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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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63화
163화
‘그렇지. 저 정도면 신분도 좋고 실력도 좋으니 용화의 짝으로는 좋겠군. 성격도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아. 나중에 산이랑 이야기를 한번 해봐야겠군.’
그렇게 쉬지 않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 사이에 황보란과 황보린, 그리고 하은연과 화화가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무화가 우물쭈물 하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렇게 서로 인사가 오가고 담소를 나누다가 저녁때가 되자 각자가 쉴 수 있는 방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그리고 밤이 깊었을 때, 강무진은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강무진이 있는 방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는데 그 중앙에 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있었다. 강무진이 그리로 가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때 누군가가 조용히 강무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강무진의 맞은편에 앉았다.
“저기… 강 소협.”
황보린이 부르자 강무진이 그녀를 바라봤다.
“저……. 그게…….”
황보린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못 하자 건물의 모퉁이에 숨어서 그것을 보고 있는 황보란은 속으로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저 바보! 그냥 확 말해 버려! 뭘 망설이는 거야!’
그때 황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뭔가 어렵게 말을 꺼내는가 했는데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똑바로 바라보며 묻자 강무진이 선뜻 뭐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좋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소.”
“그런가요? 그럼… 저……. 그러니까…….”
강무진의 말에 얼굴이 약간 붉어진 황보린은 고개를 숙이고 또 뭔가를 말할 듯 말 듯하면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말해! 말해 버려! 바보야!’
황보린의 그런 모습을 숨어서 몰래 지켜보면서 황보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강무진이 혼자 나와서 있는 모습을 먼저 발견한 것은 황보란이었다.
황보란은 강무진의 주위에 하은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재빨리 황보린에게 가서 설득을 했다. 가서 고백을 하라고 옆에서 잔뜩 바람을 넣으며 등을 떠밀었던 것이다.
“제가… 강 소협을…….”
황보린은 고개를 푹 숙이고 모기가 기어가는 것 같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강무진이 미소를 지으면서 황보린에게 말했다.
“황보 소저.”
“네, 네?”
“나는 예전에 내가 정말 좋아했던 여인이 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봐야 했소. 나 때문에 그 여인이 죽었소. 그 뒤로 어떤 여인과도 관계되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기억을 잃는 바람에 그만 하 누이하고 관계가 생기고 말았소. 나는 아직 그녀를 지키기에도 벅차오. 얼마 전에 하 누이가 납치되었을 때, 예전에 그녀를 보내야 했듯이 하 누이도 죽을까 봐 너무 두려웠소.”
강무진이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하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황보린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대는 좋은 여자요. 성격 때문에 잘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그 누구보다 총명하고 지혜롭다는 것을 알고 있소. 나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소. 유소호와 유무화를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고 누구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싶소. 그때까지는 마음에 여유를 두지 않고 집중을 할 생각이오. 그러니 황보 소저는…….”
“됐어요……. 흑……. 이제… 이제 됐어요. 그만해도, 알아들어요.”
황보린은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해봤고, 처음으로 거절을 당했다.
강무진은 울먹이고 있는 그녀를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황보린이 고개를 들고 눈물을 흘리는 눈으로 강무진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흑……. 그 일이 끝나면… 그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때는…….”
강무진은 황보린이 그렇게까지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잠시 멍해 있다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흠, 알겠소. 그때가 되면 우리 다시 생각해 봅시다.”
강무진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더 눈물을 보이던 황보린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해요……. 제멋대로…….”
“아니오. 내가 오히려…….”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는데 황보린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난 후 가버렸다. 강무진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황보린이 건물 모퉁이를 돌자 황보란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잘했어, 내 동생. 이제 다 컸구나. 정말 잘했어.”
황보린은 황보란의 품에서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황보란도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한 사내가 서 있었다. 큰 키에 주위를 압도하는 기운을 풍기고 있는 이 사내는 북해신궁의 좌호법인 구혁상이었다. 그 구혁상의 앞에 두 명의 사내가 있었다.
한 명은 머리는 산발인 채 헐렁한 옷을 입고 가슴에서부터 목은 물론이고 얼굴의 반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 괴상한 모습이었다.
다른 한 명은 삐쩍 마른 체격에 얼굴이 길었으며, 긴 머리를 단정히 내렸는데, 인상이나 몸에서 은근히 뿜어내는 기운이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혁상의 앞에 덩치가 커다란 사내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설인대의 대주 마항달이었다.
“흐음……. 그래서 유무화를 죽이지 못했다는 건가?”
“…….”
마항달에게서 대답이 없자 질문을 했던 구혁상이 다시 물었다.
“유무화를 데리고 있는 자가 패왕이라고?”
“그렇습니다.”
“됐다. 네 잘못이 아니다. 조만간 이동할 테니 부를 때까지 가서 대기하고 있도록.”
“명.”
설인대의 대주 마항달이 크게 대답하며 일어나서 가버리자 구혁상이 혀를 찼다.
“쯧쯧. 다 좋은데 사람이 너무 우직해. 그나저나 어떻게 한다…….”
