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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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19화
119화
제7장 치선의 선물
독고무령이 태원으로 돌아온 것은 석양이 지기 직전이었다.
운양은 독고무령이 귀창 우도진까지 데려왔다는 걸 알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잘 됐네. 이제 좀 마음이 놓이는군. 이대로 몇 명만 더 끌어들이면, 당장 놈들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겠어.”
“회주 바로 아래에 장로원을 만들 생각이네. 자존심들이 강해서 다른 사람의 명은 들으려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그래야겠지. 그 일은 나에게 맡기게. 지금 근처의 장원을 물색하고 있으니, 구해지는 대로 조직을 재정비할 생각이네.”
독고무령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앞에 놓인 차로 입술을 축였다.
육풍원과 우도진은 장로가 될 자격이 충분하고도 넘쳤다.
제왕오로에 뒤지지 않는 실력. 제왕성의 현 장로들 중 그들보다 강한 사람은 두어 명에 불과했다.
거기다 장로로 임명할 만한 사람이 넷 정도 더 있었다.
각산의 영웅, 일산노룡(一山老龍) 소현욱. 곽주의 천응조(天鷹爪) 막동, 삭주의 명숙 호영검객(豪英劍客) 우종탁, 흑산의 유혼신마(幽魂神魔) 곽채신.
그들 네 사람은 초절정의 경지에 근접한 고수들이다.
비록 육풍원이나 우도진에 비하면 반수 정도 아래였지만, 장로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
거기에 무천련대회합 때 참석한 강호의 명숙들을 찾고 있으니 몇은 더 불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짧은 기간을 생각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독고무령은 일단 그 정도에서 만족하고 운양에게 물었다.
“전궁산장에선 아직 연락이 없나?”
“워낙 피해가 커서 수습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거 같네. 아마도 보름은 더 걸리지 않을까 싶군.”
“화천문은?”
독고무령의 질문에 운양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인간들…… 솔직히 믿을 수가 없네. 설령 나중에 손을 맞춘다 해도 거리를 둘 생각이네.”
독고무령은 찻잔을 마저 비우고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럼 할 수 없지. 머리를 바꾸는 수밖에.”
개봉에서 올라오며 화천문에 들렀던 것은 들었던 터. 운양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벽가의 힘이 워낙 강해서 나머지 두 가문이 힘을 합해도 쉽지 않을 거네. 자칫하면 역효과가 날지 몰라.”
“한쪽 힘이 강하다 보면, 반발하는 사람들도 많은 법이지. 우리에겐 믿음이 안 가는 강한 힘보다는, 힘은 조금 약해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네. 만일 벽가가 계속 딴청만 피운다면 결국 적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그건 그러네만…….”
독고무령은 운양의 머뭇거림에 못을 박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연락을 해보게. 그래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별수 없지.”
“알겠네.”
운양은 화천문에 대한 결론이 내려지자, 그간 자신이 생각했던 계획을 말했다.
“그리고 무령, 하북의 천룡방에 사람을 보내볼 생각이네만, 어떻게 생각하는가?”
“천룡방?”
“은룡산장이 움직이면 천룡방이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네. 게다가 산서를 통째로 차지한 제왕성 역시 그들에게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지. 잘하면 큰 힘 들이지 않고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네. 그들은 우리를 무천련의 잔당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 어부지리를 노리려 할 거야.”
괜찮은 생각이었다.
저들은 산서의 상황을 알기 위해서 이미 간자들을 보냈을 게 분명하다. 기회만 된다면 직접 관여하고픈 마음도 있을 것이고.
전이었다면 저들에게 실컷 이용만 당하고 잡아먹힐지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힘을 갖춘 상태. 자신들을 이용하려는 저들을 거꾸로 이용할 수도 있을 듯했다.
게다가 잘하면…… 날개를 펼칠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산서는 세상의 일부일 뿐이다. 어쩌면 위지천백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일지도…….’
독고무령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허공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무천단 정도로 알게 하게.”
