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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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42화
42화
제6장 대단한 무공보다는 손에 익숙한 무공이 목숨을 구해주는 법
독고무령은 자신의 말을 철석같이 지켰다.
그는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씩 조원들을 수련시켰다. 구양소현도 다른 조원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취급했다.
오직 잠만 여대원들을 위한 방에서 자게 하고 나머지 시간은 구조의 거처에 머물게 했다.
구양소현은 오기가 생겼는지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했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심정인 듯했다.
다른 조의 조원들은 그런 구양소현을 담 너머로 보며 쑥덕거렸다.
왜 철검보 장로의 딸이 일개 조원이 되어서 저렇게 고생하는 거지? 철검보의 문제아, 철검비화 구양소현이 왜 젊은 신임조장에게 꼼짝을 못하는 거지? 무슨 약점이 잡힌 거 아닐까?
하지만 그들은 구양소현의 냉기 풀풀 날리는 눈빛을 접하면 슬그머니 꼬리를 말았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장로의 딸이다. 더구나 그녀에게 찍히느니, 아예 철검보를 떠나는 게 낫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제멋대로인 성격의 여자가 바로 철검비화(鐵劍毖花) 구양소현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런 철검비화가 독기마저 오른 상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사람들은 그런 마음으로 그녀를 피했다.
그렇게 열흘이 넘어가자 구양소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구조 조원들도 함께 땀을 흘리는 구양소현을 조원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와중에 몇 사람은 구양소현 같은 미녀가 자신의 조에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선두에는 구양소현을 누님이라 부르며 따라다니는 진사혁이 있었다.
상황이 그리 되자, 독고무령도 더 이상 그녀를 쫓아낼 생각을 포기했다.
‘지 목숨, 지가 알아서 하겠지.’
* * *
어느덧 철검보에 들어온 지 보름이 지났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지,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에 솜털이 올올이 곤두섰다.
독고무령은 조원들의 동작을 손봐준 후에야 백수만타로 몸을 풀었다.
어차피 다른 무공은 모두가 있는 수련장에서 펼칠 수 없는 상황.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백수만타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내공을 쓰지 않아야 했다. 내공을 쓰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렇게 내공을 제어한 채, 백수만타를 두 번에 걸쳐 연달아 펼치자 몸에서 땀이 흘러나왔다.
기분 좋은 느낌.
독고무령은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숨을 골랐다.
그때 누군가가 수련장 안으로 들어왔다.
“호오, 열심히 하는군.”
독고무령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허락도 없이 들어온 자는 이제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자였다. 그는 뒷짐을 진 채 거만한 표정으로 구조의 수련장을 오락가락하며 한마디씩 툭툭 던졌다.
“저런, 아직 제대로 검을 펼치려면 수련을 더 해야겠어. 그런 검으로 적의 심장에 구멍을 낼 수 있겠나?”
비록 합동수련이라지만 각자의 무공을 갈고 닦는 시간이다. 방해하지 않는 것이 나름의 불문율이다.
그러한 시간에 나타나서 거들먹거리며 호흡을 끊다니.
보다 못한 독고무령이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무슨 일은? 그냥 구경 왔지.”
“우리는 남의 구경거리가 되기 위해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오. 그러니 그만 가주시오.”
“나는 구양서중이라 하네. 가르쳐주면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쫓아내려 하다니. 기본이 잘못되었군.”
구양서중. 철검보주 구양은의 둘째 아들이다.
거만한 태도로 철검오대의 대원들을 깔보며 훈수하기를 즐긴다는 자.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수련을 할 것이오. 그러니 귀하는 상관하지 말고 그만 나가시오.”
그때였다. 쳐다만 보고 있던 구양소현이 빽 소리쳤다.
“오빠! 왜 여기까지 와서 시끄럽게 구는 거야!”
“그야 천하의 말괄량이가 일개 조원들과 함께 땀 흘리고 있다고 해서 와봤지.”
“흥! 보니까 좋아? 헛소리 말고 빨리 가!”
“내가 왜? 여기도 엄연히 내 집인데.”
“정말 가지 않을 거야? 남의 수련을 엿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도 몰라?”
“훗, 내가 저 사람들의 알량한 무공을 훔쳐보기라도 할 것 같아 그러느냐?”
“뭐야? 알량한 무공?”
순간적으로 구양소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사혁이에게 혼내주라고 할까?’
그녀가 봤을 때 구양서중은 결코 진사혁의 상대가 아니었다. 아마 십 초면 구양서중을 무릎 꿇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망설일 때다.
