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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74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6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74화

 

74화

 

 

 

 

 

 

후우웅!

 

독고무령은 혼천묵양공을 두 손에 응집하고 서문태강의 장력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백마방의 비전장공이라는 백운장(白雲掌)이군.’

 

이미 한 대 맞는 것을 군웅들이 보았다. 자신이 대항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 것인가.

 

서문태강의 백색 장력이 다섯 자 앞까지 다가온 순간, 독고무령도 쌍장을 휘둘러 맞섰다.

 

쾅!

 

독고무령과 서문태강의 장력이 부딪치며 비무대가 우르릉 흔들렸다.

 

사실 독고무령이 서문태강과 비등하니 겨룰 거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독고무령이 일 장을 맞았을 때만 해도 그걸로 끝날 거라 생각했다. 하기에 누구도 급하게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 격돌은 그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똑같이 두 걸음을 물러선다.

 

경악할 일이었다.

 

독고무령이 서문태강과 비등한 접전을 벌이다니!

 

이번에는 경악하는 바람에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 성난 눈을 치켜뜬 서문태강의 손에서 다시 백광이 넘실거렸다.

 

그때다. 독고무령이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제 마지막 절차를 밟아야 할 때였다.

 

“이곳이 무천련 무사들을 위한 비무대라는 걸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저와 싸우고 싶으시다면 정식으로 하시지요?”

 

서문태강이 멈칫했다.

 

그러나 기호지세(騎虎之勢)!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터였다.

 

“오냐, 이놈! 그렇게 하자!”

 

홱 고개를 돌린 그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심사자 중 한 사람을 향해 말했다.

 

“조평! 내 이름을 올려라!”

 

그러고는 백마방의 호법인 정위호를 불러 서문도의 몸을 옮기게 했다.

 

모든 일이 워낙 빨리 진행되어 누가 말릴 틈도 없었다.

 

요극한과 최중을 비롯한 백마방의 당주들과 호법들이 말리려 했을 때는, 이미 서문태강의 말이 떨어진 뒤였다.

 

심지어 무천련 오대세력의 주인들과 십이문파의 수장, 강호명숙들조차 돌아가는 상황을 제지하지 못했다.

 

“허어, 이거 참…….”

 

“서문 방주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조금만 참으시지.”

 

몇 사람이 답답하다는 듯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대여섯 사람의 내심은 다른 사람과 달랐다.

 

관천악은 수염을 쓸어내며 눈을 반쯤 감고 독고무령을 주시했다.

 

‘두 번째 대결은 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관초악도 콧등을 씰룩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정말 뛰어난 말재주군.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어.’

 

벽도정과 설자웅을 비롯해서 산서 무림의 명숙들 중 상당수도 흥이 인 눈빛으로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반면 구양은만은 그들과 조금 다른 마음으로 독고무령을 응시했다.

 

‘맡겨달라고 하더니, 정말 기가 막히게 처리하는군! 이기든 지든, 본보로선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는 싸움이야!’

 

군웅들은 볼거리가 생겼다는 것에 더 열광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젊은 무사가 백마방의 방주와 비무를 한다.

 

그것도 상관인 대주의 복수를 위해!

 

그들은 무사다. 열광하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했다.

 

“와아아아아!”

 

“이봐! 십 초만 견뎌 봐! 내가 술 사주지!”

 

“무슨 소리야? 삼십 초는 견딜 것 같은데!”

 

“이기면 내 딸을 주마! 우하하하!”

 

“에라 미친놈! 네 딸은 이미 자식이 둘이나 있잖아!”

 

“상관없어! 사위 놈이 한 달 전에 죽었거든!”

 

“네놈 딸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깔려 죽었겠군!”

 

“우하하하!”

 

“진행자, 뭐해? 빨리 진행시켜! 이러다 불알 얼어서 떨어지겠다!”

 

환호와 웃음이 범벅되어 대연무장을 뒤흔들었다.

 

그때 진행자가 어정쩡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부터 독고무령과 서문 방주님의 비무를 진행하겠습니다!”

 

금방이라도 대연무장을 뒤집을 것 같던 환호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독고무령은 철탑처럼 굳건히 비무대를 밟고 서서 서문태강을 직시했다.

 

서문태강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서서히 비무대 위를 덮었다. 그것만으로도 서문태강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죽이겠다는 거겠지.’

 

자신 역시 승패만 가르고 말 생각은 아니었다.

