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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00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2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00화

 

100화

 

 

 

 

 

 

소설향이 옷을 알아본 것 같다.

 

독고무령의 얼굴에 머쓱한 표정이 떠올랐다.

 

“예, 조금 작아서 수선했습니다.”

 

옷을 살펴보던 소설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설마 한 번도 안 입었던 게냐?”

 

“그게…… 수련을 하다보면 새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서요.”

 

“그냥 입지 그랬느냐?”

 

독고무령은 차마 말은 못하고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아까워서 못 입었습니다. 행여나 찢어질까봐서요.’

 

소설향은 독고무령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다음에 오면 내가 아주 멋진 옷을 만들어주마.”

 

“아, 아닙니다. 이것도 아직 새것인데요. 워낙 수선을 잘해서 표도 거의 나지 않습니다.”

 

“거절하지 마라. 나도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야 마음이 가벼워지지.”

 

자신이 받아서 소설향의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한 벌이 아니라 열 벌이라도 받아야 했다. 아니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쓸 수도 있었다.

 

“고맙습니다.”

 

독고무령은 소설향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럼 쉬십시오,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러고는 서둘러 몸을 돌렸다. 그러지 않으면 눈가에 낀 안개의 정체를 들킬 것만 같았다.

 

소설향은 조용히 웃으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마치 친자식을 바라보는 표정이었다.

 

 

 

독고무령이 방을 나서자 장유유가 쪼르르 따라왔다.

 

뒤따라 나온 장유유는 길게 늘어진 머리를 만지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빠, 정말 아버지의 내상을 고칠 방법이 없을까?”

 

태원에서 유명하다는 의원은 다 불러봤다. 그러나 모두가 고개를 저으며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만 했다.

 

장유유는 썩은 새끼줄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한 마음은 독고무령도 마찬가지였다.

 

다행이라면 오늘의 결과가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익히고 있는 무공이 장주님의 내상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시간 나는 대로 와서 손을 쓸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장유유의 표정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정말?”

 

독고무령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장유유가 기쁨을 참지 못하고 독고무령의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고마워요, 오빠.”

 

독고무령은 피하지 않고 그녀의 등을 가만히 다독여주었다.

 

아마 저만치 뒤에서 운양의 콧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을지 몰랐다.

 

“킁, 킁, 어디 여동생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이거 나도 빨리 품에 뛰어들 여동생 하나 만들어야지, 원……. 킁, 킁…….”

 

장유유가 혀를 쏙 내밀어 보이고 독고무령의 품에서 벗어났다. 꼭 어릴 때의 장유유 모습을 보는 듯했다.

 

독고무령은 피식 웃고는 장이생의 방을 바라보았다.

 

‘제가 어떻게 하든 장주님의 내상을 꼭 치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님.’

 

소천과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유유도 동생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어머니라 부르지 못할 것도 없었다. 입 밖으로 내기가 힘들 뿐.

 

그래도 속으로나마 ‘어머니’라는 말을 하고나자 왠지 모르게 가슴에서 열기가 피어났다.

 

 

 

* * *

 

 

 

선평원을 나온 두 사람은 곧장 운가고서점으로 갔다.

 

그곳까지 가는 중에 운양이 장가장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장가장의 참화소식이 전해졌는지 제왕성에서 조사가 나왔다고 하네. 철노가 우리와 입을 맞춘 대로, 장주님은 지금 비적들에게 몸을 많이 다쳐서 치료 차 낙양으로 갔다고 했다더군. 놈들이 그 말을 믿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네만, 일단은 별 말 없이 도검 백 자루만 가져갔다고 하네.”

 

남조경은 그 일을 철저히 비밀로 처리했다. 

 

소엽의 말대로라면, 그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남조경과 죽은 사람들뿐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제왕성. 안심해서는 안 되었다.

 

남조경과 비화당의 좌비향이 사라진 시기와 장가장이 참화를 당한 시기가 같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의심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별다른 낌새는 못 느꼈나?”

