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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32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32화

 

32화

 

 

 

 

 

 

“친아들이 아니다. 죄수가 낳은 아기를 그놈이 키운 것뿐이지.”

 

쿵!

 

그 말을 듣는 순간, 독고무령은 잠시 눈앞이 캄캄해져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목이 콱 막히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방망이질 쳤다.

 

독고무령은 탁자 아래에서 달달 떨리는 손에 힘을 주었다.

 

죄수의 아기. 그런 아기를 기른 아버지.

 

어머니가 죄수라면, 죄수를 고문한 아버지는…….

 

오! 맙소사!

 

오! 하늘이여!

 

아버지…… 아버지……!

 

이제야 아버지가 가끔씩 하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누가 뭐래도 내 아들이다. 알지?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기분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는 아버지의 아들인가, 아니면 어머니의 아들인가.

 

만일 어머니를 아버지가 고문하고 죽였다면…….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어! 아버지가…… 아버지가 어머니를 고문했을 리 없어! 절대로!’

 

독고무령은 자신의 흔들림을 드러내지 않으려 태천일심법을 운용했다.

 

폭풍우를 만난 것처럼 흔들리던 가슴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아버지, 저는 누가 뭐래도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저는…… 아버지를 믿어요.’

 

그는 서너 번 그 말을 반복해서 가슴에 새기고는, 벌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려 물었다.

 

“아들은…… 어떻게 되었소?”

 

노태릉이 묘하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아이는 칠 년 전, 관제산에 묻혔다. 그런데 왜 그에 대한 걸 알고 싶어 하는 거지?”

 

지하수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 관제산에 묻혔다는 말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제왕성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알고 있는 것 같다. 잘된 일이었다.

 

“그는 우리집안과 관계있는 사람이오. 오랫동안 추적해 왔는데, 죽었다니……. 빌어먹을!”

 

독고무령은 미리 준비한 말을 하며 짐짓 이마를 찌푸렸다.

 

그러고는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죄수가 누구요? 누군데 독고헌이 죄수의 아기를 아들로 삼을 수 있었단 말이오?”

 

노태릉은 그 말에 바로 대답을 못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저었다.

 

“죄수의 이름이나 신분에 대해선 절대 알려줄 수 없네. 그걸 말하면 내가 곤란해지니까.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약속을 했다. 곤란하게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 대답을 들으면 어머니가 누군지 알 수 있다.

 

이판사판 제압해 놓고 대답을 들을까?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문제는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설령 제압한다 해도 대답을 듣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오히려 자신만 위험에 처할 뿐.

 

그렇다고 끝까지 답변해 달라며 윽박지를 수도 없다. 노태릉이 최후의 선택을 하면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이 될 테니까.

 

‘어머니의 신분이 어떻기에 이자가 입을 다무는 것일까?’

 

독고무령은 막상 마지막 답이 벽에 부딪치자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 그는 심장이 타들어가는 심정을 억누르고 질문의 방향을 틀었다.

 

“좋소. 하면 죄수의 이름과 신분은 빼고, 대충 상황만 말해보시오. 그럼, 더 이상 묻지 않겠소.”

 

그 정도는 말해도 된다 생각했는지, 노태릉이 콧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좀 묘한 상황이었는데…… 당시 비옥에 집어넣은 여자는 둘이었다네. 둘 다 아이를 배고 있었지. 공교롭게도 두 여자가 그곳에서 같은 날 아이를 낳았는데, 하나는 죽고 하나만 살았지. 그때 살아 있던 아기를 그놈이 키웠던 거야.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게 다네.”

 

두 여인이 낳은 아기 중 하나. 그게 자신이라는 말이다.

 

‘두 여인은 누군가. 나는 두 여인 중 누구의 아들인가?’

 

독고무령은 먹먹해진 가슴을 달래기 위해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더 윽박질러봐야 말해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부작용만 일으킬 뿐.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꼭 노태릉만 있는 것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한 그는 억지로 질문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소. 성주의 배후에 누가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누군지 말해줄 수 있소?”

 

순간 노태릉의 눈빛이 강렬하게 번뜩였다.

