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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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94화
94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지자 강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모든 내기를 오른팔로 억지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무진이 아수라패왕권을 쓸 때 이용하는 단전에서 오른손까지의 기의 통로로 기가 밀려갔다. 급한 마음에 뭐든 하려고 하자 평소에 많이 운용하던 아수라패왕진결의 경로로 내기가 움직인 것이었다. 그러자 기혈이 들끓으면서 강무진의 코에서 코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크윽! 버티어야 한다.’
비록 코피는 흐르고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정신은 더욱 맑아지는 강무진이었다. 게다가 지금 억지로 밀어 넣고 있는 기의 통로는 아수라패왕권의 위력을 내는 그 진동을 충분히 버티어내는 통로였기 때문에 혈관이 터져 나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들끓는 내기를 제어하기란 강무진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그때 강무진의 입술에 뭔가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자 강무진이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였다. 옆방에서 여태까지 들려오던 여인의 신음 소리가 갑자기 뚝 그쳤다. 그러더니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면서 이이책이 들어왔다. 이이책은 방 안의 상황을 보자 놀란 얼굴을 하며 급히 적영령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이에 강무진이 속으로 한시름 놓으면서 다시 정신을 극도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이책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며 뚝뚝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적영령과 강무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세 사람이 완전히 땀에 범벅이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헛!”
이이책이 낮게 기합을 넣으면서 적영령의 등에서 손을 떼었다.
적영령은 이미 제정신을 차리고 예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이었다. 이에 이이책이 크게 한숨을 쉬면서 땀을 닦아내었다. 그런 이이책을 보며 강무진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이이책이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히 방을 나갔다.
방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던 마홍이 이이책을 바라보자 이이책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마홍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실 세 사람은 강무진과 적영령이 있는 옆방에 손님이 들기는 했지만 워낙에 조용하기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자 송편을 남겨두고 두 사람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송편이 그곳을 지키다가 그만 잠깐 졸고 말았다. 그사이에 옆방에서 여인의 교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이에 강무진과 적영령이 위험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송편은 잠결에 들리는 소리에 혼자 히죽히죽 웃다가 순간 깜짝 놀라 잠이 깨었다. 그러자 여전히 옆방에서 미미하게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을 깨닫고는 곧바로 마홍과 이이책을 깨웠다.
급한 상황인데도 이이책은 침착하게 두 사람에게 여인의 신음 소리가 나는 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마홍과 송편이 곧 소리 없이 그 방으로 들어갔고, 이이책은 강무진과 적영령이 있는 방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던 것이다.
그렇게 극도로 긴장하며 지낸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 날이 되었다.
강무진과 적영령이 같이 있던 방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강무진이 밖으로 나왔다. 강무진은 전에 비해 혈색이 좋고, 피부도 반짝이는 것이 완전히 환골탈퇴를 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방문 앞에 있던 마홍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오오, 대공자님……. 성공하셨군요.”
“쉿! 지금 령아가 지쳐서 자고 있어. 많이 피곤했을 거야. 조금 쉬게 해주자고.”
강무진이 손가락 하나를 입에 대며 말하자 마홍이 그런 강무진의 손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여태까지 쓰지 못하던 오른손이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암요. 그래야지요. 허허.”
그렇게 대답하는 마홍의 옆에서는 이이책과 송편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훗! 저들도 피곤했었나 보군.”
“허허. 어젯밤에는 정말 위험했었습니다.”
“응.”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어제 신음 소리가 들렸던 옆방을 바라봤다. 그러자 마홍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클클. 그들도 한참 자고 있을 겁니다. 저와 송편이 손을 좀 썼지요. 무림인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랬다면 한참 시끄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응. 조금 더 이곳에서 쉬다가 밥 먹고 나가자.”
“알겠습니다, 대공자님.”
강무진의 일이 자신의 일인 것처럼 마냥 기쁜 마홍이었다.
“…….”
조용했다. 다섯 사람이 밥을 먹고 있는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 그저 밥만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째려보고 있었다.
“뭐야? 도대체 왜 그래?”
강무진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젓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소리치자 이이책과 송편이 딴청을 피웠다.
“뭐가 어쨌다고 그럽니까? 너는 아냐?”
“글쎄 말입니다. 우리가 뭘 어쨌다고 그러시는지…….”
두 사람이 그렇게 나오자 강무진이 도끼눈을 뜨고 두 사람을 노려봤다. 그러자 이이책이 젓가락으로 반찬을 깨작거리면서 빈정대듯이 말했다.
“누구는 좋겠수. 꽃 같은 미녀에 평생 공들여도 쌓을 수 없는 내공까지 얻었으니…….”
그러자 옆에 있던 송편이 옳다구나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런 두 사람의 말에 적영령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것들이 정말…….”
“험!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송편아, 그때 말이다, 내가 방에 들어갔더니 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아냐?”
“네? 아니, 그런 일이……. 허허, 이거 진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닙니까?”