 

“아직은 그들이 눈치 챘다는 어떤 정황도 발견하지 못했네. 무기를 가져가면서도 오히려 힘내서 무기나 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더군. 하긴 그들이 알고 갔다면 그냥 놔두었겠나?”

 

“그래도 모르는 일이니 철저히 살펴보도록 하게.”

 

“걱정 말게. 눈 빠지게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래도 장가장의 일은 돈이 되니까. 그것도 제법 많이!

 

 

 

운양은 운가고서점을 그냥 지나치더니, 운가고서점의 건물 뒤편에 있는 장원으로 독고무령을 안내했다.

 

독고무령은 운양의 뒤를 따라가며 장원을 살펴보았다.

 

사합원식(四合院式)의 건물 몇 채가 회랑으로 이어져 있고, 그 사이에 아담한 정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언뜻 봐서는 뒤쪽에 후원도 있는 듯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곳곳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 적어도 무공을 익힌 자가 이십여 명은 될 듯했다.

 

“여긴 어디지?”

 

“내 집.”

 

독고무령은 뭔가를 짐작하고 운양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밀호방인가?”

 

운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여긴 사혁이도 몰라.”

 

그만큼 비밀을 철저히 유지해왔다는 말. 독고무령은 그래서 더 의아했다.

 

“그런데 왜 나에게는 알려주는 거지?”

 

“알아야 할 때가 되었으니까. 앞으로 심각한 일을 진행할지도 모르는데, 계속 고서점에서 만날 수는 없잖아?”

 

그건 그랬다. 아무래도 고서점은 외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 아니던가. 비밀스런 일을 진행하기에는 적당한 곳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동안 감춰두었던 밀호방을 내보였다는 것은 모든 것을 걸었다는 말.

 

독고무령은 운양의 마음을 읽고 담담히 말했다.

 

“후회하게는 하지 않겠네.”

 

 

 

두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가 마주 앉자, 시비처럼 보이는 소녀가 차를 가져왔다.

 

독고무령은 찻물로 입술을 적시고 운양을 향해 물었다.

 

“정주에서 연락 온 것 없나?”

 

운양이 침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때 살아난 두 사람 중 하나는 백운서원을 나온 지 사흘 만에 죽었다고 하더군. 그리고 다른 하나는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하네.”

 

“찾을 수 없는 건가?”

 

“그렇지는 않을 거야. 단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지. 수하에게서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연락이 왔거든.”

 

독고무령은 식은 차를 마저 비우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내가 직접 가봐야겠네.”

 

운양이 찻잔을 입에서 떼고 눈을 치켜떴다.

 

“자네가 직접?”

 

“유하령의 일 말고도 알아볼 게 있네.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 그 전에 다녀와야겠어.”

 

“흠…….”

 

“그동안 몇 가지 해줄 일이 있네.”

 

다시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운양이 멈칫했다.

 

‘해줄 일’이라는 것이 아직 뭔지 모른다. 한데도 겁부터 났다. 결코 단순한 일은 아닐 테니까.

 

더구나 한 가지도 아니고, 몇 가지라고 하지 않는가.

 

“뭔…… 데?”

 

“제왕성과 그 배후에 대한 조사야 당연히 알아서 할 테니, 그것 말고 두어 가지만 해주게.”

 

글쎄 그게 뭐냐고!

 

운양은 독고무령을 노려보듯이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독고무령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담담히 말했다.

 

“무천련이 해체되다시피 하면서 흩어진 사람들 중 쓸 만한 자들을 알아봐주게.”

 

“그리고 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지. 그리고 사람이 많은 곳에 숨어야 찾기가 더 힘들다고도 하고 말이야. 그리 생각하면 태원이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 할 수 있네. 물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독고무령은 말을 멈추고 운양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약간 불안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해서 태원에 마땅한 곳이 있나 찾아보려고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일단 백천산에 있는 사람들 중 일부를 이곳으로 불러들일까 하는데, 괜찮겠나?”

