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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64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64화

 

64화

 

 

 

 

 

 

스산한 바람에 마른낙엽이 떨어진다.

 

독고무령은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 사이로 환영처럼 움직였다. 암향호접무로 인한 환영이 흩어졌다 나타났다 반복하자 몇몇 무사들이 당황하며 주춤거렸다.

 

“제길! 놈이 괴상한 신법을 쓰고 있다! 눈 똑바로 뜨고 봐라!”

 

“위로 올라가!”

 

“앞을 막아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안 누군가가 소리쳤다.

 

곧 제왕성의 무사들 중 일부가 나무 위로 신형을 날렸다.

 

“흥! 더 이상 못 간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땅으로 내려서면 순식간에 백여 명의 무사들에게 포위될 터. 빠져나가기가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다.

 

독고무령은 앞을 막는 자를 보고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나뭇가지를 차고 날아오르며, 앞을 막는 적을 무심한 눈으로 직시한 채 검을 뻗었다.

 

서걱!

 

“컥!”

 

“허억!”

 

두 명의 무사가 급살을 맞은 듯 허공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십여 명이 나무 위로 올라와 독고무령의 진로를 막았다.

 

독고무령은 굵은 나뭇가지를 박차고 그들 사이로 쇄도했다.

 

고오오오!

 

일순간 독고무령의 검에서 푸르스름한 검기가 뻗쳤다.

 

회오리처럼 휘돌던 검기는 찰나간의 망설임도 없이 제왕성 무사들을 덮쳤다.

 

쩌저저정!

 

단 일검에 네 자루의 장검이 튕겨지고, 네 명의 무사들이 신음을 흘리며 훌훌 날아간다.

 

독고무령은 그들과 부딪친 충격을 이용해 다시 몸을 날렸다.

 

“어림없다!”

 

차가운 일갈과 함께 좌우에서 서너 명의 무사들이 날아올랐다.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는 공세!

 

하나같이 절정에 도달한 고수들이다.

 

독고무령은 몸을 휘돌리며 뇌정진천세(雷霆振天勢)를 펼쳤다.

 

우르릉! 떠덩!

 

대기가 터져나가며 무사 셋이 사방으로 튕겨졌다.

 

그 여파에 독고무령의 움직임이 늦춰지고, 기회를 잡았다는 듯 대여섯 명이 또다시 달려들었다.

 

도검이 당장 등을 향해 날아오는데도 독고무령은 그들을 무시한 채 오직 앞을 향해서만 날아갔다.

 

파박! 쉬쉬쉭!

 

순식간에 서너 차례의 검격이 그의 몸을 두들겼다.

 

여기저기 옷이 찢겨지며 서너 자루의 검과 도가 그의 몸을 쓸고 지나갔다.

 

독고무령은 도와 검이 자신의 몸을 두드리는 충격을 이용해서 더욱 빨리 몸을 날렸다.

 

제왕성 무사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도검에 난자된 것으로 보인 듯했다.

 

“놈이 검에 맞았다!”

 

“이놈!”

 

개중에는 여유를 부리는 자마저 있었다.

 

“될 수 있으면 산 채로 잡아라!”

 

“일단 다리부터 부러뜨려!”

 

그 사이 나무를 차고 날아오른 독고무령은 새삼 마불의 구타가 고맙게 느껴졌다.

 

멈추면 안 되기에 마불의 금강불사공을 믿고 모험을 했다. 죽을 고생을 하며 익혔으니 그만한 대가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다행히 도검에 두들겨 맞았는데도 이상이 없었다. 그저 약간의 둔탁한 느낌만 있을 뿐.

 

독고무령은 숲이 끝나는 곳이 보이자, 정말 부상을 당한 것처럼 흔들리며 땅에 내려섰다.

 

제왕성의 무사들은 독고무령이 부상을 입은 줄 알고 좌우로 거리를 벌리며 포위하려 했다. 그 바람에 속도가 늦춰졌다.

 

땅에 내려선 독고무령은 검을 사선으로 늘어뜨리고 한 걸음에 이삼 장씩 내딛으며 더욱 빨리 달렸다. 

 

그 모습이 마치 한 자가량 허공에 떠서 날아가는 듯했다.

 

순식간에 추적자들과의 거리가 십오륙 장으로 벌어졌다.

 

이제 내성 담장이 있는 곳까지는 삼십여 장. 두어 번의 도약이면 넘어갈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는 만큼 위험도 컸다.

