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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01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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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101화

 

101화

 

 

 

 

 

 

“이 검…… 누가 손봤지? 혹시…… 진가에서 손본 것 아니더냐?”

 

“진원정이라는 분이셨습니다.”

 

“역시…… 그였나?”

 

“잘 아시는 분입니까?”

 

철노는 대답하지 않고 검을 완전히 뺀 다음 검신을 만져보았다. 

 

마치 갓난아기의 배를 쓰다듬듯이 조심스런 손길이었다.

 

그러길 얼마, 철노는 손길을 멈추고는 만감이 교차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미친놈. 넘볼 걸 넘봐야지. 하늘과 땅만큼이나 벌어진 차이를 알지도 못하고…….”

 

독고무령은 조용히 철노를 바라보기만 했다.

 

철노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독고무령에게 건네주었다.

 

낙심할지 모른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가 너를 잘 본 것 같다. 한철만 해도 귀한 것인데, 거기다 만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최상급의 운철(隕鐵)을 함께 섞어서 만들었구나. 가히 신검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검이 되었어.”

 

독고무령은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던지라 가볍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검(神劍)’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검은 천하에 열 자루도 안 된다고 알고 있다.

 

자신의 검이 그러한 검 중 하나라는 것은 무사에게 가슴 떨리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진가에 너무 많은 은혜를 입었군.’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한다. 다행히 자신에게는 은혜를 갚을 방법이 있었다. 물론 진사혁이 그만한 능력이 되어야 할 테지만.

 

‘안 되면 두들겨서라도 되게 만들어야겠군.’

 

 

 

 

 

 

 

제9장 유백하가 남긴 마지막 선물의 비밀

 

 

 

 

 

봄바람에 출렁이는 황하의 물결이 서쪽으로 떨어지는 태양빛을 받아 황금비늘처럼 빛난다. 가히 황룡이 용틀임하며 동쪽으로 달려가는 것만 같다.

 

장가장을 출발한 지 사흘.

 

독고무령은 황하의 위용을 보고 숨 막히는 충격에 가슴이 뛰었다.

 

‘엄청나군!’

 

자신이 보고 있는 게 바다인지 강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다.

 

천하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황하와 장강을 차지해야 한다고들 하더니 헛말이 아니다.

 

굳이 장강을 볼 것도 없다. 황하만 보고도 그 말에 수긍이 간다. 이러한 강을 차지할 수 있는 자가 어찌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없을 것인가.

 

독고무령은 도도히 흐르는 황하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독고무령아, 너는 무엇을 목표로 사느냐?’

 

제왕성을 무너뜨리는 것? 뿌리를 찾는 것?

 

그럼 그 다음에는?

 

그는 황하에서 눈을 떼고 서쪽 하늘의 태양을 직시했다.

 

황금빛으로 달아오른 태양이 눈부시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태양이 되어볼까?

 

하지만 밤이 되면 태양도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달과 별이 하늘을 가득 메운다. 태양이 없는 그곳도 하늘인 것이다.

 

어쩌면 본래의 하늘은 어둠인지도 모른다. 태양과 달과 별조차 그 일부일 뿐이니까.

 

‘세상은 넓고, 너는 아직 젊다. 좀 더 큰 야망을 가져라, 독고무령!’

 

그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늘이 돕지 않는다면 뒤집어서라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독고무령이 뒷짐 진 손에 슬며시 힘을 줄 무렵, 사람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던 한무종이 다가왔다.

 

“단주, 저쪽으로 가면 정주로 건너가는 마지막 도선을 탈 수 있다고 합니다. 가시죠.”

 

 

 

황하가 검붉게 물들어갈 무렵.

 

배에서 내린 독고무령 일행이 하남성 정주(鄭州)로 들어섰다.

 

독고무령은 백운서원으로 가지 않고 일단 밀호방의 수하가 머물고 있다는 무풍객잔을 찾아갔다. 

 

조사를 하기 위해 거처를 비웠을 수도 있지만, 없다면 자신이 왔다는 말이라도 남겨놓을 생각이었다.

