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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7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7화

 

27화

 

 

 

 

 

 

제1장 밀호방(密狐幇)

 

 

 

 

 

독고무령은 운양을 똑바로 바라본 채 나직이 물었다.

 

“마인걸이라는 이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소?”

 

첫 번째부터 말문이 막혔다.

 

마인걸은 태원의 밤을 삼분하는 세력 중 마운방의 주인 이름이다. 그에 대한 것을 함부로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부터 마운방의 적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물론 말해주지 않아도 되었다. 알려줄 수 있는 것만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최대한.

 

문제는 자존심이었다. 처음부터 겁이 나 못한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제길, 그냥 마운방이 어떤 곳이냐, 그런 거나 묻지.’

 

그 정도라면 열흘 동안이라도 쉬지 않고 말해줄 수 있거늘.

 

어쨌건 일단은 자존심을 세워야 했다.

 

“왜 그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오?”

 

“일단 그에 대한 것부터 알려주시오.”

 

살짝 돌려치기를 하려 했는데 먹히지 않는다.

 

운양은 혀를 입 안에서 몇 번 굴리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마운방의 주인이오. 설마 마운방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요?”

 

“거두절미하고 마인걸에 대한 것만 말해보시오.”

 

‘끙, 제법 말싸움 좀 할 줄 아는군.’

 

운양은 버티기를 포기하고 조건을 먼저 걸었다.

 

“그럼 한 가지 약속을 해주시오.”

 

독고무령이 운양을 똑바로 바라보며 미리 말했다.

 

“발설자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소.”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이다. 저런 눈을 지닌 자가 약속을 어긴다면 세상 누구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운양은 속으로 한숨을 흘렸다.

 

‘하아, 제길, 할 수 없지. 적당히 알려주는 수밖에.’

 

그는 찻물로 입술을 축이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마인걸이 마운방을 만든 것은 이십 년 전이오. 그는 본래 잘나가던 정파의 젊은 고수였는데…….”

 

한번 입을 열기 시작하자 청산유수였다.

 

운양은 이 각에 걸쳐 마인걸에 대한 것을 대충 털어놓았다.

 

“……해서 주머니에 든 송곳인 줄 알면서도 그냥 놔두는 것이오.”

 

말을 다 마친 운양은 식어버린 차를 단숨에 다 마셨다.

 

그때 독고무령이 물었다.

 

“그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쿨룩!

 

운양은 마시던 차가 역류하며 코가 맹해졌다.

 

하지만 곧 안색을 가다듬고 독고무령을 쏘아보았다.

 

“왜 그를 만나려고 하는 것이오?”

 

독고무령이 무심한 표정으로 나직이 대답했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일순간, 운양은 숨이 턱 막혔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름 돋는 느낌이 온몸을 엄습했을 뿐이었다.

 

불길함? 희열?

 

도대체 자신이 느낀 그 느낌의 정체가 무얼까?

 

운양은 엉뚱한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만나는 방법쯤이야 가르쳐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만금도국으로 가보시오. 그곳에 가면…….”

 

운양은 간단하게, 나중에 뒤탈이 없는 정도까지만 말하고 입을 닫았다.

 

그러나 독고무령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운양이다. 아마 마인걸에 대한 것 외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을 듯했다.

 

동생이 잘못한 대가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겠다고 했으니,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얻어내야 했다.

 

죄수의 입이 열렸을 때, 모든 것을 얻어내는 것이 고문의 기본이 아니던가.

 

“고맙소. 그리고 말한 김에 두어 가지만 더 알려주었으면 싶소만.”

 

한 가지도 아니고, 두어 가지?

 

운영은 그 말만으로도 낯빛이 변했다.

 

“무,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요?”

 

“먼저 제왕성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주시오. 특히 최근 오륙 년 간의 이야기를 듣고 싶소.”

 

운양은 아연한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제…… 왕성?”

 

독고무령은 입이 반쯤 벌어진 운양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그렇소. 그냥 당신이 알고 있는 정도만 이야기해주면 되오.”

 

‘알고 있는 정도? 결국 알고 있는 거 다 털어놓으라는 말이잖아!’

 

운영은 절대 말할 수 없다고 하려 했다. 제왕성에 대한 것과 마인걸에 대한 것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 위험성은, 쉽게 말해 콩알과 호박 차이였다.

 

남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을 묻는 것은 아닐 터. 한마디만 잘못 새어나가도 죽는다. 쥐도 새도 모르게.

 

더구나 죽으면 자신 하나만 죽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수십 명의 죽음이 달려 있는데,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미안하지만…….”

 

그러나 그가 말을 맺기도 전에 독고무령이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부탁하오.”

 

‘제기랄! 저 표정은 또 뭐야?’

 

“칼이 입에 들어와도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그러면서도 운양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략적인 것뿐이오.”

 

“그 정도면 되오.”

 

“남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오.”

 

“나는 최근의 일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소.”

 

‘빌어먹을! 좋아! 그 정도라면 못해줄 것도 없지!’

 

어차피 남들이 아는 정도라면 큰 상관이 없을 듯했다. 산서에서 칼밥 좀 먹었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만 말해준다면. 

 

운양은 그렇게 생각했다.

 

반면 독고무령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사람은 한번 입을 열면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것도 무의식중에 털어놓게 되어 있지. 많든, 적든.’

 

비옥십팔호실의 죄수들이 그랬듯이.