 

독고무령이 탁 트인 곳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십여 명이 앞을 막았다. 그들 중에는 절정고수로 보이는 자도 둘이나 있었다.

 

독고무령은 힘껏 땅을 박차고 그들을 향해 쇄도했다.

 

“후후후, 어리석은 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네놈의 목은 내가 따주마!”

 

두 명의 절정고수가 앞으로 나섰다. 창을 든 자와 검을 든 자였다.

 

그들의 눈에는 독고무령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딜 감히!”

 

두 사람은 단번에 승부를 보겠다는 듯 거침없이 독고무령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독고무령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뻗었다.

 

푸르스름한 검기가 쭉 늘어나더니, 검이 석 자 가량 죽 늘어났다.

 

뒤늦게 두 사람의 얼굴이 해쓱하니 일그러졌다.

 

옷이 갈기갈기 찢어져 상당한 부상을 입은 줄 알았거늘, 검강이라니!

 

“허엇……!”

 

“조심해!”

 

하지만 독고무령의 검은 이미 그들의 목과 심장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벼락이었다.

 

퍽! 쾅!

 

창을 든 자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는 스쳐지나간 검에 목이 반쯤 갈라져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검을 든 자는 겨우 독고무령의 검을 막았지만, 부러진 검을 쥔 채 형편없이 나뒹굴어야만 했다.

 

독고무령은 그들 사이를 지나 뒤에 서 있는 무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사들은 두 명의 고수가 일검에 나가떨어지자 다급히 독고무령의 앞을 막아섰다.

 

독고무령은 싸늘한 눈빛을 번뜩이며 검을 휘둘렀다.

 

따당! 쩌저정!

 

검이 부러지고 도가 동강났다.

 

“으악!”

 

“크으윽!”

 

연이어 터져 나오는 비명과 신음!

 

단 두 번의 검세에 다섯이 쓰러졌다.

 

나머지 다섯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뒤로 물러섰다.

 

독고무령은 쓰러진 자들의 몸뚱이를 넘어 쏜살같이 내달렸다.

 

“저기 있다!”

 

“놈을 쫓아라!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옷을 보니 부상이 심한 것 같다! 잡아!”

 

노성과 추격을 명하는 악다구니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제왕성의 정예무사들이 놀란 메뚜기 떼처럼 날아올라 독고무령의 뒤를 쫓았다.

 

독고무령은 그들이 빤히 바라보는 가운데 담장을 넘었다.

 

담장 너머의 우측에는 전각이 들어서 있고, 좌측으로는 숲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가 날아 내리자 우측 전각 쪽에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성의 소란에 웅성거리고 있던 경비무사들이었다.

 

“내성의 침입자다!”

 

“침입자가 외성으로 넘어왔다! 잡아라!”

 

삐익, 삐이이이익!

 

호각소리가 어스름을 뚫고 메아리쳤다.

 

독고무령은 즉시 방향을 틀어 좌측에 있는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나뭇가지 사이를 누비는 새처럼 숲속을 유유히 통과했다.

 

그렇게 삼십오륙 장을 가자 숲이 끝났다.

 

숲의 끝자락에 도달한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향을 틀었다.

 

뒤쫓아 오는 자들이 숲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자신이 보이지 않으면 그들은 아래쪽으로 도망갔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그래야 제왕성을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방향을 튼 독고무령은 몸을 낮춘 채 철저히 그늘에 몸을 숨기고 산 위쪽으로 올라갔다.

 

 

 

* * *

 

 

 

은밀하게 오십여 장을 올라가자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았다. 제법 높은 담장과 이어져 있는 바위는 높이가 이 장 정도 되어 보였다.

 

독고무령은 별 다른 생각 없이 바위를 타넘었다.

 

바위를 넘은 그가 막 땅에 발을 디뎠을 때였다.

 

“왜 이리 소란인가 했더니, 너 때문이었더냐?”

 

묵직한 목소리가 귀청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엄중한 기운이 우측에서 밀려들었다.

 

지금까지 강호에 나온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강력한 기운!

 

독고무령은 몸을 틀며 검을 내쳤다.

 

쿠궁!

 

둔중한 굉음이 울리며 독고무령의 몸이 옆으로 밀려났다.

 

기운의 주인도 일 장 밖으로 훌쩍 물러나서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 정말 놀라운 놈이로구나. 나이도 어린 것이 나의 일 장을 그리도 쉽게 해소시키다니.”

