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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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23화
123화
퍼벅! 콰광!
“크억!”
“웬 놈들이……!”
세 사람은 순식간에 네 사람을 무너뜨리고 위지선유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호천위는 놈들을 막아라! 아가씨는 우리가 맡는다!”
호천위들은 세 사람을 아는지 공간을 벌여서 그들을 안으로 들였다.
여불소가 안색이 하얗게 질린 위지선유에게 소리쳤다.
“아가씨, 제왕밀위 여불소입니다! 걱정 마시고 저희들 옆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위지선유는 제왕밀위라는 말에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암습자들 중 두어 명이 악을 쓰며 호천위를 공격했다.
“뚫어라! 놈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해!”
“저 계집을 잡아!”
암습자들 중에는 호천위가 막기 힘들 정도의 고수들도 상당수 있었다.
순식간에 호천위 두엇이 부상을 입고, 나머지도 금방 피를 뿌리며 죽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일반 양민들로 보이는 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는가 싶더니, 장포 속에서, 봇짐 속에서 무기를 빼들고 암습자의 뒤를 덮쳤다.
“제왕성을 욕보이려는 놈들이다! 모조리 죽여라!”
제왕성의 무사들이었다. 위지선유의 나들이에 호천위와 제왕밀위만 움직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황한 암습자들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빌어먹을! 제왕성 놈들이 또 있었어!”
“철혈전? 함정이다! 놈들을 막아!”
순식간에 혼전이 벌어지며 피가 튀었다.
비명과 악다구니가 터져 나오며 시뻘건 혈무가 태원의 길거리를 뒤덮었다.
마침내 은밀하게 태원으로 스며든 철혈전의 무사들이 나타나자, 제왕밀위인 여불소와 소청산, 전곡은 위지선유를 선화루 안으로 데려갔다.
겁에 질린 위지선유에게 처참한 싸움의 현장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네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날벼락을 맞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뒤쪽으로 우르르 물러났다.
덕분에 사오 장 정도의 공간이 생겼다.
바로 그때!
쒜에엑!
대기를 찢어발기며 기음!
동시에 선화루 위에서 세 줄기 기운이 위지선유를 향해 날아들었다.
대경한 여불소와 소청산은 홱 몸을 돌리며 순간적으로 검을 뽑아 날아드는 기운을 막아냈다.
쩡! 쩌정!
세 자루의 비도가 허공으로 튕겨진 순간, 이 층에서 누군가가 날아 내렸다.
사십 대 중년인 둘, 서른이 갓 넘어 보이는 장한, 육순의 노인. 모두 넷이었다.
그중 두 중년인은 여불소와 소청산을 향해 달려들고, 장한과 노인은 여불소와 소청산이 비도를 쳐내기 위해 돌아선 틈을 타 전곡과 위지선유를 죽이려 했다.
특히 장한은 핏발 선 눈으로 위지선유를 노려보며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죽어라! 위지천백의 천한 딸 년!”
전곡은 마주 단창을 휘두르며 장한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공격하는 사람은 장한만이 아니었다. 노인의 공세는 장한보다 더 거세고 은밀했다.
전곡은 숨을 몰아쉴 틈도 없이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냈다.
쩌저정! 콰광!
사오 초가 지나기도 전에 전곡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순간, 장한은 전곡을 노인에게 맡기고 위지선유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죽어라!”
위지선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걸 본 여불소는 몸을 틀어 어깨로 날아드는 도를 피하면서 장한의 공세에 자신의 검을 밀어 넣었다.
땅!
“큭!”
장한의 칼을 튕겨낸 여불소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몸을 틀어 피했는데도 중년인의 칼날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여불소의 어깨에서 솟구친 피 분수에 눈앞이 붉어진다.
하얗게 질린 위지선유는 다급히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다.
“악! 아저씨!”
그런 그녀를 향해 노인이 손을 뻗었다.
어깨가 쩍 벌어진 여불소로선 중년인의 공격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그때 전곡이 노인을 상대하며 소리쳤다.
“아가씨! 제 뒤로 오십시오!”
위지선유도 무공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익히지 않아서 그렇지, 원로고수들에게 십 년의 세월 동안 배운 터였다.
그녀는 겁에 질린 와중에도 다급히 신법을 펼쳐 장한의 도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녀가 완전히 벗어나기에는 장한의 무공이 너무 강했다.
“흥! 어림없는 짓!”
