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8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89화
멈칫한 장철산이 급하게 뛰려는 심장을 억누르며 뒤돌아섰다.
“왜 그러는가?”
“성함이 장철산이라 들었습니다.”
“맞네.”
“혹시…… 예전에 구천성에 계셨던 분 아닙니까?”
“나는…… 구천성에서 지낸 적이 없네.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군.”
“후우, 하긴 동명이인이 한두 사람도 아니고…… 죽었다는 분이 살아 계실리가 없죠.”
한숨을 내쉰 장천운이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장철산이 머뭇거리더니 넌지시 물었다.
“왜 그 사람을 찾는가?”
“옛날에 전 성주님과 총사께서 친구처럼 지낸 분의 이름이 장철산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다만 죽음을 확인한 것은 아니고, 행방불명된 후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분과 이름이 같아서 물어본 것입니다.”
“세상에 장씨가 많으니 동명이인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게 전부인가?”
“그렇습니다. 그것도 얼마 전에야 알았지요.”
“그랬군.”
장철산은 씁쓸한 마음을 숨기려고 한마디 내뱉자마자 몸을 돌렸다.
그때 장천운이 그의 등 뒤에 대고 다시 물었다.
“하나 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장철산이 다시 돌아섰다
“말해보게.”
“전대 성주님의 시신은 어떻게 된 겁니까? 전에 무 할아버지가 다 말씀하셨습니다. 전대 성주님의 시신을 할아버지와 귀하들이 가져갔다고 말입니다.”
조금 전 질문을 할 때와는 말투가 달랐다.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장천운의 말투에 장철산은 낫으로 심장이 긁히는 기분이었다.
“가져갔다기보다는…… 어쨌든 그런 일이 있긴 했지.”
“왜 가져가셨습니까?”
“나중에 알게 될 거네.”
“무 할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왜 사실대로 말씀을 하지 못하는 겁니까?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장천운이 다그치듯 묻자, 장철산도 속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몰아붙이는 자식을 대한 아비의 마음이 자신과 같지 않을까 싶었다. 어찌되었든 그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그래선지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튀어나왔다.
“그분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어쨌든 시신을 가져간 것은 잘못하신 거 아닙니까?”
“누가 시신을 가져갔다는 건가?”
“시신을 가져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언제 가져갔다고 했나?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지.”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가져간 것이 아니라니까. 나중에 다 알게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글쎄, 나중에 알게 될 거, 왜 지금 말씀을 못하냔 말입니다. 도대체 시신을 어디에 두신 겁니까?”
“걱정 말게! 구워먹거나 삶아 먹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할 수도 없고!”
끝내 목소리가 높아진 장철산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말했다.
장천운의 목소리도 커졌다.
“정말 그러실 겁니까? 왜 말씀을 못하시는 겁니까?”
소천이 원치 않으니까.
안 그래도 힘든 결정을 내린 소천의 가슴에 커다란 멍울이 질 테니까.
어차피 죽음밖에 없는 최후. 장철산은 죽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친구에게 또 다른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절벽 끝에 매달린 구천성의 등을 떠미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만에 하나 청산자나 탁무겸이 사실을 알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구천성을 공격할 것이다.
그거야말로 최악이었다.
“자네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말할 수 없네.”
“부친의 시신을 찾고 싶은 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보셨습니까?”
그런 너는, 딸이 슬퍼하는 걸 보고 싶지 않은 아비의 마음을 생각해 봤냐?
장철산은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말을 못하니, 나중에 동방 어르신을 만나면 물어보게.”
“이 아저씨가 정말!”
“뭐라? 아저씨?”
“잠까아안!”
단목화종이 손을 번쩍 들어서 두 사람을 말렸다.
“두 사람, 지금 뭐하는 거냐? 말싸움하는 거냐?”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잘한다, 잘해. 하여간…… 쯔쯔쯔…….”
애비나 자식이나, 누가 핏줄 아니랄까봐…….
단목화종은 입이 근질거렸지만, 지금에 와서 사실을 다 말해줄 수도 없었다.
“너도 그만해라. 나중에 알게 될 거라고 했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면 알겠지. 무 할아버지란 사람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장천운은 불만이 많았지만, 생명의 은인이 나서서 말리는데 반발할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장철산은 고개만 숙여서 마음을 전하고 몸을 돌렸다.
