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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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45화
145화
여인이 사내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사내들이 일제히 강무진을 공격해 갔다. 그러나 강무진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자 사내들의 주먹과 발이 강무진의 몸 곳곳을 쳤다.
퍼퍼퍽!
“……!”
“뭐 이런!”
“핫!”
강무진이 자신들의 공격을 몸으로 멀쩡히 받아내자 사내들이 놀라면서 다시 손발을 놀렸다. 이번에는 한 방에 즉사할 수도 있는 요혈들만 노렸다. 그러나 강무진은 여전히 그대로 서서 꿈쩍도 안 한 채 그들의 공격을 맞았다. 그러자 사내들이 놀라면서 뒤로 물러나 서로를 바라봤다.
“다시 한 번 말하지. 딱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다. 그 안에 이곳의 주인을 불러오지 않으면 이곳을 모두 태워버리겠다.”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옆의 난간을 손으로 잡자 그곳에 갑자기 불길이 확 일면서 타들어갔다.
여인은 강무진이 사내들의 공격을 받고도 멀쩡한 채 난간을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 버리자 놀란 눈을 하며 말했다.
“다, 당신은…….”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다.”
강무진의 말에 여인이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사람들은 2층 복도에서 강무진과 사내들이 그렇게 대치하며 약간의 소란이 일자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을까 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아무 일도 없자 곧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여인이 사라지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호리호리한 몸매의 중년 여인이 그 여인과 함께 나타났다.
“저자냐?”
“예.”
여인이 조심스럽게 대답하는 것으로 봐서 중년 여인은 기루에서 꽤나 직책이 높은 것 같았다.
“흐음…….”
중년 여인은 여느 기녀들과 마찬가지로 야시시한 옷차림이었고, 나이를 속이기 위해 화장을 아주 짙게 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강무진을 잠시 아래위로 뜯어보더니 곧 웃으면서 물었다.
“처음 뵙겠어요, 공자. 이 기루의 총관으로 있는 연홍이라고 합니다.”
“강무진이다.”
연홍은 강무진이 스스로 이름을 밝히자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연홍의 머릿속에는 철들기 시작하면서 기억하는 20여 년 동안의 무림 인사들의 정보가 들어 있었다. 웬만한 명문가의 족보 정도는 줄줄이 꿰고 있는 그녀였던 것이다. 그러나 강무진이라는 이름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제가 아는 것이 없어 공자의 이름을 처음 듣는군요. 실례하지만 어느 집 자제분이신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렇게 훤칠하고 무공이 고강하신 것으로 봐서 분명 명문가일 것 같군요.”
연홍이 강무진을 슬쩍 띄워주며 자연스럽게 강무진의 출신을 알아내려고 했으나 강무진은 지금 그런 것에 일일이 장단을 맞출 생각이 없었다.
“그대가 이곳의 주인인가?”
“호호. 주인은 아니지만 총관으로서 이곳의 대소사(大小事)를 모두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묻지. 약 반 시진 전에 이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사내가 있다. 그는 어디 있지?”
강무진의 물음에 연홍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을 했다.
“사람을 찾고 있군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기루입니다. 어떤 손님이 언제 왔다가 언제 나가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설사 총관인 저라고 해도 그런 것들을 모두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래? 그럼 가서 주인을 불러와라.”
“호호호. 지금 주인님은 이곳에 계시지 않답니다. 더구나 주인님은 아무나 함부로 만나지 않습니다.”
“아무나라……. 그럼 가서 전해라. 패왕이 만나고 싶어 한다고.”
‘패왕? 패왕이라니…….’
연홍은 강무진의 말에 재빨리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자신이 알기에 패왕이라는 별호를 가진 무림인은 없었다.
‘패왕이라니, 어디서 먹히지도 않을 별호를 가지고……. 참자. 일단은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
연홍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강무진을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강무진이 속으로 생각했다.
‘젠장. 패왕이라고 하면 좀 먹힐 줄 알았더니 전혀 안 통하는군. 아니지. 혹시 못 알아보고 그랬을 수도 있으니 한 번 더 밀어붙여 보자.’
“뭐 하고 있지? 가서 주인을 불러오란 말이다. 이깟 기루의 주인이 그렇게 대단한가? 패왕성의 패왕이 부르는데도 버틴단 말이지?”
강무진이 은근히 눈에 살기를 띠며 말하자 연홍이 흠칫하며 그제야 뭔가 떠올렸다.
‘패왕성의 패왕이라니……. 설마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자란 말이야?’
기루에 있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들어 온다. 그런 이야기들 중 근래에 가장 귀가 따갑게 들려왔던 이야기가 바로 남쪽의 패왕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는 이곳에 오는 무림인치고 그 이야기를 안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연홍 역시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나 설마 눈앞에 있는 이 어벙해 보이는 젊은이가 그 주인공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지금 본인에게 듣고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기에는 지금 강무진의 모습이 별 볼일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무시하기에는 그가 댄 패왕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너무나 컸다. 정말 그가 패왕이라면, 그래서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깟 기루쯤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지워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오랜 관록이 있는 연홍이었다. 기루란 곳이 별의별 사람들을 다 상대하는 곳이고, 그런 곳의 총관으로 있을 정도면 사람을 보는 눈도 남달랐던 것이다.
“그, 그대가 정말 패왕입니까?”
‘오호, 먹혀드는구나.’
연홍이 말을 더듬으며 묻자 강무진이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말했다.
