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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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71화
71화
“오늘은 마음껏 즐기라고 해. 본좌도 그 정도 아량은 있으니까.”
“저들이 성주님의 아량에 감사해할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해해야겠지. 죽어서라도 말이야. 지옥의 가시밭길을 걸어가기 전에 마음껏 즐기게 만들어주지 않았는가? 후후후후.”
활활 타오르던 위지천백의 눈빛이 자홍색으로 물들었다.
공노명은 모공을 통해 스며드는 스산한 기운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기운이 일 장 떨어진 곳까지 대기를 타고 흐른다. 아무래도 그 무공이 십성에 이른 것 같군.’
그때 위지천백이 물었다.
“하북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던가?”
“예, 성주.”
“뭐라 하던가?”
공노명은 악문 이에 지그시 힘을 주고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천천히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저희들만의 힘으로 알아서 하랍니다.”
순간 위지천백의 입가로 싸늘한 웃음이 떠올랐다 흩어졌다.
“후후후, 역시 생각대로군.”
“다시 한번 요청해볼 생각입니다.”
“그것도 괜찮지. 그래야 여전히 자신의 손 안에 있는 줄 알 테니까 말이야.”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 하긴? 최대한 이용해 먹어야지. 자넨 어떻게 해야 그들의 힘을 줄일 수 있는지 그거나 생각해보게.”
“알겠습니다, 성주.”
위지천백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남조경의 죽음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나?”
“예, 성주. 비화당의 비밀무사 중 이십여 명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지?”
“비화당의 좌우비향주 중 한 사람인 좌향주 소엽과 그가 이끄는 좌비향의 비밀무사가 이틀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합니다.”
“남조경이 특수임무를 맡긴 것 아닌가?”
“남조경의 일지 어디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위지천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비화당의 좌우비향은 정예 중 정예였다.
숫자는 오십 명에 불과했지만, 능력은 삼단의 정예 이백 명보다 더 뛰어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 중 반이 사라졌다면 적지 않은 손해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숫자로 따지는 손해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이 왜 사라졌을까? 그것도 남조경의 죽음에 맞춰서.
혹시 남조경의 죽음과 그들의 증발 사이에 어떤 연관은 없는 걸까?
그 의문을 풀어야 했다.
“우향주는 뭐라고 하던가?”
“좌비향과 우비향은 따로 임무를 맡기 때문에 서로의 임무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향주 갈응도 좌비향의 행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지천백은 잠시 의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을 풀어서 알아봐라. 최대한 철저히.”
“예, 성주!”
제7장 무천련대회합(武天聯大會合)은 시작되고……
둥! 둥! 둥! 둥!
대회합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자 삭풍조차 숨을 죽였다.
웅성거리던 소란도 일순간에 잦아들었다.
대풍장의 드넓은 대연무장에 모여든 군웅들은 모두 일천여. 그들은 입을 닫고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표정을 지은 채 앞쪽에 마련된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여섯 자 높이로 만들어진 비무대는 넓이만도 족히 이백 평은 되었다.
비무대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모두 삼십여 명.
중앙에는 오대세력의 주인들이, 그 왼쪽에는 무천련을 지지하는 십이문파의 대표들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무천련을 돕고자 온 산서 무림의 강호명숙들이 앉아 있었다.
……둥!
북소리는 백 번을 울리고서야 멎었다.
동시에 진행자로 나선 두이정의 웅혼한 목소리가 드넓은 대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이제부터! 무천련의 대회합을 시작하겠소이다!”
“와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
함성이 천둥처럼 울리며 이천 평에 달하는 대연무장을 뒤흔들었다.
군웅들이 소리치며 하늘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무천련! 무천련!”
“제왕성을 무찌르자!”
“살귀 같은 놈들을 관제산에 묻어버리자!”
형제들이 죽었다. 동료들이 죽었다.
단 이삼 일 사이에 죽은 자만 사백이 넘는다.
