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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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81화
81화
워낙 빠르고 자연스런 변화였다. 피할 틈도 없이 상대의 심장을 뚫고 빠져나온 검이 옆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일말의 인정도 없는 손속!
그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반드시 한두 사람씩 꼬꾸라졌다.
목이 잘리고 심장이 뚫린 곳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대여섯 명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무심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목과 심장에 검을 꽂는 독고무령을 보고는, 그가 가는 길에 있던 검혼단의 무사들은 질린 표정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함이 터져 나오며 한 사람이 독고무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놈!”
독고무령은 피하지 않고 달려드는 자를 향해 마주 검을 뻗었다.
쩡!
맑은 쇳소리가 울렸다. 달려들던 자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순간, 독고무령의 검이 그를 향해 쭉 뻗었다.
검혼단의 제오향주인 소청원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쩌정!
다시 한번 맑은 쇳소리가 울리며 소청원의 검이 허공으로 튕겨졌다.
찰나, 앞으로 한 걸음 내딛은 독고무령의 좌수가 소청원의 가슴을 두들겼다.
쾅!
“커억!”
독고무령은 상대가 훌훌 날아가는 것을 보며 검의 방향을 틀었다.
바로 그때였다.
삼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는 무천련의 무사들과 도혼단이 싸우고 있었는데, 그들 중 하나가 독고무령을 알아보고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그놈을 조심해! 그놈이 바로 조양표국의 그 살귀다!”
그 사이 독고무령은 철검기와 뒤엉킨 검혼단의 무사들을 속으로 뛰어들었다.
“뒤로 물러나!”
독고무령의 목소리가 울리자, 근처에 있던 철검기의 무사들 중 두세 사람이 다급히 물러났다.
동시에 독고무령의 손에 들린 검에서 검기가 일렁이며 전면으로 밀려갔다.
쩌저저적! 까강!
그야말로 폭풍이 갈대숲을 휩쓸고 지나가는 듯했다.
그의 검에 부딪치는 것은 뭐든 부러졌다.
검도 도도, 무사들도 허리를 접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제왕성의 정예무사라는 검혼단이 제대로 된 대항조차 못해보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지자, 독고무령의 주위로 공백이 생겼다.
“참으로 놀라운 놈이로구나!”
그때 한 사람이 독고무령을 향해 날아들었다.
나이는 쉰 정도로 보였는데, 수염을 날리며 날아드는 모습이 관운장의 생전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가 바로 검혼단의 부단주인 진천검호(震天劍豪) 궁천한이었다.
궁천한은 독고무령을 향해 신형을 날리며 검을 내리쳤다.
독고무령도 상대가 고수임을 알고 보다 신중한 표정으로 검을 뻗었다.
쾅!
굉음이 일며 독고무령의 몸이 뒤로 훌쩍 날아갔다.
하지만 충격을 입고 날아간 것이 아니었다.
독고무령은 자신이 날아 내린 근처에 있는 검혼단의 무사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푹!
순식간에 세 명의 검혼단 무사가 입을 쩍 벌린 채 쓰러졌다.
궁천한은 자신이 이용당했다 생각했는지 노성을 내질렀다.
“이 간교한 놈!”
그러고는 즉시 검을 고쳐 잡고 독고무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독고무령은 궁천한을 바라보며 검을 들었다.
일순간, 그의 검첨이 좌우로 흔들리며 푸른 안개와 같은 검기가 일렁였다.
검강처럼 강맹한 기운은 아니었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검첨의 움직임에 궁천한의 안색이 굳어졌다.
삼 장의 간격이 일시에 좁혀지며 두 사람의 검이 엇갈렸다.
찰나였다. 독고무령의 검첨에서 일어난 검기가 궁천한의 검신을 감쌌다.
궁천한이 급히 독고무령의 검을 떨쳐내려 할 때였다. 독고무령이 손을 홱 뒤집으며 궁천한의 검을 밀쳤다.
검기에 감싸인 궁천한의 검이 오히려 옆으로 밀려났다.
대경한 궁천한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독고무령의 공세에 대비했다.
순간, 독고무령의 검첨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한줄기 섬전 같은 검기가 궁천한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뇌정일섬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검기가 심장을 압박하자, 궁천한은 헛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뒤로 눕혔다.