말다툼을 했는데도 이상하게 속이 다 시원했다.
수십 년 동안 막혔던 오줌관이 뻥 뚫린 것처럼.
‘그 자식, 미설을 닮아서 고집이 겁나게 쎄군.’
* * *
구천성의 상황은 적상천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지난 세 번의 싸움에서 삼천 명이 죽고 사천 명이 넘는 무사들이 부상을 입었수. 장로를 비롯한 고수들도 많이 죽거나 부상을 입어서 사기가 많이 떨어진 것처럼 보입디다. 그나마 소성주가 동분서주하며 무사들을 독려해서 겨우 버티고 있는 실정이긴 한데, 아무래도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수. 아마 황군이 마을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진즉 무너졌을 거요.”
“무림맹은 맹주의 장례를 치른 후 조용한 것 같수. 겁을 먹었는지, 아니면 자리싸움하느라 정신이 없는지 몰라도.”
“안휘성 쪽은 분위기가 좀 이상하오. 듣기로는 청산궁이 한번 으르렁거리니까, 찍소리도 못하고 고개를 처박았다고 하던데…….”
적상천의 이야기를 들은 장천운은 가슴에 바위가 들어찬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쩌면 갑자기 전세가 이리 된 것도 자신 때문일지 몰랐다.
그날 혼자 움직이지만 않았어도 이리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다못해 흑월대나 흑영대 일부라도 데려갔으면…….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물이 엎질러진 후에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 시간에 대책을 강구하는 게 나았다.
‘저들은 아직 내가 살아 있는 것을 모른다. 그 점을 이용하면 반격할 방법이 있을 지도…….’
무겁게 가라앉았던 그의 눈빛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내기를 한다 했던가? 좋아, 그 내기, 나도 끼겠어!’
장철산과 약속한 사흘이 지났다.
공력도 이전만큼은 되찾은 듯했다. 아니, 아직 완쾌되지 않았는데도 이전만큼의 공력이 되는 듯했다.
단목화종이 자신의 공력을 포기하면서 치료했다더니, 아무래도 그로 인해 공력이 증진된 듯했다.
한 가지 더 기이한 것은…… 독의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목화종이 어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었다.
“너는 몸속에 왜 그렇게 이상한 걸 넣고 있었느냐? 겨우겨우 중화시키긴 했다만, 그것 때문에 하마터면 내가 죽을 뻔했다.”
아마도 그가 치료 중에 독기를 중화시킨 듯했다.
어쩌면 그 일 역시 공력이 전보다 늘어난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었다.
‘좋아, 그럼 이제 해볼 만하겠어.’
단목화종과 장철산은 장천운이 팔 성 공력을 찾은 걸 알고 떠날 준비를 갖추었다.
장철산의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계속 있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장천운 때문에 버티고 있었던 것일 뿐.
적상천도 그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내가 살던 곳으로 갈 생각이다. 그곳에 가면 괜찮은 약이 있거든.”
“그곳이 어딥니까?”
“그것까지는 알 것 없다.”
“차라리 구천성에 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곳에 독왕 노선배님에 계실 겁니다. 그분을 찾아가면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목화종이 그 말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독왕? 미쳤냐? 철산은 독이 아니라 약이 필요하니라.”
“그분의 의술은 천하에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납니다.”
단목화종과 장철산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독왕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구천성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됐다. 나는 숙부님과 함께 갈 것이다.”
“철산의 치료는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신경 쓸 것 없다.”
두 사람이 워낙 완강히 거부하자, 장천운의 가슴에는 의문만 더 쌓였다.
구천성의 강호인명록을 달달 외운 그인데도 노인과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기억에 없었다.
‘하긴 강호에 숨어 있는 기인이사가 어디 한두 명일까?’
속편하게 그리 생각한 장천운은 시선을 장철산에게로 돌렸다.
“정말 구천성의 장철산이란 분을 모릅니까?”
“내가 왜 너에게 거짓말을 한단 말이냐?”
장철산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몇 번 대하다 보니 이제는 눈썹 한 올도 흔들리지 않았다.
“전대 성주님의 시신에 대해서도 끝내 알려주시지 않을 겁니까?”
