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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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79화
79화
제1장 핏빛 바람은 밀려들고……
편두(鞭頭)가 살아있는 뱀처럼 독아를 들이밀며 날아든다.
독고무령은 좌우로 흔들리는 편두를 취접라로 잡아채고, 구명절혼수를 펼쳐 도일성의 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가히 환상처럼 빠른 일수!
구양소현을 비롯한 구조 조원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소리쳤다.
“아, 탈혼파!”
“정말 멋지군!”
구명절혼수 중 하나인 탈혼파(奪魂把)인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들이 익힌 구명절혼수와는 완전히 다른 위력이어서, 정말로 탈혼파인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내가 이긴 것 같군.”
독고무령은 도일성의 목을 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도일성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독고무령의 손이 다가온 순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 어디로 피하든 다 잡힐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그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단순히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찰나 간, 자신의 목이 뜯겨지는 환상을 봤는데, 그는 목이 잡힘과 동시 공포에 짓눌려서 꼼짝할 수 없었다.
‘흐미,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유원위가 감가기와 함께 돌아온 것은, 내기가 끝난 후로도 일각가량이 더 지나서였다.
도일성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가, 들어오는 사람을 바라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 저 고집쟁이가?’
감가기도 도일성을 보고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응? 저 반골이?’
하지만 유원위가 입을 여는 바람에 고개를 돌려야 했다.
“대주, 데려왔습니다.”
“수고했소.”
독고무령은 가볍게 대답하고 감가기를 바라보았다.
눈썹이 굵고, 코가 우뚝 선데다 각진 턱을 지닌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런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고민을 혼자서 짊어지고 사는 사람처럼 그늘진 표정이었다.
“독고무령이오. 무천단 십기 중 철검기를 맡게 되었소.”
“원위에게 들었소. 왜 나 같은 사람을 쓰려는 건지 모르겠구려.”
“성격은 별로지만, 사람은 믿을만하다고 하더군요.”
설마 그렇게 대답할 줄은 몰랐다는 듯 사람들이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독고무령은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목숨을 내걸어야 할 경우가 다반사로 있을 텐데,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은 소용이 없소. 그래서 믿을만한 사람을 뽑는 것이오. 정 싫다면 돌아서 나간다 해도 절대 뭐라 하지 않겠소.”
가든 말든 네 맘대로 하라, 그 말이다.
감가기의 눈빛이 흔들렸다.
유원위를 따라올 때부터 갈등이 일었다. 항상 혼자 지내던 것이 버릇처럼 되어 남과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 것이다.
아마 가문을 일으켜야 할 책임이라는 짐이 없었다면 따라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왔는데, 가든 말든 알아서 하라니.
그 말이 꼭, 겁나면 가라는 것처럼 들렸다.
묘한 감정이 감가기의 가슴 깊은 곳에서 들끓었다.
자신이 그렇게 별 볼일 없어 보이나?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말한 사람이 누군지 그도 안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가 서문태강을 이긴 사람이라 해도 자신을 무시한다는 게 기분 좋을 리 없었다.
‘그대가 대단하다는 건 나도 알아. 그러나 나도 하찮은 사람은 아니야. 좋아, 원한다면 내 능력을 보여주지!’
감가기는 오기에 가까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친구들과는 전부터 아는 사이오. 아마 귀하가 생각하는 것처럼 방해되지는 않을 것이오.”
그때 도일성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보쇼! 누구는 가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 왜 나는 못 가게 한 것이오?”
독고무령은 도일성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굳이 이러쿵저러쿵 이유를 말하지 않고 간단하게 도일성을 주저앉혔다.
“불만이면 다시 내기해서 나를 이기시오.”
움찔한 도일성은 슬그머니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좀 억울하긴 해도…… 내가 한번 약속한 것은 꼭 지키는 사람이라 지키긴 하는데…….”
그는 또다시 조금 전의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눈빛을 보니 이번에는 정말로 목을 뜯어낼지 몰랐다.
‘제기랄, 이러다 저 인간에게 완전히 잡히는 거 아냐?’
그때 방문 밖에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독고 대주님께 아룁니다! 정문에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화급을 다투는 일로 태원에서 왔다면서 급히 만나 뵙자고 합니다!”
순간 독고무령의 두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화급을 다투는 일. 태원.
그 말에서 불길함이 느껴진 것이다.
* * *
독고무령은 즉시 객당으로 나가보았다.
찾아온 사람은 삼십 대 장한이었는데, 장가장에서 본 밀호방 십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를 본 독고무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운양은 밀호방의 사람을 외인에게 함부로 내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철검보에 있던 자신에게 소식을 전할 때도 간접적인 방법으로 몰래 전했다.
그런 운양이 십걸 중 한 사람을 직접 대풍장으로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급박한 일이 벌어졌다는 말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대가 직접 온 것이오?”
독고무령이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장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방주께서 초지급으로 서신을 보냈습니다.”
삼십 대 장한, 오걸은 그렇게만 말하고 대나무 통을 열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작은 대롱을 꺼냈다.
대롱에는 먹물이 담겨 있었는데, 아마도 유사시 먹물을 터트려서 서신의 내용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들기 위한 장치인 듯했다.
‘철저하군.’
독고무령이 새삼 운양의 철저함에 감탄하고 있는데, 오걸이 대롱 밑에서 서신을 한 장 꺼내 내밀었다.
독고무령은 서신을 받아들고 펼쳐보았다.
하지만 내용을 다 읽기도 전, 태행산의 암벽만큼이나 무표정하던 독고무령의 얼굴이 더욱 차갑게 굳었다.
