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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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51화
151화
“식사는 뭐로 하시겠습니까?”
“이 집에서 가장 잘하는 걸로 두어 가지 내오고 술 또한 최고로 좋은 것으로 가져오너라.”
“헛!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주문을 받아서 인사를 넙죽하고 가버리자 노인을 향해 말했다.
“놈들이 긴장감이 없는 것 같군요. 패왕성에서 그들을 찾기 위해 혈안인데 버젓이 객잔에 들어오다니.”
패왕성에서 소란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강무진이 쫓아간 사람들 말고 다른 사람들을 쫓았다. 그러다 자신들이 쫓고 있는 사람들이 유소호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기뻐하며 일정 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흘. 뭔가 생각이 있겠지.”
“그들이 여태까지 이동한 경로로 보아 아마도 안휘성을 지나칠 것 같습니다.”
“음.”
“크큭. 안휘성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들을 쫓는 것도 끝입니다.”
남궁종상이 입가를 말아 올려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나악태도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녀석. 북리단천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거냐?”
“그자는 이미 다른 쪽을 쫓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소희가 천검대원들과 함께 다른 쪽을 뒤지고 있으니 그자도 그쪽에서 헤매고 있을 겁니다. 훗! 그리고 북해신궁의 궁주가 아무리 유소호를 총애한다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뒤를 이을 유무화를 더 원할 겁니다. 그걸 알고 있는 자들은 모두 북리단천과 마찬가지로 유소호보다는 유무화를 쫓고 있습니다.”
“헐! 그걸 알면서 너는 왜 유소호를 쫓고 있는 것이냐?”
“쉽기 때문이죠. 애초에 두 아이 중 누구 한 명만 데려온다 해도 빙정을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유소호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클클. 갈수록 네 어미를 닮아가는구나.”
“하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때 점소이가 음식과 술을 내오자 두 사람의 대화가 그쳤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점소이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가자 남궁종상이 다시 말을 꺼냈다.
“느긋하게 씻고 가려는 모양이군요.”
2층 객잔의 방 앞에 있는 복도를 분주하게 오가며 물을 나르는 점소이를 보고 남궁종상이 그렇게 말하자 나악태가 술잔을 입에 대며 말했다.
“시간이 좀 있으니 느긋하게 기다리자꾸나.”
“네.”
그때였다. 갑자기 2층에서 소란이 일더니 방문이 부서지면서 한 사내가 뛰쳐나와 2층의 난간에 올라섰다. 그러자 뒤이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두 명의 사내가 따라 나오며 사내를 향해 쌍장을 휘둘렀다.
“하앗!”
퍼퍼펑!
콰직!
화기를 쓰는 두 사내의 공격에 난간이 부서져 나갔고 그 자리에 있던 사내는 뒤로 날아올라 1층으로 내려섰다.
그때 2층에서 유소호의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무례한 것들! 이게 무슨 짓이냐?”
“잡아라!”
“하앗!”
콰콰콰쾅!
“그자를 잡아!”
2층에서 그렇게 서로 소리를 지르며 소란이 일자 1층의 구석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던 남궁종상과 나악태가 자리를 박차고 단번에 2층으로 날아올랐다. 그런 그들 사이로 사내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크아아악!”
사내의 어깨는 이 무더운 날씨에도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서리가 하얗게 서려 있었다. 유소호의 극음빙장에 당한 상처였다.
그때 유소호가 씻다가 그대로 나왔는지 발가벗은 차림으로 방 밖으로 뛰쳐나와 복도의 난간에 올라서며 뒤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화씨세가의 화룡녀와 세 명의 사내가 동시에 따라 나와 유소호를 둘러쌌다.
“이게 무슨 짓이냐?”
유소호가 화룡녀를 비롯한 화씨세가의 사내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화룡녀는 대답 없이 무조건 유소호에게 손을 뻗었다.
“어림없다!”
