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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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40화
40화
거처가 있는 기다란 건물은 그 구조(構造)가 특이했다.
각 조가 방을 하나씩 쓰는데, 한 조는 건물의 앞쪽에, 한 조는 건물의 뒤쪽에 방문이 나 있었다. 방문 앞에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백 평 정도의 독립적인 마당이 있었고.
제법 넓은 마당. 각 조의 마당을 가로막은 담장.
아마도 각 조가 마당에서 수련을 따로 할 수 있도록 배려한 듯 보였다.
‘아무래도 보는 사람들의 눈이 적을수록 수련하는데 부담이 덜 가겠지. 머리를 잘 썼군.’
독고무령은 건물의 특이한 구조가 이해되었다.
철검보의 무사들은 상당수가 여기저기서 모인 사람들. 어차피 합동수련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감추고 싶은 것이 있을 테니까.
이 정도라면 큰 신경 쓰지 않고 수련을 할 수 있을 듯했다.
잠시 생각하는 사이, 석도명이 먼저 구조의 거처로 통하는 월동문을 들어섰다. 독고무령과 진사혁도 석도명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철검오대의 무사들은 항상 싸움터로 달려갈 준비를 해놓고 하루를 보낸다. 당연히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독고무령이 석도명과 함께 월동문을 통과하자 무사들이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았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석도명에게 물었다.
“누굽니까?”
“앞으로 함께 생활할 사람들이다.”
상당히 키가 큰 독고무령이다. 거기에 진사혁은 반 뼘이 더 크고 어깨마저 넓어서 철탑처럼 보인다.
강한 자가 온다면 환영할 일이었다. 그만큼 전쟁 중에 살아날 확률이 높아질 것이 아닌가.
날씨가 싸늘한데도 웃통을 벗고 검을 수련하던 자가 두 사람을 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 이번에는 제법 쓸 만한 자들이 왔는데?”
석도명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자였다. 그는 웃음 띤 표정으로 독고무령과 진사혁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곧 석도명의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여기 이 사람이 앞으로 구조의 조장을 맡을 사람이다.”
단순한 조원이라면 상관이 없다. 그러나 조장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자신의 위에 올라설 사람이니까.
“조장이라고?”
독고무령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독고무령이오.”
웃통을 벗고 있던 장한, 조한상은 싸늘한 눈빛으로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그는 조장이 없는 구조의 부조장으로, 지금까지는 그가 실질적으로 구조를 이끌었다. 혹시라도 조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그런데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 독고무령이 조장으로 오자 배알이 뒤틀렸다.
“나는 조한상이라 하네. 자네가 새로운 조장이라 그 말이지?”
“그렇소.”
“흠, 그럼 조장이 될 만한 실력이 있겠군.”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래?”
조한성은 들고 있던 검을 가만히 움켜쥐고 독고무령을 향해 다가갔다.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자 근처에 드문드문 서 있던 구조의 무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어디 얼마나 강한지 볼까?”
그때 진사혁이 피식 웃으며 나섰다.
“이보쇼, 그 친구는 그냥 놔두고 나랑 한번 해봅시다.”
“네가 대신하겠다고?”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 이 친구에게 배워야 할 게 많은 사람이오. 그런데 어쭙잖게 이 사람 저 사람 이 친구에게 달려들면 내 꼴이 좀 우습게 되지 않겠소?”
조한상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
“어쭙잖다? 훗,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어린놈이 덩치 좀 있다고 말을 함부로 하는군.”
“내가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손을 나눠보면 알 거 아니겠소?”
“흥! 원한다면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곰 같은 애송이.”
진사혁은 씩 웃으며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괜찮지?”
직접 손을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진사혁의 무위는 이미 절정에 도달한 상태다. 조한상이라는 자는 결코 진사혁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독고무령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사혁은 옆구리에서 뭉툭한 곤을 빼내며 커다란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순간 진사혁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
마치 진사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조한상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네 이름은?”
“진사혁.”
진사혁은 짧게 대답하고 곤을 앞으로 천천히 뻗었다.
“내 곤은 좀 사납지. 전력을 다해야 할 거요.”
“이 건방진 놈이……!”
조한상의 얼굴이 분노로 와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진사혁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곤을 느릿하니 쳐들었다.
순간 조한상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쾅!
“크읍!”
삼 초 만에 뒤로 주르륵 밀린 조한상은 이를 악물고 진사혁을 노려보았다.
