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33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33화
33화
일류고수가 아니면 어림도 없는 솜씨!
독고무령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코 일개 경비무사가 펼쳐낼 수 있는 수법이 아니다. 또한 단순히 사로잡겠다고 펼친 공세도 아니다.
독고무령은 우수를 휘돌리며 경비무사의 손을 걷어냈다.
절정의 쾌도수인 삼월인을 익힌 그다.
늦게 발출했다지만, 그 속도는 일반사람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팡!
두 사람의 기운이 부딪치며 밤공기를 울렸다.
주춤거리며 물러선 경비무사의 눈에 경악이 떠올랐다.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공세를 막아낼 줄은 생각도 못한 듯했다.
“역시 들었던 대로 한 수가 있는 놈이구나!”
들었던 대로?
자신이 제왕성 내에서 무공을 펼친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집법전에서 중년인의 공세를 피할 때.
그렇다면 이자는 경비무사가 아니라 집법전의 고수라는 말.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독고무령은 재차 상대가 공격해오자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좌수를 내밀었다.
“한 번 더 하면 죽는다고 했지.”
번쩍!
좌수에서 달빛보다 싸늘한 광채가 일렁였다.
“헛!”
달려들던 자는 대경하며 손을 거둬들이고 몸을 틀었다.
그러나 그가 피하기에는 단월인의 공세가 너무 빨랐다.
비록 귀도의 말대로 천하무적 고금제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달려들던 자를 눕히기에는 충분했다.
은은한 광채가 몸을 트는 상대의 가슴에 떨어졌다.
쩍!
“커억!”
뭔가가 쪼개지는 소리. 답답한 신음.
단 한 수에, 집법전 비밀호위 팔호는 눈을 까뒤집으며 그 자리에 무너졌다.
독고무령은 쓰러진 그를 보고 눈을 좁혔다.
‘곤란해지기 전에 벗어나야겠군.’
이미 몸속의 취기는 거의 다 빠져나간 상태. 그는 즉시 몸을 돌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두 사람이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독고무령이 무객당의 구호실에 들어감과 동시였다.
“이런! 팔호가 당했습니다.”
수하의 말에 매부리코의 중년인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는 쓰러진 팔호의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가슴에 난 붉은 자국을 보고는 안색이 급변했다.
“한 수에 당했군.”
“예? 놈이 팔호를 일 초에 죽였단 말입니까?”
“가슴뼈가 부러지며 심장까지 다쳤네. 그런데 상흔이 딱 거기 하나뿐이야. 주위에 싸운 흔적도 거의 없고.”
매부리코의 중년인은 몸을 일으켜 무객당 쪽을 바라보았다.
“놈은 무객당으로 돌아갔겠지?”
“그랬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데려와. 놈을 잡는다.”
“예, 부전주.”
독고무령은 방에 들어간 즉시 봇짐을 챙겼다. 그걸 보고 유원위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딜 가려는 것이오?”
“약간의 사고가 있었소. 해서 떠날 생각이오.”
“하면 어디로……?”
독고무령은 방을 나가려다 네 사람을 둘러보았다.
그는 석도경과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찾으려는 사람이 오 년 전에 제왕성에 들어왔다면, 십중팔구는 그때 죽었을 것이오. 그러니 위험을 자초하지 말고 이곳을 떠나시오.”
“우리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네. 그래서 이곳에 남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볼 생각이네.”
“제왕성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무서운 곳이오. 떠나는 게 그나마 당신들 목숨을 보전하는 길일 거요.”
석도경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왕성이 산서의 패자가 된 것은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다른 방법이 없어 그리하려는 것뿐.
“다른 방법이 있나?”
“무천련이라면 당신들을 받아줄 것이오. 그곳에 머무르며 당신들이 찾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소?”
어차피 자신들이 찾는 사람이 제왕성에 의해 죽었다면 제왕성과 싸울 수밖에 없다.
당금 산서 무림에서 그나마 제왕성과 세력을 겨루는 곳은 무천련 뿐.
최선은 아닐지 몰라도 차선책은 될 듯했다.
석도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괜찮겠군.”
