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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28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28화

 

128화

 

 

 

 

 

 

그들을 이끄는 사람은 허리에서 도가 달랑거리는 키가 큰 장한과 검 한 자루를 등에 맨 이십 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청년은 약간 검은 얼굴에 이목구비의 선이 굵었는데, 깊게 들어간 눈이 유난히 강렬하게 보였다.

 

“넷째 형님, 위지천백이 정말 그렇게 강합니까?”

 

키가 큰 장한, 적수천은 태행산맥의 거대한 산줄기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산서를 제패하고 아버님께 정면으로 반기를 든 자다. 강호인들이 그를 신주사대천왕이라 칭하며 십대고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그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봐야 강호의 무뢰배 아니겠습니까? 대체 왜 아버님께선 그런 자를 높게 평가하는지 모르겠군요.”

 

적수천은 걸음을 멈추고 청년을 바라보았다.

 

“호광, 아직 경험이 없어 그러는 말이라 생각하마.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고수도 많다. 곧 알게 되겠지만…….”

 

청년, 군호광의 호승심은 적수천이 그렇게 말할수록 더욱 불타올랐다.

 

‘강호에 그렇게 고수가 많단 말이지? 흥! 어디 과연 그런지 내가 직접 알아보겠어.’

 

 

 

그렇게 동서에서 발원된 두 줄기 태풍이 서로를 향해 치닫던 그날 오후였다.

 

갈대를 엮어 만든 우의를 두르고, 챙이 넓은 우립(雨笠)을 쓴 무사들이 비바람을 등에 지고 태원성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서너 명씩, 네 차례에 걸쳐서 반각 간격으로 동문을 통과했다.

 

모두 열다섯.

 

갈대로 만든 우의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들의 허리와 등에서 도, 검, 단창, 자모원앙월 등 각양각색의 무기가 얼핏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는 이십 대에서 오십 대 초반까지, 그들이 지닌 무기만큼이나 다양했다.

 

성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동문에서 멀지 않은 백풍객잔으로 향했다.

 

 

 

“저자들인가?”

 

밀호방의 사당주 중 동쪽 책임자인 유필은, 차례차례 백풍객잔으로 들어오는 자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혀로 핥았다.

 

비록 네 무리로 나누어져 있고 시간 차이도 제법 나지만, 유필은 그들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백풍객잔에 들어서기 전, 그들은 갈대로 만든 우의를 벗으며 왼손으로 호리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약속된 신호.

 

방주가 말한 자들임이 분명했다.

 

유필은 그들이 모두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에 제왕성의 눈이 있을지 모르는 일. 최대한 조심해야만 했다.

 

그렇게 이 각.

 

그는 주위를 살피던 수하들이 별 이상 없다는 신호를 보내온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태연하게 우립을 쓴 무사들이 들어간 방으로 다가갔다.

 

그 사이 밖에서 내리던 비가 그치고, 갈라진 먹구름 사이로 황금빛 석양이 쏟아지고 있었다.

 

 

 

* * *

 

 

 

유필이 객방으로 들어가던 그 시각.

 

운양은 뒷마당 수련장에서 벌어지는 비무를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진사혁과 한무종, 전유곤과 사공화정이 독고무령을 상대로 합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 넷은 현재 암천회의 젊은 층에서 가장 강한 자들. 그들은 전에도 강했지만, 몇 달 간의 집중적인 수련으로 인해 전보다 한두 단계 이상 강해진 상태였다.

 

언젠가는 육풍원이 그들 중 두 사람의 합공 비무를 웃으며 받아들였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육풍원도 그들이 비무 도전을 할까봐 슬그머니 피하는 판이었다.

 

특히 진사혁은 육풍원과 일대일로 붙어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곰처럼 밀어붙이는 진사혁의 힘은 전마조차 질릴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육풍원이 진사혁과 붙은 다음 날 심각하게 은퇴를 고려해봤을까.

 

그런데도 독고무령은 그런 네 사람의 협공을 받으며 유유히 움직인다.

 

흩어졌다 합쳐지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몸놀림은 환영을 보는 듯했고, 한 번씩 검을 뻗을 때는 구경하는 운양의 심장이 뜨끔거렸다.

 

그렇게 운양이 입을 반쯤 벌린 채 비무 광경을 지켜볼 때였다.

