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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전설 129화

무료소설 패왕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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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왕전설 129화

 129화

 

그때 그들 앞에 넓은 냇가가 나타났다. 물이 깊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허리까지는 차오를 것 같았다.

“헉! 헉! 좀 쉬었다가 가요.”

남궁소희가 강무진을 부축하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말하자 풍수개가 잠시 주변을 살피다가 말했다.

“아직은 아니다. 쉬고 싶으면 쉬어라. 대신에 영원히 쉬게 만들어주마. 클클. 먼저 건너거라.”

“헉! 헉!”

남궁소희는 풍수개의 말에 더 이상 뭐라 말을 하지 못하며 그대로 강무진과 함께 냇물로 들어갔다. 냇물로 그렇게 들어가자 남궁소희는 깊은 곳으로 갈수록 강무진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냇가의 중앙까지 갔을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남궁소희가 흠칫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한 손으로 강무진을 꽉 움켜잡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그러자 풍수개가 코웃음을 쳤다.

“흥! 감히 나한테 맞설 생각이냐?”

“무슨 짓이죠? 당신을 따라가면 죽이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크크크. 그건 네게 해당하는 말이지 그놈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너는 약속대로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다. 클클.”

풍수개가 그렇게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남궁소희의 몸을 훑어봤다. 사실 풍수개는 어제 저녁 내상을 약간 치료하고 돌아와 강무진에게 과연 수신호위가 붙어 있는지 실험을 해봤다. 패왕성의 그림자는 그 사람의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면 반드시 모습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기를 흘리며 강무진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그림자가 나타날 것을 대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풍수개는 그림자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상당히 의심이 많은 풍수개였던 것이다.

그 상태로 지금까지 온 것이었는데 남궁소희가 냇가를 건너면서 옷이 물에 젖자 그것을 보고 음심이 동했다. 이에 다시 한 번 강무진에게 그림자가 붙어 있나 확인을 해서 이번에도 없으면 죽여버리고 남궁소희를 욕보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크크. 걱정하지 마라. 너만큼은 내 절대로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풍수개가 탐욕스러운 눈으로 그렇게 말하자 남궁소희는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우, 우리를 건드리면 본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흥! 남궁세가 따위를 무서워했다면 내 별호가 광인도가 아니겠지.”

“패왕성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남궁소희의 외침에 풍수개의 몸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곧 다시 비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클클. 패왕성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감히 노부가 하는 일을 누가 막겠느냐?”

풍수개가 그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뭔가가 날아가서 남궁소희가 들고 있는 검을 때렸다.

따따땅!

“악!”

남궁소희는 풍수개가 점점 다가오자 그쪽에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가 자신의 검을 치자 비명을 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검을 놓치고 말았다. 방금 풍수개가 날린 것은 손바닥만 한 작은 비도였다. 어제 풍수개를 처음 만났을 때 강무진이 그녀를 감싸면서 막았던 암기도 바로 그것이었다.

남궁소희는 들고 있던 검을 그렇게 허무하게 놓쳐버리자 절망적인 심정이 되었다. 그때 강무진은 거의 정신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풍수개가 여전히 탐욕스러운 눈으로 천천히 냇물로 들어설 때였다. 어디에선가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려왔다.

“누가 있어 패왕성을 무시하는가?”

풍수개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약간 당황하면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한 쌍의 남녀가 그곳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한 명은 커다란 덩치에 강인한 인상을 한 사내로 허리에 보기에도 보도(寶刀)로 보이는 도를 차고 있었고, 여인은 누가 봐도 반할 정도로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흥! 노부가 하는 일에 끼어들지 말고 어서 사라져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안 들었으면 모르되 이미 들어버린 것을 어찌 그냥 지나친단 말이오? 난 패왕성 패왕폭풍대(覇王暴風隊)의 대주 왕이후라고 하오. 패왕성을 무시한 것은 둘째치고라도 그대가 과연 나를 살리고 죽이고 할 수 있겠소?”

왕이후의 말에 풍수개는 속으로 적지 않게 당황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건만 설마 그것을 하필이면 패왕성의 인물이 들을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더구나 패왕폭풍대라면 패왕성의 주된 세력 중 하나였다. 그러니 나이는 젊어 보여도 그곳의 대주라면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흥! 사형, 아까 들어보니 저자가 저 여인에게 못된 짓을 하려는 것 같더군요. 볼 것 없이 일단 혼을 내줘요.”

왕이후의 옆에 있던 여인, 주소예의 말에 왕이후가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무슨 말이냐, 사매? 그래도 광인도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아무리 우리라도 쉽게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놈! 내가 누구인지 알고서도 저런 여유라는 것인가?’

풍수개가 그런 생각을 하며 왕이후와 주소예를 노려보는데 문득 그들 뒤로 잡히는 기운들이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접근해서야 그들의 존재를 알아낼 수 있는 것으로 봐서 상당한 고수들이 틀림없었다. 몸이 정상이라면 모를까 내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 모두를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믿는 것이 있었구나.’

“거기 있는 소저는 어서 가도록 하시오. 물에 있으면 위험하오. 저자는 우리가 처리하리다.”

왕이후가 그렇게 말하자 남궁소희는 왕이후를 잠시 보다가 곧 강무진을 데리고 빠르게 냇가를 건너기 시작했다. 왕이후는 그녀의 부축을 받고 있는 사내가 왠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얼굴도 보이지 않았고 지금은 무엇보다 풍수개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곧 관심을 거두었다.