진사혁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곤으로 조한상을 가리켰다.
“놀랍군. 철검오대의 무사들이 제법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강한데?”
정말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조한상의 마음은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버렸다.
그는 생사가 달린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던 구명검초를 펼칠 작정을 했다.
“오냐, 이놈!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순간이었다. 이 장의 간격이 찰나 간에 줄어들며 세 줄기 검광이 번쩍였다.
곧 쓰러질 것 같던 조한상의 공격에 진사혁이 흠칫했다.
단순한 검초가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펼친 검초다. 어떻게든 상대를 죽이겠다는 살기 넘치는 검초.
설마하니 동귀어진에 가까운 수법을 펼칠 줄이야.
진사혁은 다급히 곤을 좌우로 흔들었다.
무수한 곤의 환영이 나타나며 전면을 봉쇄했다.
조한상이 자존심을 걸고 펼친 검초는 예상보다 더 날카롭고 신랄했다.
진사혁은 육성의 공력을 칠성까지 끌어올렸다.
따다다당!
검과 곤이 맞부딪치며 벼락 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조한상이 막기에는 진사혁의 곤이 너무 강했다.
“흐읍!”
거친 숨을 들이켠 조한상은 얼굴을 구긴 채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진사혁의 곤이 벼락처럼 앞으로 뻗었다. 시커먼 곤영이 떨어지는 별을 일격에 부술 것처럼 뻗어나간다.
은근히 화가 난 진사혁이 관천뇌곤 중 낙성일격(落星一擊)을 펼친 것이다.
눈앞을 가득 메운 커다란 곤영.
조한상의 얼굴이 참담히 일그러졌다. 검을 들어 막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제기랄!’
그때였다.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독고무령이 슬쩍 손을 털었다.
찰나, 벼락처럼 뻗어나가던 곤영이 옆으로 홱 틀어지며 정원석을 박살냈다.
쾅!
조한상은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을 더 물러섰다. 그는 아연한 눈으로 진사혁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진사혁은 조한상에게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자신의 곤영은 자의에 의해 틀어진 것이 아니다. 외부의 힘, 독고무령의 경력에 밀려 틀어졌다.
관천뇌곤의 정수가 단지 손짓 한 번에 파훼되다니! 그것도 내력을 팔성까지 끌어올렸거늘!
진사혁은 기운이 쭉 빠졌다.
‘쳇,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군.’
하긴 오죽하면 조부님이 따라다니며 배우라고 했을까.
‘지미, 깨질 때 깨지더라도 언제 한번 화끈하게 붙어볼까?’
그때 독고무령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 정도면 되었네. 함께 일할 사람인데 생사투를 벌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진사혁은 곤을 거두어들이며 입맛을 다셨다.
“쩝, 대충 하려고 했는데, 마지막 한 수에 화가 나서…….”
독고무령은 무심한 눈으로 조한상을 바라보았다.
“이만하면 된 거 같소만.”
조한상은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진사혁의 곤이 틀어지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제길! 꼴이 말이 아니군.’
조한상은 입술가의 핏물을 닦으며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만…… 하지.”
독고무령은 그런 조한상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몸을 돌렸다.
“다음부터는 말투도 바꾸도록 하시오. 바꾸기 싫으면 이곳을 떠나든지.”
조한상은 입술을 잘근 깨물고 잇새로 대답했다.
“알겠…… 소.”
* * *
커다란 방에는 열 개의 침상 중 네 개의 침상이 주인을 잃은 상태였다. 열흘 전에 벌어진 제왕성과의 싸움에서 조장을 비롯한 네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독고무령은 방 안을 대충 둘러보고 구석의 빈 침상을 차지했다. 진사혁도 독고무령 바로 옆의 침상을 곤으로 쿡쿡 찔러보고는 털썩 엉덩이를 걸쳤다.
그 사이 방 안에 들어온 구조의 무사들은 독고무령과 진사혁의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조한상이 무너지는 것을 본 만큼 그들의 눈은 은근한 기대감으로 달아오른 상태였다.
곧 전쟁이 벌어질 터, 강한 자가 조장으로 온 것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독고무령은 침상 위쪽에 봇짐을 올려놓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는 조장으로 임명된 독고무령이오.”
이미 이름을 밝힌 조한상과 진사혁을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먼저 길거리 건달패들도 울고 갈 정도로 험악한 인상을 지닌 청년이 두꺼비등짝 같은 두 손을 맞잡고 포권을 취했다.
