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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6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6화

 

6화

 

 

 

 

 

 

덜컹.

 

염마귀 염상소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비옥의 지하통로로 들어가는 철문을 열었다.

 

뒤쪽에는 남조경과 비화당의 비밀고수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지미, 뭐가 그렇게 급해서 오밤중에…….’ 

 

단순히 밤이 늦은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해독서가 모두 넘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불쌍한 놈. 저 죽을 것을 알고나 있는지…….’

 

그는 독고무령을 핏덩이 때부터 봐왔다. 독고무령의 어미가 독고무령을 낳고 죽은 후로는 젖을 얻어다주기도 했다.

 

성격이 워낙 무뚝뚝해서 직접적으로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은연중에 독고무령을 조카처럼 생각했었다.

 

그런 독고무령이 위기에 처했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그 점이 짜증나고 불만이었다.

 

‘제길, 빼돌려서 도망칠 수도 없고…….’

 

천자무서의 비밀이 새어나갈 것을 대비해서 비밀 감시자들이 비옥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의 실력으로는 비옥이 있는 별원조차 빠져갈 수 없었다.

 

그가 바랄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하나.

 

성에서 독고무령의 고문기술을 높이 생각해 살려주는 것뿐.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례로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일 푼도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이십 년 넘게 비옥십팔호실의 고문술사로 있던 독고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는가.

 

 

 

통로를 통과한 염상소는 비옥십팔호실의 자물쇠를 열며 힐끔 남조경을 바라보았다.

 

통로의 횃불에 비친 남조경의 얼굴이 곤혹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 인간이 왜 저런 표정이지?’

 

염상소는 의아해하면서 자물쇠를 열고 걸쇠를 잡아당겼다.

 

끼이익.

 

그러고는 철문을 두들겼다.

 

“소악귀! 문을 열어라! 남 당주께서 오셨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순간, 남조경이 멈칫하더니, 갑자기 철문을 힘껏 두들겼다.

 

탕탕!

 

염상소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남조경을 바라보았다.

 

“이보쇼, 남 당주? 왜 그러는 거요?”

 

그러나 남조경은 염상소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대신 전 공력을 끌어올렸다.

 

일순간 남조경의 두 손에서 검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염상소가 흠칫하며 눈을 크게 뜬 순간!

 

남조경의 쌍장이 철문을 거세게 후려쳤다.

 

쾅!

 

철문이 움푹 안쪽으로 밀리며 손목 두께의 쇠로 된 걸쇠가 휘어졌다.

 

염상소는 차마 말리지도 못하고 멍청하니 바라만 봤다.

 

남조경의 무공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도 놀라웠고, 이런 상황에서도 독고무령의 반응이 없다는 게 의아했다.

 

그 사이 남조경의 쌍장이 두어 번 더 철문에 떨어졌다.

 

쾅! 쾅!

 

가공할 장력에 걸쇠가 완전히 휘어지며 철문이 억지로 한 자 반쯤 벌어졌다.

 

순간 남조경이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안을 살펴 봐라!”

 

두 명의 무사가 철문이 벌어진 틈을 비집으며 안으로 들어가고, 남조경도 곧 뒤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염상소는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고 얼굴이 굳어졌다.

 

유등잔이 켜진 비옥십팔호실 안의 침상 위에 유백하가 누워있다. 그런데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당연히 있어야 할 또 하나의 기운이 흔적조차 없다. 독고무령의 기운이 말이다.

 

‘어, 어떻게 된 것이지?’

 

그때 안으로 들어간 남조경의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개자식이!”

 

그는 다급히 입구 쪽으로 오더니 염상소를 쏘아보았다.

 

그의 손에는 검게 변한 양피지가 들려 있었다. 아마도 천자무서를 해독해 놓았던 것인 듯했다.

 

“놈이 어디로 갔지?”

 

자신이 그걸 어찌 안단 말인가?

 

염상소가 툭 쏘듯이 말을 받았다. 왠지 모르게 고소한 마음이 들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억눌렀다.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안쪽에 걸쇠가 걸려 있는 걸 보지 않았소?”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남조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가가 독고무령을 밖에서 빼내갔다면 걸쇠가 걸려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위쪽 구멍을 올려다봤다. 세 개의 철창으로 막힌 구멍은 수십 년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는 안쪽의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 뒤집어엎어라! 사라졌다면 어딘가 출구가 있을 것이야!”