 

독고무령의 좌수가 너울거리며 좌측을 휩쓸자, 수십 개의 장영이 진사혁과 전유곤을 덮쳤다.

 

동시에 우수의 검이 세 줄기 벼락을 뿜어내서 한무종의 도와 사공화정의 검을 튕겨냈다.

 

콰광! 쩌저정!

 

귀청을 울리는 격돌음과 함께 네 사람이 사방으로 튕겨졌다.

 

운양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서서, 오연히 서 있는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정말 굉장하군! 저 네 사람이 꼼짝을 못하다니!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그때 독고무령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지.”

 

곤을 거둔 진사혁이 입술을 씰룩이며 투덜댔다.

 

“젠장, 해볼 만하다 생각했는데…….”

 

한무종과 전유곤과 사공화정은 눈을 부릅뜬 채 이를 악물었다.

 

얼마 전부터 사나흘에 한 번씩 독고무령과 비무를 하며 자신들의 수련 정도를 측정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씩 비무를 했다. 그런데 매일 패하기만 하자 약이 올랐는지, 진사혁이 두 사람씩 하자고 했다.

 

한무종과 전유곤과 사공화정도 넌지시 진사혁의 의견에 찬동했다. 혼자가 안 되면 둘이 붙어서라도 이기고 싶었던 것이다.

 

독고무령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덤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연전연패(連戰連敗).

 

죽어라 수련해서 한 발 쫓아갔다 싶으면,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있는 독고무령이다.

 

결국 네 사람은 무인의 자존심이고 뭐고 다 떠나서 독고무령을 한 번이라도 이겨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오늘, 네 사람과 독고무령의 사 대 일 비무가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기기는커녕 삼십여 초를 견디지 못하고 튕겨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것 같지만, 네 사람은 알고 있었다. 독고무령이 두어 번만 더 손을 썼어도 자신들은 바닥에 나뒹굴었을 거라는 걸.

 

도무지 믿기지 않는 패배.

 

온몸에 전율이 인다.

 

만약 생사를 걸고 싸웠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생각을 하자 소름이 돋았다.

 

‘삼십 초도 필요 없이 이미 다 죽었겠지.’ 모두가 같은 생각인 것이다.

 

독고무령은 의기소침한 표정의 네 사람을 둘러보고는 나직이 말했다.

 

“실망할 필요 없소. 그대들은 충분히 강하니까. 단지 앞을 막고 있는 벽을 부수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진 것이지.”

 

벽.

 

그 한마디에 네 사람의 눈빛이 급변했다.

 

네 사람 모두 최근에 와서 자신들의 실력이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제는 자신들의 앞을 뭔가가 가로막고 있는데, 그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독고무령의 말을 듣고 보니 어렴풋이 ‘뭔가’의 정체를 알 것도 같았다.

 

무공이 절정에 올랐다고 해서 다 같은 경지가 아니다. 절정의 경지에 오르면 세 번 벽에 부딪치는데, 그 벽을 한 번 깨뜨린 자와 두 번 깨뜨린 자와는 배 이상의 격차가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세 번 부수어야 절정의 경지를 넘어서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다고 했다.

 

자신들은 이미 한 번의 벽을 깨뜨리고 절정의 경지에 오른 상태. 더구나 진사혁은 이미 두 번의 벽을 깬 상태가 아닌가.

 

그랬다.

 

‘뭔가’의 정체,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벽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 상황이 너무 빨리 와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 뿐.

 

의기소침해 있던 네 사람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가라앉았던 눈빛에서도 열기가 피어났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후 십 년이 되어도 두 번째 벽을 보지 못하는 자가 부지기수다. 아니, 평생을 수련해도 보지 못하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하거늘 자신들은 서른이 되기 전에 두 번째 벽을 맞이한 것이다.

 

진사혁이 기분 좋게 투덜댔다.

 

“제길, 좀 일찍 알려주지…….”

 

나머지 세 사람도 같은 마음인지 독고무령을 힐끔거렸다.

 

독고무령은 그런 네 사람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러고는 운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급한 일이라도 있나 보군. 자네가 이곳까지 오다니.”

 

“한단에서 손님들이 도착했네.”