 

운양이 눈을 크게 떴다.

 

“몇…… 명이나 되는데?”

 

“일차로 한 사십 명 정도 될 거네. 자네에게 방해는 안 될 거야.”

 

“…….”

 

“부담가면 거절해도 되네. 다른 곳을 찾아보면 되니까.”

 

그 말을 듣고 거절하면 무슨 소리 들으라고!

 

운양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 하, 뭐…… 사십 명 정도야…….”

 

“비용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게. 나중에 한꺼번에 계산할 테니까.”

 

운양이 그런 독고무령을 향해 툭 쏘아붙였다.

 

“이자도 줘야 돼.”

 

“물론이지, 친구.”

 

“제길, 친구도 좋지만, 이러다 거덜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운양이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은 듯 입가에 자잘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흠, 암천사신이 포함된 사십 명의 정예무사라. 흐흐, 이들이 합류하면 앞으로는 어떤 놈도 우리 밀호방을 건들지 못할 거야.’

 

지금도 태원 일대를 주름잡는 흑도삼파에 비하면 강한 힘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그 차이가 크지 않고, 자신들은 숨길 게 많아서 가끔 마찰이 일어나도 확실한 응징을 못했다.

 

그런데 사십 명이나 되는 고수가 합류한다면 흑도삼파 따위는 신경 쓸 것도 없었다.

 

물론 자잘한 일도 부려먹을 수 있을 테고. 밥값 정도는 해야 하니까.

 

운양의 가슴이 한참 부풀어 오를 즈음, 독고무령이 그의 부풀어 오른 가슴에 바늘을 쿡 쑤셨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존망이 걸린 일 아니면 그들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네. 제왕성이 알면 시작도 못해보고 끝장날지 모르니까.”

 

잉? 그럼 그냥 재워주고 밥만 먹여주라고?

 

운양의 입이 한 자는 튀어나왔다.

 

 

 

* * *

 

 

 

태원을 출발한 독고무령 일행은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일단 장가장에 들른 독고무령은 일행을 멀리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철노를 만났다. 만에 하나 제왕성의 눈이 있을 경우를 생각한 것이다.

 

철노는 친손자가 몇 년 만에 찾아온 것처럼 환한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반겼다.

 

독고무령은 철노의 표정이 밝아졌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마음의 중심이 잡힌 이상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을 듯했다.

 

“무기는 얼마나 만들었습니까?”

 

“상품으로 모두 삼백 자루를 모아두었다. 흥! 놈들에게는 중품으로만 주었지.”

 

마음 같아서는 하품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장인의 자존심 때문에 차마 그런 무기를 만들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무사들이 무기의 상태를 못 알아볼 리가 없는 일. 자칫하면 공연한 의심만 살 뿐이었다.

 

“별 말 없이 가져갔습니까?”

 

“싫으면 가져가지 말라고 했다. 워낙 마음고생을 심하게 해서 좋은 무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했지.”

 

독고무령은 조용히 웃으며 철노를 바라보았다.

 

마치 심술쟁이가 남을 약 올릴 때 짓는 표정이 철노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너무 오래 놔둘 수도 없으니 곧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든 보내라. 내 그때까지 최대한 많이 만들어놓으마.”

 

독고무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철노에게 신신당부했다.

 

“놈들이 의심할지 모르니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기는 너무 많이 만들지 마십시오. 대신 소수라도 좋은 걸로 만들고, 농기구를 만들면서 저들의 눈을 피하도록 하십시오.”

 

“흠, 그것도 괜찮겠군. 이참에 제대로 된 도검을 한번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때 문득 철노의 눈이 독고무령의 허리로 향했다.

 

“그 검, 한번 봐도 되겠느냐?”

 

독고무령은 검집째 철노에게 건네주었다.

 

철노는 검을 천천히 잡아 뽑았다. 하지만 다섯 치를 뽑기도 전에 표정이 굳어지고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그러다 반쯤 뽑혔을 즈음에는, 다문 턱에 이가 부서질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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