 

결국 두 사람 다 승패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

 

독고무령이 늘어뜨린 손을 천천히 거머쥘 때 서문태강이 입을 열었다.

 

“검을 뽑아라.”

 

독고무령은 왼발을 반보 정도 앞으로 뻗으며 대답했다.

 

“때가 되면 뽑지요.”

 

서문태강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리고, 그의 입에서 토막 나 짓씹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건, 방, 진, 놈!”

 

동시에 그의 쌍장에서 백색 운무가 일렁였다.

 

독고무령은 혼천묵양공을 끌어올리고 서문태강의 공세를 기다렸다.

 

서문태강은 오래 참지 않았다. 그는 독고무령의 두 손에서 은은한 묵기가 일렁이자 바닥을 차고 신형을 날렸다.

 

두 사람의 거리는 이 장 정도.

 

찰나 간에 서문태강의 쌍장이 코앞으로 밀어닥쳤다.

 

독고무령은 혼천묵양공을 끌어올린 채, 백수만타를 펼쳐서 서문태강의 공세를 막아갔다.

 

콰르릉! 콰광!

 

연이어 서너 번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벽력이 떨어진 듯 고막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 주위로 폭풍 같은 기운이 휘몰아쳤다.

 

비무대가 당장이라도 푹 꺼질 것처럼 삐걱거리고, 비무대 주위에 꽂힌 깃발들이 바람도 없는데 찢어질 듯이 펄럭였다.

 

두 사람은 뒤로 일 장가량 물러서는가 싶더니 다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십여 번의 공방이 벌어지며 두 사람 주위로 회오리가 일었다.

 

서문태강을 상대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독고무령이다.

 

군웅들은 대풍장이 떠나가라 환호를 질러댔다.

 

“잘한다! 조금만 더 힘내라!”

 

“이야! 진짜 대단한데?”

 

“이거 저러다가 진짜로 이기는 거 아냐?”

 

“그럼 내 딸도 새서방을 들이는 거지 뭐! 우하하하!”

 

서문태강이 군웅들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분노가 솟구쳤다.

 

감히 자신을 이런 애송이와 비교하다니!

 

마음이 다급해진 서문태강의 두 눈에서 불길이 일렁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승부를 결정짓는 것만이 군웅들의 환호를 잠재우는 길이었다. 그것만이 진흙탕에 처박힌 자신의 체면을 살릴 유일한 방법이었다.

 

서문태강은 팔성의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렸다.

 

단 일성의 차이지만, 층 하나를 오르면 세상이 달리보이는 것만큼이나 큰 차이였다.

 

그의 쌍장에서 일렁이던 백색 운무가 백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검강보다 훨씬 펼치기 어렵다는 장강이 그의 손에서 펼쳐지자 군웅들의 환호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놈!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

 

독고무령은 그걸 보고 눈빛을 더욱 차갑게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서문태강이 쌍장을 들어 올린 순간 신형을 날렸다.

 

그동안 수세로 일관하던 독고무령의 갑작스런 선공이었다.

 

미처 생각을 못한 듯 서문태강은 멈칫하며 쌍장을 떨쳤다.

 

독고무령은 두 손을 흔들듯이 뻗으며 서문태강의 장강에 정면으로 부딪쳐갔다.

 

콰앙!

 

여느 때보다 큰 굉음이 고막을 울렸다.

 

그와 함께 서문태강이 서 있던 곳 반경 다섯 자가 금 간 얼음처럼 갈라졌다.

 

“차앗!”

 

서문태강은 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신형을 뽑아 올렸다.

 

그와 동시에 금 간 바닥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용호상박(龍虎相搏)의 대결!

 

용과 호랑이가 하늘과 땅의 기운을 일으키며 한치도 밀리지 않는 싸움을 벌이는 듯했다.

 

그러나 서문태강의 마음은 결코 편할 수가 없었다.

 

구성의 공력을 끌어올려 장강을 펼쳤다. 그럼에도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놈이……!’

 

장강으로도 안 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체면이 손상될지 모르지만, 어차피 체면은 땅에 떨어져 더 손상될 것도 없는 상황.

 

스릉!

 

사 장 허공에 뜬 서문태강은 옆구리의 도를 뽑았다.

 

찰나, 벼락같은 도세가 독고무령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마침내 서문태강이 도를 뽑아들자 독고무령은 검병을 쥐고 뒤로 훌쩍 몸을 날렸다.

 

쩌저저적!