조양표국과 대풍장에서 죽은 사람까지 합하면 근 팔백에 달하는 사람이 죽은 것이다.
무천련 사람들에게 제왕성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었다.
함성이 최고조에 달할 즈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일천 군웅의 함성을 누르고 대연무장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무천련의 동도들이여! 우리가 왜 이곳에 모였소이까!”
군웅들은 함성을 멈추고 비무대를 쳐다보았다.
중앙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나서 오연히 연무장을 바라본다.
무천련의 대련주이자 일원궁의 궁주, 용화검제 관천악, 바로 그였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아주 간단하외다! 산서 무림을 피로 물들이고 있는 제왕성을 물리치기 위해서외다!”
군웅들이 다시 함성을 질렀다.
“맞습니다! 제왕성을 제거해야 합니다!”
“제왕성은 강호의 해악입니다! 그들을 물리칩시다!”
“와아아아아!”
관천악이 손을 들어 올리고 말을 이었다.
“우리의 단합된 힘을 저들에게 보여줍시다! 제왕성의 무리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알게 해줍시다! 협을 위해! 정의를 위해! 모두 무기를 들고 제왕성과 싸웁시다!”
“싸웁시다!”
“무기를 들자!”
“제왕성과 싸우자! 협의를 위해!”
“싸우자! 싸우자! 싸우자아아!”
군웅들의 가슴에서 활화산 같은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당장 대연무장이 불길에 휩싸여 타들어갈 것만 같은 열기였다.
한편, 뒤쪽에 서 있던 독고무령은 군웅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관천악을 바라보았다.
관천악은 백색비단에 푸른 호랑이가 새겨진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다리에서 가슴까지 이어진 호랑이가 그의 강맹한 기도와 잘 어울려 보였다.
‘대단하군.’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체구. 쉰일곱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주름이 거의 없는 얼굴이다.
사위를 오연히 둘러보며 손짓 하나로 일천 군웅을 움직인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무천련을 맡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저 정도 되니까 위지천백과 비교되는 것이겠지.’
관천악이 대단한 것만큼은 독고무령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관천악이 위지천백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천검무왕 위지천백.
그는 누가 뭐래도 산서제일의 패왕이었다. 사람들이 관천악을 그와 비교하며 같은 위치에 놓는 것은, 위지천백이 워낙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아서일 뿐.
물론 자신도 위지천백을 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독고무령은 자신의 생각이 십중팔구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가? 독고무령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직은 상대가 안 될지 모르지. 하지만 언제까지 뒤져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위지천백.’
그때 군웅들의 함성이 다시 울리며 관천악이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몇 사람이 나서서 군웅들을 격동케 하는 연설을 했다.
화천문주 벽도정, 철검보주 구양은, 백마방주 서문태강, 전궁산장의 장주 설자웅, 패도신 척광호, 유혼신마 곽채신…….
형식적인 것이지만, 그러는 사이 군웅들의 사기가 절정으로 치달았다.
대연무장이 군웅들의 열기로 타들어갈 즈음, 두이정이 앞으로 나섰다.
“동도 여러분! 대회합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분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기 위한 비무대회가 열릴 것이외다! 자신 있는 분은 언제라도 나서서 자신의 실력을 뽐내주시기 바라겠소이다! 비무 규칙을 모르는 분을 위해 다시 한번 규칙을 알려줄 테니,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시기 바라겠소이다!”
달구어진 분위기가 식기 전에 적절히 터져 나온 두이정의 말이었다.
대회합 때마다 해온 행사였기에 군웅들은 환호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번에는 본문에서 우승자가 나올 거다!”
“웃기는 소리! 본장은 놀고 있는 줄 아는가?”
“와하하! 누가 뭐래도 무천련 최강은 본궁이다!”
서로가 자신이 속한 문파의 무사가 우승할 거라 외쳐댔다.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려도 즐거움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그때 두이정이 다시 소리쳤다.
