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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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77화
여주는 무림맹을 일컬음이다. 그렇다면 무림맹에 큰일이 생겼을 거라는 뜻.
또한 그로 인해서 암천에 대한 공격도 중지되었을 거라는 말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 일을 꾸민 사람은 저 늙은 말코겠지.
“과연 진인다우십니다.”
“무슨 소리. 탁 시주는 이미 알아서 움직였지 않은가? 그걸 보면 노도도 이제 늙은 것 같아. 허허허허.”
탁무겸은 허허로운 웃음을 짓고 있는 청산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무서운 늙은이다. 언제 그런 수작을 부려놨단 말인가.
‘한 산에서 함께 살아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늙은이야.’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문도들의 거처를 근처에 잡겠습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적당한 사찰이 있더군요.”
“그렇게 하게나.”
청산자도 푸근하게 느껴지는 표정으로 흔쾌히 대답했다.
남의 뒤통수에 칼을 꽂는 놈들은 멀리 두는 것보다 가까이 두는 게 낫다. 그래야 무슨 일이 생기면 먼저 뒤통수를 칠 수 있으니까.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청산자는 눈빛을 한번 반짝이고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어차피 함께 하기로 했으니 탁 시주가 한 가지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네.”
“말씀해보시지요,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내기를 방해하려는 늙은이가 하나 있네. 들었는지 모르겠네만, 그 늙은이로 인해서 용환종을 잃었지. 해서 구천성을 치기 전에 그 늙은이부터 제거하려고 하네.”
담담히 입을 여는 청산자의 눈에서 푸른빛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탁무겸은 알고도 모른 척 말을 받았다.
“그런 일이라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지요.”
* * *
장천운은 무 노인에 대한 수소문을 우문각과 이응에게 맡겨놓고 사마경 호위에만 신경 썼다.
언제 또 탁무겸이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철무마저 내상을 입은 상황에서 자신마저 없으면 사마경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 때 우문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양각동에서 동방 노인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래요?”
“일단 흔적을 계속 추적하라 했으니 곧 어떤 소식이든 올 거다.”
하지만 장천운은 소식이 올 때까지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혼자?”
“차라리 그게 편합니다.”
사마경은 그의 외출을 허락해주는 대신 조건을 걸었다.
“이번에 만나면 꼭 아버지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알아와.”
“예, 소성주.”
“청산궁과 암천문이 움직였다는 말이 들리면 즉시 돌아오고.”
“알겠습니다.”
장천운은 일단 환마와 패왕 등에게 사마경의 안전을 부탁한 후 구천성을 나섰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독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치 예전에 불안감을 느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 * *
양각동(羊角洞)은 동문 쪽 마을과 남문 쪽 마을이 겹치는 지역이었다. 구천성의 방어선 안쪽.
미로와 같은 골목 안에는 마도에서도 지저분한 일을 하고 도망친 자, 잔인함 때문에 공적으로 취급받은 자들이 깊숙이 숨어서 지냈다.
구천성에서도 그들을 알고 있지만 굳이 건들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구천성은 정파도 아니지 않는가.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급할 때는 구천성의 전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양각동에 도착한 장천운은 골목 깊숙이 들어갔다. 비령각 무사 둘이 그와 동행했다.
골목으로 삼십여 장쯤 들어가자 이층으로 된 주루가 보였다.
“그자들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곳이 저 주루입니다.”
비령각의 조장이 주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백골루. 주루의 이름치고는 기괴했다.
그런데 장천운이 백골루로 들어가려고 할 때 안쪽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와장창! 퍼벅!
“이 늙은이가 어디서!”
“크억!”
고함소리, 비명소리가 뒤범벅되어서 들려왔다.
장천운은 이마를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주루 안쪽은 난장판이었다.
마의를 입은 노인과 청년 하나가 삼십대 장한 대여섯 명과 대치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술병과 요리 그릇이 깨져서 흩어져 있고, 두 사람이 바닥을 박박 기고 있었다.
회색 머리카락이 반쯤 얼굴을 가린 노인은 소매가 양손을 덮고 있었는데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했다.