 

“너무 위험한 질문을 하는군.”

 

“말하기 어렵다면 하지 않아도 되오.”

 

“아직 젊은 나이가 아닌가? 오래 살고 싶다면 궁금해도 참는 법을 먼저 배우게나.”

 

정확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얻은 것은 적지 않았다.

 

‘배후에 누군가가 있기는 있다는 말이군.’

 

독고무령은 한 발 물러섰다.

 

“충고, 고맙게 받아들이겠소.”

 

“다행히 말귀가 통하는 젊은이군.”

 

 

 

탕!

 

방문이 닫혔다.

 

독고무령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회랑을 걸었다.

 

억지로라도 더 많은 것을 물어볼 수도 있었다. 제왕성에 대한 것, 성주에 대한 것, 그리고 비옥에 집어넣었다는 여인들에 대한 자세한 것 등등.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곳은 적지, 노태릉을 자극해봐야 좋을 것 없다. 그가 최후의 길을 선택하면 자신마저 위험해진다. 그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노태릉은 아직 이용가치가 많으니까.

 

‘오늘은 이 정도면 되었어.’

 

몇 걸음 걷기도 전에 한 사람이 앞쪽 방에서 나왔다. 자신을 안내했던 무사였다.

 

“따라오시오. 밖에까지 안내해주겠소.”

 

독고무령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가슴속에서 하얗게 타버린 재들이 훌훌 날리는 기분이었다.

 

 

 

노태릉은 독고무령이 나간 방문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죽이는 게 나을까?”

 

좌측의 책장이 반쯤 돌고, 그 안에서 키가 작은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분명 대책을 세워놓고 들어왔을 것입니다. 일이 틀어지면 전주만 곤란해집니다. 더구나 전주께서 그에게 말한 것은 비밀이라 할 것도 없는 것들이지요. 조금 지켜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다 입을 열면……?”

 

“물론 그냥 놔두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소제가 적당히 손을 써서 놈에 대한 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흠, 그래? 그렇다면야. 좋아, 그럼 아우가 알아서 하게.”

 

“만일 지워야 한다면, 완벽히 지우도록 하지요. 발설자까지 말입니다.”

 

키 작은 중년인과 노태릉이 마주보며 하얗게 웃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뒤에 뭐가 묻은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 * *

 

 

 

구호실로 돌아온 독고무령은 말없이 침상에 몸을 눕혔다.

 

그의 표정이 어찌나 무거워 보이는지 유원위도 말을 붙이지 못하고 눈만 힐끔거렸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반 시진쯤 흘렀을 때였다. 방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객당 서기인 오정이었다.

 

그는 오른손에 작은 쟁반을, 왼손에는 단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 하. 출출할 것 같아서…….”

 

유원위가 벌떡 일어나 오정에게 다가갔다.

 

“웬 술을 다.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고, 저기 고 공자께…….”

 

그 정도에 물러설 유원위가 아니었다. 주사위를 품에 집어넣은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 하, 하. 누가 뭐랬습니까? 좌우간 이리 주시지요. 제가 갖다 주겠습니다.”

 

유원위는 잽싸게 쟁반과 술 단지를 움켜쥐었다.

 

오정은 차마 떨치지 못하고 힐끗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독고무령은 오정이 왜 술을 가져왔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걸 알고 보답하는 차원에서 술을 준비한 듯했다.

 

‘술이라…….’

 

많지는 않지만 술을 마셔본 적이 있다.

 

아버지가 요구하면 염마귀가 가끔 술을 넣어주었으니까.

 

아주 어렸을 때는 아버지 혼자 드셨지만, 열 살이 넘은 후부터는 자신에게도 한 잔씩 주었다.

 

‘그렇게 독한 걸 어떻게 마시냐고 했지.’

 

그러면 아버지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남자는 술도 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아마 너도 조금 더 크면 술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마음이 아플 때는 술이 약이라고.

 

그때는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다. 마음이 아픈데 왜 술을 먹는지.

 

그런데 오늘, 그는 술이 마시고 싶었다.