“가서 주인 불러와.”
“호호호. 성질도 급하셔라. 하지만 공자님이 패왕이라는 것을 어찌 믿습니까?”
‘이것 봐라.’
강무진은 패왕이라는 이름이 먹히기는 했지만 믿음을 주지는 못했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씩 웃으면서 말했다.
“크큭. 믿을 필요 없다. 약속대로 지금부터 이곳을 싹 태워주마.”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열화마염풍을 쓰기 위해 화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확 번져갔다. 그것을 느낀 연홍이 얼굴을 창백하게 굳히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화륵!
그때 강무진의 두 주먹에 불꽃이 일면서 활활 타올랐다.
“모두 태워주마.”
강무진이 사악한 표정으로 연홍을 노려보며 말하자 연홍이 그제야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자, 잠시 진정해 주십시오. 몰라 뵙고 무례를 했던 것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홍은 강무진의 화기를 대하고서야 정말 그가 패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알기로 남쪽의 패왕은 무시무시한 화기와 산이라도 부수어 버리는 일격을 뿜어낸다고 했다. 지금 강무진이 뿜어내는 화기는 적어도 절정의 경지에 올라야 가능한 것이었다. 무공이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있는 그녀였기 때문에 그것을 확연히 알 수가 있었다.
사실 강무진이 패왕이라고 스스로를 밝히기 전까지만 해도 연홍은 강무진을 조용히 불러내 손을 봐준 후 쫓아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자 그런 생각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연홍이 그렇게 숙이자 강무진이 화기를 거두면서 말했다.
“가서 주인 불러와.”
“알겠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저도 뵐 수가 없는 분입니다.”
“뭐?”
“이곳의 주인님은 항아만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님을 만나려면 우선 항아를 만나야 합니다.”
“뭐가 그리 복잡해. 그럼 그 항아를 불러와.”
“그것이, 항아는 이곳 월궁루(月宮樓) 최고의 기녀입니다. 그녀를 만나려면 네 가지 관문을 통과해 그녀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끙. 그래서?”
“그것이 이곳의 규칙이니 아무리 패왕이시라도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연홍이 강무진의 눈치를 슬쩍 보며 그렇게 말하자 강무진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어떻게 한다? 그사이에 놈들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도 있는데……. 음, 보아하니 이것들도 모두 한통속인 것 같은데 시간을 끌려는 것인가? 일단 그 주인이라는 작자를 족치면 그들이 이곳을 빠져나갔다 해도 행방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강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연홍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원래 항아를 만나려면 번호표를 받고 순번을 기다려야 합니다. 게다가 하루에 딱 세 명만이 항아를 만나기 위한 관문에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모두 이미 끝난데다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신에 밤새 충분히 즐기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러지.”
연홍은 아까까지만 해도 당장에 이곳의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뭔가 큰일을 낼 것 같던 강무진이 의외로 쉽게 승낙을 하자 조금 의외였다.
사실 강무진은 어차피 이곳의 주인을 족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하루 정도 늦는다고 해서 그들을 놓치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 편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네 가지 관문을 통과하다>
다음 날 아침.
“끄응…….”
신음 소리를 내며 제일 먼저 눈을 뜬 것은 황보란이었다. 황보란은 속이 거북해서 금방이라도 어제 먹은 것들을 모두 게워낼 것 같았다. 머리도 지끈지끈하니 아직도 빙빙 도는 것 같았다. 그 상태에서 정말 초인적인 힘으로 간신히 상체만 일으켜서 흐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난장판이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술병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곳곳에 음식들이 엎질러져 있었고, 누구의 옷인지 모를 옷들이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목숨처럼 아끼던 쌍검까지도 하나는 탁자에 꽂혀 있었고, 또 하나는 보이지도 않았다.
“검이…….”
머리가 지끈거리자 손으로 머리를 짚으면서 본능적으로 검을 찾았다. 그러다 고개를 드는 순간 자신이 찾던 쌍검 중의 하나가 천장에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
어떻게 무인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이, 자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쌍검이 저런 곳에 박혀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황보란이 머리를 몇 번 저으면서 어제의 일을 생각하려는 찰나 무심코 바닥을 짚은 손에 뭔가 물컹하는 것이 만져졌다. 이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고 그곳을 내려다본 황보란은 놀라움에 입이 쩍 벌어졌다.
자신의 바로 옆에서 강무진이 위에는 홀딱 벗고 바지는 반쯤 벗겨진 채 큰대자로 양팔과 다리를 벌린 자세로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강무진의 왼쪽 팔에는 자신의 쌍둥이 동생인 황보린이 옷을 반쯤 벗은 모습으로 안겨서 잠들어 있었다.
“뭐…….”
황보란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어 머리를 쥐어뜯으려고 할 때, 어깨에서 옷이 스르륵 흘러내리면서 그녀의 알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벗고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 옷을 그 위에 덮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팔을 올리자 옷이 흘러내렸던 것이다.
“헉!”
그녀는 황보린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옷을 거의 벗고 있었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머리가 지끈거리던 것이 확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어제의 일들이 하나 둘씩 생각나기 시작했다.
기루의 주인을 만나러 가서 소란을 피우겠다며 방을 나간 강무진이 그냥 돌아왔었다. 그러고는 다음 날 주인을 만나기로 한 것을 이야기하는 동안 처음에 자신들을 안내했던 여인이 방으로 와서 그들을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