 

와장창!

 

독고무령의 침실 쪽에서 뭔가가 뒤집히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 누군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침상 아래에 석판으로 막아놓은 구멍이 있습니다, 당주!”

 

안으로 달려 들어간 남조경이 동혈을 바라보고는 빠르게 명을 내렸다.

 

“가서 밧줄 가져와!”

 

무사 중 한 사람이 밖으로 달려 나가더니, 반각도 되지 않아서 기다란 밧줄을 들고 왔다.

 

남조경은 밧줄을 침상 다리에 묶고 무사 하나를 내려 보냈다.

 

“내려가 봐라!”

 

무사 하나가 횃불을 들고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밑으로 내려갔던 무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십 장 정도 아래쪽에 제법 넓은 공동이 있는데,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외부로 나가는 통로가 있던가?”

 

“통로는 없습니다만…… 상당히 넓은 지하수로가 있습니다, 당주.”

 

“지하수로?”

 

“예, 당주.”

 

 

 

* * *

 

 

 

지하수로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구불구불했다.

 

밧줄을 잡고 흘러가는데도 갑자기 구부러진 곳이 나오면 여지없이 부딪쳤다.

 

그나마 벽이 매끈하지 않았다면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졌을지 몰랐다.

 

일각…… 이 각…….

 

얼마나 온 것일까? 

 

마땅하게 머리를 내밀고 숨을 쉴 만한 곳이 나타나지 않는다.

 

장님이 되어 격류에 휘말려 흘러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더구나 물에 불은 가죽옷으로 인해서 몸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이제 반쯤 왔을까?

 

혹시 이대로 이 안에서 죽는 것은 아닐까?

 

반 시진…….

 

조금씩 가슴이 무거워진다. 가만히 있을 때는 한 시진도 참을 수 있었는데, 막상 물속에서 몸을 움직이니 더 빨리 숨이 가빠진다.

 

‘일각 안에 숨을 쉴 만한 곳이 나와야 하는데…….’

 

 

 

* * *

 

 

 

남조경은 즉시 무사들과 함께 지하수로가 있는 공동으로 내려갔다.

 

그때 먼저 내려와 있던 무사가 한곳을 가리켰다.

 

“당주, 저곳에 밧줄이 걸려 있습니다.”

 

이마를 좁힌 남조경이 불쑥 물었다.

 

“이곳에서 가까운 호수나 강이 어디지?”

 

“아무리 가까운 곳도 이십 리는 떨어져 있습니다.”

 

“지하수로 이십 리라…….”

 

지하수로가 반듯할 리 없다.

 

그렇다면 거리가 두 배 이상 될 수도 있다는 뜻.

 

자신이라면 밧줄 하나에 의지한 채 빛 한 점 없는 사십 리의 지하수로를 통과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

 

불가능.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 채 시체로 떠오르든지, 아니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지하에 갇힌 채 죽어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자신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나이도 어리고 무공도 약한 소악귀는 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남조경은 차가운 눈을 번뜩이며 입술을 씹었다.

 

“빌어먹을 새끼! 죽으려면 그냥 이곳에서 죽지.”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꼭 이십 리 떨어진 곳에서 지하수로가 끝난다는 보장도 없었다. 중간 어딘가에 수로를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설령 소악귀가 죽었다 해도 시체라도 찾아야 했다. 그래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바위에 묶인 밧줄을 잡고 천천히 잡아당겼다.

 

천 장의 길이도 길이지만, 물에 젖어 그 무게는 이미 태산만큼이나 무거워진 상태였다. 거기다 독고무령의 몸이 매달려 있지 않던가.

 

당긴다고 딸려올 밧줄이 아니었다.

 

뚝.

 

밧줄이 끊어지며 지하수로로 빨려 들어갔다.

 

남조경은 와락 이마를 찡그리고 두 무사를 향해 소리쳤다.

 

“즉시 나가서 비화당의 무사들을 이끌고 근처를 샅샅이 뒤져라!”