운양이 씩 웃었다.
“나 역시 그렇게 할 생각이네.”
역시 손발이 잘 맞는 친구다.
독고무령도 조용히 웃으며 이야기를 돌렸다.
“그래,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이제 누구를 끌고 와야 하는가?”
그때 운양이 한숨을 내쉬더니 땡감을 베어 문 표정을 지었다.
“후우, 그보다 먼저 해줘야 할 일이 하나 있네.”
“뭔데?”
“만금도국에 골칫덩이들이 나타났네.”
“골칫덩이?”
“북천삼괴라는 늙은이들인데……. 어? 이봐, 무령?”
독고무령은 운양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어리둥절해 있는 운양을 놔두고 방을 나섰다.
그들이 진짜 북천삼괴라면, 늦으면 늦는 만큼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만금도국을 통째로 부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들, 그게 북천삼괴니까.
‘어디를 돌아다니다 여기까지 온 거지?’
어이가 없으면서도 반가웠다.
열 냥을 잃고 수백 냥의 물품을 부수었다고 했다. 거기다 만금도국의 무사들까지 때려눕히고.
그나마 맞아 죽은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하긴 손짓 한 번이면 쓰러질 사람을 억지로 죽일 정도로 악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죽지 않을 만큼 심한 부상은 입힐지 모르지만.
* * *
만금도국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부서진 탁자야 새 걸로 바꾸면 되니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파인 벽이나 찢어진 휘장 등은 시간이 좀 더 걸려야 할 것 같았다.
그들 중 하나가 안으로 들어선 독고무령을 보더니 손을 휘휘 저었다.
“이봐, 조금 있다가 와. 아직 정리 안 끝났으니까.”
독고무령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안쪽으로 향했다.
뒷짐 진 채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던 장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내는 말투로 말했다.
“지하에도 사람이 꽉 차서 들어갈 곳이 없네.”
장한의 목깃에 보일 듯 말듯 검은 실로 새겨진 구름문양이 보인다. 암천회에 속한 무사라는 말.
독고무령은 그에게 다가가며 전음으로 물었다.
<회에서 왔소. 삼괴는 어디 있소?>
장한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는 주위를 자연스럽게 둘러보고 슬쩍 눈짓을 보냈다.
“따라오십쇼.”
장한이 안내한 곳은 만금도국 내부 깊숙한 곳의 별채였다.
그곳은 만금도국의 주요 고객을 위한 숙박시설이었는데, 오늘은 삼괴가 독차지하고 있었다.
“저곳입니다.”
장한은 가까이 갈 생각이 없는 듯 멈춰 서서 별채를 가리켰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표정이었다.
독고무령은 별채의 방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시오. 그리고 지금부터 보고 듣는 것은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야 할 거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장한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후드득 떨었다.
“아, 알았습니다.”
독고무령은 장한에게 경고를 보내고 방을 향해 다가갔다.
방 안에서 구시렁대며 뭔가를 먹는 소리가 들렸다.
“음식이 내 입맛에 맞는데, 여기서 열흘쯤 더 있다 가자, 마불.”
“안 돼. 그러다 소문나면 귀찮은 놈들이 올지 몰라. 사흘만 있다 가자고.”
마인걸이 들었으면 아마 이마에 핏대가 솟아서 혈관이 터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삼괴는 마인걸에 대해선 눈곱만치도 걱정하지 않았다.
“허허허, 여기 주인 놈도 우리가 며칠 더 지내는 걸 바라고 있지 않을까?”
“흥! 제까짓 게 싫으면 어쩔 건데?”
독고무령은 그 소리를 들으며 문고리를 잡고 물었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삼괴는 먹기에 바빠서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킁, 뭐하긴? 밥 먹지.”
“삼불곡에서 먹던 것보다 나은가 보죠?”
“허허허, 그야 당연히 낫지. 무령아, 너도 와서 먹……. 컥!”
“응……?”
“헛!”
세 사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목이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빠르게!
