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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67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67화

 

67화

 

 

 

 

 

 

구양손은 이를 악물고 서문태강의 장력을 몸으로 받아냈다.

 

퍽!

 

구양손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안색이 창백해진 그는 이를 악문 채 잇새로 말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서문태강은 눈살을 찌푸린 채 구양손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장력을 몸으로 받아내다니.

 

마지막에 내력을 상당 부분 거두긴 했어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꼭 자신이 진 것 같은 기분이지 않은가 말이다.

 

제왕성과의 싸움에서도 지고, 철검보의 일개 대주에게도 지고…….

 

오기가 일었다.

 

“흥! 가볍게 한 대 맞은 걸로 모든 것을 끝낼 생각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때 서문도가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대를 맞았으니, 두 놈 중 한 놈만 넘겨달라고 하시죠, 아버님.”

 

평소라면 입을 다물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기가 치민 서문태강은 불쑥 입을 열어 아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것도 괜찮겠군. 한 놈 정도는 넘겨주겠지?”

 

구양손은 서문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비열한 자식!’

 

가슴이 옥죄는 통증에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였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렇게는 죽어도 못합니다.”

 

서문태강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구양손에게 분노가 확 치밀었다.

 

“죽어도 못한다고? 이 건방진……!”

 

그는 울컥 치민 분노를 우장으로 쏟아냈다.

 

구양손은 이번에도 가만히 서서 서문태강의 장력을 상대했다.

 

한 대 맞고 뛰어난 수하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손해가 아니었다. 물론 손해를 본다 해도 수하를 내주지 않았겠지만.

 

‘설마 죽이기야 하랴’, 한편으로는 그런 마음도 들었기에 맞기로 작정한 것이기도 했다.

 

쾅!

 

그러나 서문태강이 가슴을 두들긴 순간, 구양손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지미!’

 

서문태강은 조금 전처럼 내력을 거두지 않았다.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전보다 배는 강한 장력이었다.

 

뒤로 붕 떠서 일 장을 날아간 구양손은 몸을 일으키다 말고 허리를 구부렸다.

 

“쿨룩! 쿨룩!”

 

가느다란 핏줄기가 구양손의 입술을 타고 바닥으로 흘렀다.

 

서문태강은 그제야 자신이 손을 과하게 썼다는 것을 자각하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제길, 조금 약하게 쳤어야 하거늘.’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후회해봐야 물은 이미 쏟아져 모래 속에 스며든 뒤다.

 

서문태강은 피를 흘리는 구양손을 보고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과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흥, 오늘은 자네를 봐서 그만 물러가지.”

 

그는 짐짓 화가 식지 않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문도를 쳐다보았다.

 

“가자!”

 

“예, 아버님.”

 

서문도는 속도 모르고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어떠냐는 표정으로 구양손을 흘겨보았다.

 

“그러게 수하들을 넘겨주었으면 되었지 않습니까? 그딴 놈들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어려움을 자초하시는 겁니까?”

 

구양손은 대꾸할 정신이 없었다. 앞이 노랗게 보였다.

 

‘확, 주둥이를 뒷간 바닥에 문대버릴 놈의 자식…….’

 

바로 그때, 문이 열리고 구양소현이 들어왔다.

 

그녀는 서문태강과 서문도를 보고 멈칫했다.

 

“어머, 손님이…….”

 

그러다 곧, 무릎을 꿇은 채 피를 흘리는 구양손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숙부!”

 

구양손은 어질어질한 와중에도 악착같이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저게 난리치면 일이 몇 배는 더 커진다.’

 

당장 그 생각부터 든 것이다.

 

“소현…… 아, 조용……. 아무 일도 아니니…… 이리 와라…….”

 

 

 

* * *

 

 

 

무사히 관제산을 내려온 독고무령은 찢어진 옷을 벗고 평범한 무복을 사 입었다. 그리고 챙이 넓은 죽립을 하나 구해 썼다.

 

옷을 갈아입고 죽립을 쓴 것만으로도 그의 모습은 많이 달라 보였다. 

 

나름대로 모습을 바꾼 그는 곧장 태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신시 무렵, 북문을 통과했다.

 

태원에 들어선 그는 번잡한 북문로를 지나 운가고서점으로 향했다.

 

스쳐가던 사람들이 가끔 그를 흘깃거렸다. 여자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그가 멀어질 때까지 쳐다보았다.

