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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04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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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104화

 

104화

 

 

 

 

 

 

누구도 생각지 못한 명령!

 

한무종조차 의외인 듯 칼을 잡은 손이 멈칫거렸다.

 

그러나 누구의 명령인데 망설이랴.

 

한무종의 손이 홱 뒤집어진 순간!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잠깐!”

 

한무종의 칼이 모종경의 어깨를 일 푼쯤 파고들다 멈췄다.

 

모종경의 어깨를 물들이며 번져가는 핏물이 유난히 붉다.

 

한무종은 손을 멈추고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계속 진행해야 하는지 묻는 표정을 짓고서.

 

독고무령은 새로이 나타난 중년인을 향해 물었다.

 

“좋소.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으니 한 번 더 기회를 주겠소. 조 학사는 어디 있소?”

 

새로이 나타난 중년인, 추월루의 총관 막도환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바짝 긴장했다.

 

말 한마디에 모종경의 목숨이 달려 있다. 아니, 목숨은 건질지 몰라도 두 팔은 잃을 것이다.

 

문제는 대답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별수 없이 하나의 제안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 일에 대해선 안으로 들어가서 나누었으면 싶군.”

 

“처음에 그리 말했는데 저 사람이 거절했소. 그러니 나는 일단 내가 원하는 대답부터 듣고 봐야겠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 다음이오.”

 

“그건…….”

 

막도환이 머뭇거리자 독고무령이 무심히 말했다.

 

“한 형, 물어볼 사람이 많아졌으니……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으면 그냥 목을 잘라버리시오.”

 

바로 그때, 막도환이 나온 삼층 누각 안쪽에서 낭랑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사람을 죽이면 당신들도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거예요.”

 

막도환이 황급히 돌아서며 고개를 숙였다.

 

“루주…….”

 

“물러서요, 총관. 어차피 그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 그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나에게 맡겨요.”

 

독고무령은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안에서 나온 사람은 넷. 삼남일녀였다.

 

이십 대 후반의 청년 하나, 백의와 갈의를 입은 중년인 둘. 그리고 이십 대 초중반 쯤? 정확한 나이가 짐작 되지 않는 여인이었다.

 

여인은 그가 여태 보았던 그 어느 여인보다 아름다웠다.

 

갸름한 얼굴선. 백설 같은 피부. 보름달을 쪼개놓은 것처럼 보이는 눈. 마늘쪽처럼 오뚝한 콧날. 앵두 같은 입술. 거기에 약간 큰 듯한 키지만 가히 완벽에 가까운 몸매까지.

 

경국지색의 미인이란 저런 여인을 두고 말하는 걸까 싶을 정도의 아름다움이다.

 

장유유나 구양소현, 제왕성에서 봤던 위지선유조차 눈앞에 있는 여인에 비하면 한두 곳 모자란 곳이 있을 듯했다.

 

다만 그녀의 두 눈에 깃든 차가운 아련함이 왠지 모르게 범접키 힘든 느낌을 준다는 것이 옥에 티일 뿐.

 

‘저 여인이 이곳의 주인인 추월인 모양이군.’

 

가을의 달, 추월(秋月).

 

정녕 그 이름에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녀의 아름다움에서 뭔가가 빠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기에 개봉제일의 미인이며, 하남의 삼대미인 중 하나라는 추월을 보고도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았다.

 

“그대가 나를 상대하겠다고 했소? 그럼 말해보시오. 그는 지금 어디 있소?”

 

추월이 대답하기도 전이었다. 추월의 뒤에 서 있던 청년이 손에 들린 접선을 접으며 말했다.

 

“루주, 나에게 맡기는 게 어떻겠소?”

 

백색비단옷, 커다란 옥이 박힌 무사건. 부채도 예사 재질이 아닌 듯 보인다. 겉만 봐도 부잣집의 자식쯤으로 보이는 자.

 

더구나 그의 몸 안에서는 절정에 다다른 내력마저 숨 쉬고 있다. 그렇다면 강호 문파의 자제라는 말.

 

하긴 어지간한 사람들은 상대도 안 한다는 추월루의 주인과 밤새 함께 있던 자가 아닌가.

 

하지만 여인은 빙어와 같은 하얀 손을 들어 저었다.

 

“이 일은 본루의 일이에요, 공자.”

 

“하하하, 루주가 그리 생각한다면야…….”

