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7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5화
“내 어찌 소성주를 놔두고 성주직을 대행한단 말이오? 그리하면 강호에서 손가락질을 할 거요.”
“허어, 그럼 상황이 이런데도 무작정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입니까?”
백리호 역시 독고태와 의견을 같이 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강호의 누구도 사형에게 잘못을 말하지 못할 겁니다. 독고 단주의 말씀대로 한번 고민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형.”
사마중천을 따르던 자들, 지금은 소성주 사마경 쪽에 서있는 자들은 별 다른 대꾸도 못하고 착잡한 표정만 지었다.
우문각 역시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기회에 계획한 시간을 앞당기려 할지도 모르겠군.’
앞으로 소성주를 더욱 강하게 압박할 것 같다.
아무리 사마경의 정신력이 강하다 해도 이제 열여덟 소녀 아닌가.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그가 속으로 씁쓸함을 삼키며 지켜보는 와중에도 공손백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내 어찌 사제 말을 모르겠느냐? 하지만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는 여전히 사양했지만 완강하게 거부하던 말이 조금씩 바뀌었다.
“소성주가 어리니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무사들을 지휘해야겠지.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성주 대행직은 받아들이기가 힘들구나.”
그의 입가로 보일 듯 말 듯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때였다.
쾅!
탁자를 내리친 태상호법 여철숭이 벌떡 일어났다.
“지금 무슨 말들을 하는 건가? 보자보자 하니 못하는 말이 없군!”
“그럼 태상호법께서 지휘하시겠소이까?”
공손백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되물었다. 말이 미소지 온기라고는 한 점도 느껴지지 않는 웃음이었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 내가 언제 지휘하겠다고 했는가?”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당연히 소성주께서 성주 위에 올라야하지만, 나이가 어린 게 이유라면 그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네. 하나 호법과 장로가 상의해서 일을 처리하겠다고 해놓고 성주 임시대행이라니?”
“그래서 성주 임시대행을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분명히 알아두게! 만약 허튼 욕심을 품는다면 이 여철숭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네!”
공손백의 입가에 떠올라 있던 웃음이 사라졌다.
“걱정 마시지요. 저 역시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생각은 없으니까.”
잠깐 사이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금방이라도 살얼음이 푹 꺼지고 피바람이 불 듯했다.
긴장감이 고조되다 못해 폭발하기 직전, 조용히 있던 대장로 나극이 입을 열었다.
“따로 지위를 하나 만드는 것이 어떨까 하오.”
“무슨 말씀이시오?”
여철숭이 이마를 찌푸리며 묻자, 나극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소. 소성주의 지위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성의 무사들을 통솔할 자리를 하나 만들자는 거요.”
여철숭은 나극의 꿍꿍이를 짐작하면서도 대놓고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라 해서 어찌 현 상황을 모르겠는가.
“말씀하시는 걸 보니 이 자리에서 갑자기 생각하신 것은 아닌 것 같소만.”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 그런 뜻으로 돌려서 비꼰 말이었다.
나극이 싸늘한 눈으로 여철숭을 응시했다.
그와 여철숭은 나이 든 무사들에게 있어서 양대산맥이었다.
권력은 그가 더 강하지만, 신뢰 면에서는 여철숭이 앞선다고 봐야 했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맞수처럼 지내온 노고수들.
“그렇소. 왜냐하면 현 상태로는 우리 구천성을 노리는 자들을 상대하기가 힘들 것이기 때문이오.”
“그래, 어떤 자리를 만들자는 것인지, 어디 구체적으로 말해보시구려.”
“구천대령주(九天大令主)라는 지위를 생각해 보았소. 아주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면 소성주의 재가를 받지 않고 본성의 무력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오. 그럼 적의 침공에 적시에 대응할 수 있지 않겠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구려. 그런데 소성주의 재가를 받는 일이 얼마나 힘들어서 굳이 그런 자리를 또 만든단 말이오?”
“상황이 급해지면 촌각을 다퉈야할 때가 있는 법이오. 적의 칼은 재가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말이오.”
“저 역시 대장로의 의견에 찬성입니다.”
백리호가 나극의 손을 들어주었다.
독고태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 독고태 역시 찬성입니다. 대백께서 성주직에 앉겠다는 것도 아닌데 못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그 이후로 여기저기서 찬성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게 좋겠습니다.”
“아주 멋진 생각입니다. 과연 대장로다우십니다. 하하하하.”
소성주파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상대의 기세가 워낙 강해서 막기가 쉽지 않았다.
여철숭도 강하게 반박하지 못하고 못마땅한 표정만 지었다.
그때 우문각이 일어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저 역시 대장로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책인 것 같습니다.”
소성주파들은 우문각이 찬성하고 나설 줄 몰랐던 듯 입을 닫고 눈을 크게 떴다.
반면 공손백을 따르는 자들은 생각지 못한 우문각의 대답에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진심인지 그냥 떠보는 말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손백의 반응은 그들과 달랐다. 그가 무색의 눈빛으로 우문각을 보며 말했다.
“총사가 그리 생각한다면 나 역시 고집을 피울 수만은 없을 것 같군. 오늘 하루 깊이 생각해 보고 결정을 내리겠네.”
***
“총사가 왜 그리 쉽게 굽혔는지 모르겠어요.”
소연추는 우문각의 태도변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짙은 아미를 찌푸렸다.
사마경이 냉정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
“아무리 그래도…….”
