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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45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45화

 

145화

 

 

 

 

 

 

그는 한참 동안 청년을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서 자신의 거처로 갔다.

 

세상을 피로 뒤덮을 혈왕의 탄생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제 마지막 준비를 해야 할 때다.

 

‘혈왕의 머릿속에 잠령혈시(潛令血匙)를 심으려면 밤을 새워야 할 것 같군.’

 

그 일만 끝나면, 천하에 둘도 없는 절대의 인간병기가 자신의 손으로 완성된다.

 

세상을 피로 물들일 공포의 절대자가!

 

그의 입가에 떠올랐던 차가운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오늘을 위해서 나를 버리고 살아왔다.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어!’

 

 

 

* * *

 

 

 

산서의 하늘에 유난히 뜨거운 태양이 내걸린 날. 제왕성이 침묵을 깼다.

 

위지천백은 천천히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는 평범한 문사처럼 보이는 백의중년인이 서 있었다.

 

위지천백이 눈을 뜨자, 기다렸다는 듯 백의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이제 시작할까 합니다, 주군.”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이냐?”

 

“태원에 웅크리고 있는 쥐새끼들부터 잡을 생각입니다.”

 

말을 맺은 백의중년인, 모용회의 입가로 차디찬 웃음이 번졌다.

 

무천련의 잔당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조사하던 중 태원에서 뜻밖의 보고가 들어왔다.

 

얼마 전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당수의 무사들이 태원으로 들어왔는데,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우르르 빠져나갔다는 것이었다.

 

성문의 위사가 술에 취해 한 말을 듣고, 수하 하나가 위사들을 닦달해서 얻어낸 정보였다.

 

모용회는 성문위사가 말한 인상착의대로 그려진 아홉 장의 그림을 보고 몇 사람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중에는 설자웅과 나호민도 들어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당시 태원에 들어오고 나간 자들이 이번에 나타난 무천련의 잔당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

 

모용회는 성문지기들을 매수한 자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또한 그들이 숨어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곳도 조사했다.

 

결국 한곳이 그들의 눈앞에 드러났다.

 

“그들을 처리하면 숨어 있던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일을 처리해라. 곧 노태군이 산서로 들어올 것이다. 그 전에 마무리를 짓도록.”

 

“존명!”

 

 

 

* * *

 

 

 

독고무령은 진사혁을 불러서 호위무사대를 소집했다.

 

적수천과의 만남은 아무리 빨라도 이삼 일은 더 지나야 했다. 그 사이 태원에 가서 운양을 만나볼 생각이었다.

 

제왕성의 움직임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동요한 산서 무인들을 본격적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독고무령이 태원에 간다고 하자, 북리사웅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 기회에 모두가 함께 움직여서 수양으로 가면 어떻겠소?”

 

천룡방의 소방주로서 편하게만 살아온 그가 아니던가. 아무래도 산골마을 생활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독고무령은 그의 말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당분간 그 일은 불가하오.”

 

“왜 안 된단 말이오?”

 

“수양의 조양표국은 제왕성의 이목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크오.”

 

장만익도 이번에는 독고무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회주의 말이 옳네, 소방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

 

‘빌어먹을!’ 

 

북리사웅은 불만이 많았지만, 계속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라 해서 조양표국으로 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걸 왜 모를까. 계속 주장해봐야 자신만 어리석게 보일 뿐이었다.

 

‘이 거지소굴 같은 데서 얼마를 더 지내야 한다는 거야?’

 

 

 

“회주, 다 집합했네.”

 

진사혁이 여전히 변함없는 말투로 보고하며 씩 웃었다.

 

지루한데 잘 되었다는 표정이었다.

 

독고무령은 간부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부상자를 제외하고 철검위가 아홉, 암천위가 여덟, 모두 열일곱 명이었다.

 

그들을 둘러보던 독고무령의 눈이 나란히 서 있는 용설과 구양소현에서 멈췄다.

 

“바삐 갔다 오려면 힘든 여정이 될지 모르니 두 사람은 가지 않아도 되오.”

 

용설이 고개를 저었다. 가겠다는 뜻.

 

구양소현은 아예 듣지 못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사혁이 그런 구양소현에게 넌지시 말했다.