 

몇 사람에게 물어 무풍객잔을 찾은 독고무령은 점소이의 안내를 무시하고 곧장 객방이 있는 이 층으로 올라갔다.

 

방이 수십 개나 되었지만, 밀호방의 수하가 머무는 방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길게 뻗은 회랑을 따라가던 독고무령은 이 층의 구석진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방문 옆의 기둥을 바라보았다.

 

기둥에는 여우 한 마리가 조잡하게 그려져 있었다. 밀호방의 표식이었다.

 

그런데 어딜 나갔는지 안에서 아무런 기척도,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탁탁.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한무종이 귀를 기울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에 사람이 없는 모양입니다.”

 

도일성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조사하러 다니는 사람이 이 시간에 방에 있을 리가 있겠수?”

 

독고무령은 돌아서서 점소이를 찾으려다 뭔가 익숙한 느낌에 멈칫했다.

 

그는 다시 몸을 돌리고 방문을 밀어보았다. 방문은 안에서 닫혔는지 열리지 않았다.

 

한무종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단주?”

 

“밖으로 나간 사람이 방문을 안에서 닫을 수 있다고 보시오?”

 

도일성이 또 나서서 아는 체했다.

 

“그야 문을 닫고 창문으로 나갔다면…….”

 

감가기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멀쩡한 방문 놔두고 왜 창문으로 나가는가?”

 

“비밀스런 일을 하는 사람은 그럴 수도 있지. 남들 몰래 움직이려면 말이야.”

 

자신의 추리가 제법 그럴 듯하다 생각했는지 도일성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딴에는 그 말도 그럴 듯했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더 생각해보지 않고 문을 세게 밀쳤다.

 

우직, 뚝.

 

“단주……!”

 

옆에서 말릴 새도 없이,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활짝 열렸다.

 

동시에 비릿한 냄새가 확 밀려나왔다.

 

그랬다. 익숙한 느낌. 그것은 피비린내였다.

 

죽음의 향기.

 

“헛, 저런……!”

 

고개를 삐죽 내밀던 도일성이 흠칫하며 눈을 크게 떴다.

 

침상 앞에 꼬꾸라져 있는 사람이 보였다.

 

반쯤 잘린 목이 기괴하게 꺾어져 있고, 팔다리가 부러진 그의 몸 주위에는 핏물이 흥건했다. 

 

얼마나 많은 피가 흘러나왔는지 몸뚱이가 핏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표정이 굳어진 독고무령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오.”

 

뒤따라 들어오던 세 사람 중 맨 뒤로 처져 있던 감가기가 문을 닫았다.

 

그 사이 시신 앞으로 다가간 독고무령은 시신의 상태와 주위 정황을 살펴보았다.

 

“즉사했군.”

 

즉사하지 않고 몸부림을 쳤다면 핏물이 사방에 묻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신의 몸 주위에 넓게 퍼진 핏물은 고요한 호수와도 같았고, 손도 피에 잠긴 곳을 제외하고는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

 

“사망시간은 약 세 시진 전. 무기는 짧고 예리한 칼을 썼군. 죽이기 전 고문을 하고, 등 뒤에서 갑자기 목을 쳤어. 한데 최소한 마지막 어떤 비밀만큼은 지킨 것 같군. 얼굴에 만족한 표정이 떠올라 있는 걸 보니…….”

 

한무종이 힐끔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시신을 한번 훑어본 것만으로 그 모든 것을 추론해내는 독고무령이 신기하기만 했다. 

 

굳이 그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 알아볼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누가 죽였을까요?”

 

한무종의 의문에 독고무령은 곧바로 답을 내놓았다.

 

“이 사람이 조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자. 아니면 이 사람이 알아낸 뭔가를 얻기 위한 자.”

 

‘제왕성에서 나온 자가 죽인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니면 누가 유하령을 조사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단 말인가.

 

어쨌든 자신의 요청으로 조사하던 중에 죽었다.