[관제산에서 오백 무사가 내려갔다는 연락이 왔네. 모두 일류 이상의 정예들로 보인다고 하는군. 방향은 동쪽. 아무래도 서연으로 향하는 듯 보이네. 게다가…….]
독고무령이 오걸에게 물었다.
“서신의 내용을 아시오?”
“제왕성 무사들이 출성했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그들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고 있소?”
“연락을 받자마자 방주께서 서신을 작성했고, 제가 즉시 출발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잘못 계산하지 않았다면, 반시진 정도 차이가 날 겁니다.”
반시진.
시간이 급박했다.
“알았소. 위험하니 돌아가도록 하시오. 그대 방주에게는 내가 따로 연락을 하도록 하겠소.”
“예, 공자.”
독고무령은 서신을 품속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가라며 정문까지 바래다줄 시간도 없었다.
객당에서 돌아온 독고무령은 곧바로 구양은을 찾아갔다.
그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빠르게 다가가자 호위무사가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이오?”
독고무령은 걸음을 조금 늦추고는 자신의 목적을 말했다.
“비키시오. 화급한 일로 보주님을 만나러 왔소.”
호위무사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앞을 비키지 않았다.
독고무령이 비록 서문태강을 이기면서 이름을 얻었다 하나, 어쨌든 철검보의 사람인 이상 보주를 만나려면 예의와 절차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급해도 사정 정도는 말씀해주셔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독고무령은 사정을 설명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싸움이 벌어지면 말 한마디 할 시간에 몇 명이 죽어나갈지 모른다.
조양표국에서와 같은 실수는 한 번이면 족했다.
독고무령은 취접라로 두 명의 호위무사 멱살을 잡아 옆으로 밀쳤다.
“헛, 이게 무슨…….”
우당탕!
두 명의 호위무사를 떨친 독고무령은 곧바로 문을 열었다.
구양은은 독고무령이 평소와 달리 침착함을 잃고 위사들을 밀치면서까지 안으로 들어서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 구양학이 함께 있었는데, 그는 독고무령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드는지 이마를 찌푸리며 힐난조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리 서두르는가?”
그에 대해서도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독고무령은 구양학의 질문을 무시하고 구양은을 향해 말했다.
“자세한 사항은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주. 즉시 저와 함께 대련주를 만나러 가셨으면 합니다.”
구양학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허! 자네 정말……!”
독고무령이 그의 말을 끊었다.
“제왕성의 공격이 있을지 모릅니다. 한시가 급한 일이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구양학이 들어 올리던 손을 멈춘 채 눈을 크게 떴다.
구양은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본 독고무령은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다. 그리 말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가면서 말해준다 했지? 일단 가보세.”
별원을 나선 세 사람은 대풍전을 향해 달리듯 뛰어갔다.
와중에 독고무령이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제가 아는 친구에게 제왕성의 움직임을 감시해 달라고 했는데, 그에게서 소식이 왔습니다. 관제산에서 나온 제왕성의 무사 오백이 동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합니다.”
구양학이 말꼬리를 잡고 의문을 제시했다.
“오백 정도로 이곳을 칠 수 있다고 보나?”
“만약 그들이 남북으로 흩어진 자들과 합류한다면 일천이 넘습니다. 더구나 절정고수가 얼마나 될지는 아직 파악조차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곳에서도 순찰을 파견해놓고 있네. 그들이 온다면 순찰조가 발견해서 연락을 했을 것이네.”
“순찰조의 활동 범위는 백 리 이내입니다. 그들을 발견하고 전서구를 띄운다 해도 전서구가 도착하는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아마 전서구를 받고 대책을 세울 때쯤 되면 이미 놈들은 코앞에 와 있을 겁니다.”
전서구는 통상적으로 한 시진에 이백 리 정도를 난다. 그것도 방해물이 없을 경우에.
일류 수준의 무사가 전력으로 경공을 펼친다면 한 시진에 백수십 리를 갈 수 있으니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구양은은 일파의 수장, 그것도 웅크리고 있는 잠룡이다. 독고무령의 말뜻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의 목적이 이곳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규모의 적이, 제왕성이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미리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지.’
“빨리 가세.”
세 사람이 대풍전으로 다가가자 위사들이 가로막았다.
“무슨 일입니까, 보주님?”
구양은이 소리쳤다.
“비켜라! 대련주를 급히 만나 뵈려고 왔다!”
위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머뭇거렸다.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지만, 절차를…….”
구양은은 조금 전의 독고무령을 떠올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방으로 쳐들어오던 독고무령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비키라 하지 않느냐!”
짐짓 눈을 부릅뜬 그는 위사들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독고무령과 구양학이 그 뒤를 따라갔다.
안에선 관천악과 관초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세 사람이 소란스럽게 들어서자 관천악이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독고무령의 말을 듣고 대경해 눈을 크게 떴다.
“뭐라? 그게 사실인가?”
“분명한 것은, 제왕성의 무사 오백이 관제산을 떠나 동쪽으로 향했다는 것입니다.”
독고무령은 간단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판단은 관천악에게 맡겼다.
그 말뜻을 관천악이 왜 모를까.
당장 공격당하지 않는다 해도 제왕성의 무력이 그만큼 보강되었다는 뜻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심각한 것은 마찬가지.
문제는 정보의 정확도였다.
“그 정보를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나?”
“이런 일을 거짓으로 알려서 얻을 게 뭐 있겠습니까? 게다가 어차피 제왕성과 언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 믿고 대비해서 손해 볼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음…….”
관천악은 이마를 몇 번 찡그리더니 옆에 서 있는 관초악을 바라보았다.
“즉시 비상을 걸어라. 그리고 각파의 수장들에게 자파의 무사들을 관리해서 대기시키라고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