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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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25화
125화
“이들은 화씨세가 사람들이다.”
“화씨세가요? 그 사람들이 왜 여기에 있죠?”
남궁소희가 의아해하며 물었으나 남궁종상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화씨세가에도 그 정보가 들어간 건가? 그렇다면 오대세가뿐 아니라 웬만한 세가는 모두 그것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군.’
남궁종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수상이 한쪽에 죽어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가주님, 이자는 황보세가의 구궁종이라는 자입니다.”
“황보세가?”
“그렇습니다. 예전에 한 번 겨루었던 적이 있는 자입니다.”
“그럼 화씨세가와 황보세가가 싸웠던 건가?”
남궁종상의 말에 지수상이 좀더 시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음……. 황보세가라면 본가와 같은 천하오대세가 중 하나이다. 화씨세가 역시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그런데도 황보세가를 향해 검을 뽑았단 말인가? 빙정이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음……. 분명 뭔가가 있다.’
“본가의 표식은 있느냐?”
남궁종상의 외침에 앞쪽으로 난 길가에 서 있던 사내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이곳에 있습니다. 이쪽으로 간 것 같습니다.”
“좋다. 계속 표식을 찾아서 이동한다.”
그렇게 남궁세가의 표식을 찾아 반 시진 정도를 이동하자 또다시 수십여 구의 시체들이 나타났다. 이에 지수상이 아까와 마찬가지로 먼저 주변의 안전을 확보한 후, 남궁종상이 시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까 본 시체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있는 시체들도 온몸에 화상이 가득했다.
“흐음……. 이번에도 화씨세가의 사람들이군.”
“적들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옷차림이 조금 이상한 것으로 봐서…….”
“북해신궁의 사람들이다.”
“남궁 형.”
그때 강무진이 남궁종상을 부르자 남궁종상이 그를 바라봤다.
“이들이 소호를 왜 쫓고 있는 것이오?”
“나도 그것을 모르겠소. 하지만 상황으로 봐서 그 아이가 큰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소.”
사실 빙정 때문이라는 것을 남궁종상은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것 때문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 것을 굳이 강무진에게 말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궁종상은 그렇게 말한 것이다.
“모두 무사했으면 좋으련만…….”
“걱정하지 마시오. 반드시 무사할 것이오.”
남궁종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무진이 순간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고 남궁종상이 물었다.
“왜 그러시오?”
“누군가 싸우고 있습니다.”
“……!”
강무진의 말에 남궁소희가 다가오며 말했다.
“이봐요. 싸우긴 누가 싸우고 있다는 거예요?”
남궁소희로서는 강무진이 듣는 것을 잡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지만 옆에 있는 남궁종상은 알고 있었다. 자신 역시 그것을 잡아낼 수는 없었지만, 강무진의 무공이라면 자신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충분히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 팔공산에서 강무진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 않았던가?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 소희야. 강 형, 그들이 몇 명인지도 알 수 있습니까?”
“여덟 명이오. 일곱 명이 한 사람을 공격하고 있소.”
“그럼 일단 그리로 가봅시다. 길안내를 부탁하오.”
“알겠소.”
강무진이 그렇게 대답하고 경공을 펼치자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남궁종상은 강무진의 뒤를 따라가면서 강무진이 자신들을 너무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무진이 경공을 펼쳐서 움직이는 속도가 터무니없이 느렸던 것이다. 이에 강무진에게 바짝 다가가서 말했다.
“강 형, 속력을 좀더 내도 됩니다.”
“응? 아!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이 이상 빨리 갈 수가 없습니다.”
강무진은 원래 제대로 된 경공을 익히지 않아 속도가 상당히 느렸다. 지금도 사실 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알 리가 없는 남궁종상은 의아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늦게 가는 것이지? 우리들을 생각해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의 무공으로 보건대 벌써 내 앞을 앞질러야 하건만……. 혹시 기억을 잃을 때 경공에 대한 것만 잊었나?’
남궁종상이 그런 엉뚱한 상상까지 하고 있을 때, 그에게도 앞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럼 먼저 가겠소, 강 형. 천천히 뒤따라오시오.”
강무진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남궁종상이 앞으로 치고 나가자 그 뒤를 따르던 지수상과 천검대원들 모두가 강무진을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종내에는 강무진과 남궁소희만 나란히 남게 되었다.
“경공이… 형편없군요.”
남궁소희는 지금 전력으로 경공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강무진은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남궁소희처럼 내공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하는 데 여유가 있었다.
“남 말 할 처지가 아닌 것 같소만.”
“뭐예요? 지…금……. 헉! 헉!”
남궁소희는 무리하게 말하려다가 내공의 흐름이 끊기자 숨을 헐떡이면서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강무진도 멈춰 서야 했다.
“쓸데없이 말을 시키니까 이렇잖아요.”
“말은 그대가 먼저 걸었소.”
‘끙. 도대체가 여자를 생각해서 배려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어.’
남궁소희는 여태까지 수많은 사내들을 보아왔으나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냉랭하게 대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에 은근히 오기가 생기는 남궁소희였다.
“가요. 이제 쉴 만큼 쉬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남궁소희가 먼저 경공을 펼쳐서 달리기 시작했으나 곧 얼마 가지 못해 다시 멈추어 서야 했다. 주의에 온통 시체기 널려 있었던 것이다. 남궁소희도 그간 강호에서 생활을 해오면서 사람이 죽은 것을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에 얼굴이 창백하게 굳고 손이 떨렸다.
