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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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12화
112화
“이놈이 요상한……. 끄윽……. 뭘 보고 있어! 당장에 이놈을 죽여!”
“네? 넷! 쳐라!”
“이야아아아!”
산적들이 모두 허리에 차고 있던 도를 뽑아 들고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퍼퍼퍼퍽!
그러나 그들은 도를 휘둘러 사내를 한 번씩 치고는 놀란 눈으로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신들이 휘두르는 도가 사내의 몸에 닿기만 하면 다시 튕겨 나와 그 여파로 인해 손이 찌르르 하니 떨렸던 것이다.
“헉! 이, 이게 무슨…….”
“조, 조장…….”
급기야 사내들은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던 칼을 거두고 처음에 사내에게 소리쳤던 산적을 바라봤다.
‘제, 젠장. 고수잖아. 니미.’
조장이라 불린 산적은 부하들의 칼을 몸으로 모두 튕겨내는 사내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칼을 단단히 움켜잡고 어벙해 보이는 사내 앞에 서서 이빨을 꽉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의 부하들은 속으로 설마 하는 생각을 했다.
허접한 실력을 믿고 고수에게 덤벼들었다가는 자신들까지 모두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털썩!
조장이라 불리던 그 커다란 덩치의 산적이 갑자기 풀썩 무릎을 꿇더니 넙죽 엎드리며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
갑작스러운 조장의 행동에 나머지 네 명의 사내들이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조장이라 불린 산적이 크게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냐? 어서 와서 용서를 빌지 않고!”
“헛!”
“알겠습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네 명의 사내들이 조장이라 불린 산적 뒤로 후다닥 가서 넙죽 엎드렸다.
조장이라 불린 산적은 과연 경험이 많은 자였다. 지금과 같이 무림의 고수를 못 알아보고 건드렸을 경우 경험이 없는 것들은 무조건 도망을 친다. 그럴 경우 열에 아홉은 죽기 마련이다.
고수들의 명예와 자존심은 하늘을 찌를 정도다.
그런 그들을 위협하고 도망치려 한다는 것은 그냥 ‘나 죽여주십시오.’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니 이럴 때는 무조건 비굴한 모습으로 비는 것이 제일이다. 자신들이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비굴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고수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운이 나빠 팔이 하나 날아갈 수도 있지만 목숨을 잃는 경우는 없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다섯 명의 덩치 커다란 산적들이 넙죽 엎드려서 애원하는 모습을 어벙해 보이는 사내는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도록 사내는 산적들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이에 산적들은 혹시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득한 가운데서도 슬슬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이 시점에서도 다리가 저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조장이라고 불렸던 산적이 고개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쳐들어 어벙해 보이는 사내를 바라봤다.
그리고 사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다시 고개를 팍 숙였다.
‘니미. 살리든 죽이든 빨리 뭔가를 하지. 으, 다리가…….’
산적들은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끊어지도록 아팠으나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계속 꼼지락대고만 있었다. 그때 그 어벙해 보이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들 산적이지?”
‘아, 나 정말……. 딱 보면 모르냐? 여태까지 그거 생각한 거냐? 이거 살짝 맛이 간 놈 아니야? 이런 놈은 정말 위험한데…….’
생각과는 달리 산적들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헤헤. 그렇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어쩌다 보니……. 헤헤.”
온갖 비굴한 모습으로 실실거리는 산적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어벙해 보이는 사내가 쭈그리고 앉아 산적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물었다.
“누가 두목이야?”
“네? 아! 하하……. 저기 두목은 여기 없습니다. 저기 산채에…….”
‘아차!’
자신도 모르게 어벙해 보이는 사내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해버린 산적은 속으로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래? 그럼 그리로 가자.”
“네? 저… 그, 그것이…….”
“왜? 싫어?”
그렇게 묻고 있는 어벙해 보이는 사내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조장이라 불린 사내는 알고 있었다. 저런 어벙해 보이는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 무림인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헛! 아닙니다. 싫기는요.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산채까지 데려간다. 크크. 거기서 한번 죽어봐라.’
사실 이들이 속해 있는 산채는 산적들의 연합체인 녹림십팔채(綠林十八寨)에 버젓이 한 다리를 걸치고 있는 팔공채란 곳이었다. 그런 만큼 팔공채의 산적들은 무려 200여 명 가까이 되었고, 실력 있는 고수들도 제법 많았다.
조장이라 불린 산적은 이 어벙해 보이는 사내의 무공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산채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 산적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벙해 보이는 사내는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산적의 뒤를 따라 팔공채로 향했다.
“두목!”
“뭐야? 나 지금 연구 중인 거 안 보여? 이럴 때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두목이라 불린 사내가 요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방 안으로 들어온 부하를 보며 짜증을 확 냈다.
“잠시만 기다려. 한 초식만 더 연구하면 되니까.”
그렇게 말한 두목이라 불린 사내가 빠르게 손을 교차시키며 뻗음과 동시에 한쪽 다리도 뻗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마귀가 먹이를 낚아채는 것과 같았다.
팔공채의 두목인 이 사내는 무공을 연구하는 것이 취미였다. 그러다 산속에서 사마귀가 먹이를 낚아채는 것을 보고 무공을 창안해 낸 대단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곳 팔공산에서 본 사마귀를 보고 만든 무공이라서 그 무공을 팔공당랑공(八公螳螂功)이라 불렀는데 그래서 그의 별호도 팔공당랑(八公螳螂)이었다.
