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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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23화
123화
“상이는 함부로 사람을 데려오지 않아요. 게다가 시비들에게 당신을 잘 보살피라는 말까지 해놓은 것을 보면 손님이 맞지 않을까요?”
“그런가?”
강무진이 여전히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렇게 말하다가 남궁혜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갑자기 머리를 움켜잡고 신음소리를 냈다. 남궁혜인의 얼굴과 자신이 아는 누군가의 얼굴이 겹치면서 떠오르려고 했던 것이다.
“크윽!”
“왜 그러세요? 어디가 아픈가요?”
남궁혜인은 강무진이 갑자기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잡고 비틀거리자 강무진의 팔을 잡으며 부축했다.
“괜찮나요?”
“아, 괜찮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좀 아파와서 그랬습니다. 이제는 괜찮습니다.”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팔을 부축하고 있던 남궁혜인의 손을 잡아서 떼려고 했다. 그러나 남궁혜인의 손을 잡는 순간 그녀의 따뜻한 온기가 손에 느껴지자 움찔하면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지 강무진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야릇한 분위기가 흐를 때였다.
“누님!”
뒤에서 남궁종상이 남궁혜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이 너 나 할 것 없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손을 놓았다.
“험! 험! 아, 덥다.”
뭔가 알 수 없는 무안함에 강무진은 쾌청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으로 부채질을 했고, 남궁혜인은 얼굴을 살짝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남궁종상은 두 명의 여인과 같이 다가오다가 남궁혜인과 강무진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자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누님?”
“응? 아니야. 무슨 일은…….”
남궁혜인이 당황하는 모습으로 손을 저으면서 말하자 남궁종상과 함께 온 장년의 여인이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그리 당황할 때도 다 있구나.”
“아녜요, 어머니. 당황은요. 누가 당황했다고 그러세요.”
“훗!”
장년의 여인은 남궁혜인이 귀엽다는 듯이 웃으면서 강무진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가워요, 소협. 나는 이곳의 안주인 되는 사람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강무진이라고 합니다.”
강무진이 같이 예를 취하면서 장년의 여인을 바라봤다. 여인은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미모가 빼어났다. 남궁소희나 남궁혜인과 닮은 얼굴에서는 그녀들에게 볼 수 없는 현숙하면서도 진중한 아름다움이 보였다.
이 여인의 이름은 나여원으로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혁련의 부인이었다. 또한 지금 이곳에 있는 세 사람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강 형, 그때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를 못 했었소. 그러니 다시 정식으로 인사하겠소. 나는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남궁종상이라고 하오. 강 형 같은 고수를 몰라보고 그때 그리 목에 힘을 주고 있었으니 지금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라오. 하하하.”
남궁종상이 스스럼없이 그렇게 말하자 그가 누구인지 잠시 생각하던 강무진이 이내 생각이 났는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훗! 아닙니다. 그때는 제가 오히려 결례를 많이 했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다친 사람들은 괜찮습니까? 워낙에 정신이 없어 앞뒤 안 가리고 손을 쓰는 바람에 그만…….”
그렇게 말하던 강무진이 남궁종상에게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뭣 모르고 사람을 상하게 한 것이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이거 참……. 아니오, 강 형. 이러면 내가 인사를 받으려고 한 꼴이 되지 않소. 하하하.”
“후훗!”
남궁종상이 멋쩍은 웃음을 터트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남궁혜인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남궁종상이 남궁혜인을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누님은 강 형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소?”
“네 흉을 보고 있었단다. 그렇죠, 강 소협?”
남궁혜인이 없는 사실을 그렇게 말하면서 강무진을 바라보자 강무진이 난처한 모습을 보였다.
“네? 하하. 그게 아니고…….”
“우리도 정식으로 인사하죠. 전 남궁혜인이라고 해요.”
“남궁 소저였구려. 반갑소.”
그렇게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데 나여원이 옆에 있는 남궁소희를 보며 말했다.
“소희는 이미 인사를 나누었겠구나.”
“아니, 저는…….”
그때 남궁종상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때 너도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했지 않느냐? 어서 강 형에게 인사를 하도록 해라.”
남궁종상의 말에 남궁소희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강무진을 슬쩍 보고는 말했다.
“남궁소희예요.”
“반갑소.”
나여원은 그렇게 자신의 아이들과 인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강무진을 유심히 살폈다. 이미 남궁종상으로부터 그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하지는 다 들은 터였다. 아들인 남궁종상의 말대로라면 강무진의 무공은 자신의 부군인 남궁혁련에 버금갈 정도였다. 젊은 나이에 그런 성취를 이루었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나 남궁종상이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을 해서 이야기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무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예의를 알고 격조가 있었다.
또한 웬만한 사내들은 남궁소희나 남궁혜인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대하지 못했다. 그녀들이 남궁세가의 영애라는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미모가 워낙에 출중해 대부분의 사내들은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그녀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허나 강무진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나여원은 이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그가 명문가 출신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소협.”
“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나여원이 강무진을 보며 묻자 남궁종상이 속으로 생각했다.
‘시작됐군.’
“네.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강 소협 같은 대단한 분을 길러낸 사문이 궁금하군요. 괜찮다면 알려줄 수 있나요?”