 

그것이 밀호방의 요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임무였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다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지킨 비밀은 아마 자신의 정체였을 것이다.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을 테니까.

 

독고무령은 꼬꾸라져 있는 시신을 향해 손을 저었다.

 

시신이 붕 떠오르더니 침상 쪽으로 이동했다.

 

독고무령은 시신을 침상에 내려놓고 부러진 팔다리를 펴서 제대로 잡아주었다. 그리고 이불로 그의 몸 전체를 덮어주며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그자는 당신보다 더욱 처참하게 죽을 것이오.”

 

 

 

객잔을 나온 독고무령은 백운서원으로 갔다.

 

백운서원은 정주성 동남쪽 나지막한 야산자락에 있었다.

 

고색창연한 건물은 제때 보수가 안 돼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였고, 넓은 정원은 잡풀이 많이 나서 흉가나 다름없었다.

 

그곳에는 아직도 십여 명의 배고프고 갈 곳 없는 학사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독고무령은 바로 서원에 들어가지 않고, 먼저 서원의 상황부터 자세히 알아보았다. 

 

밀호방 정보원이 죽은 이상 모든 일에 만전을 기해야 했다. 

 

서원 근처의 객잔으로 들어간 그는 방을 얻었다. 그러고는 방으로 엽차를 가져온 점소이에게 번쩍거리는 은자 한 냥을 내밀었다.

 

“백운서원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아는 것이 있다면 이걸 주겠소.”

 

눈이 휘둥그레진 점소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은자를 노려보았다.

 

“아마 백운서원에 대해서는 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요.”

 

“말해보시오. 무엇이든 좋으니까.”

 

“예, 공자.”

 

일단 입술에 침을 칠한 점소이는 백운서원에 대한 모든 기억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대부분 사소한 것이었지만, 와중에는 제법 중요한 정보도 들어 있었다.

 

“……그렇게 원주님이 사라지고 학사들이 죽으니까, 정주부사께서 임시원주를 파견하셨지요. 그런데 그 양반이…….”

 

묵묵히 점소이의 말을 듣고 있던 독고무령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관에서 임시로 원주를 파견해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운양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임시원주에 대한 내용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유하령을 찾는 게 중요했지, 임시원주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점소이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임시원주란 자가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생각할 것도 없었다.

 

임시원주는 학문보다 무공에 더 신경을 쓴다고 했다. 

 

“언젠가는 몇몇 건달이 백운서원을 건드렸다가 치도곤을 당했습죠. 듣자니까 일류고수만큼이나 강하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요. 그런데 웃긴 것이…….”

 

능히 일류고수 소리를 들을 만큼 강한 임시원주. 더 이상한 것은 그의 학문이 일반학사들보다도 못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임시원주라지만, 학문도 제대로 닦지 못한 자를 서원의 원주로 내세우다니. 

 

정주부사가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자를 임시원주로 썼겠는가. 

 

뭔가 흑막이 있다는 말.

 

“……그래서 이제는 어떤 학사도 백운서원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요.”

 

점소이는 그렇게 말을 맺고, 은자를 향해서 슬그머니 손을 뻗었다.

 

 

 

* * *

 

 

 

독고무령은 일단 쉬면서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어둠이 세상을 뒤덮은 해시(亥時) 초, 세 사람과 함께 백운서원의 담을 넘었다.

 

“모든 학사들을 제압하시오. 대항하는 자들 중 무공을 익힌 자는 죽여도 상관없소.”

 

독고무령은 세 사람에게 냉정한 명을 내리고, 자신은 임시원주의 거처로 향했다.

 

 

 

퍽!

 

백운서원의 임시원주인 곡부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누군가가 방에 침입한 것을 알고 벼락같이 일어나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항도 해보지 못하고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지는 충격에 몸이 굳어졌다.

 

마른하늘에서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진 상황.

 

그는 겨우 고개를 들고, 독고무령을 흔들리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누, 누구……?”

 

독고무령의 입에서 나직한 질문이 무심한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곡부귀, 백운서원의 임시원주.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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