 

세 걸음 만에 중심을 잡은 독고무령은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허연 수염이 목을 덮은 홍안의 노인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키. 몸은 조금 통통하게 보였지만, 뚱뚱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정도였다. 

 

무기는 들고 있지 않았는데, 조금 전의 장력으로 봐서 굳이 무기가 필요 없을 듯했다.

 

어스름이 걷히며 서서히 사위가 밝아오는 시각.

 

독고무령은 홍안의 노인을 보며 검을 중단으로 들어올렸다.

 

진가철방의 진원명만큼 강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굳이 비교한다면, 대풍장에서 본 두이정이나 관초악보다 조금 나은 정도랄까?

 

문제는 자신의 몸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눈앞에 있는 노인은 그 정도의 차이도 염려해야 할 정도의 고수였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

 

이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 언제 또 다른 자가 올지 몰랐다.

 

“너는 누구냐?”

 

홍안의 노인이 물었다.

 

독고무령은 대답 대신 검을 상단으로 느릿하니 들어 올렸다.

 

홍안의 노인은 묘한 놈 봤다는 듯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그놈 참, 늙은이가 물으면 대답이나 할 것이지.”

 

“저는 그렇게 여유가 없습니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냐?”

 

당장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몰랐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걱정 마라. 이곳은 아무도 함부로 못 들어오니까.”

 

독고무령의 눈빛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 말을 들으니 문득 한곳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노인을 공격하려던 그는 잠시 기운의 움직임을 늦추고 노인에게 물었다.

 

“설마…… 이곳이 제왕오로의 거처인 금원(禁院)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홍안의 노인이 피식 웃었다.

 

“그것도 모르고 들어왔단 말이냐?”

 

독고무령의 표정이 살짝 이지러졌다.

 

제왕오로(帝王五老).

 

제왕성의 전대 호법장로를 말함이다. 본래는 아홉이어서 제왕구로로 불렸다.

 

그러나 이제는 다섯밖에 남지 않아서 제왕오로로 불린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한때 제왕성 최강의 고수였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최강’이라는 딱지가 떨어지고, 금원이라는 금지에 묶인 신세로 전락했지만.

 

‘어렵게 되었군. 늑대를 피한다는 것이 하필 호랑이 굴로 들어왔어.’

 

소란이 인 이상 곧 다른 노인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을 모두 물리치고 이곳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지금까지 온 길을 되돌아가는 일보다 훨씬 힘들 길이 될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검을 내릴 생각은 없었다.

 

운양이 말했다.

 

 

 

“제왕오로가 침묵했기에 위지천백이 보다 손쉽게 제왕성의 성주가 되었지. 뭔가 사연이 있었던 것 같아.”

 

 

 

사연이야 어쨌든 위지천백을 돕고 자신들이 모시던 주인을 배신한 것만큼은 분명했다.

 

‘결국 이들 때문에 어머니께서 그리 되셨다는 말 아닌가.’

 

비옥에서 숨을 거둔 두 여인 중 어느 분이 어머니이신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 분은 제왕성 전대 주인의 며느리셨고, 또 다른 분은 딸이셨다. 자의든 타의든 제왕오로도 그분들의 죽음에 관여되어 있다고 봐야 했다.

 

은은한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일었다.

 

처음에는 미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성난 노도처럼 걷잡을 수 없이 거센 분노가 느껴졌다.

 

만일 제왕성을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당장 노성을 터트리며 달려들었을 것이다.

 

‘이들을 징벌하는 것은 급하지 않다.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먼저다.’

 

분노를 억누른 독고무령은, 검을 쥔 손에 내력을 응집하며 홍안의 노인을 직시했다.

 

순간, 좌측과 뒤에서 두 줄기 기운이 밀려왔다.

 

예상대로 제왕오로 중 또 다른 자가 나타난 듯했다.

 

그런데 끼어들 생각은 없는지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강자의 자존심인가, 아니면 서로간의 약속인가?

 

아무튼 다행이었다. 둘이 합공만 하지 않는다면 한 사람 정도는 물리칠 수 있을 것이었다.

 

상단으로 들어 올린 독고무령의 검에서 푸르스름한 강기가 쭉 뻗었다.

 

그걸 본 홍안의 노인, 단홍수(端紅手) 손양의 눈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좋군, 정말 좋아.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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