 

도세가 비무대를 휩쓸자 독고무령이 서 있던 자리가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순간 뒤로 물러났던 독고무령이 검을 빼들고 서문태강을 향해 쇄도했다. 쇄도하는 그의 검에서 석 자가량의 푸르스름한 검강이 솟구쳤다.

 

막 비무대에 발을 디딘 서문태강은 이를 악물고 독고무령의 공세에 맞섰다.

 

쩌저저정! 콰광!

 

벽력음이 일며 서문태강의 몸이 뒤로 밀렸다.

 

번쩍이는 검강과 도강이 난무하며 대기를 찢어발긴다.

 

차디찬 한겨울의 대기가 진저리치며 비명을 질러댄다.

 

환호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비무대 주위에 서 있던 군웅들은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이제 끝내자, 서문태강!’

 

독고무령은 서문태강의 도막을 뚫고 검을 밀어 넣었다.

 

서문태강의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진 순간, 독고무령은 뇌정진천세를 펼치며 서문태강의 도막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쾅!

 

“크윽!”

 

충격을 이기지 못한 서문태강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독고무령도 속이 울렁거렸지만, 결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서문태강과는 이 장 반의 거리.

 

독고무령은 망설이지 않고 서문태강을 향해 다시 쇄도했다.

 

찰나 간에 두 사람의 거리가 일 장거리로 좁혀졌다.

 

서문태강은 황급히 도를 들어 올려서 독고무령의 공격을 방어했다.

 

쾅!

 

독고무령의 검이 서문태강의 도를 후려쳤다.

 

도가 옆으로 밀리자 서문태강의 가슴이 환히 드러났다.

 

찰나, 독고무령의 좌수가 기묘한 각도로 꺾어지며 앞으로 뻗어갔다.

 

너울지며 뻗어가는 좌수의 흐름은 독고무령조차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것은 결코 백수만타의 변화도 아니었고, 삼월인이나 구명절혼수의 변화도 아니었다.

 

기회를 잡았다 싶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펼쳐진 것일 뿐.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펼쳐진 변화가 두 사람의 표정을 급변시켰다.

 

서문태강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지고, 독고무령의 얼굴에선 은은한 열기가 떠올랐다.

 

그때였다.

 

관천악이 다급히 소리쳤다.

 

“멈추게!”

 

하지만 그 목소리가 울렸을 때는, 이미 독고무령의 좌수가 서문태강의 가슴으로 파고든 후였다.

 

콰앙!

 

“커억!”

 

서문태강이 격한 신음을 토해내며 뒤로 훌훌 날아간다.

 

비무대 뒤쪽에 서 있던 자들 중 몇 사람이 비무가 벌어지는 곳으로 날아들며 소리쳤다.

 

백마방의 호법들과 두이정이었다.

 

“방주!”

 

“공격을 멈춰라!”

 

독고무령은 묵묵히 서서 입술을 비집고 흐르는 핏물을 소매로 닦아냈다.

 

저만치 서문태강이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연한 표정으로 달려간 백마방 사람들이 부축하려고 하자, 서문태강이 손을 홱 뿌리쳤다.

 

“웩!”

 

핏물을 한 움큼 토해낸 그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독고무령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검을 집어넣었다.

 

철컥.

 

순간, 숨죽이고 있던 군웅들 중 몇 사람이 바짝 마른 입술을 떼었다.

 

“이겼다, 이겼어. 저자가 정말 이겨버렸어!”

 

“흐미…….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

 

“쓰벌, 내 딸 횡재했네.”

 

“미친놈…….”

 

하지만 그도 잠시.

 

수백 개의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환호가 일시에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최고다!”

 

“진짜 멋지다! 무천단주 자리, 너 먹어라!”

 

“와아아아아아!”

 

일개 조장이 오대세력의 주인을 꺾었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독고무령의 승리는 항상 기죽어 지내던 일반무사들에게 엄청난 희열을 안겨주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런 희망을 말이다!

 

진행자인 전곡상도 무사들의 그런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문제는 오대세력 중 하나인 백마방의 방주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독고무령의 손을 들어줄 경우, 어떤 사단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그가 결정을 망설이자 군웅들이 환호와 질타를 하며 전곡상을 압박했다.

 

“진행자, 뭐하냐쇼”

 

“독고무령이 승리했잖소! 왜 망설이시오!”

 

그때였다.

 

비무대 뒤쪽에 서 있던 관천악이 손을 들고 직접 결정을 내렸다.

 

“이번 승부는 독고무령이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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