그놈 질기게도 묻네.
속으로 투덜거린 장철산은 냉랭한 어조로 대답했다.
“어르신이 무사하시다면 나중에 너를 찾아갈 거다. 아마 그때 물어보면 말씀해주실 거다.”
도대체 왜 지금 말해줄 수 없다는 거지?
장천운은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다그친다고 해서 알려줄 것 같지도 않았다.
“좋습니다. 그럼 할아버지를 만나면 물어보죠.”
“그런데…… 오늘 나갈 거냐?”
이번에는 장철산이 넌지시 물었다.
“그래야죠. 밖의 상황도 궁금하고, 세 분이 떠나면 더 있을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뭐, 그건 그렇지.”
장철산은 아쉬움이 컸지만 붙잡아둘 수도 없었다. 어차피 시간 차이가 날 뿐 자신도 떠나야 하니까.
“좌우간 잘 지내라. 함부로 몸 굴리지 말고. 겨우 치료해놨는데 또 다치면 그 동안 노력이 헛수고가 되니까.”
“제 걱정 마시고, 대협이나 빨리 완쾌하십시오.”
당신이나 잘해.
그런 투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장철산은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가슴이 짠하게 울리면서 뭉클해졌다.
‘자식, 그래도 내 걱정을 해주는군.’
거기다 눈가가 찡해지면서 물기가 고이는 듯했다.
흠칫한 그는 재빨리 고개를 틀면서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가라, 언젠가는 또 만날 날이 있겠지.”
장천운은 장철산의 감정변화를 알고도 모른 척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장철산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꼬장꼬장한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감성적인 면이 있는 분이군.’
그러다 보니 말투도 전과 조금 달라졌다.
“은혜는 잊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다음에 뵈면 제가 술 한 잔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다 낫거든 꼭 찾아오십시오.”
장철산도 장천운이 사준 술을 얻어 마시고 싶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주도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글쎄다.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군. 워낙 멀리 가야 해서…….”
생이별을 해야 하는 그로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다.
어미도 없이 무창의 뒷골목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자랐다.
어쩌면 어미가 죽은 것도 자신 때문일지 모른다.
그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을 때의 원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미안하다, 아들아.’
* * *
구천성 밖의 마을은 전과 달리 하루 종일 을씨년스러웠다.
악착같이 버티던 자들마저 최근 한 달 사이 하나 둘 짐을 싸서 떠나갔다.
전쟁터라 한들 이 정도일까 싶었다. 어지간한 자들은 버틸 수가 없었다.
한 달 동안 수천 명이 죽어갔다. 사람 태우는 연기가 하루도 쉬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 세상이 온통 살타는 냄새가 밴 듯했다.
그래도 객잔이나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열었는데, 외지의 무사와 간 큰 장사꾼들이 몰려온 덕에 오히려 장사가 더 잘 되는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청산궁이나 암천문 무사들 역시 먹어야 살 수 있었다. 식품 등을 조달할 곳이 필요했다.
상인들로선 한 밑천 건지는데 전쟁터만한 곳이 없었다.
더구나 황궁에서 관리와 군을 파견해 양민의 피해를 조사했다. 그 후로 양측의 무사들 역시 어지간하면 양민들은 건들지 않았다.
황군도 무사들끼리의 싸움은 끼어들지 않았다. 끼어들기는커녕 실컷 싸우다가 다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을씨년스러운 와중에도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면서 완충지대나 다름없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구천성 남쪽 마을, 골목 안에 있는 작은 주루인 남풍루에 손님 하나가 들어온 것은 어스름이 짙게 깔린 초저녁 무렵이었다.
주루 안에는 초저녁부터 잔뜩 취한 손님 하나만 앉아서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손님은 주방에서 가까운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점소이가 그에게 다가가서 성의도 없이 물었다.
“뭐 드실려우?”
자리에 앉은 손님이 탁자 위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담담히 말했다.
“무창의 장원홍이 있는지 모르겠소.”
장원홍은 무창 일대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술이다.
하지만 점소이는 술 이름이 아닌 손님의 손가락에서 눈이 떠나지 않았다.
손가락은 글자를 쓰고 있었다.
전에 많이 봤던 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