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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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57화
157화
“아니. 남궁세가에 있다면 안전해. 소호와 친척이니까 해를 가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빙정이 목적이라면 어차피 소림사로 올 테니 거기서 기다려도 되겠지. 그러니 이대로 소림사로 가자.”
“그래요.”
하은연은 대답을 하며 가만히 강무진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그저 패왕이라는 신분 때문에 접근을 했었다. 그때만 해도 어벙해 보이는 것이 자신이 휘두르기에 딱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천하제일고수 중 한 명이라는 북리단천과 겨룰 때, 그 무공을 보고는 굉장히 놀랐었다. 그제야 왜 강무진이 패왕이라 불리는지 이해가 갔다.
더구나 그때 기억을 되찾은 이후로는 남다른 총기가 보였다. 정확한 상황 판단과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능력이 돋보였던 것이다.
이에 이제는 자신이 그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에게 휘두름을 당하는 것 같았다. 갈수록 강무진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와의 잠자리가 즐거웠다. 은근히 밝히는 강무진은 처음 그때와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훗!”
하은연이 강무진을 보며 혼자서 얼굴을 붉히고 있을 때였다. 강무진이 갑자기 손을 들어 일행들을 정지시켰다.
“무슨 일입니까, 대사형?”
“쉿! 누군가 있다.”
강무진이 약간 긴장하며 앞을 바라봤다.
지금 일행들은 말을 타고 관도를 천천히 이동 중이었다. 앞에 숲이 보이기는 했지만 나무가 높아 시야를 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에 사람들도 앞을 유심히 살폈지만 뭔가 특이한 것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갔군.”
“뭐였습니까?”
왕이후가 묻자 강무진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다. 살기(殺氣)가 느껴졌었는데……. 아니 살기라기보다는… 그렇지, 살기가 뒤섞인 광기(狂氣) 같은 거였다.”
강무진의 말에 일행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자신들은 그런 것을 전혀 잡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각자 조심해서 이동한다.”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앞에 태운 유무화를 왕이후에게 건네줬다. 혹시나 유사시에는 자신이 먼저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태워라.”
“네.”
유무화는 왕이후에게 가면서 불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걸 보고 강무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 테니 겁내지 말거라. 너는 내 부하다. 우리 팔공채의 산적들은 그 누구에게도 겁을 먹지 않는다. 유소호가 특히 그랬지. 그러니 너도 그래야지?”
“네.”
강무진의 말에 유무화가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두려움이 완전히 없어진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자 그의 뒤에 앉아 있는 왕이후가 말했다.
“대사형은 천하제일이다. 그가 하는 말이니 믿어도 된다.”
“네.”
왕이후는 조금 용기를 내어 대답하는 유무화를 보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이런 아들이 생기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인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도백광의 제자였던 장가연이었다.
‘잘 지내는지 모르겠군. 훗! 쓸데없는 생각을…….’
왕이후가 애써 생각을 떨쳐버리려 할 때였다. 갑자기 기괴한 소리가 크게 울리면서 하얀 그림자들이 빠르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조심해!”
그것을 보고 강무진이 크게 외치자 모두가 무기를 뽑아 들었다.
하얀 그림자들은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마치 숲을 완전히 하얀색으로 물들이려는 듯,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며 하늘을 하얀색으로 빽빽이 덮으며 나타났다.
강무진은 이 같은 광경을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팔공산에서 남궁세가의 사람들과 처음 만났을 때 팔공채의 식구들을 몰살시키고 온 이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 그때의 그 하얀 그림자들, 바로 북해신궁의 설인대였다.
설인대는 강무진 일행을 중앙에 놓고 원을 그리며 계속 움직이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 그 수가 100여 명이 넘었다.
그러던 그들이 일순간 모두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자 그들 중 한 사내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그 역시도 하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하얀색 망토를 몸에 두르고 있었으나 다른 이들에 비해 덩치가 배는 컸다.
“나는 북해신궁 설인대의 대주다.”
설인대의 대주가 그렇게 스스로 신분을 밝히자 강무진이 말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갔다.
“강무진이오.”
강무진이 설인대의 대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자 그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자신의 앞에서 기죽지 않고 이렇게 맞설 정도면 보통은 아니라 인정을 한 것이다.
“소궁주님을 모셔 가기 위해 왔다.”
설인대의 대주는 중원말이 익숙하지 않은지 어눌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럴 수는 없소.”
“소궁주를 데려가야 한다. 안 그러면 모두 죽이겠다.”
“그럼 한 가지 물어보겠소. 소궁주를 데려가서 보호하려는 것이오, 아니면 죽이려는 것이오?”
강무진의 말에 설인대의 대주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덩치답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는 미숙한 것 같았다. 의외의 질문에 설인대의 대주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서로 침묵하며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소궁주님을 데려간다.”
“대답이 먼저요.”
설인대의 대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생긴 것처럼 우직하고 순진한 면이 있는 사내였다. 그런 그의 반응에 강무진은 상대의 생각을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죽일 생각이군.’
“이대로 물러나시오. 굳이 피를 보고 싶지 않소.”
그때 설인대의 대주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여태까지 모두 멈춰 있던 설인대원들이 다시 원을 그리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해보겠다는 거군.”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설인대의 대주를 향해 단숨에 뛰어들었다. 그것과 동시에 설인대의 대주가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러자 강무진 일행을 중심에 놓고 원을 그리며 돌던 설인대가 사방에서 그들을 향해 쇄도했다.
“온다!”
왕이후가 크게 외치면서 도를 움켜잡았다. 그 바로 옆에서 황보란과 황보린 자매가 똑같이 쌍검을 뽑아 들고 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뒤쪽에는 제갈무용이 봉을 적들에게 겨누고 있었고, 그 옆에서 하은연과 화화가 짧은 비수를 양손에 들고 있었다.