노인보다는 오히려 약간 뒤쪽에서 검을 들고 있는 청년에게서 더 날선 기세가 흘러나왔다.
반면 장한들은 분노의 불길을 뿜어냈다.
“흥! 어디서 감히 난동을 부린단 말이냐?”
“늙은이가 죽을 때가 되니 미쳤나 보군.”
노인은 장한들이 뭐라 하든 태연했다.
“정말 그런 사람을 못 봤단 말이지?”
“우리가 그런 놈을 어떻게 안단 말이냐?”
“여기서 봤다고 하던데.”
“모른다고 했잖아! 뭐해? 저 늙은이의 목을 따버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장한이 버럭 소리쳤다.
장한 중 하나가 노인을 향해 칼을 내밀었다. 노인이 짜증난 표정으로 오른손을 저었다.
촤르르륵.
소매에서 쇠사슬이 뻗어 나오더니 장한의 목을 휘감았다.
노인이 손을 한쪽으로 홱 뿌리자 장한의 몸이 붕 날아가서 벽에 처박혔다.
“벌레 같은 놈들이 귀찮게 하는군. 정 죽고 싶다면 다 죽여주마.”
그에게 양각동의 흑도무사들은 진짜 벌레나 다름없었다.
탁무겸이나 청산자 쪽에서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채는 게 걱정되지만 않았다면 아마 수백 명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십대 중반의 장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악이 받칠 대로 받친 그는 저승에 한발을 내딛은 것도 모르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늙은이!”
바로 그때.
“잠깐! 멈추쇼!”
장천운이 냉랭히 소리쳤다.
삼십대 중반의 장한이 장천운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냉랭한 투로 물었다.
“구천성 무사들인가?”
“알았으면 됐어. 죽고 싶지 않으면 물러서.”
“흥! 구천성에서 언제부터 양각동의 일에 관여했지?”
“당신들 생각해서 말리는 거야. 어디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저런 사람을 건드려?”
“먼저 시비를 건 사람은 저 노인이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는 법이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당신들 능력으로는 저 노인의 머리카락 하나 건들지 못해.”
“여긴 양각동이야. 실력만이 전부가 아닌 곳이지. 너도 죽고 싶지 않으면 상관하지 말고 그냥 꺼져라.”
장한이 거들먹거리며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장천운은 어이가 없다보니 헛웃음만 나왔다. 그는 장한들을 굳이 말로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다.
뒷골목에 사는 자들은 말보다 힘으로 이해시키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했다.
장한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은 그가 손을 뻗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시간조차 없었다. 뿌연 그림자가 죽 늘어지는가 싶더니 이 장 거리가 찰나에 좁혀지고, 그의 손에 장한의 목이 잡혔다.
목을 잡은 그는 장한을 와락 잡아당겼다.
“죽고 싶지 않으면 꺼지라고?”
얼굴이 시뻘게진 장한은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 그…… 켁켁…….”
다른 장한들은 자신들 중 가장 강한 자가 손도 못써보고 당하자 주춤거리며 한두 걸음 물러섰다.
장천운은 손에 잡힌 장한을 흔들어대며 냉랭히 다그쳤다.
“그 동안 본 성이 가만히 놔두니까, 양각동이 대단해서 그런 줄 알았나 보지?”
그때 노인이 말했다.
“그놈에게 아직 물어볼 것이 남아 있다. 죽이진 마라.”
장천운은 노인을 돌아다보았다. 움켜쥐고 있는 장한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장천운과 노인의 눈이 마주쳤다.
노인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뭐, 뭐야, 이 놈?’
눈곱이 좀 끼고, 오랜 뇌옥 생활로 약해졌다하나 사람 보는 눈까지 나빠진 것은 아니었다.
약간 큰 키, 탄탄해 보이는 체구, 겉으로는 그저 ‘양각동을 헤집고 다닐 정도의 강심장을 지닌 젊은 놈’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껍데기와 내면은 전혀 달랐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거늘, 자신의 눈으로도 넓이와 깊이를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누굴 찾으시는가 보지요?”
장천운이 먼저 물었다.
노인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하지만 곧 작심하고 사실대로 말했다.
