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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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28화
128화
남궁소희는 풍수개와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계속 그녀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니 강무진이 움직이지는 못해도 그냥 눈이라도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어머니인 나여원이 유사시에 먹으라고 준 그 비싼 환단을 지금 강무진에게 먹이고 있었다.
‘이거 먹고 빨리 깨어나. 빨리……!’
그렇게 환단을 먹이는데 풍수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클.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환단을 먹이면 그것이 기도를 막아서 죽을 수도 있지. 그러니 입으로 녹여서 먹여야 할게야.”
남궁소희는 풍수개가 그렇게 말하자 그를 잠시 가만히 바라봤다. 풍수개는 여전히 뒤쪽으로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설마 아까 이 사람과 혼인할 사이라고 한 것을 확인하려는 건가?’
풍수개의 말대로 하려면 자신이 입 안에서 환단을 녹인 후 그것을 강무진의 입에 넣어줘야 했다. 그러나 그런 부끄러운 짓을 그것도 풍수개가 보는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그때 풍수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래. 이자가 죽으면 어차피 나도 죽는다. 정조를 빼앗기는 것도 아니야. 그저 약을 먹이는 것뿐이라고. 흥! 내가 이 정도도 못 해낼 줄 알고.’
남궁소희는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고는 환단을 자신의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혀로 몇 번 굴리자 달콤한 향이 싸하니 퍼지면서 입 안에서 환단이 녹았다. 남궁소희는 슬쩍 풍수개를 한 번 훔쳐봤다. 풍수개는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였다. 그것을 확인한 남궁소희가 강무진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추고 입 안에 있는 약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부드러워.’
강무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이 닿자 남궁소희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부드러움 때문에 부끄러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환단을 모두 강무진에게 흘려 넣었음에도 남궁소희는 선뜻 입을 떼지 못했다.
그때 또다시 풍수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클. 그리하면 될 것을…….”
남궁소희는 풍수개의 목소리에 놀라서 그제야 화들짝 입술을 떼었다. 그러자 방금까지 잊고 있던 부끄러운 감정이 확 일어났고, 이에 당황이 되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게 붉어진 볼에 두 손을 잠시 대고 있던 남궁소희가 곧 풍수개처럼 뒤에 있는 벽에 몸을 기댔다.
너무나 힘들고 지친 하루였다. 풍수개를 만난 다음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벽에 기대어 잠시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풍수개는 남궁소희가 잠이 들었다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알 수가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남궁소희 같은 미인을 그냥 놔둘 풍수개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선 자신의 내상을 치료해야 했고 강무진을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실히 정해야 했다. 일단은 입을 막기 위해 끌고 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그림자들이 붙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들의 기척을 잡아내려고 했으나 잡히지 않는 것으로 봐서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남궁소희의 말대로라면 패왕성 사람이 분명했고, 그렇다면 그림자들이 반드시 붙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에라도 강무진을 죽여버리고 싶었으나 그러지를 못하고 있었다.
‘내상을 치료하려면 적어도 3일은 꼼짝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다닐 수도 없는 노릇, 어찌한다…….’
그런 생각을 하던 풍수개도 오늘 하루는 강무진 때문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느새 스르륵 눈이 감기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남궁소희는 낯선 동굴의 풍경에 잠시 멍해 있다가 곧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그랬지. 그자는 어디 있지?’
남궁소희가 급히 동굴을 둘러보니 풍수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동굴 밖으로 나가 사방을 둘러봐도 역시나 풍수개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 순간 남궁소희의 머릿속에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대로 강무진을 놔두고 혼자서 도망을 친다면 자신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어제 오랜 시간 이동을 했으나 강무진을 데리고 움직였기 때문에 그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도망가서 부지런히 움직이면 오라버니인 남궁종상과 천검대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기회야. 이대로 도망가야 해.’
생각은 그랬으나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동굴 안에 있는 강무진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때, 어제 환약을 먹일 때의 그 부드러운 입술 감촉이 떠올랐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만지고 있는 남궁소희였다.
‘그는… 그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지금 도망쳐야 살 수 있어. 기회는 지금뿐이야.’
남궁소희의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끊임없이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남궁소희는 동굴을 박차고 나갔다.
“안 돼……. 안 돼……. 가지 마. 가면 죽어!”
강무진이 필사적으로 소리치고 있었으나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강무진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꼭 사십시오, 대주. 대주님만큼은 꼭 사셔야 합니다.”
“안 돼!”
그러나 강무진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 둘씩 죽어갔다. 그런 그들은 여전히 강무진을 보며 웃고 있었다. 죽어가면서도 만족한다는 그런 얼굴이었다.
강무진은 그들이 한 명, 한 명 죽어갈 때마다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그들을 말리기 위해, 그들을 살리기 위해 강무진은 계속 손발을 허우적거렸다.
그때 한 여인이 강무진 앞에 나타났다. 주소예였다.