“헛!”
찌익!
궁천한의 어깨 옷자락이 찢어지며 피가 튀었다.
심장이 관통되지는 않았지만, 어깨가 길게 찢어진 터였다.
궁천한은 일단 뒤로 신형을 뺐다.
독고무령은 그를 더 쫓지 않고 또 다른 먹이를 찾아 몸을 날렸다.
궁천한은 와락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갈았다.
치욕이었다. 새파란 놈에게 밀려 부상까지 입다니!
“이놈!”
궁천한은 노성을 내지르며 다시 독고무령을 덮쳐갔다.
독고무령은 제왕성 무사 하나를 제거하고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렸다. 그가 공격할 거라 짐작했다는 듯.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시퍼런 검세!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린 독고무령은 궁천한의 검세에 정면으로 부딪쳐갔다.
태천일심의 기운이 실린 뇌정진천세!
일순간, 뇌전이 번쩍이고, 그의 검첨이 향한 곳에서 은은한 뇌음이 일었다.
콰르르릉.
뒤이어 굉음이 일며 대기가 터져나갔다.
콰광!
허공으로 튕겨진 궁천한은 이를 드러낸 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반면 한 걸음 물러선 독고무령은 지체하지 않고 궁천한을 향해 쇄도했다.
삼 장을 튕겨져 바닥에 날아 내린 궁천한은, 독고무령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혼신을 다해 뒤로 몸을 날렸다.
치욕스럽지만 일단 살아야 했다. 한 번만 더 부딪치면 죽을 것 같았다.
‘어디서 저런 놈이!’
한편, 적의 전진을 틀어막기는 했지만, 남쪽 상황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바닥에 쓰러진 무천련의 무사만도 이삼십 명. 신음하며 바닥을 기는 동료를 보살펴줄 정신조차 없었다.
그나마 철검기와 전궁기가 악전고투하며 주력을 막지 않았다면 벌써 뚫렸을지도 몰랐다.
특히 철검기의 무사들은 악전고투를 하는 와중에도 철저히 뭉쳐서 적을 상대했다.
튀어 오르는 선혈! 신음! 비명!
한시도 멈추지 않고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사람들은 악귀처럼 상대의 심장을 찾아 검과 도를 휘둘렀다.
“죽어라! 개새끼들아!”
“크윽! 오냐, 같이 죽자!”
“너만 죽어! 누님! 내 뒤에 바짝 붙어 있으라니까!”
진사혁은 구양소현을 보호하면서도 미친 듯이 곤을 휘두르고, 한무종은 겉보기와 달리 살벌한 도세를 쏟아내며 철검기의 공세를 주도했다.
진사혁의 실력이야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상거지처럼 보이던 한무종이 진사혁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할 줄은 대부분이 생각지도 못한 터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철검기에 합류한 감가기와 도일성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상대를 몰아쳤다.
절정에 들지는 못했어도 일류고수 중 상급에 해당하는 실력을 지닌 그들이다.
고수들이 동료가 되었다는 것. 그것은 철검기의 무사들의 사기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한껏 사기가 고무된 철검기 대원들은 적에게서 한치도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적은 검혼단과 도혼단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오기천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뒤로 물러났다.
“크윽!”
가슴에서 핏물이 흘러나오는 게 심상치 않다.
“기천! 물러나!”
용호종과 조한상이 소리치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기회를 잡았다는 듯 적의 공세는 더욱 강해졌다.
곧이어 용호종이 어깨를 뚫린 채 물러서고, 조한상도 옆구리를 베인 채 주춤거리며 적의 공격을 겨우 막았다.
그때 진사혁이 버럭 소리 지르며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뒤로 물러나 있어! 이놈들! 얼마든지 와라! 내가 다 때려눕혀주마!”
붕붕붕!
무식하게 행동하다 갑자기 뻗는 진사혁의 곤은 보기보다 훨씬 더 무겁고 강력했다.
뭣 모르고 마주쳐가던 세 명의 무사가 뒤로 튕겨진 후로는 누구도 그를 얕보지 못했다.
반면 한무종은 제왕성의 무사들을 향해 직접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는 그동안 쌓인 한을 이 기회에 모두 풀려는 생각인 듯 손속에 추호의 인정도 두지 않았다.