“막을 방법이 있었다면 우문 숙부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거야.”
“아가씨께선 너무 사람을 믿으세요.”
“믿지 않으면 어쩌겠어? 사람을 모두 의심할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보다 천운은 지금 뭐하고 있지?”
“빠른 시일 안에 실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흑월조를 매일 숨넘어갈 정도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유모가 보기엔 어때? 실력은 좀 늘은 것 같아?”
“실력의 고하를 떠나서 모두 지독한 사람들입니다. 하루 열두 시진 중 여덟 시진을 수련에 임하고 있는데,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구르면서도 포기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운이 사람은 잘 골랐군.”
“제가 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다니 선물을 줘야겠어.”
사마경은 약속대로 약고를 뒤져서 공력증진에 좋은 약재를 흑월조에 제공했다.
장천운은 약 핑계를 대고 조원들의 수련 강도를 더욱 높였다.
“약값은 해야지?”
“약효를 제대로 보려면 몸의 상태를 극한 상태로 몰아넣어야 한다는군. 열심히들 해!”
“하루 게으름 피우면 일 년 먼저 죽는다는 점을 명심해!”
쉴 만하면 다그치는 장천운의 잔소리에 조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고 있었기에 꾹 참고 수련에 매달렸다.
장천운은 조원들만 교육시키는 게 아니라, 본인도 시간만 나면 수련에 열중했다.
몽중무와 혼천수라권, 그리고 말도 안 되는 환귀자의 괴상한 무공까지.
누구도 몰랐다.
그 해 가을, 새로운 전설이 태동하고 있다는 걸!
***
마침내 구천성 역사에 없던 구천대령주라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령주는 공손백. 이제 그가 공식적으로 전권을 휘두를 위치에 오른 것이다.
그가 구천대령주의 직에 오르자 밑에 있던 자들이 더 날뛰었다.
본래 주인이 벼슬을 하면 그 집 개가 더 위세를 부린다 하지 않던가?
“흥! 이제 장천운이란 놈도 더 이상 어깨에 힘을 주지 못할 거네.”
독고민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궁이 박자를 맞춰주었다.
“독고 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언제 기회를 봐서 혼을 내줍시다.”
“그놈의 목은 반드시 제가 딸 겁니다.”
동겸이 몇 개 남지도 않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그러다 잇몸이 찡하니 울리는 바람에 인상이 일그러졌다.
“당연히 그래야지.”
독고민이 고개를 끄덕여 동겸을 위로해주고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백리우진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백리 아우는 그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겉은 멍청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구렁이가 몇 마리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놈입니다. 쉽게 생각하고 상대했다가는 역효과만 날 뿐입니다.”
“별 볼일 없는 놈들 몇 끌어 모아서 흑월조인가 뭔가를 만들었다던데, 그래봐야 제 놈이 뭘 어쩌겠나?”
동겸은 독고민보다 더 강하게 말했다.
“듣자하니 무창에서 함께 있었던 흑도의 똘마니들도 몇 섞여 있다고 하더군요. 우진, 설마 그 천한 흑도 놈 따위를 겁내는 건 아니겠지?”
백리우진이 싸늘한 눈으로 동겸을 바라보았다. 그는 동겸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동 형은 그렇게 당하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동겸이 눈매를 씰룩였다. 그러나 공손백을 수발하는 백리우진이기에 말 한마디, 항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백리우진의 시선이 다시 독고민을 향해 돌아갔다.
“독고 형이 그를 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소만, 어설프게 건드릴 거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시오.”
독고민이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걱정 말게. 나도 어설픈 짓할 생각은 없으니까. 싹은 밟을 때 확실히 밟아야 하는 법이지.”
16장: 꼬리를 끊어낼 때는 완벽하게
“후우우우.”
남조연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소성주 편에 섰던 간부 중 일부가 공손백 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얼마나 많은 자들이 등을 돌릴지 알 수가 없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해.’
현 상태로는 일 년이 아니라 반년 안에 구천성의 모든 권력이 공손백에게 넘어갈 듯했다.
막지 못하면 끝장이었다.
단 하나 있는 조카, 사마경마저 꼭두각시로 있다가 팽 당할 것이 뻔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상호법을 만나서 상의해봐야겠어.’
밤늦은 시간이지만 그 역시 잠을 못 이루고 있을 게 분명했다.
방을 나선 남조연은 호법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로전과 호법전 사이에는 제법 넓은 청송림이 있었다.
청송림 사이로는 산책로가 나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청송림을 가로지르면 바로 호법전이었다.
남조연은 평소처럼 산책로를 걸었다. 어둡긴 해도 소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이 제법 밝아서 걷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상념에 잠긴 그는 뒷짐을 지고 걸으며 간간히 고개를 흔들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상태, 시선은 땅을 향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소리 없이 옆에서 다가오는 자를 미처 보지 못했다.
“남 장로, 이 밤중에 어쩐 일이시오?”
흠칫하며 고개를 돌린 남조연은 달빛에 드러난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에게 말을 붙인 자는 소성주를 따르는 장로 중 하나였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바람 좀 쐴 겸 나왔네.”
“하긴 날씨가 더워서 방에 있으면 답답할 거요. 저도 그래서 나왔지요.”
“태상호법이나 만나볼까 하는데, 함께 가겠나?”
“그래요? 그럼 같이 갑시다.”
남조연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상대의 앞을 지나쳐 한 걸음 내디딘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등골이 싸해진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