나여원의 물음에 강무진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아닙니다. 하하. 대단하기야 여기 계신 분들이 더 대단하시죠. 그리고 사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뭐하지만 어쨌든 팔공채의 부두목, 아니 부채주 중 하나가 저입니다. 하하.”
“팔공채라면…….”
강무진의 말에 나여원이 말끝을 흐리자 강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팔공산의 산적입니다.”
강무진이 멋쩍어하는 모습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나여원이 그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사문을 숨기려는 것인가? 산적들 틈에 있었다고 상이에게 듣기는 했지만…….’
“훗! 강 소협이 나를 놀리려고 하는군요. 산적 중에 강 소협처럼 강한 분이 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는걸요.”
“그건…….”
강무진이 뭐라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강무진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아수라패왕권을 써서 기진맥진한 채 정신을 잃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가 고팠던 것이다.
“저기,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이런, 제가 결례를 범했군요. 시장하신 줄도 모르고 이것저것 묻기만 했으니…….”
“아닙니다. 하하.”
“그럼 자리를 옮겨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하죠.”
나여원이 그렇게 말하자 남궁종상이 맞장구를 치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어머님. 그렇잖아도 근래에 좋은 술이 한 병 들어왔는데 오늘 맛이나 봐야겠습니다.”
그렇게 모두들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 곳은 커다란 연못에 있는 팔각정자였다. 그곳에서 모두가 앉아 잠시 기다리자 시녀들이 먹음직스러운 요리들과 술을 가져왔다.
“시장하실 텐데 어서 드세요.”
나여원이 권하자 강무진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먹겠습니다.”
나여원은 강무진이 밥을 먹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식사를 하는 중에도 제법 기품이 서려 있는 것이 절대로 산적은 아니었다.
‘보기에는 순진하고 거짓이 없는 성품이다. 저렇게 먹는 것으로 봐서 분명 명문가 출신이 분명한데 왜 사문을 감추는 걸까?’
보통 명문가 출신들은 자신의 사문을 내세우면서 더 대단해 보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강무진은 오히려 그것을 숨기려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나여원이 강무진에게 술을 권하면서 말했다.
“식사를 하는 모습이 귀한 집에서 자란 분 같군요.”
“아닙니다. 귀하긴요. 아까 말했듯이 전 팔공채의 부채주입니다.”
“끝까지 나를 속이려고 하는군요.”
강무진의 말에 나여원이 살짝 인상을 굳히면서 화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강무진이 당황하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부인을 속일 리가 있습니까? 다만…….”
“다만?”
“전 예전에 한 번 기억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
“사실 전 두목의 명령으로 몇 년간 산을 내려가 있었습니다. 두목이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무공에 도움이 되는 무공을 배워오라고 시켰거든요. 그런데 그간의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산을 내려가서 어떻게 살았는지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는지 생각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죠.”
“그럼 기억을 잊어버렸다는 거네요.”
남궁소희가 끼어들며 말하자 강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처음에는 산채의 식구들조차 낯설었다오. 듣기로는 내가 산채에서 나고 컸다고 하는데 말이오.”
강무진의 말을 듣고 그의 표정을 살피던 나여원은 강무진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대로 믿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터무니없었다.
“뭔가 이상하군요.”
“네? 뭐가 이상합니까?”
“강 소협의 말대로라면 강 소협은 산적들 틈에서 컸다는 건데, 제가 보기에 강 소협은 명문가의 자제 같아요. 범인들에게는 없는 몸에 밴 자연스러운 기품이 있어요. 그런 것은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옛날 일들이 조금씩 떠오르거나 꿈에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 단편적인 것들뿐이라서 이어지지가 않습니다.”
“아! 그러면 아까 머리가 아프다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나요?”
남궁혜인이 아까 강무진이 머리를 잡고 비틀하던 것을 떠올리고 묻자 강무진이 말했다.
“그렇소. 그대를 보는 순간 누군가의 얼굴이 겹치면서 고통이 일어서 그랬던 거요.”
“그랬…군요.”
남궁혜인이 그렇게 말하면서 잠시 대화가 끊겼다. 그러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나여원이 다시 강무진에게 물었다.
“강 소협, 그럼 산채를 떠나서 생활했던 그간의 일만 기억을 못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제가 산채에서 컸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것조차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강무진의 말에 남궁소희가 끼어들며 말했다.
“말도 안 돼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무공은 어떻게 쓸 수 있죠? 그때 그 위력이 대단한 격공권(擊空拳)은 어떻게 쓴 거냐고요? 기억을 잃었다면 무공도 기억이 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남궁소희가 마치 따지듯이 그렇게 묻자 강무진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확실히 그렇군요. 하지만 싸울 때가 되면 몸이 그냥 움직입니다. 그 격공권도 그냥 나도 모르게 쓰게 된 겁니다.”
“말도 안 돼요! 우리를 속이려는 거죠!”
남궁소희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자 강무진이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오. 내가 그대를 굳이 속일 이유가 뭐가 있겠소.”
“하지만…….”
“그만 해라, 소희야.”
남궁소희는 뭔가 할 말이 더 있었지만 나여원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나여원이 미소를 지으면서 강무진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강 소협. 아직 소희가 어려서 예의를 몰라 그러는 거니 이해해 주세요.”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강 소협.”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