 

남조경은 즉시 두 명의 무사들에게 지시하고 염상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로를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물에 잘 뜰 수 있는 물건을 찾아 봐.”

 

염상소가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저 속으로 사람을 들여보내려는 것이오?”

 

“그 물건이 떠오른 곳을 찾으면 지하수로가 어디로 통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빨리 구해봐! 없으면 염료나 짐승의 피라도 구해서 가져와!”

 

“알겠소이다.”

 

그때였다. 

 

돌아서는 염상소의 뇌리에 오래 전의 일이 떠올랐다.

 

‘서, 설마…… 그때 그 피가……?’

 

문득 그의 입가로 묘한 웃음이 번졌다.

 

독고헌은 철저한 사람이다. 그가 세운 계획이라면 아무리 어이없는 계획도 말이 될 수가 있다.

 

‘피라…… 크크크, 그랬던가?’

 

 

 

* * *

 

 

 

일각이 지나도록 마땅한 곳이 나오지 않는다.

 

독고무령은 품속에 있는 공기주머니를 만져보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공기주머니의 공기라도 마셔야만 했다.

 

‘다행히 주머니의 공기가 많이 빠져나가지 않았어.’

 

그때였다. 누군가가 잡아당긴 듯 갑자기 밧줄에 힘이 들어갔다.

 

그 직후 팽팽하던 밧줄이 축 처졌다.

 

‘응?’

 

아무래도 누군가가 지하 동굴을 발견해서 밧줄을 억지로 당긴 바람에 중간이 끊어진 듯했다. 

 

문제는 밧줄이 끊어지자 흘러가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동굴 벽과 부딪치는 횟수도 훨씬 많아졌다.

 

의지할 밧줄이 없으니 충격이 훨씬 더 컸다.

 

하지만 그의 고난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쿠르르르!

 

갑자기 물소리가 커졌다.

 

독고무령은 이를 악물고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웠다.

 

순간, 몸이 허공에 붕 뜬 기분이 드는가 싶더니 아래쪽으로 곤두박질쳤다.

 

어떻게 대처할 시간도 없었다.

 

풍덩! 퍽!

 

온몸을 강타하는 강력한 충격!

 

정신이 아득해졌다.

 

거기에 더해 수어잠혼공마저 깨져 버렸다.

 

입술을 깨문 독고무령은 끊어지려는 정신을 붙잡고 손발을 저었다. 수어잠혼공이 깨지는 바람에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중심을 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상황은 갈수록 험해졌다.

 

지하수로는 폭포로 인해서 더욱 격하게 흐르고 있었다.

 

푸학!

 

독고무령이 막 중심을 잡고 머리를 물 밖으로 내민 순간이었다.

 

콰르르르…….

 

물줄기가 어디론가 빨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헉!”

 

독고무령은 다급히 숨을 들이쉬고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수어잠혼공이 깨진 이상 이제는 끈기와 세 개의 공기주머니로만 견뎌야 했다.

 

일순간, 그의 몸이 다시 좁은 통로로 빨려 들어갔다.

 

 

 

* * *

 

 

 

제왕성에서 이백 명의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횃불을 들고 밤을 낮같이 밝히며 이십 리 이내를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나 한 시진이 지나도록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수색망은 두 시진 만에 삼십 리 바깥쪽까지 넓어졌다. 인원도 오백 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관제산 일대의 강과 호수를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동이 틀 때까지 찢어진 옷 쪼가리 하나 찾아내지 못했다.

 

 

 

* * *

 

 

 

허파가 터질 것 같은 고통도 점차 느껴지지 않았다.

 

막막한 어둠의 통로를 흘러가는 것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이제 끝장인가?

 

이미 잡고 있던 밧줄은 손에서 빠져나간 지 오래.

 

손가락 곳곳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 어딘가 벽에 부딪치면서 빠져나간 것 같았다.

 

독고무령은 벽에 부딪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손을 저었다.

 

바로 그때, 물결이 조금 약해지는가 싶더니, 무심코 휘저은 손이 물 밖으로 나갔다.

 

‘공간이 있다!’

 

그 순간, 휘젓던 손에 툭 튀어나온 바위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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