그들의 눈에 닫힌 방문이 보였다. 목소리는 그 너머에서 들려온 게 분명했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보고 있는 사이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끼이익.
그리고…… 절대 안 보여야 할 사람이 거기에 서 있었다.
“무, 무령이다…….”
“우리가…… 꿈꾸고 있는 거, 맞지?”
“제길, 꿈이면 더럽게 무서운 꿈인데…….”
장한, 곡정은 몸이 굳은 채 눈만 껌벅였다.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회에서 왔다는 사람이 방문에 대고 몇 마디 하더니,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숨을 서너 번 쉬기도 전에 다시 나왔다.
혼자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북천삼괴가 그의 뒤를 따라 나왔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마치 쇠사슬로 목이 연결된 죄수처럼 줄지어서.
그 와중에도 세 사람은 독고무령의 눈치를 보며 변명을 했다.
“흥, 우리 도망 나온 거 아니다.”
“킁, 진짜 친구를 만나려고 갔는데, 없지 뭐냐.”
“허허, 정말로 벌어서 갚으려고 했다니까?”
횡설수설 변명하던 세 사람은 독고무령이 고개를 돌리자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일단 따라오세요.”
독고무령은 그 한마디만 하고 가볍게 담장을 넘어갔다. 삼괴도 훌쩍 몸을 날려서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동시에 전음 한마디가 곡정의 귀청을 울렸다.
<잊지 마시오. 오늘 일 잊으라는 말.>
곡정은 아무도 없는 담장을 향해서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독고무령은 삼괴를 데리고 밀호방으로 갔다.
다행히 어스름이 밀려오는 시간인데다 골목길로만 움직여서 그들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사이 삼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의 표정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내가 뭘 잘못했지? 맞은 것도 지놈이 느려서 맞은 거잖아?’
‘솔직히 저 강해지라고 때린 죄밖에 더 있어?’
‘그까짓 몇 푼이나 된다고. 내가 준 선단만 해도 몇 개인데, 쩨쩨하게…….’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자기변명을 하면서 목에 힘을 주었다.
“흥, 집이 제법 크군.”
“킁, 그동안 제법 벌었는데?”
“허허허, 내 그럴 줄 알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보통 아이가 아니라 생각했지.”
비 맞은 귀신처럼 중얼거리는 세 사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독고무령은 일단 삼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윽 돌아서서 삼괴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삼괴는 재빨리 목에서 힘을 빼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곡에서 나와 어디를 가신 겁니까? 정말 친구 때문에 가신 겁니까?”
“흥, 그건 마불이 헛소리 한 것…….”
“킁, 네가 시켰잖아!”
“허허허, 나는 거짓말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무령아.”
독고무령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눈에 힘을 주었다.
“좌우간, 앞으로는 마음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니다 원한 진 사람들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그러신 겁니까? 몸도 예전만 못하실 텐데요.”
찔끔한 삼괴는 딴청을 피우며 한마디씩 했다.
“험, 알았다. 바로 삼불곡으로 가마.”
“킁, 가라면 가야지 뭐.”
“허허허, 역시 우리에겐 삼불곡이 안식처라니까.”
그런데 말을 하면서도 왠지 아쉬워하는 눈빛들이다.
하긴 삼불곡에 가봐야 또 셋이서 아옹다옹하며 살아야 한다. 한번 바깥바람 맛을 본 세 사람에게는 생각만으로도 답답하게 여겨질 터였다.
독고무령이 간단하게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누가 삼불곡으로 가라고 했습니까?”
세 사람이 동시에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기대감에 반짝거리는 세 쌍의 눈빛.
독고무령은 여전히 눈에 힘을 주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분간 이곳에 계시면서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귀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히 말했다.
“흥! 어디 죽일 놈이라도 있냐? 말만 해라, 내가 죽여주마.”
“킁, 미쳤군. 어떤 간 큰 놈이 배에 칼도 안 들어가는 너를 건든단 말이냐?”
“허허허, 그럼 돈 빌려간 거, 안 갚아도 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