독고무령이 구양서중을 가만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방금, 알량한 무공이라 했소?”
“그럼, 자네들의 무공이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줄 아나? 하긴 자네들이 보기에는 그럴지도 모르지. 내 눈에는 가소로울 뿐이지만 말이야.”
“때로는 대단한 무공보다 당신이 알량하다고 생각하는 그 무공이 목숨을 구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도 있는 법이오.”
“좀 더 나은 무공을 배우면 더 확실하게 목숨을 구할 수 있지.”
“그럼, 당신이 지닌 무공을 내놓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본가의 비전무공을 어찌 아무에게나 가르쳐줄 수 있겠나?”
“그럼 더 말할 필요가 없군. 그만 가시오.”
구양서중이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무릎 꿇고 부탁한다면 한두 수 정도는 가르쳐줄 수도 있지. 어떤가? 한번 자존심 접으면 괜찮은 무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독고무령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여기에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것을 배우겠다고 무릎 꿇을 사람이 없소. 차라리 그 시간에 아는 것을 더 숙달시키는 게 낫지.”
구양서중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흥! 저들의 알량한 무공이 내 무공보다 낫다는 거냐?”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당신이 자랑하는 무공을 어설프게 익히는 것보다는 지금 익히고 있는 무공을 숙달하는 것이 목숨을 구하는 데 더 낫다는 말이야. 그러니 방해하지 말고 그만 가봐.”
“뭐야? 네놈이 감히……!”
“정말 귀가 막혔나 보군. 그럼 상대할 필요도 없지.”
“너, 이 자식!”
독고무령은 더 이상 구양서중을 상대하지 않고 돌아섰다.
순간이었다. 구양소현이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오빠!”
구양서중이 돌아서는 독고무령을 향해 달려들며 일장을 내리치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도 뜻밖의 상황에 눈을 크게 떴다.
“조장! 조심……!”
찰나였다!
돌아섰다고 여겼던 독고무령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등을 보였다. 동시에 돌아선 독고무령의 우수가 구양서중의 팔목을 쳐내고, 좌장이 구양서중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퍼억!
구양서중의 입이 쩍 벌어지고, 눈을 홉뜬 그의 몸뚱이가 뒤쪽으로 날아갔다.
그야말로 두 눈을 뜨고도 확실한 것을 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벌어진 일이었다.
털썩!
일 장 밖으로 튕겨진 구양서중이 꼴사납게 나뒹군다. 그제야 사람들은 독고무령이 펼친 한 수를 기억해냈다.
“철비팔상장(鐵臂八像掌) 중 철수회(鐵手回)와 철파정(鐵破釘)…….”
그랬다. 독고무령이 펼친 장법은 철검보의 기본적인 장법인 철비팔상장 중 두 개의 초식이었다.
구조의 조원들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단순한 초식이 저렇게도 멋지게 펼쳐질 수 있다니!
물론 처음의 경악할 신법 덕분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구양서중을 일격에 무너뜨린 게 철비팔상장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구조의 조원들은 꼴사납게 나뒹군 구양서중을 속이 다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보주의 아들만 아니면 욕을 퍼부었을 텐데, 차마 그러지 못해 서운하다는 눈빛이었다.
그 사이 구양서중이 신음을 흘리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가는 핏줄기, 헝클어진 머리.
조금 전의 귀공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몸을 세운 구양서중은 이를 갈며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정식으로 겨뤄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숨을 쉬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네, 네놈이…… 어디서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 개자식. 내 아버님께…….”
독고무령의 싸늘한 눈빛이 구양서중의 두 눈에 꽂혔다.
“보주께 말씀드릴 건가? 그렇다면 사실대로 말해야 될 거야. 본 사람들이 많으니까.”
뒤에 서 있던 구조의 조원들이 조소 섞인 말투로 한마디씩 했다.
“무사라는 자가 돌아선 사람을 뒤에서 공격하다니.”
“적이라 해도 싸울 의사가 없는 사람의 등은 공격하지 않는 법인데…….”
“부끄럽지도 않은가 보군.”
구양서중은 이를 빠드득 갈며 구양소현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같은 핏줄이니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한 듯했다.
물론 구양소현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조장. 오늘 일, 대주께 사실 그대로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오히려 구양손에게 말해서 구양서중을 더 곤란하게 만들 작정을 하는 말투다.
그러나 독고무령은 더 이상 일이 크게 번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됐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수련이나 해. 아직 반 시진이나 남았잖아.”
독고무령의 말에 조원들은 유난히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 돌아섰다.
“예, 조장!”