 

그는 머리카락을 내려서 얼굴을 반쯤 가렸다. 

 

문득 용설이 떠올랐다.

 

‘그도 나와 같은 이유로 얼굴을 가렸을까?’

 

입까지 가린 천과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항상 반 이상 가려져 있는 그다. 게다가 갈색으로 탄 얼굴에는 땟물마저 흘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같은 남자가 봐도 감탄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잘 돌아갔는지 모르겠군.’

 

 

 

독고무령이 운가고서점으로 들어가자, 운양이 눈을 크게 뜨고 시답잖은 농담을 건넸다.

 

“웬 죽립인가? 멋을 좀 내보기로 마음을 바꿨나?”

 

“보기 괜찮나? 그럼 계속 쓰고 다녀야겠군.”

 

독고무령이 농담으로 받아쳤다.

 

운양은 피식 웃으며 고서점의 문을 닫았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갑자기 달라진다던데……. 뭐 그래도 농담을 하니 전보다는 낫게 보이는군.”

 

“전에는 어땠는데 그러나?”

 

“어떻긴? 시체하고 사는 장의사처럼 보였지.”

 

독고무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운양이 보기는 잘 봤다. 비옥에서 시체가 될 사람들하고만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분들은 잘 계시지?”

 

운양이 뒤따라오며 빙그레 웃었다.

 

“걱정 말게. 완벽한 곳에 모셨으니까.”

 

“고맙네.”

 

“고맙긴? 어차피 공짜도 아닌데 뭐.”

 

“그래, 얼마면 되겠나?”

 

“자네는 걱정 말아. 그분께 천 냥을 받기로 했으니까.”

 

“천 냥?”

 

“뭐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는 셈치고 무료봉사하려고 했는데, 그분이 굳이 돈을 주겠다더군. 그래서 조금만 달라고 했지.”

 

“조금이 천 냥이란 말이지?”

 

“아주 싸게 받는 거야. 사실 나도 남는 거 별로 없어. 태원 성주님의 별원을 빌리는 돈만 해도 팔백 냥이나 들었거든.”

 

독고무령의 눈이 조금 커졌다.

 

“태원 성주의 별원?”

 

“흐흐흐, 그곳이라면 설사 제왕성이 안다 해도 함부로 손대지 못할 거네. 가세.”

 

 

 

* * *

 

 

 

장이생부부와 장유유는 정말로 태원 성주의 별원인 선평원에 머물고 있었다.

 

독고무령은 운양과 함께 선평원으로 장이생을 찾아갔다.

 

소설향이 먼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주무시고 있단다.”

 

“그럼, 주무시는 동안 제가 잠시 몸을 살펴보겠습니다.”

 

독고무령의 말에 소설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으로 들어가자 조용히 잠든 장이생이 보였다. 안색은 어젯밤보다 조금 나아진 상태였다.

 

독고무령은 잠든 장이생의 맥문을 잡고 내력을 흘려 넣었다. 당장 많이 좋아지진 않아도 요상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러길 일각. 독고무령이 맥문을 놓자 곧 장이생이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눈을 떴다.

 

“왔느냐?”

 

“좀 어떠십니까?”

 

“훨씬 편안해졌구나.”

 

“장의 일은 너무 걱정 마십시오. 철방은 철노께서 현명하게 이끌어 가실 겁니다.”

 

“그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지.”

 

“그리고 포목점이나 다른 곳은…… 이 사람이 도와줄 겁니다.”

 

독고무령의 손가락이 운양을 가리켰다.

 

운양의 눈이 한껏 커졌다.

 

“이, 이봐, 무령. 나도 바쁜 사람…….”

 

독고무령은 들은 척도 않고 말을 이었다.

 

“대신 당분간은 이익의 반을 이 사람에게 주었으면 합니다. 보기보다 똑똑하고 일처리에서 확실하지요.”

 

“허허허, 그야 더 달라면 더 줄 수도 있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셈을 철저히 하는 사람이라 더 줘도 안 받을 겁니다.”

 

운양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눈알만 굴렸다.

 

‘이익인 것은 분명한데…… 그래도 더 받으면 좋은데…….’

 

독고무령이 그런 운양을 향해 말했다. 깊어진 눈으로 직시한 채.

 

“자네만 믿겠네.”

 

운양은 속으로 불만(?)이 많았지만, 겉으로는 환하게 웃었다.

