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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전설 177화

무료소설 패왕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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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왕전설 177화

177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는 구혁상은 속으로 욕지거리가 나오려고 했다.

월계지는 궁주인 유양천의 아내이기도 했지만 자신과 관계를 가졌던 여자였다. 그 결과 유정을 낳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런 자신을 앞에 두고 설왕에게 저렇게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니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설왕을 당장에 어떻게 하고 싶었으나 그럴 실력도 안 됐고, 지금은 그럴 때도 아니었다. 이에 꾹 눌러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구혁상의 마음을 알았는지 월계지가 설왕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속삭이면서도 눈은 구혁상을 향해 있었다. 그 눈길이 뜨거운 것이 마치 나는 지금 어쩔 수 없이 설왕에게 이렇게 대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당신에게 있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월계지라는 여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구혁상이었다. 그녀는 절대로 한 남자에게 만족할 여자가 아니었다.

구혁상은 월계지의 눈길을 무시하며 말없이 잔을 채워 술을 들이켰다.

그때 객잔에 덩치가 커다란 사내 한 명이 들어서자 객잔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그를 바라봤다. 흔하지 않게 큰 덩치라 잠시 이목이 쏠렸던 것이다. 그러나 곧 모두들 시선을 돌려 각자 하던 일을 계속했다.

덩치가 커다란 사내는 잠시 누군가를 찾는 것 같더니 곧 구혁상 일행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향했다. 사내는 북해설인대의 대주 마항달이었다.

마항달이 다가오자 구혁상이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왔군. 너는 지금 곧바로 소림사로 가서 궁주인 유양천을 만나라. 만나서 유소호를 우리가 데리고 있다고 전한 뒤, 소림사 밖에서 만나기를 원한다고 해라. 그가 승낙하거든 숭산(嵩山)으로 오르는 길목으로 데리고 오면 된다.”

구혁상의 말에 마항달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월계지가 약간 걱정이 된다는 투로 물었다.

“소림사하고 가까운데 괜찮겠어요?”

“이것은 집안싸움이오. 소림사 밖에서 일을 벌인다면 그들이 간섭할 이유가 없소. 게다가 궁주의 성격상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을 것이오.”

“흥! 너는 걱정하지 마라. 소림사의 승려들이 돕고 나서겠다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

설왕이 기세 좋게 말하자 월계지가 그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호호, 당신만 믿어요.”

맞은편에서 그걸 보고 있는 구혁상은 그저 말없이 다시 술잔을 들이켰다.

그러나 월계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그런 행동을 싫어하는 사람이 구혁상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2층의 난간에서 그녀의 그런 행동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다름 아닌 그녀의 아들 유정이었다.

 

유무화와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놀아주고 있던 유양천은 갑자기 누가 찾아왔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려라.”

전에 없이 따뜻한 미소로 유양천이 그리 말하자 유무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님.”

유양천이 암자 밖으로 나와보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북해설인대의 대주 마항달이었던 것이다.

“궁주님을 뵙습니다.”

“네가 어찌 이곳에 있느냐?”

북해에 있어야 할 마항달을 여기서 보자 유양천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나 마항달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좌호법이 말을 전해 달라고 해서 왔습니다.”

“구혁상이?”

마항달의 말에 유양천은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유양천은 이미 좌호법 구혁상이 월계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지금 눈앞에 있는 마항달까지 자신을 배신하고 그쪽에 붙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마항달은 성격이 우직해서 윗사람을 배반하거나 하지는 못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좌호법이 소림사 밖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흥! 감히 그가 나를 오라 가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유양천이 불편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말하자 마항달이 미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오랫동안 유양천을 윗사람으로 섬기면서 든 습관 때문이었다. 비록 구혁상을 따르면서 유양천을 배신하기는 했지만 남아 있는 습관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궁주님. 하지만 소호 아가씨가 우리와 같이 있습니다. 궁주님이 오시지 않으면 소호 아가씨가 위험해집니다.”

“뭐? 소호가?”

순간 유양천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소호를 그들이 잡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설왕태상님도 와 있습니다. 가신다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

유양천은 설왕이 와 있다는 말에 굳어진 얼굴이 풀어지지가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 설왕을 불러냈단 말인가?

게다가 소호까지 잡혀 있으니 상황이 굉장히 불리했다.

그러나 유양천은 피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한 번은 부딪쳐야 할 일이었다. 마침 설왕이 그들 편에 서서 와 있다니 그를 꺾으면 그들도 더 이상 딴마음을 먹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알았다. 잠시 기다려라.”

유양천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유무화에게 말했다.

“무화야, 잠시 어디 좀 갔다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어디 가는데요?”

“하루 정도 걸릴 것 같구나. 혹시나 내가 늦어도 절대로 이곳을 벗어나면 안 된다.”

“네.”

유양천이 잠시 유무화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자 북해신궁에서부터 유양천을 따라왔던 20여 명의 사내들이 어느새 모두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유양천의 호위무사들로 모두들 무공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세 명은 남아서 무화를 지켜라. 혹시나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무화를 강무진에게 데려다주도록 해라. 그리고 뒤를 부탁한다.”