독고무령은 방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한마디 조언을 해주었다.
“만일 무천련으로 가고자 한다면, 철검보로 가서 구양손을 찾으시오.”
“구양손? 인의철검 구양손 말인가?”
“그렇소. 아마도 그라면 당신들의 뜻을 알아줄 것이오.”
“자넨 그를 어떻게…….”
하지만 석도경이 미처 질문을 마치기도 전, 독고무령은 방문을 열고 신형을 날렸다.
독고무령이 무객당을 빠져나옴과 동시, 이십여 줄기의 기운이 무객당을 에워쌌다.
독고무령은 간발의 차이로 포위망을 벗어났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결과적으로는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셈이 되었지만, 꼭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왕성을 떠나면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일. 떠나기 전에 만날 사람이 있었다.
안쪽으로 몸을 날린 독고무령은 순식간에 백여 장을 통과했다.
밤은 그의 편이었다. 곳곳에 경비무사들이 있고, 간간이 순찰을 도는 무사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독고무령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독고무령은 작은 협곡이 나오자 나무 위에 몸을 숨겼다.
그가 아는 제왕성의 지리는 모두 운양으로부터 알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운양도 내부 깊숙한 곳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비옥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처럼.
독고무령이 걸음을 멈춘 것은, 눈앞의 협곡이 바로 운양이 아는 제왕성의 마지막 지점이기 때문이었다.
나무 위에 몸을 숨긴 독고무령은 협곡 너머를 바라보았다.
너비가 삼 장에 깊이는 오 장 정도, 협곡 반대편에는 협곡을 따라 일 장 높이의 담장이 둘러져 있다.
어렸을 때 제왕성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 중에는 눈앞의 협곡에 대한 것도 있었다.
제왕의 혈맥(血脈).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눈앞의 협곡이 바로 그러한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그리고 저 너머는 제왕지처(帝王地處), 제왕의 핏줄들이 산다는 제왕별원일 것이다.
‘비옥은 제왕지처의 뒤쪽에 위치해 있다고 했지.’
독고무령은 유령처럼 담을 넘어서 제왕지처로 들어갔다.
옛날에는 백여 명이 살고 있었다는데, 지금의 제왕별원에는 그리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십여 년 전에 주인이 바뀌었으니 그 가족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지만 독고무령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제왕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곳. 용담호혈이 바로 제왕별원이었다.
그는 일단 담을 따라 정원의 나무그늘에 몸을 숨기고 제왕별원을 가로질렀다.
제왕별원의 넓이는 약 오천 평 정도. 건물 몇 채를 제외한 대부분이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이었다.
다행히 별원 끝에 다다르도록 제지하는 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 건물을 지나서 뒷마당을 통과할 때였다. 누군가가 건물을 돌아 뒷마당 쪽으로 나왔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 더구나 자신을 본 듯 상대의 기운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침착하게 몸을 돌린 그는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누구야?”
다가오던 사람이 독고무령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열예닐곱 정도로 보이는 소녀였는데, 달빛을 받은 그녀는 마치 월궁에서 내려온 항아처럼 아름다웠다.
독고무령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처한 상황만 봐서는 소녀를 죽여야 했다.
그런데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를 본 순간 장유유가 떠오른 것이다.
‘유유도 저 소녀만큼 컸겠지?’
그때 소녀가 다시 물었다.
“누군데 이곳에 들어온 거지? 여기는 아무나 못 들어오는 곳인데……?”
의아해하면서도 침입자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표정이다.
제왕지처는 제왕성의 중지(重地) 중에서도 중지. 침입자가 버젓이 모습을 드러낼만한 곳이 아니었으니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독고무령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제왕성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미처 몰랐소.”
소녀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속삭이듯 말했다.
“그럼, 빨리 나가. 호천위들이 와서 잡아가기 전에.”
자신을 염려하는 듯한 말투.
독고무령은 묘한 기분에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알겠소.”
그때 또 다른 사람이 그곳으로 날아들었다.
“선유야, 누구와 이야기하는 것……? 너는 누구냐?”
칠팔 장을 단숨에 날아온 자는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하얀 비단옷을 입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멋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준수한 자였다.