장한은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위지선유를 향해 도를 휘둘렀다. 장한의 도에서 바위도 부술 것 같은 도기가 뿜어졌다.
위지선유는 석 자가량 떨어져 있는데도 얼굴이 찢어지는 듯했다.
당황한 그녀는 뒤로 빠르게 물러나며 옆구리에 끼어 있던 소도를 꺼내 휘둘렀다.
쩌저정!
“악!”
위지선유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짧은 비명!
그녀는 소도를 쥔 손을 축 늘어뜨린 채 정신없이 물러섰다.
그나마 뒤로 물러나며 부딪친 터라 충격이 반 정도는 완화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도가 손에서 날아가고, 혈맥마저 터져버렸을 것이었다.
장한은 살소를 머금은 채 다시 도를 들어 올렸다.
“그래도 위지천백의 딸이라고 한 번은 막아내는구나. 하지만 이제 끝이다.”
전곡은 노인을 떨치고 위지선유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노인의 무공은 그의 아래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반 수 정도 높아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마침 호천위 두어 명이 선화루 안으로 들어오며 장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디서 감히!”
“아가씨!”
장한은 그들을 경시하지 못하고 도의 방향을 틀었다. 위지선유를 죽인다 해도, 자신 역시 성치 못할 거라 판단한 것이다.
위지선유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세웠다.
거센 충격이 몸을 뒤흔들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고 겁에 질린 마음도 가라앉았다.
소도를 쥔 손이 부러진 것처럼 아프지만 발은 아직 멀쩡하다. 자신이 피해야만 제왕밀위와 호천위가 적을 물리칠 수 있을 터. 그녀는 좌우를 재빨리 살펴보며 안전한 곳을 찾았다.
그때 한 줄기 전음이 그녀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오른쪽 기둥 뒤로 숨어라.>
묵직한 저음. 마치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전음의 말을 따라 오른쪽 기둥 쪽으로 뛰어갔다.
“어딜 도망가려고!”
장한이 호천위의 검을 뿌리치고 기둥 쪽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가 날아가는 중간에는 중년인을 몰아붙이던 소청산이 있었다.
조금 전과는 다른 상황. 뒤쪽이 아니라 옆이다. 몸을 틀지 않고도 시야가 확보된 상태.
“흥! 어림없다!”
소청산은 일 검을 내질러 중년인을 조금 물러서게 한 뒤, 옆으로 몸을 날리며 장한을 공격했다.
장한은 황급히 칼을 휘둘러 소청산의 검을 막았다.
쾅!
허공에 떠 있던 장한의 몸이 옆으로 밀려나며 탁자를 부수고 떨어졌다.
그 사이 위지선유는 다시 전음의 지시를 받고 기둥에서 물러나 벽 쪽으로 붙었다.
동시에 선화루 안으로 대여섯 명의 철혈전 무사들이 더 들어섰다.
순식간에 상황이 변했다.
노인, 고원정은 상황이 어려워졌음을 깨닫고 이를 갈았다.
“다 틀렸다! 이곳을 빠져나가자! 요 당주, 길을 뚫어라!”
두 중년인 중 덩치가 큰 중년인, 요극한이 장한을 향해 소리쳤다.
“대공자! 저희를 따라오십시오!”
그러나 제왕성의 무사들은 그들을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뒤늦게 안으로 들어선 철혈전의 무사들 중 하나가 코웃음을 치며 명을 내렸다.
“흥! 어림없는 짓! 철혈전의 무사들은 백마방의 쓰레기들을 모조리 제거해라!”
한편, 멀리서 지켜보던 막위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펼치는 무공으로 봐서 암습자들은 백마방의 무사들임이 분명했다. 그들이라면 위지선유를 죽이려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제왕성의 하수인이나 다름없는 팔기보에 의해 피로 씻겼다 하지 않던가.
문제는 뒤에 이어진 제왕성의 공세였다.
위지선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 하기에는 지나친 인원. 더구나 호천위가 아닌 철혈전의 무사들이었다.
백마방이 공격할 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라면 철혈전의 무사 수십 명이 평복을 한 채 태원에 들어왔겠는가.
‘설마…… 딸을 미끼로 삼아서 저들을 끌어들인 것?’
막위지의 노안이 잘게 떨렸다.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위지천백의 피가 차갑다는 것을 몰랐던 건 아니다.
제왕이 되기 위해서 사승(師承)조차 거부한 사람이 그가 아니던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애지중지하는 딸마저 이용할 줄이야.