“많이도 죽었군.”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시체들을 둘러보다가 남궁소희를 보며 말했다.
“갑시다.”
“네? 아, 네.”
남궁소희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남궁소희를 힐끗 보던 강무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잘난 체하더니 여자는 여자로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남궁소희에게 다가가던 강무진은 순간 깨닫는 것이 하나 있었다. 자신 역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처음 봤다. 그렇다면 당연히 남궁소희와 같은 반응이 나와야 하건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가? 나는 전에 이런 광경을 많이 봤었단 말인가?’
남궁소희는 강무진이 자신에게 다가오다가 갑자기 얼굴 표정이 바뀌며 멈추어 서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뭐야? 날 도와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나?’
“이봐요.”
“아! 미안하오. 잠시 딴생각을 했었소. 그보다 괜찮소?”
‘나 같은 미인을 놓고 딴생각을 했다고?’
“흥! 뭐가 괜찮냐는 거죠? 어서 가요. 오라버니가 기다리겠어요.”
남궁소희가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말하면서 다시 경공을 펼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강무진이 갑자기 남궁소희에게 달려들며 그녀를 꽉 안고 그대로 넘어트렸다.
“뭐…….”
남궁소희는 갑작스러운 강무진의 행동에 놀라서 뭐라 말도 못 하고 그대로 강무진의 품에 안긴 채 뒤로 넘어져 버렸다. 그러자 엉덩이와 어깨가 땅에 심하게 부딪치면서 충격이 왔다.
“윽!”
남궁소희는 밀려오는 통증에 화가 나서 눈을 크게 뜨는 순간 강무진과 눈이 딱 마주쳤다. 지금 두 사람은 서로 입김이 닿을 정도로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이에 남궁소희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붉어지면서 크게 소리쳤다.
“이봐요! 당장…….”
그러나 남궁소희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뭔가가 날아와 강무진의 몸에 계속 충격을 줬기 때문이다.
퍼퍼퍼퍽!
퍽퍽!
그 충격으로 인해 강무진의 몸이 계속 꿈틀꿈틀했다. 그리고 날아오던 것이 멈추자 강무진이 남궁소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죽은 척하시오.”
“…….”
갑작스러운 강무진의 행동에 놀라기는 했으나 남궁소희도 바보는 아니었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기습했다는 사실을 즉시 알아챘던 것이다. 이에 남궁소희가 호흡을 낮추면서 눈을 감고 죽은 척을 했다. 그러자 자신의 몸 위에 실려 있는 강무진의 무게가 확실하게 느껴지면서 또다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남궁소희는 천방지축이기는 했지만 언니인 남궁혜인에 비해 남자에 대한 경험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자 사내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클클클. 죽은 척을 하려는 게냐?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정말로 죽여주마.”
강무진은 뒤에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저음의 목소리에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털었다. 그때까지도 남궁소희는 눈을 꼭 감고 얼굴을 붉힌 채 누워 있었다. 그런 남궁소희를 보고 강무진이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들킨 것 같소. 이제 죽은 척을 하지 않아도 되오.”
강무진의 말에 남궁소희가 그제야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강무진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에 그것을 감추기 위해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알고 있어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뚱뚱하고 키가 작은 노인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구죠?”
“나도 모르겠소. 다만 무공이 상당히 뛰어난 것 같소.”
강무진과 남궁소희가 나누는 말을 노인이 들었는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클클클. 노부는 광인도(狂人刀) 풍수개라고 한다. 어린 것들이 들어봤는지 모르겠구나.”
스스로 광인도 풍수개라고 밝힌 노인의 말을 듣는 순간 남궁소희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과… 광인도…….”
광인도 풍수개라면 남궁소희도 아는 사람이었다. 무림인이라면 절대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인간백정이라 불리는 광마(狂魔)였고, 또 다른 한 명이 바로 광인도 풍수개였다. 이 두 사람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며,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닥치는 대로 죽였다. 죽이는 대상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 정파든 사파든 그런 것도 가리지 않았다.
이에 무림의 공적으로서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그들을 적대시했으나 두 사람의 무공이 워낙에 뛰어나 어떻게 하지를 못하는 실정이었다. 심지어 천하오대세가에서조차 그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다.
남궁소희는 들은 것이 있어서 광인도 풍수개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강무진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노인장,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듯 암수를 날리는 이유가 뭡니까?”
“응? 호오……. 네놈은 내 이름을 듣고도 놀라지 않는구나. 무공도 좀 하는 것으로 봐서 어디 산 구석에 처박혀서 무공이라도 익히다 왔나 보군. 클클.”
“여기 죽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노인장이 죽인 겁니까?”
“감히 노부한테 그런 걸 묻는 거냐?”
“허 참……. 그럼 물으면 안 되는 겁니까?”
“좋구나. 좋아. 큭큭. 네놈에게 그것을 물어볼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보자꾸나.”
풍수개가 눈을 광기로 빛내면서 말하자 남궁소희가 겁을 먹고 강무진의 옆으로 바짝 다가가서 그의 소매를 잡았다. 그러자 강무진이 의외라는 듯 남궁소희를 바라봤다. 남궁소희는 창백하게 얼굴이 질린 채 풍수개를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