게다가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강한 기운. 능히 절정경지에 도달한 고수였다.
문득 소녀와 나란히 서 있는 걸 보니 장소천이 떠올랐다.
‘소천이도 저만큼 멋지게 컸겠군.’
그가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 소녀가 말했다.
“오빠, 저 사람이 길을 잃었대. 그래서 빨리 나가라고 했어.”
선유라는 소녀의 말에 청년이 독고무령을 살펴보았다.
“본성의 사람인가?”
“길을 잘못 든 사람일 뿐이오.”
길을 잘못 들었다? 여기가 어디 저자거리인가?
게다가 제왕성 사람이냐는 말에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침입자군.”
청년은 냉랭히 한마디 하며 빠르게 옆으로 돌아 독고무령의 뒤를 막았다.
독고무령은 다가오는 그를 보며 두 손에 내력을 응집했다.
소란을 떨면 일이 복잡해진다. 손을 쓰면 모든 일을 단숨에 끝내야 한다. 문제는 상대가 상당한 고수라는 것이다.
그는 내력을 응집한 채 조용히 답했다.
“막지 않는다면 조용히 나가지.”
“나보고 침입자를 그냥 내보내주란 말인가?”
상황이 급박해지자 소녀가 안절부절못하며 나섰다.
“오빠, 싸우지 말고 그냥 보내주면 안 돼?”
“이자는 제왕지처를 침입한 자다. 그냥 보내줄 수는 없어.”
청년은 소녀의 청을 거부하고, 천천히 독고무령에게 다가갔다.
몇 걸음 만에 거리가 삼 장으로 줄어들었다.
독고무령은 다가오는 청년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찰나 간 망설였다.
몇 마디 나누는 사이 근처에서 몇 가닥 기운이 밀려온다. 제왕지처를 지키는 호천위가 오는 듯하다.
청년을 죽이고 강제로 뚫고 나가야 할 상황.
그럴 경우 장유유를 닮은 소녀까지 죽여야 한다는 게 문제다.
그는 소녀를 죽이기 싫었다.
독고무령은 성큼 한 걸음 내딛으며 다시 한번 요구했다.
“그만 가지. 막으면 죽을지 모르니 비켜라.”
청년은 어이가 없는지 눈을 크게 떴다.
“지금 그 말…… 나에게 한 소린가?”
“마음대로 생각해.”
순간 청년의 눈에서 싸늘한 광망이 흘러나왔다.
“흥! 어디 그런 실력이 되나 보자.”
찰나였다. 청년이 땅을 박차고 독고무령을 향해 쇄도했다.
두 사람의 거리는 이 장 남짓.
단 한 걸음에 삼 장 거리가 좁혀지고, 청년의 쌍장이 휘둘러지며 우르릉, 우렛소리가 일었다.
독고무령은 예상보다 강한 상대의 공격에 침중한 표정으로 두 손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결국 죽여야 하나?’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오빠! 이봐요, 조심해요!”
소녀가 소리쳤다.
독고무령은 생각을 바꾸고 쌍장을 마주 내밀었다.
호천위들이 건물 앞쪽까지 다가온 상황. 설령 상대를 죽이지 않는다 해도, 큰 소란을 피우지 않으려면 단숨에 상대의 기를 꺾어야 한다.
다행히 자신에게는 그런 장법이 있었다. 강맹하기가 하늘도 뒤집는다는 혼천묵양장이.
콰르릉! 떠덩!
좀 전보다 훨씬 큰 우렛소리가 울리며 두 사람의 장력이 부딪쳤다.
“흐읍…….”
청년의 몸이 뒤로 죽 밀려났다.
동시에 독고무령의 몸이 뒤로 훌훌 날아갔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청년은 몸을 세우고 이를 악물었다.
상대가 날아가긴 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장력에 밀려서가 아니다. 그저 도망가기 위해 자신의 장력을 이용했을 뿐.
반면 자신은 다섯 걸음을 물러섰다. 그러고도 모자라 작은 내상마저 입었다.
‘내가…… 졌어. 나 위지성이…… 단 일 장에…….’
그때 뒤에서 무사들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