팔공당랑 황랑!
그것이 이곳 팔공채의 채주인 그의 이름이었다.
“거참, 분명 이런 동작이었는데……. 여기서 좀더 안으로 팔을 휘어야 되나?”
그렇게 말하면서 사마귀의 앞다리처럼 구부린 손을 공중에 대고 몇 번이나 휘휘 내지르던 황랑이 그제야 옆에 있는 부하를 바라봤다.
“에잉! 네놈이 옆에 있으니까 연구가 안 되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네. 그게, 면박이 놈이 웬 어벙해 보이는 놈을 하나 데려왔습니다.”
“뭐야? 겨우 그딴 일로 지금 내 연구를 방해한 거야?”
“그게 아니라, 그 어벙해 보이는 놈이 엄청난 고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고수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말을 똑바로 해!”
“일단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에잉! 귀찮게시리. 부두목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이런 일에 일일이 두목인 내가 나서야 하니…….”
황랑이 투덜대면서 부하와 함께 밖으로 나오자 산채의 중앙에 있는 공터에 자신의 부하들이 한 사내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놈이야?”
“네.”
“저놈이 뭘 어쨌단 거야?”
“그게, 그러니까, 안 죽습니다.”
“뭐?”
“아무리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후려쳐도 끄떡도 안 합니다.”
“…….”
잠시 말이 없던 황랑이 부하를 향해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부하가 다가오자 그의 뒤통수를 힘껏 후려쳤다.
따악!
“컥!”
“더위 먹었냐? 네가 지금 나하고 농질을 하자는 거냐?”
“아닙니다, 두목! 그러니까 직접 가서 보시라니까요.”
“…….”
‘흠,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군.’
“좋아. 너 만약 가서 별것 아니면 나한테 죽을 각오해. 가자.”
황랑이 그렇게 말하면서 당당한 걸음걸이로 그 어벙해 보이는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황랑의 걸음걸이가 점점 느려졌다. 그러다가 종내에는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잘못 본 것이 아닌가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봤으나 똑같은 장면이 계속 연출되고 있었다. 이에 황랑은 그저 멍하니 서 있어야만 했다.
비록 산적이라고는 하나 녹림십팔채에 들 만큼 규모도 있고, 무공도 제법 하는 실력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팔공채였다. 그들 모두가 그 어벙한 인간에게 덤벼들고 있었으나 모두들 꿈을 꾸는 듯 멍한 얼굴로 지쳐서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어벙한 인간의 몸에는 어찌 된 일인지 무기가 통하지 않았다. 도(刀)와 검(劍)은 물론이고, 철퇴, 채찍, 삼지창 등 수많은 무기들도 부족해서 온갖 암기까지 전부 쏟아부어 봤지만 그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생기지가 않았다.
더구나 그 어벙해 보이는 인간은 고통도 없는지 그렇게 온갖 무기를 몸에 맞고 있으면서도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저… 저…….”
황랑이 황당함에 말을 더듬자 옆에 있던 부하가 말했다.
“거 보십시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저게 혹시 말로만 듣던 상승의 고수들만 쓸 수 있다는 그 호신강기(護身剛氣)인가? 이런 니미…….’
무공을 연구하는 것이 취미인 만큼 상승의 무공에 대해서도 들은 풍월이 많은 황랑이었다. 저렇게 호신강기를 쓸 정도라면 상대는 팔공채의 모든 식구들이 덤벼들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고수였다.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여긴 황랑은 어떻게 할까 잠시 생각을 해봤다. 이대로 도망을 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지 모르나 그동안 피땀 흘려 일궈놓은 산채를 버려야 했다. 그러면 그에게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동안 이 정도 규모의 산채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그런 산채를 이대로 허무하게 버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덤벼들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그러니 결국 선택은 한 가지뿐이었다. 자신의 목숨과 산채의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것이다.
“멈춰라!”
황랑의 커다란 외침에 어벙해 보이는 인간을 공격하던 산적들이 모두 동작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황랑이 어벙해 보이는 인간에게 다가가 말했다.
“험! 어, 어디에서 오신 고인(高人)이시오?”
황랑은 나름대로 아랫배에 힘을 주고 당당하게 말한다고 말했으나,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네가 두목이냐?”
‘헛! 이놈이 대뜸 하대를…….’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상대가 하대를 했지만 어쩌랴?
강호는 강자지존(强者至尊)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으로 실력만 있으면 나이 같은 것은 별 효용이 없었다. 그러니 상대가 하대를 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상대가 하대를 한다고 자신도 상대에게 하대를 할 수는 없었다. 상대보다 약하니 그저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험! 그, 그렇소. 그대는 누구요? 무슨 일로 이곳 팔공채에 온 것이오?”
“나? 나는…….”
어벙해 보이는 사내는 황랑이 묻는 말에 한참을 생각하는 듯했다.
‘호신강기를 쓸 정도의 고수라면 분명 강호에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고수일 것이다.’
황랑은 이미 목숨을 구걸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그러니 이 어벙해 보이는 자의 명성이 무림에서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자신도 덜 비참해지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쉽게 수긍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