“하아앗!”
파지지직!
퍼퍼퍽!
싸움은 왕이후의 뇌전폭풍도에서 뇌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인해 네 명의 설인대가 몸을 떨며 나가떨어졌다. 다수를 상대할 때 사용하는 뇌전폭사(雷電爆死)란 초식이었다.
왕이후는 그 초식을 연달아 세 번이나 펼쳤다. 처음부터 그들을 몰아붙여 겁을 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자신에게 그나마 좀 덜 덤벼들 테고 그러면 그만큼 자신의 뒤에 있는 유무화가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파지지직!
콰콰쾅!
“크아악!”
“으아아악!”
왕이후의 연이은 공격에 설인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때 네 명의 설인대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왕이후를 덮쳐갔다. 다른 때 같으면 왕이후도 지체 없이 뛰어올라 그들을 모두 날려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유무화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에 그들의 공격을 힘으로 모두 받아내며 튕겨버렸다.
“흐아앗!”
파파팍!
“위험해요!”
그때 하은연이 외침과 함께 단검 세 개가 왕이후의 앞쪽을 향해 날았다. 그러자 앞쪽에서 두 사람이 겹쳐서 공격해 들어오던 설인대가 그것을 쳐내면서 뒤로 물러났다.
하은연이 그렇게 왕이후를 도와주기 위해 잠시 몸을 빼자 화화는 그런 하은연을 보호하기 위해 진땀을 뺐다. 화화의 실력으로는 설인대 두 사람을 상대하기에도 벅찼다. 그런데 동시에 여섯 명이 덤벼들자 소매 속에 있는 비수들을 모두 털어서 그들을 향해 날렸다. 그것이 그녀가 가진 최고의 절기였다.
쉬쉬쉬쉭!
10여 개의 비수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자 설인대는 너무나 쉽게 그것들을 쳐내거나 피했다. 그러나 그 잠깐의 사이에 하은연은 이미 왕이후를 돕고 난 후에 다시 그들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퍼퍼펑!
하은연과 설인대의 손이 엉키면서 두 사람이 동시에 뒤로 튕겨 나갔다. 방금 하은연과 손을 엮은 설인대는 설인대의 부대주였기 때문에 무공이 강했다. 그는 단번에 강무진의 일행들 중 하은연과 화화가 제일 약하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녀들을 공격했던 것이다.
하은연은 모두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부대주이고, 그렇게 무공이 강하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챌 수가 없었다. 만약 그러한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맞부딪치지 않고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하은연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자 그녀를 보호하던 화화가 상대의 장력에 어깨를 맞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아악!”
설인대의 부대주는 그 여세를 몰아 다시 하은연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때 어디에선가 봉이 교묘하게 파고들며 그의 손을 쳐냈다.
파파팍!
“여긴 내가 맡겠소!”
제갈무용이었다. 제갈무용이 봉을 돌려 상대를 위협함과 동시에 하은연과 화화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 제갈무용을 향해 설인대의 부대주가 빠르게 접근하며 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동서남북 네 방향을 맡아서 싸우던 강무진 일행은 그렇게 화화와 하은연이 밀려버리자 당장에 세 방향으로 줄어들면서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황보란과 황보린은 뛰어난 합격으로 상대들을 몰아붙이고는 있었지만 워낙에 적의 수가 많아 자신들의 몸만 지켜내기에도 급급해졌다.
그때였다. 어디에선가 힘찬 기합 소리가 울렸다.
“흐아아앗!”
콰앙!
강무진이 상대를 향해 힘껏 주먹을 날리자 설인대의 대주가 가슴에 그 주먹을 맞고 뒤로 주르륵 밀려나갔다.
“흥!”
설인대 대주는 잠시 콧방귀를 한 번 뀌고는 강무진을 향해 한걸음에 거리를 좁히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것을 강무진이 양팔을 교차시켜 막아냈다.
콰앙!
“크윽!”
제대로 막아냈음에도 강무진의 몸은 뒤로 무려 3장 가까이 발자국을 남기며 밀려났다. 그렇게 밀려나는 중에 강무진이 뒷발로 땅을 박차며 설인대의 대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흐아아앗!”
콰앙!
위에서 휘두르는 강무진의 주먹을 팔로 막자 그 힘 때문에 설인대 대주의 무릎이 살짝 굽혀졌다. 그 상태에서 강무진이 내려서자 설인대의 대주가 주먹을 아래에서 위로 힘껏 후려쳤다.
콰앙!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강무진이 다시 양손을 교차시켜서 막아내기는 했지만 방금 날아왔던 그곳으로 반대로 튕겨져 날아갔다.
강무진은 땅에 착지를 하는 순간 다시 설인대의 대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퍼억!
“흐아앗!”
“크아아!”
퍼억!
콰앙!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 강무진과 설인대의 대주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확히 한 대씩 주고받고 있었다. 그때마다 그들의 발자국이 땅에 깊숙이 박히며 흔적을 남겼다.
강무진이 금강불괴신공을 익힌 것처럼 설인대의 대주도 설인호원공(雪人護原功)이라는 호신기공을 익히고 있었다.
설인호원공은 자신의 몸을 마치 얼음과 같이 단단하게 해서 적의 공격을 버티어 내는 무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강무진의 화기가 담긴 주먹을 수없이 몸에 맞으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강무진 역시 설인대 대주의 공격을 몸으로 막아내면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방어는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혼신을 다한 공격뿐이었다.
처음에 두 사람이 그렇게 맞부딪칠 때만 해도 설인대나 왕이후를 비롯한 강무진 일행은 서로 간에 싸우느라 여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