“체구가 꼭 너만 한 사람을 하나 찾는다. 나이는 쉰 살이 다 되었지.”
“이름이 뭡니까?”
장천운이 본 노인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평범하기는커녕 무서운 기를 품고 있었다.
“너는 알 거 없다.”
툭, 쏘아붙인 노인이 장천운의 손에 잡혀 있는 장한을 보며 물었다.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정말 모른단 말이냐?”
“그, 그렇…… 컥컥컥…….”
지금 상황에서도 거짓말할 정도의 대가 센 자들이 아니었다. 눈빛만 봐도 거짓 정도는 판단할 수 있었다.
노인은 그래서 더 실망이 컸다.
“빌어먹을, 겨우 찾는가 싶었더니…….”
투덜거린 노인은 몸을 돌렸다.
장천운이 노인을 바라보다 불쑥 물었다.
“혹시…… 그 사람이 체구가 큰 중년인과 함께 다니지 않습니까?”
범상치 않은 노인이 자신과 같은 장소에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본래 이곳에 있던 사람이 아닌 외부에서 온 사람을.
설령 아니라 해도 밑져봐야 본전이었다.
그런데 막 걸음을 옮기려던 노인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그렇다고 들었다.”
장천운은 목을 잡고 있던 장한을 한쪽으로 던졌다.
장한의 몸뚱이가 장한의 동료들을 향해 날아갔다. 장한 둘이 황급히 손을 뻗어서 날아드는 자를 받더니 주르륵 밀려나서 탁자를 무너뜨리며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도 장천운의 눈은 노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사람과 어떤 사이십니까? 왜 그 사람을 찾는 거죠?”
“내 개인적인 사정이니 더 알 것 없다.”
노인은 말이 더 길어지기 전에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객잔 입구를 통해서 몇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 중 사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조용히 지냈더니, 양각동을 우습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생겼군.”
매부리코에 입술이 얇은 자였다. 눈도 칼날처럼 가늘게 찢어져서 꽤 독하게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장천운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조용.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이니까, 거기서 기다리쇼.”
“훗, 오랜만에 별 웃기는 소리를 다 들어보는군. 새파란 애송이가 구천성 옷을 입으니 보이는 게 없나?”
“야적살 윤서문. 상선에서 일가족 스물두 명을 참혹하게 죽이고 양각동으로 숨어들어온 자, 맞나? 개처럼 끌려가서 죽고 싶지 않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있으쇼. 나는 애들까지 죽이는 잡것들은 사람새끼 취급하지 않으니까.”
“……뭐? 너 이 새끼…….”
찰나였다. 장천운이 매부리코 중년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용히 하라니까.”
뇌정무극수가 삼 장 거리를 격하고 중년인을 덮쳤다.
중년인, 윤서문은 눈을 치켜뜨고 황급히 대항하려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뇌정무극수가 그의 손과 가슴을 동시에 두들겼다.
콰광!
“크억!”
와장창!
강호에서 절정고수로 소문난 야적살이 훌훌 날아가서 탁자를 부수며 나뒹굴었다.
옆에 있던 자들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꼼짝도 하지 못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시간조차 없었다.
장천운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노인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말씀하기 뭐하시면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요.”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신이 잘못보지는 않은 듯했다. 앞에 있는 젊은 놈은 강할 뿐만 아니라, 성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그도 장천운에 대해서 호기심이 동했다.
그들이 객잔을 나서려 하자, 입구 쪽을 틀어막다시피 하고 있던 양각동의 무사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장천운이 그들 곁을 스쳐서 지나가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윗사람에게 전하쇼. 앞으로 양각동은 철저히 구천성의 관리를 받게 될 거라고. 싫으면 떠나든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겨우 중심을 잡은 윤서문이 이를 갈듯이 말했다.
“구천대령주께서는 그 일을 허락하지 않으실 거다.”
“대령주가? 흠, 그 양반이 딴 주머니를 챙기고 있었나? 들어가면 단단히 따져봐야겠군.”
구천성 대령주조차 가볍게 생각하는 장천운의 말투에 윤서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가 누군데 그분을…….”
“나? 장천운. 흑월대를 맡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