 

여인, 추월은 청년이 나서려는 것을 한마디로 막고 독고무령의 질문에 대답했다.

 

“대답해 드리죠. 그분은 추월루 안에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이번에는 추월이 독고무령의 말을 잘랐다.

 

“나는 한 가지를 대답해줬어요. 그렇지 않나요?”

 

그건 그렇다. 그녀는 대답을 해주었다. 적어도 그가 추월루 안에 있다는 것은 확인해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쉽지 않은 여인이군.’

 

독고무령은 추월이 상대하기 쉬운 여인이 아님을 말 한마디로 알아챘다.

 

말하면서도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더 이상 강압하면 부총관이라는 자의 목숨을 포기할 수도 있는 여인이다.

 

‘아마 그 대가로 피를 보려 하겠지.’

 

피를 봐서 얻을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수십 명이라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은 멀어질 것이다.

 

그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한 형, 놔주시오.”

 

그의 명령에 한무종이 칼을 내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모종경은 지옥에 갔다 온 사람처럼 축 늘어진 몸으로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동시에 추월루의 호위무사들이 더욱 가까이 접근하며 독고무령 일행을 압박했다.

 

추월은 이채 띤 눈으로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잡고 있으면 인질로 삼아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텐데 그냥 풀어준다. 

 

막무가내는 아니라는 말.

 

사실 그녀가 직접 나와 일을 처리하는 일은 일 년에 서너 번 정도에 불과했다. 오늘만 해도 손님을 억지로 내보내기 위해 삼층에서 내려오지만 않았어도 총관에게 맡겼을 것이었다.

 

그런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자신이 나서지 않았다면, 분명 부총관의 목이 잘리고, 많은 사람이 죽었을 테니까.

 

눈앞에 있는 자는 충분히 그럴 배짱과 독심(毒心)과 실력을 지닌 자인 것이다.

 

그녀는 독고무령에 대해 그렇게 판단내리고 살짝 건드려보았다.

 

“의외군요. 제가 공격명령을 내리면 어쩌려고 풀어주시는 거죠?”

 

“겁이 났다면 이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요.”

 

“정말 대범하신 분이군요.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대범함이 목숨을 단축하는 법이지요.”

 

“목숨을 단축한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우리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못할 것도 없지요.”

 

추월의 입가에 자잘한 미소가 번진다.

 

그럴 경우 어떻게 하겠냐며 자신을 떠보는 듯한 눈빛.

 

독고무령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본 채, 무심한 목소리로 그녀가 원하는 답을 해주었다.

 

“그대가 그런 명령을 내리면…… 그대들은 다 죽을 거요. 그리고 날이 새면 추월루도 사라져 있겠지.”

 

“…….”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대답.

 

추월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주위에 둘러서 있는 무사들의 몸에서 진득한 분노의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때 추월의 뒤쪽에 서 있던 청년이 콧소리를 내며 독고무령을 비웃었다.

 

“훗, 웃기는 작자군. 지금 다 죽는다고 했나? 설마 본 공자까지 포함된 것은 아니겠지?”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나는 자다. 시간이 없는데 왜 자꾸 나선단 말인가?

 

독고무령은 말 몇 마디로 그의 이성을 끊어놓았다. 

 

“원한다면 그대를 제일 먼저 죽여주지.”

 

순간 청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두 눈에서 분노의 화염이 솟구쳤다.

 

“이 건방진 놈이!”

 

그가 노성을 내지르자, 그의 옆에 서 있던 중년인 중 청삼을 입은 자가 훌쩍 몸을 날렸다.

 

“죽일 놈! 감히 공자님을 모욕하다니!”

 

독고무령은 청삼중년인이 날아오는 것을 보며 도일성을 바라보았다.

 

순간 독고무령의 명이 없는데도, 도일성이 채찍을 홱 뿌리며 한소리 했다.

 

“아, 제길! 왜 이리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

 

어둠속에서 수십 마리 독사가 너울대는 듯하다.

 

청삼중년인은 도일성의 채찍을 얕보지 못하고 황급히 주먹을 뿌렸다.

 

짜자작! 퍼버벅!

 

청삼중년인은 기다란 채찍으로 인해 접근도 못하고 도일성과 한바탕 어울렸다.