 

“하, 하. 내가 누군가? 걱정 말게.”

 

독고무령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다시 장이생을 향해 돌렸다.

 

“그리고, 저들에 대해선 너무 걱정 마십시오.”

 

장이생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그래도…… 되겠느냐?”

 

“그 일을 시킨 자가 오늘 새벽에 죽었습니다. 물론 그 혼자만 알고 있었던 일이라 하더군요.”

 

독고무령의 말뜻을 눈치 챈 장이생의 표정이 급변했다.

 

경악과 안도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아아…… 정말 다행이구나.”

 

독고무령의 얼굴에도 잔잔한 웃음이 걸렸다.

 

“육 개월 정도 아무 일이 없으면, 장원으로 돌아가셔도 될 겁니다.”

 

“알겠다. 네 말대로 하마. 정말…… 고맙구나…….”

 

장이생의 눈가에 이슬이 내렸다. 그는 격동을 참을 수 없는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독고무령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서 있던 소설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혀 있었다.

 

“바쁜 일 때문에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친구가 몸에 좋은 약을 구해줄 것이니,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실 수 있을 겁니다.”

 

소설향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끝내 그녀의 눈가에 맺혔던 이슬이 뚝 떨어졌다.

 

“그럼, 쉬십시오.”

 

독고무령은 고개를 숙이고는, 입만 달싹이는 운양을 끌고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자 장유유가 다가왔다.

 

“오빠…….”

 

“소천이에게 연락은 했어?”

 

“응. 그런데 연락이 될지 모르겠어.”

 

독고무령은 묵묵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운양을 바라보았다.

 

운양은 지레 놀라서 고개를 뒤로 뺐다.

 

“왜 또……?”

 

“하북의 대홍문에 대해 아는 게 있나?”

 

“대홍문?”

 

운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보적인 문제가 나오자 그 특유의 기질이 발동했다.

 

“처음 들어보는 것 같군. 중소문파라 해도 백여 문파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데 말이야.”

 

“장가장의 아들이 강해지기 위해서 간 곳이네. 결코 작은 곳일 리가 없어.”

 

“그것도 그렇군. 으음, 내 한번 알아보지. 정보비는…….”

 

그때다. 장유유가 두 손을 모으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고마워요, 운 소협.”

 

운양은 멍한 표정으로 장유유를 바라보며 어물어물 말을 돌렸다.

 

“뭘…… 요. 원래 정보비를 백 냥은 받아야 하는데, 친구를 돕는 일에 돈을 받을 수는 없지요, 하, 하, 하…….”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니……. 크흑, 무뚝뚝한 친구가 복도 많지.’

 

장유유는 속 쓰린 표정을 짓고 있는 운양을 향해 빙그레 웃고는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오빠, 잠깐만 좀…….”

 

 

 

독고무령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장유유가 갑자기 몸을 돌려서 독고무령의 가슴으로 안겨들었다.

 

독고무령은 움찔했지만, 묵묵히 그녀가 하는 대로 놔두었다.

 

“조금만, 조금만 이대로 있어줘요.”

 

많이 힘든 것 같다. 부모님 때문에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아도 속이 타고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플 게 분명했다.

 

독고무령은 손을 둘러서 장유유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흑…….”

 

장유유가 나직한 울음소리를 내며 독고무령의 가슴에 눈을 비볐다.

 

독고무령은 잘게 떨리는 장유유의 동체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소리 없이 흘러나온 눈물이 옷을 축축이 적시고 안으로 스며들었다.

 

 

 

장유유가 독고무령의 품에서 빠져나온 것은 반각가량이 지나서였다. 비록 두 사람 다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된 말은 수만 마디도 더 되었다.

 

“가면 언제 돌아올 거야?”

 

장유유가 눈자위를 소매로 닦으며 물었다. 이전처럼 빨리 오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장유유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보다는 편해진 표정이었다.

 

“나…… 기다릴 거야. 오빠가 올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장유유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독고무령은 그녀의 말뜻을 어렴풋이 알아듣고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꼭…… 돌아오마.”

 

순간 장유유가 고개를 들더니 독고무령의 목을 잡고 매달렸다.

 

독고무령은 장유유의 입술이 코앞까지 다가오는데도 꼼짝하지 못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입술이 난생처음 자신의 입술에 닿았을 때는 온몸에 불이 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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