 

어쨌든 운양이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후우, 지금은 누구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이십여 년 전 제왕성의 주인이 느닷없이 바뀌었을 때만 해도 말들이 많았다 하오. 생각지도 못했던 위지천백이 주인이 된 것도 그렇고, 인망 있던 고씨가 몰락했는데도 별다르게 큰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말이오. 한데 그 후로 소문이 잦아들더니…….”

 

‘음?’

 

독고무령은 깊은 눈빛을 더욱 깊게 가라앉혔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아버지에게 숱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이없게도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제왕성의 주인이 이십여 년 전에 느닷없이 바뀌었다고?

 

위지천백이 본래 성주가 될 사람이 아니었다고?

 

왜 자신은 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까.

 

들었는데 너무 어릴 때 들어서 잊어버린 걸까?

 

독고무령이 깊은 생각에 잠긴 사이 운양은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물론 제왕성이 그만큼 철저히 사람들의 입을 차단했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오만…….”

 

일반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죄수들은 다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죄수들이 어떤 말을 못하겠는가.

 

분명 어떤 식으로든 불만을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에게 그 일에 대한 것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 물어보지 않아서?

 

아니면, 그 일이 그리 중요하지 않아서?

 

그도 아니면 그 일이 지난 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가 아닐 수도 있었다.

 

독고무령은 의아했지만, 굳이 그에 대해선 물어보지 않았다.

 

이십여 년 전의 일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사건. 지금에 와서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제왕성이었으니까.

 

‘옛날 일은 좀 더 파고들어가다 보면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독고무령은 일단 운양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험, 어쨌든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제왕성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여덟 세력 중 하나가 되었소. 그리고 산서에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력을 만들었소. 거기에는 성주인 위지천백의 능력이 절대적이었소. 그는…….”

 

대부분은 그도 아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가끔씩 모르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독고무령은 백지 위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심정으로 운양의 말을 경청했다.

 

그렇게 일각가량 흘렀을 때였다. 운양이 뜻밖의 말을 했다.

 

“음, 그런데데 의아한 면이 없잖아 있소. 위지천백이 뛰어난 것은 인정하는데, 너무 순탄하게 산서의 패자가 되었단 말이오.”

 

“의심 가는 거라도 있는 거요?”

 

“뭐 꼭 그런 것은 아닌데…… 지난 이십 수 년 동안 산서에서 일어난 몇 가지 중요사건이 모두 제왕성과 연관되어 있다고 소문이 돌아서 말이오.”

 

“어떤 사건인데 그게 제왕성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정도란 말이오?”

 

“이십 년 전의 포운 선생 실종사건. 십여 년 전 천영문의 주인인 낙화검객이 처참한 시신으로 원평에서 발견된 사건. 그리고 팔 년 전, 산서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간다는 비천검제 양처기가 행방불명된 일에도 제왕성이 관여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소. 물론 그것 말고도 수십 건이 있는데, 그중 제왕성에서 인정한 것은 대여섯 건에 불과하오.”

 

“그럼, 당신은 나머지 사건도 제왕성이 관여되어 있다고 보시오?”

 

독고무령의 질문에 운양이 허리를 세웠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정보상인에게 열 냥만 주면 들을 수 있는 일반적인 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의 대답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만약 눈앞에 있는 ‘무령’이라는 자가 제왕성 사람이라면, 대답 한번 잘못할 경우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젠장 할!’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뱉어진 말. 거두어들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냥 모르겠다고 할까?’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수십 명의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왠지 싫었다. 

 

지금은 태원 제일의 정보통에 불과하지만, 십 년 안에 천하제일의 정보상인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진 자신이 아닌가.

 

다행이라면, 자신이 아는 한 ‘무령’이라는 자는 절대 제왕성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자신도 믿지 못하는 놈이 어찌 큰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오기도 그런 생각에 한몫했다.

 

허리를 세운 운양은 독고무령을 똑바로 바라본 채 대답했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소만, 적어도 절반은 제왕성이 관여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소.”

 

“최근 몇 년 사이에도 그런 일이 있었소?”

 

독고무령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계속 물었다.

 

운양은 알까? 자신이 누구보다도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는 걸? 자신이 그들 대부분의 죽음을 지켜봤다는 걸?

 

‘아마 당신은 상상도 못할 것이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옥에서 죽어갔는지.’

 

운양은 이마를 찡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몇 가지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소.”

 

“그럼 나머지 이야기도 마저 해주시오.”

 

멈칫한 운양의 눈이 조금 커졌다.

 

“뭘 더……?”

 

“과거의 이야기는 대충 들은 것 같으니, 최근 오륙 년 사이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줬으면 하오만.”

 

운양의 얼굴이 살짝 이지러졌다.

 

‘제기랄! 내가 여태 뭐한 거지?’

 

백미호리(百尾狐狸).

 

그를 아는 사람들이 붙여준 별호다. 물론 아는 사람은 스무 명도 안 되지만.

 

아마 그들이 지금의 자신을 본다면 기가 차서 말을 못할 것이다. 저기 앉아서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초운처럼.

 

모두가 ‘무령’이라는 자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이한 분위기 말이다.

 

‘진짜 위험한 자야. 빨리 이야기를 끝내고 쫓아내야지, 원…….’

 

 

 

운양이 제왕성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데는 이 각가량이 걸렸다.

 

“……그 후로는 조용하오.”

 

그렇게 말을 맺은 운양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마침내 해주기로 한 제왕성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다. 비밀스런 정보는 최대한 감춘 채.

 

‘후우,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말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그때 독고무령이 물었다. 상대의 입이 열렸을 때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는 것은 고문의 기본 중 기본이 아니던가.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소.”

 

“…….”

 

“산서 무림의 동향을 알고 싶소만.”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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