“모덕명입니다, 조장.”
두 번째로 몸이 호리호리한 자가 가느다란 눈으로 독고무령을 바라보며 이름을 말했다.
“오기천입니다.”
“소강이라고 합니다.”
너무 평범해서 누구든 한 번은 봤을 법한 삼십 대 장한에 이어, 떡 벌어진 어깨에 부리부리한 호안의 장한이 인사를 했다.
“용호종이오.”
마지막으로 곱상하게 생긴 이십 중반의 청년이 포권을 취했다.
“사도단영입니다.”
독고무령은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비어 있는 침상을 바라다보았다.
이제 자신과 진사혁이 더해짐으로써 이제 빈 침상은 두 개만이 남았다. 구양손의 말대로라면 그곳도 곧 주인을 맞이할 것이었다.
“들어가도 되겠소?”
그때 밖에서 석도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십시오.”
독고무령의 허락에 문이 열렸다.
밖에는 그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유원위와 연사성과 조원화가 석도명 뒤에 서 있었다.
“와하하, 이거 이제부터는 조장님이라고 불러야겠구만.”
유원위가 활짝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성격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이제 한솥밥을 먹게 되었군.”
연사성과 조원화가 빙그레 웃으며 뒤따라 들어왔다.
독고무령은 조용한 웃음으로 그들을 반겼다.
‘그러고 보니 구조만 있는 것은 아니군.’
바로 그때 유원위가 조한상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조 형, 왜 그리 울상이오?”
조한상의 어깨가 땅바닥까지 처졌다.
‘젠장!’
* * *
다음 날 아침.
한 사람이 철풍검대를 방문했다.
독고무령은 철풍검대의 대원들이 식사한다는 식당을 가기 위해 방을 나서다 방문자와 마주쳤다.
“호오, 이게 누구야? 정말로 왔잖아?”
허리에 떡 손을 올리고 째려보는 여인. 구양소현이다. 이제 스물서넛, 전과 달리 완연한 여인의 향기가 풍긴다.
‘구양 대협이 말했나 보군.’
독고무령은 그녀를 보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웬일이지?”
구양소현이 입꼬리를 비틀며 비꼬듯이 대꾸했다.
“육포 하나에 한 냥이나 받아먹은 사기꾼이 왔다고 해서 와봤지. 얼마나 달라졌나 하고. 근데 숙부님도 너무했군. 사기꾼을 철풍검대의 조장으로 임명하다니.”
겉모습만 달라졌을 뿐 말투는 여전하다. 독고무령은 별 우습지도 않은 꼴 다 본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제발 하나만 팔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 잊었나?”
“흥! 그렇다고 한 냥이나 받아먹냐?”
“내가 세상을 제대로 알았다면 두 냥을 받았을 거다.”
“도둑놈.”
“더 볼일이 없다면 나는 그만 식사를 하러 가야겠다.”
구양소현은 독고무령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화가 난 표정이었다.
‘재수 없는 자식, 철검보 제일의 미녀를 땅바닥의 돌처럼 바라보다니.’
그랬다. 그녀가 화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철검보는 물론 평정제일의 미인으로 소문난 자신이다. 그런데 독고무령은 그런 자신의 미모를 보고도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고 무덤덤했다.
구양소현이 공연히 성질을 내며 냉랭히 말했다.
“많이 먹어라. 누구처럼 바가지 씌우지는 않을 테니까.”
독고무령은 그녀 옆을 지나가며 담담히 대꾸했다.
“웃기는군. 철풍검대의 대원 중 식사를 하면서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있던가?”
구양소현은 입술의 부푸러기를 잘근잘근 씹으며 독고무령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자식. 좀 곱게 말하면 입술이 부르트나?’
한편, 독고무령과 함께 방을 나선 진사혁은 구양소현을 본 순간부터 눈을 제대로 감지 못했다.
‘우와! 진짜 예쁘군!’
구양소현은 그가 본 어떤 여인보다 예뻤다. 표정이나 말투가 좀 앙칼져서 그렇지.
그러나 진사혁의 눈에는 그녀의 앙칼짐마저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무령과 무슨 사이지? 별 사이 아니면 소개시켜 달라고 할까?’
그때 구양소현이 진사혁의 눈길을 느끼고 눈을 치켜떴다.
‘응? 저 곰은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