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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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46화
146화
그 방이 바로 이 방이었는데, 처음에 이 방에 올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엉망이지는 않았다. 그때는 정말, 황궁이 부럽지 않게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더구나 차려져 있는 음식들은 오대세가 중 하나인 황보세가에서 자란 그녀조차도 처음 보는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했다. 또 술은 어찌나 오래되고 좋은 것인지 그 향기만으로도 취할 정도로 달콤하니 좋았다.
그것을 처음에는 강무진과 제갈무용이 주거니 받거니 했었다. 황보란과 황보린은 그저 가끔씩 잔을 비웠을 뿐이다. 그런데 술이 생각보다 독했다. 향과 맛에 가려 그 독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흐르자 강무진이 점점 이상해져 갔다. 갑자기 옛날이 좋았다느니 하면서 구소단인지 십소단인지 하는 형님을 찾지를 않나, 보타사에 가면 자신을 기다리는 꽃 같은 여인들이 있다고 하지를 않나, 그러다가 갑자기 펑펑 울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왜 먼저 죽었냐고 욕을 하며 그 독한 술을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는 말도 아니었다. 그나마 좀 버티던 제갈무용까지 완전히 끈 떨어진 연처럼 강무진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결국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나 다른 방으로 가려던 황보란과 황보린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기 시작하더니 그때부터는 완전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아니 전설의 패왕이라는 자가 술 먹으면 그렇게 개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더구나 노는 꼴을 보니 한두 번 그렇게 놀아본 솜씨가 아니었다. 웃긴 것은 강무진과 제갈무용이 그렇게 난리를 치는 데 장단을 맞춰주었던 자신이었다.
같이 술을 병째로 들이켜는 것은 물론이요, 상 위로 올라가 옷을 벗어던지다가 검이 거치적거리자 두 개 다 뽑아서 하나는 상 위에 그대로 꽂아놓고 다른 하나는 멋지게 날려서 천장에 꽂아버렸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신나서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다.
그랬다. 무인의 생명이라는 검을 그렇게 던져놓은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얌전하던, 자신과는 다르게 평소에 아무리 대단하고 멋있는 남자가 와도 흔들리지 않던 황보린마저 같이 어울려서 놀았던 모습이 생각나자 황보란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끄응, 미쳤지. 미쳤어. 내가 어쩌다가…….’
황보란이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사정없이 흔들고 있을 때였다.
“끄응……. 무울…….”
황보란은 강무진이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뜨려고 하자 화들짝 놀라며 그대로 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어제의 일을 생각하니 낯이 뜨거워서 도저히 강무진을 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뭔가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지금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누운 자세가 황보린이 강무진의 왼쪽 팔을 베개 삼아 배고 품에 안겨 있는 모습과 완전히 똑같았던 것이다. 다만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일 뿐이었다.
‘혹시 내가 밤새 이러고 잔 건가? 설마!’
황보란은 다급한 마음에 자신의 아랫도리를 확인해 봤다. 다행히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넘지 않은 듯했다.
‘휴우…….’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 강무진이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지자 재빨리 다시 자는 척을 했다.
강무진은 부스스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자신의 양쪽 팔에 뭔가 묵직한 것이 느껴지자 일어나지 못하고 고개만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양쪽을 번갈아 가면서 보자 황보란과 황보린이 옷을 거의 반쯤은 벗은 상태로 품에 안겨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강무진은 그냥 팔을 확 빼버린 후에 귀찮다는 듯이 황보란과 황보린을 발로 차서 옆으로 굴려버렸다.
‘크윽! 이 자식이 정말!’
강무진의 발에 차여 꼴사납게 옆으로 굴러가던 황보란은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이럴 때 눈을 뜨면 더 낯 뜨거울 것 같아서 속으로 꾹 눌러 참았다.
그렇게 두 사람을 짐짝처럼 밀어버린 강무진이 여전히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 앉으며 방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 허리띠가 풀어져 있는 자신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서 벅벅 긁었다.
‘크으으! 무슨 짓거리냐?’
황보란은 지금 강무진 쪽으로 얼굴이 향해 있었기 때문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강무진의 행동에 욕지거리가 나오려고 했으나 꾹 참았다.
잠시 그렇게 여기저기를 벅벅 긁던 강무진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을 실눈을 뜨고 보고 있던 황보란은 이어서 그가 하는 행동에 경악을 했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난 강무진이 벽 쪽으로 비실비실 가더니 갑자기 바지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이어서 세찬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서, 설마……. 크으……. 저 자식이 정말 그 전설의 패왕이냐?’
당장에라도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순간 강무진이 볼일을 다 보고 갑자기 휙 돌아서자 황보란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완전히 감은 것은 아니었다. 보일 듯 말 듯 실눈을 뜨고 있었다. 그런 황보란의 눈에 강무진이 오줌이 좀 튀었는지 손을 탈탈 털면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더러운 놈!’
강무진은 그렇게 다가와서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상 위에 있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어어어…….”
물이 좀 들어가자 시원했던지 이상한 소리를 낸 강무진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황보란과 황보린을 번갈아 가며 내려다봤다. 그러자 황보란은 갑자기 몸에 싸하니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강무진이 갑자기 황보린 위에 올라타더니 옷을 마구 벗기면서 뭔가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참지 못한 황보란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강무진의 턱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야이! 미친놈아!”
퍼억!
“끅!”
“아야야야!”
황보란은 강무진을 차서 날려버리기는 했으나 마치 돌덩어리를 찬 것 같이 발에 통증이 왔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소리쳤다.
