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68화
무료소설 패왕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68화
168화
나악태가 선택한 것은 첫 번째였던 것이다. 뒤로 물러난 나악태가 감탄을 한 듯 설왕에게 말했다.
“헐… 북해에 이런 고수가 있을 줄은 몰랐소이다.”
나악태가 손을 거두자 설왕도 더 이상 공격을 해오지 않았다. 이미 승부가 난 것이다. 나악태가 저렇게 손을 거두고 물러난 시점에서 설왕이 승리한 것이다.
“좋은 승부였다. 중원에는 그대 같은 고수가 얼마나 되는가?”
설왕의 말에 나악태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을 꺼냈다.
“나 정도의 고수라면 일단 검성(劍星)이 있겠군. 검성 부형승은 검으로 천하제일이라는 칭호를 받은 자요 .”
“그대하고 비교하면 어떤가?”
“비슷하오. 그러니 검성이 대단하기는 하나 그대보다는 한 수 아래일 것이오.”
사람들은 그 같은 나악태의 말에 그제야 나악태가 설왕에게 패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까 나악태가 갑자기 손을 거두고 물러나자 사람들은 모두 그 이유를 몰라 궁금해했었다.
제대로 승부가 나지도 않았는데 나악태가 손을 거두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방금 나악태가 하는 말을 듣고는 나악태가 스스로 패배를 인정했기에 그렇게 물러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남궁종상을 비롯한 남궁세가의 사람들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미 승부는 났다. 그리고 나악태가 그것을 인정하니 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그것보다 천하제일이라는 고수들과 설왕의 무공을 비교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했다. 방금과 같이 천지가 경동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의 우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천하제일의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으나 서로 우위를 논하지는 않았었다. 실력이 비슷해서 그런 것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스스로들 그런 이야기를 꺼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뜻밖에도 나악태가 방금 결정이 난 두 사람의 싸움을 기준으로 그들의 우열을 말하자 모두들 숨소리조차 죽인 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북리세가의 가주인 도성(刀星) 북리단천이 있소이다. 검성이 검(劍) 하나로 천하제일이라 불린다면 그는 도(刀) 하나로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자요. 하지만 그 역시 검성이나 나와 비슷한 실력이오. 그러니 역시 그대에게는 안 되겠지.”
나악태의 말에 설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나악태가 말을 이었다.
“그대와 겨룰 수 있는 사람은 소림사의 방장인 공지뿐이겠군. 불성(佛星)이라 불리는 공지라면 그대와 호각을 이룰 것이오.”
“소림사에 고수가 많다는 이야기는 나도 들었다. 그가 그대보다 뛰어난가?”
“그냥 싸운다면 별 차이가 없소. 하지만 그는 소림사의 호신기공인 금종조를 익혔소. 그 무공의 특성상 내가 반 수에서 한 수 정도는 뒤지게 되어 있지.”
예전에 검성 부형승과 만나 부형승이 공지 대사와 싸웠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나악태였다. 그때 그 이야기를 근거로 곰곰이 상황을 판단하며 자신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검성 부형승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고 판단했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나악태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또 한 명, 살성(殺星)이라 불리는 노극부가 있지만 그와는 정당한 승부를 가리기가 힘드니 제외해야겠지. 클클. 사실 나라도 살성의 손은 피하고 싶으니까.”
“살수가 그 정도란 말인가?”
“클클. 그자가 활동한 이래로 실패한 적이 없소이다. 그자가 몇 명을 죽였는지, 누구를 죽였는지는 아무도 모르오. 누군가가 이유 없이 죽으면 그자의 소행이라 여길 정도지. 전에 검성을 잠깐 만나서 그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소. 검성이 말하기를 그가 마음먹으면 자신조차도 살아남는 것을 장담하지 못한다고 하더군.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살성 노극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말이지.”
“흐음, 그럼 내 상대는 소림사의 공지와 그 노극부라는 자뿐이겠군.”
“내 생각에는 그렇소.”
그때였다. 어디에선가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흥! 아무리 그래도 우리 부두목만큼은 안 될걸!”
사람들은 갑자기 들려온 외침에 모두들 고개를 돌려보니 유소호가 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당신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우리 부두목한테는 못 이겨.”
북해신궁의 사람들은 유소호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어린 유소호가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건 남궁세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유소호가 말하는 부두목이 누구인지 다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방금 본 두 사람의 대결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강무진 정도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다만 남궁종상만큼은 조금 생각을 달리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때 본 아수라패왕권이라는 그 엄청난 격공권(隔空拳)이라면 아무리 설왕이라도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최근에 들려오는 소문을 들어보면 더욱이 그럴 것 같았다.
나악태도 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으나 그는 아수라패왕권은 물론이고 강무진이 싸우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저 뜬소문이려니 하고 한쪽 귀로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패왕성에서 직위가 높고 전설의 패왕이라 불린다지만 자신이 보기에 강무진은 이제 갓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애송이였다. 그때 봤을 때의 강무진은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저 아이를 데려가겠다.”
설왕의 말에 나악태가 남궁종상을 바라봤다.
그러자 남궁종상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나악태가 패한 이상 싸워도 별 이득이 없었다. 지금 전력을 다한다면 유소호를 데리고 도망가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그러자면 피해가 엄청났다.