 

“누님, 회주 말 좀 들으쇼. 그냥 갔다가 올 건데…….”

 

그는 구양소현이 공연히 힘든 길을 가는 게 안쓰러워 보인 것이다.

 

하지만 구양소현은 딱 부러지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가서 아버지를 만나볼 생각이야. 그러니까 말리지 마.”

 

진사혁은 어깨를 으쓱하고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누님이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데야…….”

 

독고무령은 두 사람이 가겠다고 하자 두 번 묻지 않았다.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전열을 이탈하지 마시오. 낙오자를 구할 여유가 없을지 모르니까.”

 

“알았어요.”

 

용설이 입술을 살짝 씹으며 대답했다.

 

구양소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독고무령을 노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사혁이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 마쇼. 무슨 일이 생기면 누님은 내가 구할 테니까.”

 

“침 튀어.”

 

구양소현이 톡 쏘아붙이는데도 진사혁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여전히 싱글벙글 웃었다.

 

철검위와 암천위는 안 됐다는 눈으로 진사혁을 바라보았다.

 

저런 말을 듣고도 그렇게 좋을까?

 

독고무령은 그런 진사혁과 구양소현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출발하지.”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어지던 시각.

 

독고무령은 호위무사대만 거느린 채 태원으로 향했다.

 

 

 

* * *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운가고서점 내실에 있던 운양은 탁자에 팔을 얹고 깍지 낀 손으로 턱을 받쳤다.

 

그의 앞에는 한 장의 보고서가 놓여 있었는데, 그가 그토록 신중한 표정을 짓는 것은 바로 그 보고서 때문이었다.

 

‘그렇게 쉽게 포기할 자들이 아닌데…….’

 

사흘 전부터 수상한 자들이 태원을 휘젓고 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다. 암암리에 지켜본 바로, 그들은 제왕성의 무사들이 분명했다.

 

그것도 절정에 근접한 고수들.

 

정보를 수집하는 자가 절정에 근접한 무공을 지녔다니!

 

기이하게 여긴 운양은 보고를 받은 즉시 삼파의 주인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으로 느낀 것이다.

 

다만 인원이 몇 명 되지 않아서 주시만 하고 건들지 않았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오늘, 뭔가를 얻은 것처럼 보이던 그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그들이 보이지 않으니 안심되어야 하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마치 폭풍이 불기 직전의 축축한 고요가 온몸을 휘감는 것만 같다.

 

‘회주에게 자세히 말 할 걸 그랬나? 그리 심각하지 않은 거 같아 그냥 놔두었는데…….’

 

턱!

 

운양은 탁자를 짚고 일어섰다.

 

‘안 되겠어. 뭔가 조치를 취해 놓아야지.’

 

“초운아, 가서 조익을 불러와라.”

 

건넌방에서 초운의 대답이 들렸다.

 

“예, 대형.”

 

곧 십걸을 이끄는 조익이 왔다.

 

“부르셨습니까, 방주.”

 

운양은 심각한 표정으로 조익에게 명을 내렸다.

 

“즉시 사당의 당주에게 말해서 태원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철저히 살펴보라고 해. 특히 제왕성의 무사로 보이는 자들은 놓치지 말고.”

 

“예, 방주.”

 

“혹시라도 그들을 보거든 함부로 접근하지는 말라고 해. 그들 중에 절정고수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제야 조익의 얼굴에도 긴장이 흘렀다.

 

“알겠습니다.”

 

운양은 조익에게 명을 내리고 초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초운이, 너는 서점 문을 닫고 이곳에서 움직이지 마라. 애들도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예, 대형.”

 

 

 

조익과 초운에게 지시를 내린 운양은 곧바로 풍운장으로 가서 구양손과 구양조를 만났다.

 

운양의 자세한 설명에 구양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제왕성의 무사들이 태원에 들어오는 거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잖은가? 일전에 위지천백의 딸이 태원에 왔을 때도 그렇고 말이야.”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번 움직임은 수상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놈들이 암천회에 대한 것을 눈치 챘다고 보는가?”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순순히 돌아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마를 찌푸리고 있던 구양조가 한마디 했다.

 

“그들이 돌아갔다면, 의심할만한 것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나?”