“이 자식! 가만두지 않겠다!”
황보란은 한쪽 발을 쩔뚝거리며 상으로 가 그 위에 꽂아두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강무진을 향해 몸을 돌리자 거품을 물고 큰대자로 쓰러져 있는 강무진의 모습이 보였다.
“꺄아아악!”
그것을 보고 황보란은 급히 다시 몸을 돌렸다. 황보린 위에 올라타고 황보린의 옷을 벗기면서 자신의 바지도 마구 끌어내리던 강무진이 황보란의 발에 걷어차여 날아가면서 바지가 벗겨져 있었던 것이다.
“파, 파렴치한 놈!”
황보란은 못 볼 것을 본 듯, 씩씩거리면서 방문을 부숴버릴 듯이 열어젖히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앞에 작은 정원이 있는 것이 보였다. 한쪽에는 바윗돌이 쭉 둘러져 있는 작은 원형의 연못이 있었고 그 옆에는 잘 가꾸어진 나무가 서너 그루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홀딱 벗고 그 나무 위에 매달려서 자고 있는 제갈무용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황보란의 이성의 끈이 툭 끊어져 버렸다.
“꺄아아아! 이 변태놈들아!”
황보란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날뛰자 주위의 방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나왔다. 그리고 어제 일행들을 안내하던 여인이 사내 서너 명과 함께 급히 달려왔다.
그러나 그들은 황보란을 보고 놀라서 멈칫했다. 옷을 걸친 듯 만 듯, 그런 야한 차림의 황보란이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며 사정없이 제갈무용을 패대기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여인이 놀라며 황보란과 제갈무용을 잠시 보다가 고개를 돌리자 그들이 어제 묵었던 방이 보였다. 그곳에서는 마치 굼벵이가 기어가듯 강무진이 꾸물꾸물 황보린에게 기어가 올라타며 다시 그녀에게 뭔가를 하려는 것이 보였다.
그때 제갈무용이 여인의 눈앞을 지나쳐 방문을 부수고 날아가 강무진과 부딪치며 두 사람이 함께 벽에 처박혀 버렸다. 황보란이 제갈무용을 던져버린 것이다.
“헉! 헉!”
씩씩 대며 또다시 방으로 뛰어드는 황보란을 보면서 여인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끙. 도대체…….”
과연 그자가 정말 전설의 패왕이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 방 안에서 처참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아아악!”
“커어어억!”
여인은 조심스러웠다. 어제 강무진이 패왕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더 긴장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황보란이 살기를 풀풀 풍기며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은 기가 팍 죽은 모습으로 똑같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흠, 그럼 어제 말씀드린 대로 네 가지 관문을 통과하면 항아를 만날 수가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잠시 황보란의 눈치를 살피던 여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는 10일 후에나 도전을 하실 수 있지만 공자님의 신분을 감안하여 오늘 제일 먼저 도전할 수 있게 하려고 했으나, 늦게 일어나시는 바람에 먼저 도전한 분이 계시니 잠시 기다리셔야 해요.”
“그 네 가지 관문이 뭐죠?”
황보란이 아직 화가 안 풀린 모습으로 신경질적으로 묻자 여인이 웃음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항아에게는 매난국죽(梅蘭菊竹)이라는 네 명의 시비가 있습니다. 그들과 겨루어서 이기면 된답니다.”
“뭘 겨룬다는 거죠? 무공을 겨루나요?”
“호호. 글쎄요. 그게 무공일 수도 있고 학문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것일 수도 있죠. 뭘 겨룰지는 당사자들만 알죠.”
“흐음…….”
여인의 말에 황보란이 믿음이 가지 않는 눈으로 강무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강무진이 다시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황보란이 도끼눈을 뜨자 재빨리 고개를 숙이면서 이미 다 마셔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빈 찻잔을 홀짝였다.
그때 한 기녀가 다가와서 여인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자 여인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방금 도전했던 사람이 두 번째 관문에서 떨어졌다고 하는군요. 호호. 참고로 여태까지 네 개의 관문을 모두 통과해서 항아를 만난 분은 딱 한 명뿐이었답니다. 자, 모두들 따라오세요.”
여인이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서 가자 일행들이 그 뒤를 따랐다.
여인은 기루의 후원 안쪽 깊숙한 곳으로 갔다. 그러자 넓은 정원이 하나 나타났다. 그 정원에는 한 여인이 연분홍색 옷을 입고 서 있었는데 그 미모가 대단해서 남자라면 누구나 힐끔거릴 정도였다.
“저 아이가 네 명의 시비 중 매(梅)랍니다. 자, 여기는 공자님만이 갈 수 있어요.”
여인이 강무진에게 공손하게 손짓을 하며 말하자 강무진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다 여전히 자신에게 도끼눈을 뜨고 있는 황보란을 보고 찔끔하다가 곧 그 옆에서 미소를 지어주는 황보린을 보고는 같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황보란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빨리 안 가고 뭐 해요?”
“아, 알았소. 험!”
강무진이 매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살짝 무릎을 굽히며 예를 갖췄다. 그러자 강무진도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처음 뵙겠어요. 매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소. 강무진이라고 하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 전설의 주인공을 직접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
“과찬이오.”
“훗!”
매가 살짝 미소를 짓자 그녀의 아름다움이 더 돋보이는 것 같았다.
‘시비가 이 정도면 그 주인은 얼마나 미모가 대단하다는 거야?’
강무진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매에게 물었다.
“내가 뭘 하면 되오?”
“평소에 패왕성의 무공을 꼭 겪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기회가 닿아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