 

위지천백이 누구던가! 사대천왕 중의 하나이며, 중원의 모든 무인을 통틀어 열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절대고수가 아니던가!

 

그러하거늘 암천사신이라는 애송이가 위지천백에 비교할만한 고수라니!

 

사람들은 입을 꾹 닫은 채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위지천백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위지천백이 상대를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자신을 낮춘다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디 그게 말이 되는 말인가.

 

하지만 이번 침묵은 길지 않았다. 

 

“무천련의 잔당들부터 쓸어내려 했던 내가 제왕밀전 무사들의 복수를 명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오. 태원에 숨은 놈들을 일일이 찾아서 잡으려면 많은 시간과 상당한 전력이 소모될 것이거늘, 당장은 그럴 여유가 없소. 지금 태행산을 넘어오는 은룡산장 본진과의 싸움을 앞두고 불필요한 전력을 소모할 수는 없는 일. 천참만륙해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놈들이 괘씸하지만, 복수보다는 은룡산장의 괴멸이 먼저요.”

 

노태릉이 걱정되는지 우려의 목소리로 말했다.

 

“하오나 그러다 태원에 있는 놈들이 뒤통수를 치기라도 하면…….”

 

“무천련이 무너진 지 기껏해야 서너 달이네. 그들이 비록 제법 강한 힘을 갖추었다곤 해도 우리를 위협할 정도는 아닐 거야. 그 정도의 세력이라면 신이당에서 몰랐을 리가 없잖은가?”

 

서연을 쳐 공노명을 죽이긴 했지만, 사람이 없을 때를 노렸기에 성공했을 뿐이다. 우현에서 끼어든 것도 절묘하게 때를 맞추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제왕성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의 숫자가 사백 정도라 하지 않던가. 그 정도로 제왕성을 위협한다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노태릉이 걱정하는 것은 무천련의 잔당이 아니었다.

 

‘분명히 그놈이야. 그날 찾아왔던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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