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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29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29화

 

129화

 

 

 

 

 

 

풍뢰객이라 불리는 도정환이 제일 먼저 불만을 토해냈다. 이마가 잔뜩 찌푸려진 것이 억지로 화를 삭이는 듯했다.

 

장만익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도정환의 화를 가라앉혔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 아침식사 시간이 지났으니 곧 오겠지.”

 

“장로님, 솔직히 말해서 어제 우리가 왔다는 걸 알았다면 바로 찾아왔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천 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태원 근처에 있다는 자가 왜 여태 오지 않는단 말입니까?”

 

도정환의 말에 장만익도 바로 대꾸를 못했다.

 

사실 그도 무천단의 행태가 괘씸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도정환처럼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였다.

 

올 때만 해도 무천단의 단주라는 자가 직접 나와 환영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자신들을 맞이한 사람은 일개 당의 당주에 불과했다.

 

그리고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기다리고만 있는 상황이다.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대우.

 

저들은 왜 천룡방의 사자를 분노하게 하는 걸까?

 

그 정도 일로는 분노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절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흠, 기선을 잡자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장만익의 입가로 비릿한 조소가 떠올랐다. 

 

강아지도 자기 집 앞에서는 호랑이에게 대든다 했다. 무천단도 자기들의 터전에서 주도권을 뺏기고 싶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세력이 비슷할 때 이야기다.

 

천룡방과 무천단이 기세싸움을 한다는 것은 술자리의 농담으로도 안 어울렸다.

 

장만익은 내심 코웃음을 치면서도 겉으로는 담담하게 말했다.

 

“어쨌든 이곳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네. 손님이 주인의 법도를 따라야 하지 않겠나?”

 

도정환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

 

“주인의 도리를 제대로 못하는 자들에겐 손님으로서의 예의도 지킬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때 한 자루 도를 가슴에 품고 있던 삼십 대 중반의 장한이 입을 열었다.

 

“일단 일각 정도 더 기다려보지요. 그래도 안 온다면, 제가 직접 이곳의 책임자에게 오늘 일을 따져볼 겁니다.”

 

위로 치켜떠진 눈썹, 가느다란 눈에서 흘러나오는 칼날 같은 한광. 냉혹한 인상을 지닌 그가 바로 냉혼도라 불리는 사중인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일각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사중인의 말이 떨어진 지 반각이 지날 즈음, 독고무령이 그들의 방을 찾아온 것이다.

 

“아룁니다. 단주께서 오셨습니다.”

 

분노가 폭발직전까지 이르렀던 천룡방의 세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문이 열리고, 독고무령이 운양, 나호민과 함께 들어섰다. 상석으로 간 독고무령은 뚫어지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죽 둘러보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보고받을 게 있어서 조금 늦었습니다. 편히 지내셨습니까?”

 

조금 늦었다고? 편히 지냈냐고?

 

천룡방의 세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머리가 후끈 달아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쏘아붙일 수도 없는 일. 장만익은 말을 살짝 돌려서 독고무령의 말을 비꼬았다.

 

“주인이 없어서 조금 아쉽긴 했네만, 지내기야 잘 지냈네.”

 

“다행이군요. 제가 좀 늦어서 그냥 가시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세 사람은 서리가 내릴 것 같은 눈빛으로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자신들을 놀리는 건가?

 

하지만 독고무령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무천단을 맡고 있는 독고무령입니다.”

 

“나는 장만익이라 하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독고무령은 그러냐는 듯 가볍게 맞잡은 손을 흔들고 옆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단철신검 장만익의 이름에도 놀란 기색이 없다.

 

장만익이 누군지 모르나 싶을 정도다.

 

독고무령의 눈이 향하자, 도정환이 무심결에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도정환이네.”

 

사중인이 이름을 밝히고는 따지듯이 물었다.

 

“나는 사중인이라 하네. 왜 이렇게 늦은 건지 모르겠군. 설마 본방을 업신여긴 것은 아니겠지? 왜 어제 저녁에 오지 않았는지 이유를 듣고 싶군.”

 

독고무령의 무심한 눈이 그를 향했다.

 

“수백의 목숨이 하루아침에 오가는 판이오. 귀하들을 만나러 오기 위해서 모든 일을 제쳐놨어야 한단 말이오?”

 

사중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설마 그렇게 반격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그래도 그는 한 번 더 독고무령을 다그쳤다.

 

“하다못해 아침 일찍이라도 왔어야 하지 않은가?”

 

독고무령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운양에게 물었다.

 

“운양,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지?”

 

“제왕성은 서연에, 은룡산장의 무리는 우현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운양이 나름 공손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무리 친구라 해도 수하가 반말을 하면 상대가 얕볼지 모르는 일, 존대를 하기로 약속한 터였다.

 

하기에 독고무령은 운양의 존대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모두 몇 명이라 했지?”

 

“서연에 모인 제왕성의 무력은 총 천이백, 우현의 은룡산장은 팔백 이상입니다.”

 

독고무령은 사중인을 바라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대들이 여기서 불만을 털어놓고 있을 때, 우리는 저들의 움직임을 예상하느라 머리가 쪼개지게 고민했소. 우리와 손을 잡는 게 싫다면 언제든 가시오. 붙잡지 않을 테니까.”

 

흠칫한 운양이 재빨리 나섰다.

 

“단주…….”

 

“상관없어. 어차피 열다섯의 인원이 더해진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은 아니니까. 그러고 보면, 상대를 업신여긴 것은 우리가 아니라 천룡방인 것 같군. 겨우 열다섯을 보내다니.”

 

도정환이 발끈했다.