“그리고 하나 더! 오늘의 우승자는 본련을 대표할 무천단(武天團)의 단주로 임명될 것이외다! 또한 패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무천단 십기(十旗)의 기주로 선발될 것이외다! 무천단은 오직 대련주의 명만을 받아 움직이는 본련 최강의 조직이 될 터. 많은 분들이 참가해주시길 바라겠소이다!”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조금 전보다 배는 더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대연무장이 들썩이며 함성이 하늘 끝까지 메아리쳤다.
독고무령은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힌 채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그들 중에는 서문태강도 있었다.
진사혁은 눈에서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제법 큰소리로 서문태강과 서문도를 향해 욕을 해댔다.
“개자식들! 남자도 아닌 놈들!”
소란스런 와중에도 그의 말을 들었는지, 앞에 있던 무사 하나가 홱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뭐야?”
그러다 진사혁의 형형한 눈빛과 마주치자, 슬며시 딴소리를 하며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내년에만 했으면 나도 참가했을 텐데…… 지미, 날씨만 따뜻했어도…… 흠흠…….”
진사혁은 그 무사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눈에 한 번 힘을 주고는, 독고무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무천련을 대표하는 무천단의 단주를 뽑는다면 꽤 많은 사람이 나오겠군.”
“그럴 거네. 아마 내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실력을 숨기고 있던 자들이 많이 나올 거야. 무천단주의 자리는 그만큼 매력 있는 자리니까.”
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독고무령은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무천련을 대표하는 최강의 조직, 무천단.
언뜻 들으면 대단한 단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무천련은 단일문파가 아니라 여러 문파들의 연합이다. 단일문파와 연합문파, 그들이 만드는 하나의 단체,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설마 그것을 모르고 무천단을 만들려는 건 아닐 텐데…….’
그래도 어쨌든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웅지를 심어줄 것만큼은 분명했다.
어쩌면 오대세력의 주인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고수들도 다수 나올 지 모른다.
참가자격에 제한이 없으니까.
그때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관초악도 나올까?’
그럴지도 모른다.
제왕성과의 전쟁을 앞둔 상황.
무천단주가 되어서 혁혁한 성과를 거둔다면, 관천악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그 이상의 꿈을 꿀 수도 있을 것이고.
‘그를 보는 재미도 괜찮겠군.’
안 된 말이지만, 진사혁은 아직 관초악에 비해 약했다.
그래도 진사혁은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지미, 나가는 김에 우승까지 해버릴까? 흐흐흐, 그러면 기분 끝내줄 텐데. 어때? 자네도 한번 나가보지 그러나? 그럼, 내가 우승을 양보하지.”
바로 그때, 독고무령이 비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직이 입술을 떼었다.
그렇잖아도 차디찬 대기가 일순간에 얼어붙었다.
“나도…… 나갈 거네.”
* * *
무사들이 비무 순서를 배정받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섰다.
명성이 있는 자는 곧바로 비무 신청란에 이름이 적혔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자들은 심사관 다섯 명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야 했다.
어떤 자는 자신의 검법을 펼쳐 보이기도 하고, 어떤 자는 돌을 주먹으로 부수며 강맹한 주먹을 자랑하기도 했다.
나무를 손으로 쥐어서 부수며 높은 공력을 자랑하는 자도 있었고, 허공에서 서너 바퀴 돌며 뛰어난 신법을 선보이는 자도 있었다.
열 명이 신청하면 다섯 명이 떨어졌다. 명성이 알려진 자가 서너 명, 심사를 거쳐서 올라간 사람들은 열 중 둘이 채 안 되었다.
그래도 떨어진 자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그들은 환한 표정으로 돌아서며 아쉽다는 듯 한마디씩 했다.
“제길, 올해는 강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온 것 같군.”
“십기주는 안 되어도 무천단에는 꼭 들고 싶었는데. 할 수 없지, 하하하.”
심사를 맡은 고수 다섯은 모두가 산서 무림에서 위명이 자자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앞에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독고무령은 비무 신청을 바로하지 않았다. 서문도가 아직 나서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