그제야 독고무령이 구양서중의 눈을 직시했다.
“오늘 일은 잊는 게 좋을 거야. 당신을 위해서라도.”
눈이 마주친 순간, 구양서중은 갑자기 등줄기를 따라 돋는 소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자식, 대체 뭐 하던 놈인데…….’
독고무령은 구양서중을 그대로 놔둔 채 몸을 돌렸다.
수련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되자 진사혁이 독고무령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아까, 고의로 돌아섰지?”
독고무령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언뜻 보면 곰처럼 보이는 친구가 눈치 하나는 비상했다.
사실이 그랬다. 어쨌든 구양서중은 보주의 아들이 아닌가.
대놓고 팰 수는 없는 일. 하기에 실컷 화를 돋우어놓고 몸을 돌렸다.
달려들면 핑계거리가 생기는 것이고, 그냥 돌아간다면 더 따질 것도 없는 일이니까.
독고무령이 웃기만 하자 진사혁이 계속 물었다.
“평범한 초식을 쓴 것도 조원들에게 깨달으라고 그런 것이지?”
“새로운 것보다는 몸에 익은 초식이 위급할 때 목숨을 구해주는 법이지.”
“그건 그런데…… 뭔가 새로운 것을 한두 가지 익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 질문이 떨어진 순간, 한쪽에서 쉬고 있던 조원들이 슬쩍 눈을 돌렸다.
그들 중 누구도 독고무령의 진정한 실력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조한상을 가볍게 물리친 진사혁보다 강할지 모른다는 것. 그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평범한 초식으로 일류고수를 물리친 걸 보고 이제 확실한 것을 알았다.
독고무령. 우리 조장은 절정고수다.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을 뿐.
그러니 진사혁의 말이 나오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절정고수에게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어디 그리 흔하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조원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좀 내놓으쇼, 조장!’, 그런 뜻이 담긴 눈빛들.
독고무령은 진사혁을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공연한 말을 해서…….’
조원들에게 줄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익혔든 익히지 않았든, 그가 알고 있는 무공들은 상당히 많았다. 삼괴의 무공이 아니더라도.
문제는 그 대부분이 비옥에서 죽어간 죄수들의 무공이라는 점이다.
자칫 세상에 그 무공이 알려지면 풍파가 일지 모른다. 죄수들의 후예나 사문이 추적해오면 골치가 아파질 것이 분명하니까.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를 좀 쥐어짜야 하지만.
‘죄수들의 무공을 변형시키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어차피 자신과 함께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벼야 할 사람들이다. 조금이라도 강해진다면 그만큼 편해질 것이 아닌가.
독고무령은 마음을 정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내가 아는 것 중 알맞은 것을 골라보지.”
그 말에 구조 조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마치 길을 걷다가 황금을 주운 사람들처럼.
* * *
독고무령은 열두 개의 초식을 골랐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적을 상대할 수 있는 초식들로. 또한 내공심법의 특성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 것들만.
그는 열두 개의 초식을 고른 후 그것을 모두 넷으로 압축했다. 그 와중에 초식이 지닌 특성을 최대한 지웠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자, 마침내 사초 이십사식으로 된 무공 하나가 틀이 잡혔다.
구명절혼수(求命絶魂手).
독고무령은 그 사초의 무공에 구명절혼수라는 이름을 붙이고 혼자서 심상비무를 하며 약점을 보완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조원들을 불러 모았다.
진사혁과 구양소현을 필두로 구조의 조원들은 기대감을 잔뜩 가지고 방으로 모였다.
독고무령은 조원들이 자신의 침상 앞에 대충 앉자 입을 열었다.
“구명절혼수는 말 그대로 방어와 공격을 병행하는 초식이오. 모두 사초 이십사식으로 방어초식 둘, 공격초식 둘로 나누어져 있소.”
초식이 단지 네 가지뿐인데다, 그나마도 공격과 방어로 두 초식씩 나뉜다는 것에 구양소현이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사초면 너무 적은 것 아냐, 조장?”
진사혁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만큼 강한 초식일 수 있잖습니까. 좀 더 말을 들어보죠.”
“아무리 그래도 공격이 딱 두 초식뿐이면 상대가 금방 익숙해질 수 있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두세 번 같은 초식을 펼치면 상대가 그에 따른 대응을 해 올 터. 자칫하면 역습을 당할 수도 있다.
조원들의 얼굴에 떠올랐던 기대감이 옅어졌다. 같은 생각인 듯했다.
그때 독고무령이 말했다.
“그럴 시간을 주지 않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