‘정말 지독하구나, 위지천백!’
막위지는 이를 악물고 앞을 노려보았다. 싸움은 제왕성의 승리로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백마방의 무사들은 서너 명만이 겨우 빠져나갔을 뿐, 나머지는 사지가 잘리고, 목이 베이고, 피를 쏟아낸 채 죽어갔다.
그런데 그 사이 선화루 안쪽이 시끄러워졌다.
위지선유가 안으로 들어간 상황. 백마방의 무사들이 안에도 있었던가 보다.
막위지는 옆으로 돌아서 선화루 쪽으로 다가갔다.
뒤쪽에서 누군가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이보쇼, 노인장! 위험하니까 가까이 가지 마쇼!”
막위지는 들은 척도 않고 선화루의 옆 건물로 들어갔다.
그 건물은 선화루와 딱 붙어 있었는데, 담장만 넘으면 선화루로 들어갈 수 있을 듯했다.
위지선유는 소란이 커진 틈을 이용해 선화루의 뒤쪽으로 빠져나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있어요?”
아직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
그녀는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전음을 보낸 사람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뒷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 여기 없으면 갈게요.”
없는 사람이 들을 수 있을까?
그런데도 그녀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아직 위험하니 가지 마라.>
목소리가 다시 들리자 위지선유의 표정이 조금씩 펴졌다.
그녀는 남자와 많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나직하고 묵직한 목소리. 언젠가 들어본 목소리 같았다.
“그 목소리, 들어본 적 있어요. 아! 맞아! 전에 길을 잘못 찾아 제왕지처에 들어왔던 분이죠?”
물음을 던질 즈음에는 조금 전의 두려움을 완전히 떨친 듯 전과 다름없는 환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녀도 나중에는 독고무령이 길을 몰라 들어온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그렇게 알고 싶었다.
<전에 진 빚을 갚는 거라 생각해라. 이곳에 있는 한 누구도 너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얼굴 좀 보여주면 안 돼요? 왜 숨어 있어요? 아직도 도망 다녀요?”
독고무령은 선화루의 이 층 별실에서 창문 틈으로 위지선유를 지켜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가 인피면구를 쓰고 선화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싸움이 시작된 뒤였다. 다행히 암천회의 무사들은 일절 개입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한눈에 암습자들이 백마방의 무사들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고원정과 요극한이 끼어있지 않은가 말이다.
운양이 말한 수상한 자들은 제왕성의 무사들과 백마방의 무사들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왠지 작위적인 냄새가 났다.
‘단순한 호위라기에는 제왕성의 무사들이 너무 많아.’
게다가 백마방의 무사들도 때를 맞춰 태원에 들어온 상황. 미리 알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제왕성에서 태원까지는 하루거리도 안 되거늘, 위지선유가 태원에 놀러간다는 걸 백마방의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누군가 그들에게 정보를 주었다.
어쩌면 정보제공자가 제왕성일지 모른다.
전쟁을 앞두고 거치적거리는 것을 치우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한 독고무령은 지켜보기만 했다.
딸까지 앞세워 주위를 정리하려는 위지천백이다. 잘못 끼어들면 폭풍이 일 터였다.
태원을 휩쓸 피의 폭풍이!
그때 선화루 안쪽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전음을 받고 움직인 위지선유가 뒷마당으로 나와 있다.
여전히 순수한 말투.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맑은 표정이다.
<지나가다 너를 봤을 뿐이다. 조금만 있으면 정리가 될 테니, 기다렸다가 조용해지면 나가라.>
“피이…….”
위지선유는 입을 삐죽였다.
하지만 독고무령의 말을 듣고 나니 싸우는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그녀는 담장 쪽으로 가서, 작은 창문을 통해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그때, 한 사람이 그림자처럼 담장을 넘어왔다. 막위지였다.
막위지는 위지선유를 보고 흠칫했다. 위지선유가 뒷마당에 나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그였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자신이 한때 위지천백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그 일에는 남모를 사연이 있었다. 자신을 제외한 네 늙은이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남에게 말도 못하고 살아온 이십여 년의 삶.
그 삶의 그늘을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위지천백의 딸, 제왕성을 피로 물들이고 자신들로 하여금 하늘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게 만든 자의 딸이 저기에 있다.
막위지는 소리 없이 위지선유의 뒤로 다가갔다.
순간, 얼음송곳 같은 전음이 귀청에 틀어박혔다.
<노인장, 한 발만 더 움직이면 후회할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