 

독고무령은 그쪽에 더 이상 상관하지 않고 추월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대와 말장난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오. 그러니 더 할 이야기가 없다면, 이제 조 학사가 있는 곳을 알려주시오.”

 

청삼중년인은 능히 일류 중에 일류고수다. 그런데 일개 수하를 뚫지 못하고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추월이 묘한 눈빛으로 독고무령을 보며 반문했다.

 

“알려줄 수 없다면요?”

 

“그럼, 그가 있는 곳으로 사람을 보내시오. 지금 즉시.”

 

“호호호, 저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가요?”

 

“그가 죽은 다음 후회하면 늦소.”

 

“걱정 말아요, 누가 그분을 노리는지 몰라도, 그분은 충분히 보호받고 있으니까요.”

 

“암중의 화살은 피하기가 힘든 법이오. 더구나 그를 노리는 자가 제왕성의 고수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처음으로 추월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서릿발 같은 눈빛과 함께.

 

“산서의 제왕성 말인가요?”

 

“그렇소.”

 

추월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왜 제왕성이 그분을 찾는단 말이죠?”

 

“그건 아직 말해줄 수 없소. 어떻게 하겠소? 그대가 안내하지 않겠다면, 피를 보더라도 내 방법대로 알아볼 생각이오만.”

 

그때였다.

 

“건방진 놈!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구나!”

 

백의청년이 노성을 내지르고는 신형을 날렸다.

 

‘나를 죽인다고? 내가 먼저 네놈을 때려죽일 것이다!’

 

그와 독고무령의 거리는 삼 장 남짓. 찰나 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독고무령은 백의청년이 일 장까지 다가오자 두 손을 교차하며 쓸어냈다.

 

일순간, 은은한 묵광이 그의 두 손에서 일렁이며 화끈한 열기가 퍼졌다. 혼천묵양공이었다.

 

추월이 그걸 보고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헛! 그건? 안 돼요!”

 

동시에 일성 굉음이 울렸다.

 

쾅!

 

“컥!”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틈도 없이, 백의청년의 몸뚱이가 삼 장 밖으로 튕겨져 나뒹굴었다.

 

그 바람에 도일성과 청삼중년인의 격전마저 멈추어졌다.

 

“삼공자!”

 

멍하니 서 있던 갈의중년인이 황급히 백의청년에게 달려가더니,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려는 그를 부축했다.

 

독고무령은 그 광경에서 눈을 떼고, 추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어디 있소?”

 

추월은 앵두 같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눈을 들었다.

 

“저 공자가 누군지 아나요?”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오.”

 

“아뇨, 알아야 돼요. 저 공자의 이름은 황보정, 황보세가의 삼공자이시니까요.”

 

한숨을 쉬듯 느릿하니 말하는 추월의 목소리가 묘하게 느껴졌다.

 

걱정이 태산처럼 쌓인 여인의 목소리 같기도 했지만, 어떻게 들으면 상대의 당황을 즐기려는 짓궂은 소녀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독고무령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황보정? 저자가 황보세가의 사람이란 말이오?”

 

“그래요. 그것도 보주님의 친아들이죠.”

 

추월이 걱정할 만도 했다.

 

황보세가는 남궁세가와 더불어 중원 오대세가 중 가장 막강한 힘을 지닌 곳. 그들은 황보정의 부상은 차치하고, 세가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독고무령을 가만두지 않으려 할 게 분명하다.

 

거기다 자신이 쓴 무공까지 알아본다면?

 

아마 저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잡으려 할 것이다. 치선에게 당한 후 북천삼괴라면 이를 갈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 일보다 추월이 더 신경 쓰였다.

 

‘혼천묵양공을 알아보았다. 평범한 여인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마불의 무공을 한눈에 알아보다니.’

 

의아한 것은, 그녀가 그에 대한 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이 더 커지는 것을 피하고 싶어 그러는 걸까?

 

그때였다. 추월의 말에 힘을 얻었는지, 겨우 몸을 반쯤 일으킨 황보정이 이를 갈며 말했다.

 

“가만 안 둘 것이다. 내 네놈을…….”

 

찰나, 독고무령의 가늘어진 눈에서 싸늘한 한기가 흘러나왔다.

 

“그럼 차라리 죽여 버리는 게 낫겠군. 어차피 황보세가와 싸워야 한다면, 한 사람이라도 먼저 죽여서 없애는 게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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