 

한단은 천룡방의 총단이 있는 곳. 다시 말해 천룡방의 사자들이 왔다는 말이다.

 

“어디 있나?”

 

“백풍객잔에 있는데, 유 당주가 일단 풍운장으로 데려갈 거네.”

 

“몇이나 왔지?”

 

“열다섯이라더군.”

 

생각보다 적은 인원. 하지만 독고무령은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많은 인원을 보낼 거라고는 기대하지는 않았으니까.

 

“역시 탐색의 의미로 보낸 건가?”

 

운양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봐야겠지. 그래도 단철신검(斷鐵神劍) 장만익을 보낸 걸 보니 아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네.”

 

하북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자. 천룡방의 팔대장로 중 하나. 그가 바로 장만익이다.

 

독고무령도 그동안 밀호방에서 만든 강호인물 편을 보았기에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장만익이라…….” 

 

“그뿐이 아니네, 천룡십팔객 중 풍뢰객(風雷客) 도정환과 냉혼도(冷魂刀) 사중인도 있다더군. 천룡방도 꽤나 불안했던 모양이네.”

 

“그보다는 욕심이 생긴 거겠지. 아마 저들은, 우리가 자신들의 욕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 그걸 보다 자세히 알아보려고 왔을 거야.”

 

“언제 만나볼 건가?”

 

“급박한 모습을 보일 이유는 없지. 내일 날이 밝으며 만나보세.”

 

운양의 입매가 묘하게 틀어졌다.

 

사람들은 독고무령을 그저 무공이 강하고, 냉정하고, 무뚝뚝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잔머리를 못 굴리고, 사람과의 대화도 잘 못할 거라 지레짐작한다.

 

웃기는 소리다.

 

‘그 작자들, 똥줄 좀 타겠군.’

 

운양은 은근히 그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졌다.

 

 

 

* * *

 

 

 

풍운장(風雲莊)은 백풍객잔에서 기껏해야 오십여 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곳은 한때 태원의 거부였던 곽부양의 장원인 곽가장이었다.

 

그런데 십여 년 전, 곽부양이 횡사한 후 그 아들인 곽위가 재산을 흥청망청 탕진하더니 결국 장원까지 팔아먹고야 말았다.

 

운양은 마침 곽가장이 매물로 나오자 재빨리 매입했다.

 

매입 대금은 은자 삼만 냥.

 

그가 가진 돈은 이만 냥이 채 안되었지만, 모자란 돈을 암천삼당의 당주들에게 빌려서 매입을 강행했다.

 

마인걸과 역초강과 적충은 순순히 돈을 내놓았다. 거기다 다른 사람이 그 장원을 사지 못하도록 은근한 압력까지 행사해서 운양의 일을 도왔다.

 

사실 그 돈이면 성 밖에 나가서 곽가장보다 열 배는 큰 장원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운양은 악착같이 곽가장을 고집했는데, 이유는 오직 하나, 장원의 지하시설 때문이었다.

 

곽가장의 지하에는 재물과 식품을 보관하는 커다란 지하창고가 몇 개나 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날 경우, 아무도 몰래 장원을 빠져나갈 수 있는 지하통로가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밀호방의 지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고 복잡한 시설.

 

운양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곽가장을 설계한 자의 부인에게서 설계도면의 일부를 입수한 덕분이었다.

 

은자 다섯 냥을 주고 산 설계도면에 곽가장의 지하시설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만 해도 운양은 그것을 하나의 정보로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적어도 백 냥의 가치가 있는 정보로.

 

그러던 차에 마침 곽위가 장원을 내놓자, 퍼뜩 그 생각이 떠올라서 무조건 달려들어 매입한 것이다.

 

그리고 열흘. 내부 시설이 얼추 끝난 풍운장이 첫손님을 맞이했다. 

 

첫손님치고는 대단한 손님이었다. 하북 제일의 강호세력인 천룡방의 사자가 첫손님일 줄 누가 알았으랴.

 

 

 

하지만 첫손님들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침 해가 밝아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기분은 더욱 가라앉았다.

 

천룡방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세 사람은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회의장에 들어왔다.

 

한데 막상 주인이라는 작자는 일각이 지나도록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것이 아닌가.

 

“흥! 이자들이 지금 감히 우리를 놀리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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