구혁상은 막상 중원으로 나왔으나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유무화를 죽이려던 암영대가 실패하고 오자 설인대를 보냈었다. 그런데 그들마저 실패를 하고 온 것이다. 거기다 유소호를 데리고 오던 자들도 실패를 했다.
“중원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겠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던 구혁상이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때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체구의 사내가 말했다. 그는 북해암영대의 대주로, 알려진 이름 없이 사람들은 그저 그를 인(人)이라고 불렀다.
“네가?”
“네. 패왕이라는 자에게 약간 흥미가 생기는군요. 마항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상대하기가 힘들 겁니다.”
“음…….”
아까 마항달이 보고한 바로는 그 패왕이라는 자는 마항달이 익힌 설인호원공과 맞먹을 정도의 호신기공을 익히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암영대주인 인의 말대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방법이 있나?”
구혁상의 물음에 인이 기분 나쁜 미소를 잠시 지었다.
“확인을 원하신다면 마항달부터 베어보겠습니다.”
“훗! 좋아. 믿겠다. 부하들이 실수한 것도 있으니 이참에 만회하도록.”
“명.”
인이 고개만 살짝 숙여 대답을 하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붕대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사내가 말을 꺼냈다. 그는 빙겸대의 대주 두아반이었다.
“위험한 자입니다. 깊이 믿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능력이 뛰어난 자다. 어쨌든 날 도와주고 있으니 그동안은 부려먹어야지. 그보다 유소호는? 아직도 남궁세가에 있나?”
“그렇습니다.”
“흐음. 그쪽으로는 내가 직접 가겠다.”
“……!”
구혁상의 말에 두아반이 살짝 놀란 기색을 보였다.
“괜찮다. 이젠 내가 움직일 때가 되었어. 내가 가서 아이를 데려오겠다.”
“따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너는 따로 할 일이 있다.”
구혁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뭔가 지시를 내리려고 하는데 수하 한 명이 급히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 봐.”
“둘째 마님께서 소궁주님과 함께 이곳으로 오고 계십니다.”
“뭐야?”
뜻밖의 보고에 구혁상이 놀라며 되묻자 수하가 다시 대답을 했다.
“지금 막 중원으로 들어섰다는 보고입니다.”
“음…….”
‘바보같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것이지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온단 말인가? 궁주가 이 사실을 알면 안 되는데…….’
구혁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하가 아직 보고가 다 끝나지 않았는지 말을 꺼냈다.
“그리고…….”
“또 뭐냐?”
“그것이… 설왕태상께서도 함께 오시고 있다고 합니다.”
“뭐야? 이런 바보 같은…….”
설왕태상은 북해신궁에서 최고로 강한 인물이었다. 궁주인 유양천도 그에게는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하지만 북해의 일은 물론이고 세상사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무공뿐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북해신궁의 궁주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대에 유양천이 피 튀기는 후계자 싸움에서 승리해 궁주가 되었을 때도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그에게 유양천은 태상이라는 직위를 내렸다. 태상이라는 직위는 궁주 다음가는 직위였으나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유명무실한 직위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에게 그런 지위가 내려졌다는 것은 그만큼의 힘을 갖는다는 이야기였다. 그에게는 수십, 수백여 명을 상대하고 남을 정도의 무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가 태상이 되는 것을 북해신궁의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유양천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끝내 그는 태상이 되었다. 그리고 태상이 되자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 후로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더구나 유양천의 둘째 부인과 다음 대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많은 그녀의 아들과 함께 말이다.
“네가 그리로 가야겠다.”
구혁상이 빙겸대의 대주인 두아반을 향해 그렇게 말하자 그가 짧게 대답했다.
“명.”
“그래. 네가 가서 그들을 이쪽으로 데려와라. 늦지 않게 어서 가도록.”
구혁상의 말에 두아반이 고개를 살짝 숙인 후에 사라졌다.
‘설마 그녀가 설왕태상을 끌어냈는가? 그래서 정이와 함께 다 같이 중원으로 온 것이군. 그렇다면 너무 위험한 수를 두었어. 궁주는 그렇게 만만한 인물이 아니거늘…….’
구혁상은 설왕태상이 나타남으로 인해 자신이 그간 세워두었던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 시작했다.
제갈세가에서 며칠이나 환대를 받으며 푹 쉰 강무진은 더 있다 가라는 그들의 부탁을 겨우 뿌리치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같이 여기까지 왔던 일행들에게 변동이 생겼다. 황보란과 황보린이 일이 있다면서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이다.
강무진은 그날 밤에 황보린과 나눈 이야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하은연의 지시로 화화 역시 일행에서 빠져 어딘가로 가버렸다. 마지막으로 제갈무용은 끝까지 따라가려고 떼를 쓰며 노력했으나 그의 어머니인 송요요가 눈을 부라리며 한마디 하자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 강무진과 왕이후, 하은연, 그리고 유무화 이렇게 네 명만이 가게 되었는데, 제갈웅이 소림사의 방장인 공지 대사에게 전할 서찰이 있다고 하면서 제갈용화를 혼자 동행시켰다. 제갈용화와 왕이후를 어떻게 한번 엮어보려는 뻔한 수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