 

“흥! 숫자가 뭐 그리 중요한가? 우리가 비록 열다섯이라 하나 모두가 본방의 정예고수들이다. 이만한 사람들이 왔다는 것만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 거다!”

 

“그거야 그대들의 기준이겠지.”

 

“뭐라? 네가 감히!”

 

도정환이 눈을 부라리더니 검을 잡았다.

 

순간 나호민이 한소리 내지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지금 싸우자는 것이오!”

 

동시에 그의 몸에서 웅혼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도정환은 흠칫한 눈으로 나호민을 쳐다보았다.

 

“귀하는 뉘시오?”

 

“나는 무천단 항룡기주인 나호민이라는 촌부요!”

 

도정환이 해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항룡일수?”

 

“강호의 친구들이 그렇게 불러주더구려. 천룡방의 대단하신 분들께는 성에 차지 않을 이름이겠지만.”

 

도정환이 아무리 천룡십팔객의 일인이라 해도 나호민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무천단이 무천련의 정예들로 이루어졌다는 말은 들었소만, 설마하니 나 형이 일개 기주일 줄은 미처 몰랐구려. 한데 왜 나 형 같은 분이 저자를 따르는 거요?”

 

은근히 비꼬는 말투다.

 

나호민도 지지 않고 한마디 했다.

 

“나는 단주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오. 한데 그대들은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하나 보구려.”

 

그 말에 장만익을 비롯한 세 사람은 진정으로 놀랐다.

 

독고무령이 범상치 않은 자라는 것은 익히 짐작한 터다. 암천사신에 대한 소문은 이미 천룡방마저 흔들었으니까.

 

하지만 항룡일수가 스스로를 낮출 정도라고는 생각도 못한 터였다.

 

‘정말 소문이 사실이란 말인가?’

 

그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육풍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주, 들어가도 되겠나?”

 

“들어오시죠.”

 

독고무령의 대답에 육풍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육풍원을 알아본 장만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육 형이 아니시오?”

 

“오랜만이오. 천룡방에서 누가 왔나 했더니 장 형이었구려.”

 

장만익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는 육풍원이 부른 ‘회주’라는 명칭을 깊게 생각할 정신도 없었다.

 

전마 육풍원.

 

그는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닌 고수이자, 성격이 급하기로 산서는 물론 하북까지 소문난 싸움꾼이 아니던가.

 

‘전마가 왜 이곳에……?’

 

마치 그의 의문에 답하듯 육풍원이 말했다.

 

“알지 모르겠는데, 나와 우가도 여기 식구라오.”

 

그러고는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왜 이러지?”

 

독고무령은 무심한 표정으로 천룡방의 세 사람을 쓸어보며 나직이 대답했다.

 

“우리가 천룡방과 손을 잡으려 한 것은, 천룡방이 우리와 함께 은룡산장과 싸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켜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생각은 우리와 다른 것 같습니다.”

 

“허어, 너무 성급한 결론이네, 단주.”

 

장만익이 더 이상의 마찰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다급히 나섰다.

 

말 몇 마디 나누는 사이에 상황이 급변했다. 

 

믿었던 사중인과 도정환조차 기세에서 눌리고, 전마 육풍원마저 나타났다.

 

문제는 육풍원이었다.

 

그가 날뛰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여차하면 한단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될지도.

 

“서로 간의 오해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보세.”

 

기선제압의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된 상황.

 

독고무령은 수긍하는 척하며, 마지막으로 장만익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마음을 터놓자……. 좋습니다. 하나 분명히 말하지요. 대등한 관계로 이야기 나눌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장만익의 얼굴이 슬그머니 일그러졌다.

 

한단을 떠날 때만 해도 무천단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한 바탕에서 계획도 짜놓았다.

 

그런데 그 모든 계획이 단숨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문제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떠나오기 전 방주가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야욕을 꺾을 수 있는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네. 반드시 그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게나.”

 

 

 

자신 있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데 그냥 돌아가면 무슨 낯으로 얼굴을 든단 말인가?

 

‘후우, 이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어. 빌어먹을, 최소한 무천단에 어떤 자들이 있는 것만 알았어도…….’

 

장만익은 그렇게 자책하며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약속하지.”

 

독고무령은 보일 듯 말 듯 입꼬리를 비틀며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 앉으시지요.”

 

운양과 나호민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거침없는 말투로 단번에 상대를 제압하더니, 암천회를 하북제일세 천룡방과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솔직히 기대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얕보지 못하게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천룡방의 기세를 꺾어 주도권마저 쥔 상태가 되지 않았는가.

 

‘크크크, 좌우간 대단한 친구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허어, 이 정도였나?’

 

어쨌든 기분 좋은 것만큼은 분명한 일. 두 사람은 상기된 표정으로 의자를 당겼다.

 

반면 육풍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오라고 해서 왔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랬다. 그는 그저 독고무령이 ‘제가 방에 들어간 후 반각쯤 있다 들어오십시오.’라고 해서 온 것뿐이었다.

 

하기에 자신이 장만익의 기세를 꺾는데 일조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그때 독고무령이 자리에 앉은 천룡방의 세 사람을 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저들의 싸움을 구경만 할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와 함께 일을 하려면 총단에 사람을 더 보내 달라 하십시오.”

 

의자에 막 앉은 장만익의 표정이 굳어졌다.

 

“얼마나 말인가?”

 

독고무령이 운양을 바라보았다.

 

“운양, 당장 필요한 인원이 어느 정도지?”

 

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운양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일단 백 명 정도만 더 와줘도 아쉬운 대로 작전을 펼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독고무령이 한술 더 떴다.

 

“너무 적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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