풍수개는 남궁소희와 강무진이 그렇게 가버리려고 하자 경공을 펼쳐 그들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날카로운 검세(劍勢)가 자신을 향해 뚫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자 재빨리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주소예가 뻗은 검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흥! 제법이군요!”

풍수개는 주소예가 그렇게 말하자 순간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이 누구던가?

광인도라 불리며 무림에서는 절대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취급되는 사람이 아니던가?

풍수개는 남궁소희와 강무진은 나중에 다시 찾기로 마음먹고 일단 눈앞에 있는 주소예를 상대하기로 했다. 이에 내공을 끌어올리며 빠르게 삼장을 내질렀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소예는 그런 풍수개의 장력을 파헤치며 검을 찔러오고 있었다. 패왕성의 사대절기 중 하나인 수라십삼검(修羅十三劍)이었다.

풍수개는 주소예가 나이는 젊지만 쉽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허리의 도를 뽑아 빠르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10여 초식이 오고갔다.

까까까깡!

“흐압!”

풍수개가 살기를 풀풀 풍기며 세차게 몰아치기 시작하니 주소예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주소예가 바닥에 있는 돌멩이 위에 발을 디디다가 몸을 휘청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풍수개의 도가 검을 잡고 있는 주소예의 손목을 베어갔다. 주소예가 검을 계속 잡고 있으면 그대로 손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주소예는 그 상황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그냥 검을 놓아버렸다. 그러자 풍수개는 됐다 싶어서 주소예의 손목을 베어가던 검을 회수해서 그대로 주소예의 목을 베려고 했다.

그러나 주소예는 어느새 바닥에 납작하니 고개를 숙이면서 발로 풍수개의 하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피해 풍수개가 뒤로 물러나자 바짝 따라붙으며 주먹과 장을 뻗어내기 시작했다.

주소예의 아버지인 패왕성의 좌호법 주양악의 독문절기 비룡권법(飛龍拳法)이었다. 사실 주소예는 그동안 수라십삼검을 계속 익히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익혀온 비룡권법이 더 능숙했다.

풍수개는 주소예가 검을 놓게 만들어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주소예가 더 날뛰자 속으로 조금 당황이 되었다.

“지금이다, 사매!”

그때 왕이후의 외침이 들려오자 주소예가 풍수개를 향해 양권을 정신없이 퍼붓다가 몸을 뒤로 빼며 날아올랐다.

풍수개가 뒤로 물러서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공중에서 왕이후가 떨어져 내리며 도를 힘껏 내려치는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동작이 너무 커서 위력은 좋을지 몰라도 피해내기는 쉬웠다.

“흥!”

풍수개가 코웃음을 치며 왕이후의 도를 옆으로 슬쩍 피해내는 순간이었다. 왕이후는 풍수개가 그렇게 피했음에도 도를 끝까지 내리쳤다. 그러자 밑에 있던 물이 세차게 위로 튀어 올랐다.

퍼엉!

파지지지직!

“크아아악!”

풍수개는 갑자기 전신에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은 짜릿한 충격이 한순간에 휩쓸고 지나가자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사실 왕이후가 노리던 것이 이것이었다. 왕이후는 상대가 광인도 풍수개라는 사실을 알고 쉽게 상대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비록 패왕폭풍대의 고수들이 뒤에 대기하고 있었지만 풍수개를 상대하자면 분명 많은 희생이 따를 일이었다.

그러나 풍수개의 발밑에 물이 있는 것을 보고 어쩌면 희생 없이 풍수개를 제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면 풍수개를 물로 유인해서 들어가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물에 들어가 있는 남궁소희는 물 밖으로 나가게 해야 했다.

그래서 왕이후는 남궁소희에게 말을 걸어 그녀가 스스로 나가게 했던 것이다. 그녀가 부상당한 사람과 같이 있다는 것을 왕이후도 봐서 알고 있었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먼저 그들을 도왔겠지만, 그때는 일단 풍수개를 먼저 제압하고 봐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물이 위험하다는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주소예가 눈치 챌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과연 총명한 주소예는 당장에 왕이후가 생각하는 바를 깨닫고 자신이 먼저 풍수개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리고 풍수개와 싸우면서 조금씩 물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도록 유인을 했고, 이에 풍수개가 무릎까지 물이 차도록 들어오자 왕이후가 그것을 보고 몸을 날렸던 것이다.

왕이후는 패왕성 사대비기 중 하나인 뇌전폭풍도(雷電暴風刀)의 뇌기(雷氣)를 도에 잔뜩 실어서 풍수개를 내려쳤는데, 사실 그의 목표는 풍수개가 아니라 그의 몸이 담겨져 있는 물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물을 타고 간 뇌기로 풍수개에게 충격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왕이후의 계획은 제대로 성공했고, 그 결과 풍수개는 생각지도 못한 뇌기에 당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왕이후는 그렇게 풍수개를 쓰러트리자 남궁소희가 간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미 남궁소희는 강무진을 데리고 사라진 후였다.

남궁소희는 왕이후나 주소예가 비록 패왕성의 사람이라고는 하나 겨우 둘이서는 풍수개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사력을 다해 강무진을 데리고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헉!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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