 

운양이 독고무령에게 자세한 보고를 올리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운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그게 또 이상해서…….”

 

“뭐가 말인가?”

 

“뭐라 정확히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좌우간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구양손이 봤을 때, 운양은 절대 평범한 청년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태원은 물론이고 산서 일대에서 최고의 정보조직이라 할 수 있는 밀호방을 움직이는 사람이 어찌 평범할까.

 

공연한 기우일 수도 있지만, 운양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으음,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일단 거처를 옮길 생각입니다.”

 

“거처를 옮긴다? 태원을 떠나면 오히려 저들의 감시망에 걸릴 위험이 더 많을 것 아닌가?”

 

“놈들이 눈을 까뒤집고 무천련의 잔여세력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 태원을 떠날 수는 없지요. 조금 불편하더라도, 조용해질 때까지 구석진 곳의 객잔을 빌릴까 합니다.”

 

“삼당도 상황을 알고 있나?”

 

“그들에게는 당분간 적극적인 움직임을 자제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우리 사람이라는 게 알려지면 문제가 더 커집니다.”

 

옳은 말이었다. 제왕성이 그걸 알게 되는 순간, 태원의 암천회 세력은 피의 폭풍에 휩쓸릴 것이 분명했다.

 

구양손은 운양의 말을 이해하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없지. 자네 말대로 하세.”

 

“일단 먼저 보낼 사람들을 데려오도록 하지요.”

 

 

 

 

 

 

 

제7장 위기일발(危機一髮), 위지천백에게 선물을 보내다

 

 

 

 

 

태원성의 동문을 통해서 먹물처럼 검은 옷을 입은 흑의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태원으로 들어섰다.

 

동문을 지키던 수문위사들은 그들이 들어가는데도 모른 척 외면했다.

 

전이었다면 수문위장 장추가 그들을 붙잡고 잠깐 시간을 끌었을 것이었다. 들어서는 자들을 붙잡고 안쪽에 신호를 보내면 다섯 냥의 은자가 그의 수중에 떨어졌으니까.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장추는 제발 그들이 빨리 사라져 주기만을 바랐다.

 

그 바람에 유필도 안으로 들어서는 자들을 간과하고 말았다.

 

유필이 이상하게 여겼을 때는, 이미 삼십에 가까운 흑의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선 후였다.

 

‘젠장! 저놈이 왜 신호를 안 보낸 거지?’

 

유필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다급히 객잔을 나왔다.

 

그때 나직한 목소리가 그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장추를 만나러 가나?”

 

적임을 직감한 유필은 홱, 몸을 틀면서 한 자 반 길이의 칼을 허리에서 빼 휘둘렀다.

 

하지만 그가 대항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우직! 퍽!

 

유필은 팔이 꺾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목이 콱 막힌 채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다.

 

남호종은 유필의 목을 지그시 밟은 채 회색 눈을 번들거렸다.

 

“편히 죽고 싶으면 순순히 말하는 게 좋을 거다. 혹시 아나? 살 수도 있을지…….”

 

유필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손에 들린 칼로 심장을 찌르려 했다.

 

하지만 남호종 옆에 있던 흑의장한이, 칼날이 심장에 꽂히기도 전에 유필의 손목을 밟아 분질렀다.

 

우직!

 

“끄으…….”

 

남호종은 억눌린 신음을 토해내는 유필을 보며 하얗게 웃었다.

 

“데려가라, 어디 얼마나 독한지 알아보겠다.”

 

 

 

유필이 남호종에게 잡혀간 지 일각 후.

 

풍운장 외곽 곳곳에서 죽음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커억.”

 

콱 막힌 목구멍에서 핏물이 튄다.

 

제왕밀전의 제삼령주인 교은척은 얼굴로 튀는 핏물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잡아 뺐다.

 

마지막 하나를 죽임으로써 풍운장으로 들어가는 길목 중 서쪽을 감시하고 있던 네 명을 모두 제거했다. 

 

‘지금쯤은 나머지 세 곳의 감시조도 처리되었겠군.’

 

이제 본격적으로 쥐사냥을 해야 할 때. 그의 입에서 나직한 명이 떨어졌다.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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