유소호가 그렇게 외치며 화룡녀의 손을 후려치려고 했다. 그러나 화룡녀의 손이 그것을 교묘하게 피하며 유소호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유소호의 손을 잡아 꺾으려고 했다.
유소호는 어깨를 잡힌 상태에서 다른 쪽 팔마저 제압을 당할 것 같아지자 그대로 몸을 뒤로 확 젖혀버렸다. 그러자 유소호의 몸이 난간에서 1층으로 떨어져 내렸고, 화룡녀는 그런 유소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악!”
유소호가 어깨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때였다. 누군가가 유소호의 어깨를 잡고 있는 화룡녀의 손목을 잡아 가볍게 비틀자 화룡녀가 유소호를 놓쳐버렸다. 이에 화룡녀가 놀라서 자신의 손목을 비튼 사람을 바라봤다. 그러자 괴성 나악태의 모습이 보였다.
“아!”
생각지 못한 나악태의 출현에 화룡녀가 놀란 얼굴을 할 때 남궁종상은 위에서 떨어지는 유소호를 받아 든 상태였다.
“괜찮으냐?”
남궁종상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묻는 말에 유소호가 살짝 인상을 썼다.
“나를, 나를 내려놓아라.”
“지금은 위험하니 이대로 있어라.”
남궁종상이 그렇게 말할 때 아까까지 서로 싸우던 화씨세가의 사내 두 명과 그들과 싸우던 사내가 동시에 남궁종상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을 2층에서 보고 있던 나악태가 코웃음을 치며 난간을 손으로 후려치자 난간이 순식간에 부서지며 그 파편들이 남궁종상을 공격하는 사내들을 향해 날아갔다.
“헛! 피해라!”
사내들이 놀라서 그것을 피하려고 했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퍼퍼퍽!
“크아아악!”
“으아아악!”
사내 세 명이 그렇게 단번에 당하고 있을 때 방 안에서 한 사내가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주위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가 창을 통해 몸을 날렸다. 나악태는 그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굳이 쫓지 않았다. 어차피 목적은 유소호였고 남궁종상이 그 유소호를 손에 넣은 이상 귀찮게 더 움직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화씨세가의 계집이더냐?”
나악태가 그렇게 말하면서 잡고 있던 화룡녀의 손목을 놓아주자 화룡녀가 잠시 손목을 주무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나와 싸울 생각이 아니거든 이대로 가거라.”
나악태의 말에 화룡녀가 잠시 인상을 굳히더니 곧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가시가 있는 말이었다. 그렇게 말한 화룡녀가 사람들을 데리고 가버리자 나악태가 코웃음을 쳤다.
“흥!”
그때 아래층에서 유소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악태가 그쪽을 바라봤다.
“내려놓으라 하지 않느냐?”
“하! 나 참……. 알았다, 그래. 내려놓으마. 아무리 그래도 옷은 입어야지. 어린 아가씨가 그렇게 벗고 있으면…….”
유소호를 내려놓고 말을 하던 남궁종상이 뭘 봤는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제야 유소호도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몸을 날려 2층의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런 유소호의 뒤를 따라 몸을 날리던 남궁종상이 나악태의 부름에 멈칫했다.
“무슨 일이냐? 그리 놀란 표정을 짓고.”
“네? 아! 아닙니다.”
‘이럴 수가……. 여자아이가 아니라 남자아이였단 말인가?’
그랬다. 유소호에게는 여자에게는 없는 뭔가 분명히 달려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보고입니다.”
“뭐냐?”
북해신궁의 좌호법인 구혁상이 보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묻자 수하가 잠시 망설이다가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무사히 패왕성에서 빼왔다고 합니다.”
“좋은 소식이군. 유무화는? 처리했느냐?”
“아닙니다. 지금 호남성에서 호북성으로 이동 중이라 합니다.”