 

술을 마시고 아픈 가슴을 달래고 싶었다. 하얗게 타서 재만 남은 가슴을.

 

“함께 마십시다. 이리 가져 오시오.”

 

 

 

내력으로 술기운을 조절하지 않고 마셔서 그런지 취기가 올라왔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개의치 않고 술잔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캬아, 고 형, 술 좀 하는데?”

 

유원위가 오리다리를 잡고 뜯으며 독고무령을 추켜세웠다.

 

독고무령은 잔을 유원위에게 건네며 불쑥 물었다.

 

“대동에서 왜 이곳까지 왔소? 제왕성의 무사가 되기 위해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움찔한 유원위가 석도경을 쳐다보았다.

 

석도경은 질문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무슨 생각인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원위는 독고무령이 따른 술을 단숨에 마시고 입을 열었다.

 

“캬아, 좋군. 쩝쩝……. 험, 사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사람을 찾기 위해서요.”

 

사람을?

 

독고무령은 오리고기 한 점을 입 안에 넣으며 유원위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곧 유원위의 말이 이어졌다.

 

“오래 전부터 우리가 따르던 분이 있었소. 그런데 오 년 전, 그분이 뭘 알아볼 게 있다며 갑자기 태원으로 가셨소. 그리고 그 후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소, 젠장 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우리가 직접 찾으러 나선 거요.”

 

“오 년 전에 사라졌는데 왜 이제야 찾는 거요?”

 

“사정이 있소. 그분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그분이 사라진 지 이 년 만에 대동에서 일이 터졌기 때문이오.”

 

사라진 지 오 년, 그 후 이 년이면, 삼 년 전이라는 말이다.

 

독고무령은 대동에서 터졌다는 일이 어떤 일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운양이 산서 무림의 동향에 대해 말해줄 때 대동의 일도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원위가 말했다.

 

“대동삼세 중 하나인 팔기보(八旗堡)가, 우리들이 몸담고 있던 철마장(鐵馬莊)의 세력을 야금야금 치고 들어왔지 뭐요. 우리는 그들과 싸우느라 빠져나올 수가 없었소.”

 

일 년 전, 철마장은 완전히 팔기보에 넘어갔다. 그리고 대동삼세 중 나머지 하나인 목가방도 팔기보에 무릎을 꿇었다.

 

아마도 철마장이 무너지자 ‘그분’이라는 사람을 찾아 나선 듯했다.

 

“그런데 왜 제왕성에 왔소?”

 

그에 대한 대답은 조원화가 했다.

 

“그분이 제왕성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지.”

 

 

 

잠시 입을 닫은 채 술만 마셨다.

 

곧 술 단지가 바닥을 드러냈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술을 마셔본 독고무령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술을 마시며 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하얗게 재만 남은 가슴의 통증이 많이 가신 듯했다.

 

‘후후후, 사연이야 어떻든 간에, 아버지는 영원히 아버지가 아닌가?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거늘…….’

 

독고무령은 머리를 흔들어 가슴에 쌓인 찌꺼기를 털어냈다.

 

물론 완전히 털어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또 생각이 나고, 잊기 위해 또 술을 찾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내일 일이었다.

 

독고무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 쪽으로 향했다.

 

유원위가 오리다리를 싹싹 핥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딜 가려고……?”

 

“잠시 바람 좀 쐬어야겠소.”

 

 

 

무객당에서 멀리 벗어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도 독고무령은 터벅터벅 걸어 무객당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삼십여 장을 걸었을 때였다.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대는 누군가?”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다른 생각에 정신을 팔았다지만, 일개 경비무사의 접근을 몰랐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었다.

 

독고무령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무객당에 있는 사람이오.”

 

“무객당? 무객당에 있는 사람이 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수상하군. 잡아서 조사해봐야겠어.”

 

경비무사로 보이는 자는 싸늘한 눈을 번뜩이며 독고무령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독고무령은 슬쩍 뒤로 물러나며 경비무사의 손을 피했다.

 

그때였다. 스쳐지나갈 것 경비무사의 손이 홱 뒤집어지며 가슴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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