“그래요. 제가 배신했어요. 호호호. 그게 뭐 어떻다는 거죠?”
“아니야. 아니지. 네가 아니야.”
“바보 같긴. 이제 다시는 날 볼 생각 하지 마세요.”
“잠깐! 잠깐만 기다려!”
“흥!”
강무진의 만류에도 주소예는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지 마! 가지 마!”
강무진이 그렇게 끊임없이 외쳤으나 결국 주소예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끄응…….”
동굴 안에 누워 있던 강무진은 간신히 눈을 떴다. 온몸이 납덩어리처럼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떴어도 눈앞이 흐릿하니 잘 보이지가 않았다. 남궁소희가 먹인 환단이 조금씩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에 내상이 조금 치료되었으나 그뿐이었다. 내상이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시야가 흐릿해졌던 것이다.
“어디…….”
강무진은 머리가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강무진의 몸을 가만히 눌렀다.
“움직이지 말아요. 아직 내상이 치료되지 않았어요.”
여인이었다.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이마에 차갑고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남궁소희가 물에 적셔온 천을 강무진의 이마에 얹었던 것이다.
“누구…….”
그렇게 말하던 강무진은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자 자신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여인이 남궁소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궁 소저…….”
“그래요.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요. 광인도 그 살인마가 어딘가로 가버렸어요. 그자가 오기 전에 이곳에서 나가야 해요.”
“광…인도…….”
남궁소희의 말에 강무진은 어제 있었던 일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다.
“남궁 소저……. 당신이라도 도망치시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남궁소희는 아까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들킨 것 같아 갑자기 당황이 되었다. 사실 아까 남궁소희는 도망을 치기 위해 동굴 밖으로 나갔었다. 그러나 끝내 마음속에서 강무진이 사라지지가 않아 결국 근처의 냇가에서 물을 떠서 돌아왔던 것이다.
“당신이라도 무사히…….”
“그런 말 말아요.”
그렇게 말하는 남궁소희의 눈에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처음 겪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강무진이 자신을 걱정해 주자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던 것이다.
“이걸 먹어요. 마지막 남은 환단이에요.”
남궁소희가 그렇게 말하면서 강무진의 입 속에 환단 한 알을 넣어줬다. 그때 남궁소희의 손이 강무진의 입술에 닿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어제는 물론이고 아까도 그녀는 환단을 입으로 녹여 강무진에게 먹여주었는데, 그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강무진은 남궁소희가 주는 환단을 삼키자 잠시 후 몸이 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제가 부축해 줄게요.”
남궁소희가 그렇게 말하면서 강무진을 부축했다. 강무진은 사실 아직도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시야도 흐릿해서 움직일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남궁소희에게 의지한 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끙. 어서 가요.”
남궁소희가 그렇게 말하면서 강무진과 함께 천천히 동굴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어느새 동굴의 입구에 광인도 풍수개가 나타났다.
“아!”
그를 보는 순간 남궁소희는 발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강무진도 시야가 흐릿하기는 했지만 풍수개가 앞에 있는 것은 볼 수가 있었다. 이에 초인적인 힘으로 남궁소희를 뒤로 당기며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것을 보고 풍수개가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클클. 정신이 들었구나. 어제 저 계집이 입으로 넣어준 것이 제법 효과가 있었나 보군.”
남궁소희는 풍수개가 아무렇지도 않게 어제 자신이 한 일을 말하자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그건…….”
“클클. 어쨌든 정신이 들었으니 이제 가자꾸나.”
“어디로 간다는 거죠?”
“어린아이를 찾아야 한다. 너희들도 그 아이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오지 않았더냐?”
“……!”
“그게 무슨 말이죠? 그 아이는 우리 남궁가의 친척이에요. 그런데 당신이 그 아이를 왜 찾는다는 거죠?”
“흥! 지금 그 아이를 찾기 위해 무림의 수많은 인간들이 이곳에 와 있다. 그중에 나 하나쯤 더 늘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지. 그리고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있어도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 아이를 데리고 가면 북해신궁에서 빙정을 주기로 한 것을 말이다.”
“……!”
강무진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도 풍수개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빙정을 준다고?’
“클클. 그러니 일단 움직이자꾸나. 엉뚱한 놈들이 빙정을 차지하게 놔둘 수는 없지.”
풍수개가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남궁소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갑시다. 남궁… 소저. 목표가 같으니 남궁 형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오.”
강무진이 간신히 하는 말에 남궁소희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수개나 남궁가의 사람들 모두 그 아이를 찾고 있으니 운이 좋으면 중간에 만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알았어요. 그리고 그냥… 소희라고 부르세요. 가, 강오라버니.”
남궁소희가 용기를 내서 얼굴을 붉힌 채 그렇게 말하자 강무진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게 남궁소희와 강무진은 풍수개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는 동안 남궁소희는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 풍수개의 손에서 벗어날 생각이었으나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