“패왕성을 벗어났는데 어째서 바로 처리하지 않았느냐?”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바로 처리하겠다고 보고가 왔었습니다.”
“음……. 그럼 유소호는?”
“그것이……. 성 밖으로는 무사히 데리고 나왔으나 도중에 다시 누군가가 데려갔다고 합니다.”
“응? 중원인들의 짓이겠군. 상관없다. 유소호는 사실 찾든 못 찾든 큰 상관이 없지. 중요한 것은 유무화다. 그 아이만 확실히 처리하면 된다.”
그랬다. 어차피 구혁상이 목표로 했던 것은 유무화였다. 유소호는 자신들의 손으로 찾아오면 좋기는 하지만 유무화의 처리가 확실해진 지금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역시 암영대를 움직이기를 잘했군.’
구혁상이 자리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보고가 끝났음에도 가지 않고 머뭇거리며 서 있던 수하가 입을 열었다.
“보고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수하의 말에 차를 마시던 구혁상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냐?”
“그… 유소호가… 남자라고 합니다.”
“뭐야?”
구혁상은 어찌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들고 있던 찻잔을 놓칠 뻔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유소호가 남자라니!”
“확실한 보고입니다. 틀림없이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때 구혁상의 머리에 뭔가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전에 봤던 궁주인 유양천의 다섯째 부인 남궁가영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녀답지 않은 그 여유로운 모습이 바로 이것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랬던가? 그래서 아이가 없어졌는데도 그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던 것인가?’
“중원에 나가 있는 암영대에게 유소호를 찾으라 일러라. 그리고 궁주님은 어디에 계시더냐?”
“하남성의 소림사에 계시다고 합니다.”
“설인대주와 빙겸대주를 불러와라. 내가 직접 중원으로 가겠다.”
“명!”
그렇게 수하가 사라지고 나자 구혁상은 속으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보기 좋게 당했군. 허나 몰랐으면 모르되 밝혀진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황보란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제와는 다르게 하은연이 강무진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이 묘하게 신경에 거슬렸던 것이다. 가끔 둘이 눈이 마주치면 강무진은 어색해하며 뒷머리를 긁적였고 하은연은 그윽한 눈빛으로 강무진을 바라보는데 분명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더 화가 나는 것은 동생인 황보린의 태도였다. 그날 월궁루에서 같이 술을 마신 이후로 황보린이 강무진을 대하는 태도가 이상했다.
황보린은 이유도 없이 강무진 주위를 맴돌면서 힐끔힐끔 그를 보다가 괜히 얼굴을 붉혔다. 어쩌다가 강무진과 대화를 하게 될 때면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로 대화를 했다. 황보린이 원래 말도 조금 없고 다소곳한 곳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황보린의 태도를 보면서 황보란은 설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은연이 강무진과 묘한 친밀감을 보이면서 서로 끈적끈적한 뭔가가 느껴지자 황보린은 강무진을 볼 때마다 울먹울먹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트릴 기세였다.
그걸 보고 황보란은 동생인 황보린이 강무진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치잇! 바보 같으니라고. 무공과 신분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리 잘생긴 것도 아니고, 남자다운 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술 먹으면 그렇게 개가 되는 녀석이 뭐가 좋다고…….’
황보란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앞에서 가고 있는 강무진을 바라봤다. 강무진은 어수룩한 모습으로 뒷머리를 긁으면서 하은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강무진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황보란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 있었다.
‘흐음…….’
강무진은 패왕이라는 대단한 신분과 무공이 그렇게 뛰어남에도 인간적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어딘가 모자라면서도 어수룩해 보이는 모습이 여인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것이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자신이 보호해 줘야겠다는 모순을 안고 그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때 하늘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일행의 머리 위에서 몇 바퀴 돌더니 곧 하은연에게로 내려앉았다. 그러자 하은연이 비둘기의 다리에 매달려 있는 작은 통을 열고 안에서 쪽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단 두 글자만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