전에 없이 약한 말이었다. 설왕만 없었어도 유양천은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왕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자신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러니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명!”

세 명의 호위무사가 대답을 하며 그 자리에 남자 유양천이 나머지 일행을 모두 이끌고 마항달을 따라 소림사 밖으로 나갔다.

마항달은 구혁상이 말한 장소로 묵묵히 유양천을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구혁상과 설왕, 그리고 월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북해설인대와 북해빙겸대, 그리고 북해암영대가 기다리고 있다가 유양천 일행이 다가오자 주위를 완전히 차단하면서 그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유양천은 겨우 10여 명과 함께 가면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당당한 기도에 그들이 물러설 정도였다.

유양천은 그들을 보자 일단 설왕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구려.”

“그렇군. 잘 지냈는가?”

“보시다시피…….”

유양천이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그 옆에 있는 월계지를 보다가 다시 설왕에게 말했다.

“왜 나온 것이오?”

“그간 너무 무공만 알고 살았어. 이제 다른 것에도 관심을 좀 가질까 해서 나왔네.”

“흥! 그것이 내 마누라란 말이오?”

유양천의 말에 설왕이 살짝 인상을 썼다. 설마 대놓고 이렇게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기왕에 이렇게 된 것, 오랜만에 한번 붙어보세나.”

“그전에 소호를 보고 싶소.”

유양천의 말에 월계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아이라면 걱정 말아요. 정이와 함께 있으니까. 하지만 당신이 진다면 무사할거라고 장담은 하지 못하겠군요. 호호호.”

“그대가 그리 악독한 여자인 줄 알았다면 절대로 만나지 않았을 것이오.”

“흥!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당신이에요.”

“내가 뭘 어쨌다는 것이오?”

유양천이 가당찮다는 듯이 말하자 월계지가 다시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래도 나는 첩이니까 본마누라까지는 인정을 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우리 두 사람으로도 모자라 여인들을 자꾸 받아들였죠. 그리고 그년들이 아들을 낳자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잖아요. 내가 그런 꼴을 당하고 가만히 있으리라 여겼나요?”

“그것 때문에 그동안 그리도 악독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오?”

“호호호호, 그래요. 난 그때부터 당신이 싫었어요. 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여자들을 찾는 당신이 싫었죠. 그래서 나도 다른 남자를 찾았어요. 그리고 그 아이들을 하나둘씩 모두 죽였어요. 왜요? 그게 뭐가 잘못됐나요?”

“이런 악독한…….”

유양천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치다가 말았다. 결국에는 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월계지의 저런 잔인한 성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받아들인 것도 자신이요, 월계지의 말대로 그렇게 만든 것도 다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에 유양천이 한숨을 크게 쉬면서 말했다.

“어쩌면… 당신 말대로 내 잘못일 수도 있소.”

월계지는 뜻하지 않게 유양천이 자신의 말을 순순히 인정하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평소 유양천의 성격대로라면 당장에 화를 내며 고함을 쳐야 하건만 뜻밖에도 저리 말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유양천은 강무진과 만난 후 느낀 것이 많았다. 강무진 역시 한때 패왕성의 후계자 싸움으로 인해 고생을 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유무화나 유소호의 심정에 대해서 잘 알았다.

이에 유양천에게 수시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줄 것을 이야기했었다. 유양천도 후계자 싸움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어찌 강무진의 뜻을 모를까?

다만 그동안 그것을 잊고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이상 말이 뭐가 필요하겠소?”

유양천이 그렇게 말하면서 설왕을 바라봤다. 그러자 설왕이 성큼 한 걸음을 앞으로 나섰다.

“오게나.”

“그럼.”

유양천이 그 자리에서 내공을 끌어올리자 주위로 차가운 기운이 폭사되어 나갔다. 유양천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설왕은 그 정도로 강했던 것이다.

유양천이 그렇게 기세를 뿜어내자 설왕도 그에 질세라 몸에서 한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기운이 서로 엉키자 주위의 바닥에 서리가 내리면서 얼어붙어 갔다.

“물러서라!”

구혁상이 그렇게 외치면서 옆에 있던 월계지를 안고 뒤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그쪽에 있던 사람들도 두 사람이 뿜어내는 기에 휩쓸리지 않게 모두 뒤로 물러났다.

그때 두 사람이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상대를 공격해 갔다.

“하아아압!”

“흐아아앗!”

 

유양천과 설왕이 그렇게 싸움을 시작하고 있을 때, 객잔에 남아 있던 유정과 유소호는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라버니.”

원래는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유정이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소호는 여전히 유정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응? 왜 그래?”

“둘째 어머님은……. 아버님과 싸우러 간 거죠.”

뜻밖의 질문에 유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유소호가 다시 말을 꺼냈다.

“저도 다 알고 있어요. 아버님이 강하기는 하지만… 무사하실까요?”

“글쎄다. 내가 알기로 설왕이라는 그 사람의 실력이 아버님과 필적할 정도라더구나. 그러니 두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이기든 아버님이 이기든 너는 걱정하지 마. 그 누구도 너를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거야. 설령 그것이 어머님이라 하더라도 너는 내가 지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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