벼락처럼 빠르고 강한 도세. 일초 일초가 인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살벌한 도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오는 마월삼십육초에는 그의 한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쉬쉬쉭! 따당! 쩌저적!
도광이 번쩍일 때마다 터져 나오는 격렬한 충돌음.
도를 휘두르는 한무종의 두 눈에서 살광이 번뜩였다.
상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억눌린 신음이 처절하다. 자신의 몸 역시 적의 무기에 스쳐 핏물이 배어나온다.
하지만 한무종은 광기마저 보이는 눈을 부릅뜬 채 조금도 도를 늦추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뼈를 가르고 살을 베는 감촉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옆에서 피가 뿌려지는 것조차 마치 남의 일만 같았다.
‘죽일 것이다! 모조리 죽일 것이다! 개 같은 제왕성 놈들!’
끝내 한무종은 가슴에 쌓인 한을 입 밖으로 터트렸다.
“으아아아! 얼마든지 와라! 제왕성 놈들아!”
* * *
싸움은 남쪽과 서쪽과 북쪽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그러나 제왕성의 무사들이 중심부까지 들어온 상태. 장원 전체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관초악을 비롯해 무천련의 수뇌들이 모여 있는 중앙의 대풍전 근처도 마찬가지였다.
수뇌들이 모여 있는 곳을 공격하는 만큼 제왕성에서도 강한 자들을 그곳에 투입한 것이다.
세 명의 장로, 삼단의 단주, 제왕이십팔숙 중 열넷, 그 외에도 빈객으로 초청한 고수들이 상당수였다.
“물러서지 마라!”
일대를 울리는 관천악의 고함이 다급함으로 물들었다.
절정이 경지에 이른 고수만도 삼십 명이 넘었다. 그중에는 초절정의 경지에 달한 고수도 칠팔 명이나 되었다.
그러함에도 전진은커녕 뒤로 밀리는 판이었다.
고수의 숫자는 부족하지 않았다. 문제는 같은 절정에 이른 고수라 해도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제왕성의 정예는 서너 명이 절정고수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팽팽한 접전에서 약간의 차이는 승패를 가를 만큼 중요했다.
전체 상황을 지휘하던 관천악은 무천련의 고수들이 뒤로 밀리자, 직접 검을 뽑아들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모두 힘을 내시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제왕성 놈들은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을 것이외다!”
그때 제왕성의 무리 중 한 사람이 광소를 터트리며 관천악을 향해 날아들었다.
“우하하하하! 관천악! 그대는 내가 상대해주마!”
날아든 자는 짙은 감색 옷을 입은 오십 중반의 초로인이었다. 그의 손에는 톱날처럼 날이 삐죽삐죽 선 직경 두 자 크기의 쌍륜이 들려 있었다.
그를 본 관천악의 눈이 호랑이처럼 부릅떠졌다.
“네놈은 백혈쌍마륜 황암이로구나!”
백혈쌍마륜(白血雙魔輪) 황암.
그는 제왕성의 장로원인 제천각의 부각주로, 본래 산서와 섬서의 경계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던 자였다. 그러한 자가 왜 제왕성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오늘의 침공을 지휘하는 자가 황암일까?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제왕성의 서열 십위 안에 든다는 황암이 눈앞에 있다는 것이다.
관천악은 용화검을 앞으로 뻗으며 일갈을 내질렀다.
“와라! 내 친히 네놈의 목을 베어주마!”
관천악이 황암과 대치하자, 호법처럼 관천악 곁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관초악도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도혼단의 단주인 위불군을 상대했다.
부드러워 보이면서 웅혼한 거력이 담긴 그의 검세가 위불군의 도세를 부수며 밀고 들어갔다.
뜻밖의 상황에 위불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도가 검보다 힘에서만큼은 앞선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거늘 자신의 도가 힘에서 밀리는 게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
“네놈은 누구냐!”
삼 초 만에 뒤로 밀린 위불군이 소리쳐 물었다.
그러나 관초악은 대답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내질렀다.
그의 눈에는 생사의 싸움을 벌이는 마당에 그러한 질문을 하는 위불군이 어리석게만 보였다.
“지옥에 가서 알아봐라!”
“건방진 놈!”
위불군은 노성을 내지르며 폭풍처럼 도를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