지금 이곳에 있는 100여 명의 천검대는 물론이고 나악태까지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깨끗이 포기하고 다시 기회를 보는 것이 나았다.
나악태는 남궁종상이 물러날 것을 결심하고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자 설왕을 향해 말했다.
“아이를 데려가시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괜찮겠소?”
“뭔가?”
“그대들은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오?”
“소림사.”
설왕이 짧게 대답하자 나악태가 예상했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나와 저기 저 아이도 동행을 했으면 하오. 그대와 공지의 대결을 보고 싶군.”
나악태의 말에 설왕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흔쾌히 승낙했다.
“좋다.”
그렇게 결정이 나자 어쩔 수 없이 유소호는 그쪽으로 넘겨졌고, 나악태와 남궁종상만이 그들을 따라 함께 가게 되었다.
나악태는 자신이 말한 대로 설왕과 공지의 대결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남궁종상에게 그들의 싸움을 보여줌으로써 안목을 넓혀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 유소호가 유양천을 만난 것은 아니니 아직까지 기회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구혁상이나 월계지는 그들의 동행이 썩 반갑지 않았으나 설왕이 이미 승낙을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살수와 겨루다>
바람이 불어왔다. 여름에서 가을로 들어서는 때에 부는 바람이라 서늘하고 시원했다.
그러나 강무진 일행은 그러한 것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객잔에서 북해암영대의 기습을 받은 이후로 일행은 빠르게 소림사로 이동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또다시 그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살수답게 어둠을 틈타 공격해 왔다. 이에 일행들은 모두 밤을 꼬박 새며 그들을 상대해야 했다. 적들은 다음 날 밤에도 그리고 그 다음 날 밤에도 어둠 속에서 기습을 해왔다.
그렇게 3일째 이어지지는 암습에 일행들은 모두 죽을 맛이었다. 낮에는 이동을 하고 밤에는 적들에게 공격을 받으니 모두들 잠을 자지 못해 체력이 바닥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지금 또다시 적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숲이었다. 그런 나무들 때문에 해가 가려 밑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그곳에서 적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는 강무진 일행은 피곤함과 짜증스러움, 귀찮음 등으로 인해 모두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오로지 공문 대사만이 평소의 수행 덕인 듯, 평상시와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흐아아압!”
강무진이 힘차게 기합을 지르며 앞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적들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그들 세 명을 단번에 베어버릴 생각이었으나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겨우 한 명만 쓰러트릴 수가 있었다.
상대가 피를 뿜으며 주저앉자 나머지 두 명이 강무진의 눈을 노리고 검을 휘둘러왔다. 팔을 올려 그 공격을 막아내면서 다시 도를 휘두르자 그제야 나머지 두 명도 쓰러졌다.
그때 또다시 적들이 사방을 막고 공격해 들어오자 강무진이 급히 도를 휘둘러 앞의 두 명을 단번에 베어버렸다. 그리고 뒤로 몸을 돌리며 뒤따라 공격해 오던 두 명을 마저 베어버렸다.
가가가가각!
“…….”
적들은 여전히 죽어가면서도 비명은커녕 신음조차도 없었다. 지독한 놈들이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죽이기 위해서만 덤벼드는 그들의 집요함에 강무진은 물론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내가 길을 뚫는다!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공문 대사님은 뒤를 부탁합니다.”
강무진이 크게 외치면서 앞서 달리기 시작하자 모두가 그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무진은 달려가면서 열화마결을 펼쳐 적들을 사정없이 태워버렸다. 그러면서 가끔 자신을 뒤따라오는 일행들을 보호하기 위해 천변결을 펼쳐 암기를 날렸다.
강무진 일행이 그렇게 그늘진 숲을 거의 벗어났을 때였다.
앞쪽에 폐허가 된 작은 마을이 하나 보였다. 지금으로서는 마을에 뭐가 있는지 파악할 틈이 없었기 때문에 강무진은 무조건 그 마을로 들어섰다. 그 뒤를 따라 일행들도 모두 마을로 들어섰다.
그러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적들의 공격이 뜸해졌다. 그리고 강무진 일행이 마을의 중앙에 나 있는 대로(大路)를 타고 마을 깊숙이 들어왔을 때는 공격이 완전히 멈추었다.
그 이유는 대로에서 지금 강무진의 앞을 막고 서 있는 여섯 명의 사내들 때문이었다.
그들 중 다섯 명은 모두 여태까지의 적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옷에 역시 검은 복면을 하고 있었지만 한 사람만은 얼굴을 그대로 내놓고 있었다.
비쩍 마른 체구에 인상이 날카로워 보이는 사내는 온몸에서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기분 좋았던 사람도 그 사내의 암울한 모습을 보면 같이 우울해질 것만 같았다.
“쳇! 이쪽으로 몰기 위해서였군.”
강무진이 앞에 있는 사내들을 보고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그러자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인이다.”
북해신궁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해결하는 북해암영대의 대주 인이 바로 이 사내였다.
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이름조차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은 그저 그를 인이라고 부를 뿐이었다.
인(人)…….
말 그대로 그냥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이제 와서 통성명인가? 나는 강무진이다.”
강무진이 인을 노려보면서 그렇게 말하자 인이 무표정하게 손가락으로 강무진을 가리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