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19화
무료소설 패왕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19화
119화
그렇게 두 사람이 뒤늦게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산을 내려가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빠르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험한 산을 오르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만큼 그들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이야기였다. 더구나 말 한마디 없이 일괄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봐서 고도의 집단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이들은 중원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북해에서라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북해설인대(北海雪人隊)!
북해신궁의 주된 세력 중 하나로 흉포하기로 이름이 알려진 단체였다. 그래서 북해에서는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설인이 잡아간다고 아이에게 겁을 줄 정도였다.
그런 북해설인대가 무려 50여 명이나 빠르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 중 선두에 서서 경공을 펼치던 우두머리가 손을 들자 50여 명의 사내들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러자 그들의 우두머리가 잠시 앞쪽에 보이는 팔공채의 산채를 유심히 살피다가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소호 아가씨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거치적거리는 놈들은 모두 죽인다. 이상.”
우두머리 사내의 말이 끝나자 50여 명의 사내들이 동시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우두머리가 다시 손을 들어 산채를 가리켰다. 그 순간 그의 뒤에 있던 사내들이 일시에 모두 산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순식간에 옮겨 가며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유령과도 같았다.
남궁종상은 가까이 다가오는 무리들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들을 보자니 딱 산적 같아 보였는데 그중 한 명은 이 더위에 호피 가죽을 상의에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 덥지도 않나?’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소가주님? 팔공채의 채주인 황랑이 인사드립니다.”
“응? 아, 그렇군. 수고가 많소.”
황랑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남궁종상이 초면에 하대를 하는데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강자지존(强者至尊)의 법칙이 통하는 무림에서 나이 따위는 별로 통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네. 하하하. 오늘 소가주님께서 이곳 팔공산을 지나간다고 하기에 이렇게 직접 마중을 나왔습니다. 미력하나마 팔공산을 벗어나실 때까지는 길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훗! 그럼 잘 부탁하오.”
남궁종상의 말에 황랑이 포권을 취하고는 앞장서서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랑의 부하들이 그 뒤를 따랐고 마지막으로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느긋하게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오라버니, 보아하니 산적 같은데 왜 저런 자들을 살려두는 거죠?”
“후후. 저들이 비록 산적이라 하나 우리에게는 가끔 도움이 되기도 한단다. 개는 잡아먹기보다는 잘 길들여 놓으면 여러모로 좋은 법이지.”
“호호. 오라버니 말을 들으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남궁종상과 남궁소희가 이야기하는 것을 앞에 있는 황랑이나 그를 따르는 부하들이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속으로 분을 삭이며 말없이 길을 안내하였다. 혹여나 남궁세가에게 뭔가 흠이라도 잡히면 한순간에 산채가 박살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그들이 가고 있던 길 한쪽의 수풀이 흔들리더니 갑자기 뭔가 튀어나왔다.
“꾸에에엑!”
멧돼지였다. 멧돼지는 뭔가에 쫓기고 있는지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뒤를 따라 웬 여인과 어린 소녀, 그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들 서너 명이 수풀을 헤치며 튀어나왔다.
“아앗! 저쪽이야! 저쪽!”
“뭣들 해? 빨리 쫓지 않고!”
“빨리 잡아!”
유소호와 향이가 도망가는 멧돼지를 따라 뛰면서 소리치자 사내들도 소리를 지르며 그 뒤를 쫓았다.
황랑은 갑자기 숲에서 멧돼지가 뛰쳐나와 자신에게 달려들자 놀라서 기겁을 하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그를 뒤따르던 부하들도 마찬가지로 멧돼지를 피해 몸을 날렸다.
“허걱! 피해!”
“피해라!”
“꾸에에엑!”
그런 그들을 순식간에 지나친 멧돼지가 남궁종상과 남궁소희에게 달려들려 할 때였다. 그들의 뒤에 있던 천검대원 두 명이 소리 없이 움직이더니 그 앞을 막아섬과 동시에 검을 뽑는 순간, 멧돼지는 좌우로 네 토막이 나버렸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주 깔끔한 솜씨였다. 그것을 보고 멧돼지의 뒤를 쫓던 향이와 유소호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잡았…네.”
유소호가 앞에서 네 조각이 난 멧돼지를 보다가 그 앞에서 살벌한 기세를 풍기는 천검대원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그러자 향이가 그 앞을 막아서며 나직하지만 위협적인 어조로 물었다.
“웬 놈들이냐?”
“…….”
천검대원들에게서는 말이 없었다.
“하하하하.”
그때 남궁종상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자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그건 내가 물어야 할 말이 아니던가?”
남궁종상이 옅은 웃음을 흘리면서 되묻자 향이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대로 그들이 가고 있는 길에 갑자기 뛰어든 것은 자신들이었던 것이다.
“그 멧돼지는 우리의 사냥감이다.”
그때 유소호가 당차게 나서며 크게 외치자 이번에는 모두가 유소호를 바라봤다. 유소호는 양손을 허리에 척하니 걸치고 남궁종상을 똑바로 바라보며 따지듯이 말했다.
“본의 아니게 우리의 사냥감이 그리로 간 것뿐이다. 뭘 하고 있느냐? 어서 멧돼지를 챙기지 않고!”
유소호가 그녀와 함께 사냥을 하던 산적들을 바라보며 소리치자 산적들이 눈치를 살피며 머뭇머뭇거렸다.
그때 황랑이 옆에 있는 부하에게 유소호와 향이가 누구인지 전해 듣고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저들이 누구인데 감히 나서서 저런 소동을 일으킨단 말인가?
황랑은 지금 자신이 나서서 그들을 변호하면 일부러 이런 일을 벌였다고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강무진의 부하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놔둘 수도 없었다. 이에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길 옆의 수풀이 또다시 들썩거리더니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바로 강무진과 왕삼이었다.
“어! 뭐야? 여기 다 있었네.”
강무진이 유소호와 향이, 그리고 황랑을 번갈아 보면서 말하자 황랑은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향이와 유소호를 변호해야겠다는 결론이 섰다. 사실 변호라기보다는 비굴하게 한껏 머리를 숙이고 목숨을 구걸하는 일이었다. 자존심 같은 것은 이미 이곳에 올 때 버리고 왔으니 그 정도를 못 하랴 싶었다. 그리고 강무진은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가 보는 앞에서 유소호와 향이를 보호해 주면 강무진의 성격상 그만큼 자신에게 더 고마워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황랑이 남궁종상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강무진이 그 앞을 막아서고는 남궁종상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두목, 이 사람들이 남궁세가의 사람들입니까?”
“뭐?”
황랑이 강무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뭐라 대답할 사이도 없이 강무진이 남궁종상을 향해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반갑소. 나는 이곳 팔공채의 부채주 중 한 명인 강무진이라고 하오.”
“허걱!”
강무진이 그렇게 남궁종상에게 인사를 하자 황랑은 당황하여 정신이 멍해지며 시야까지 흐려지려고 했다. 남궁종상보다 나이가 많은데다 채주인 자신조차도 존대를 하며 극진히 대하는 상대를 부채주라는 자가 저리 인사를 하면 어쩌자는 말인가?
‘죽었다.’
지금 황랑의 머릿속에는 오직 이 말만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남궁종상은 갑자기 연이어 이상한 사람들이 튀어나오자 속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뒤늦게 나타난 부채주라는 자는 상황 파악 못 하는 어수룩한 말투는 그렇다 쳐도 이 더운 날씨에 웃기지도 않게 여우털을 두르고 있으니 계속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던 남궁소희는 이 상황이 결코 반갑지가 않았다. 그렇잖아도 천검대와 같이 움직이고 있어서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에 대해 조금 짜증이 나고 있었는데, 어디에서 같잖은 자들이 나타나 남궁세가를 무시하는 말을 하자 참고 있던 짜증이 확 치솟은 것이다.
더구나 뒤늦게 나타난 자는 남궁세가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지 기껏 산적 나부랭이 주제에 어떻게 감히 자신의 오라버니인 소가주에게 저런 식으로 인사를 한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들의 길을 막고 말이다. 이에 기분 나쁜 표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소호와 향이는 강무진이 한 말에 서로를 바라보며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뭐? 저들이 남궁세가의 사람들이라고?’
그들의 원래 목적지는 남궁세가였다. 그런데 강무진 때문에 이곳에 잡혀 있다가 이곳에서 지내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는 그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어디에선가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며 한 사내가 숲에서 뛰쳐나왔다.
“두모옥! 두모옥!”
“끙! 이번엔 뭐냐, 또?”
황랑이 이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신을 부르는 사내를 바라봤다. 그러자 자신을 부르며 급하게 다가오던 사내가 근처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꼬꾸라지는 것이 보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황랑은 뭔가 다급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면서 재빨리 그 사내에게 다가가 부축을 했다. 그러자 그 사내의 등에 세로로 나 있는 깊은 상처가 보였다. 거기에서는 피가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뭐냐? 도대체 무슨 일이냐?”
“크으윽……. 산채… 산채에… 기습……. 빨리……. 모두 전멸……. 컥!”
“뭐? 산채에?”
황랑이 다시 세세하게 물어보려고 했으나 사내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런 사내를 잡고 있는 황랑의 손이 분노로 인해 부들부들 떨렸다.
“어떤 놈들이 감히…….”
황랑은 눈을 뜨고 죽은 사내의 눈을 조용히 감겨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남궁종상을 향해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보시다시피 산채에 일이 생겨 더 이상 모시지 못함을 용서 바랍니다.”
“이봐요! 당신네들은 대체…….”
남궁소희는 여태까지 참아왔던 짜증을 황랑에게 쏟아 부으려다가 황랑의 눈을 보고는 말을 멈추었다.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황랑은 아까까지의 황랑이 아니었다. 아까의 황랑은 그저 일개 산적 두목 나부랭이에 불과했다. 살기 위해서 꼬리를 마는 강아지처럼 자존심을 버리고 바닥까지 자신을 낮추는 그런 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황랑의 몸에서는 이글거리는 투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꼬리 내린 강아지가 보여줄 수 있는 기백이 아니었다.
그것은 남궁소희뿐만이 아니라 남궁종상에게도 의외였다. 일개 산적 두목이 이 정도의 기세를 뿜어낼 수 있다는 것이 의외였던 것이다. 거기에 약간의 호기심이 이는 남궁종상이었다.
그때 강무진이 크게 소리치며 유소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놈들이 온다! 모두 한쪽으로 모여!”
“뭐?”
강무진의 외침이 의외였던지 모두가 강무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것은 남궁종상을 포함한 남궁세가의 사람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은 아직 상대의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강무진이 갑자기 저렇게 소리치며 다급하게 움직이자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강무진이 유소호의 손을 잡고 향이의 곁으로 가 넘겨줄 때쯤에는 그들도 산 위에서 질풍같이 쏟아져 나오는 살의(殺意)와 기척을 잡아낼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