이이책이 묻는 말에 송편은 대답을 듣지도 않았는데 벌써 들은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이에 적영령은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젓가락질도 못 하고 있었다.
“아 나 정말! 그런 거 아니래도 그러네. 적매하고 나는…….”
강무진은 순간 적영령이 배다른 동생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걸렸으나 꾹 눌러 참았다. 그런 강무진의 모습을 보며 이이책과 송편이 키득거렸다.
“참내……. 말을 말자. 말을 말아.”
강무진이 포기를 했는지 밥을 팍팍 떠서 입에 떠 넣자 이이책과 송편이 크게 웃어젖혔다.
“푸하하하.”
“크크큭. 뭘 그렇게 부끄러워합니까?”
“쳇!”
“농은 이제 그만들 하고 앞으로 어찌할지나 의논하세나.”
결국 보다 못한 마홍이 끼어들며 말하자 그제야 이이책과 송편이 조금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이이책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적영령을 불렀다.
“흠, 적 소저.”
“네?”
그때까지 딴생각을 하며 얼굴이 빨개져 있던 적영령이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이책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이이책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
‘크으, 역시……. 아깝다. 아까워.’
이런 생각에 강무진을 한 번 확 째려본 이이책이 곧 다시 적영령을 보며 말했다.
“지금 대주님과 도백광의 무공을 비교해 본다면 누구에게 더 승산이 있습니까?”
“음…….”
이이책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던 적영령이 슬쩍 강무진을 바라봤다. 강무진은 그런 일에는 관심 없다는 듯 밥만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오라버니가 조금 떨어질 거예요. 비록 내공을 모두 전하기는 했지만 열화마결을 완전히 익힌 것도 아니고…….”
“그렇군요. 그럼 열화마결을 모두 익히면 승산이 있습니까?”
“아니요. 열화마결을 다 익힌다고 해도 그와 동수를 이루거나 아니면 그 아래일 거예요.”
적영령의 말을 듣고 있던 마홍이 순간 기가 찬다는 듯이 말했다.
“허! 그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네. 제가 겪어본 바로는 아버님과 비슷한 경지거나 그 이상이었어요.”
적영령이 적상군을 언급하자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듯이 밥만 먹고 있던 강무진이 적영령을 바라봤다.
“그가 그러게 강해?”
“네.”
“흠, 거정 마. 내가 이기 수 있어.”
강무진이 입에 밥을 한가득 넣은 채 어물어물 말하자 이이책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농을 할 때가 아닙니다. 적공후 님의 내공을 모두 이어받고 열화마결을 완전히 익혀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데 어떻게 이긴단 말입니까?”
“그거야 다여히…….”
“아 참나! 먹고 이야기하십시오, 먹고.”
이이책이 못 봐주겠다는 듯이 말하자 강무진이 입 안에 있던 음식을 한 번에 삼키며 말했다.
“끄윽! 하아……. 그거야 당연히, 난 여태까지 열화마결을 익히지 않아도 수많은 적들과 싸워 이겨왔어.”
“흠, 우리가 빠져나올 때 성문을 박살 냈던 그 무공을 말하는 겁니까?”
“그래. 그것도 있지. 금강불괴신공을 완성하고 열화마결도 모두 익힌다면 승산이 있어. 상대가 강하다면 죽도록 노력하면 돼. 여태까지 그래 왔으니까.”
강무진의 말에 이이책은 물론이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주님이 도백광 그자를 이길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계획을 말해 보겠습니다. 우선 대주님은 방금 말했듯이 무공 수련에 전념하십시오. 그사이에 저와 송편은 적 소저와 함께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네? 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마 선배님은 관 선배님을 설득해 주십시오. 제가 좀 알아보니 패왕성에서 흑룡문을 날로 먹으려 하고 있더군요. 대성상단에서도 이미 승낙을 한 눈치입니다. 관 선배님이 혼자 이리저리 뛰고 있던데, 그대로는 흑룡문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겁니다. 조만간 일차적으로는 대성상단에 흡수될 것이고, 나중에는 결국 패왕성으로 귀속될 겁니다. 그러니 관 선배님을 잘 설득해서 도백광과 맞설 수 있게 해주십시오. 관 선배님이 나선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음…….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로군. 알았네. 그렇게 해보겠네.”
마홍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강무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그럼 나도 무공을 수련하면서 우리를 도와줄 만한 사람을 찾아올게.”
“네? 누굽니까, 그 사람이?”
“있어. 기대하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강무진이 눈을 빛냈다.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덜컹 열리면서 관옥상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에 송편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관옥상에게 뭐라고 하려고 했으나 강무진이 손을 들어 제지를 했다.
“형님…….”
“잠깐 나가서 이야기 좀 하자.”
“네.”
그렇게 말한 관옥상이 먼저 방을 나가버리자 강무진이 모두를 바라봤다.
“걱정하지 말고 마저 먹고들 있어. 금방 돌아올게.”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고 관옥상을 따라 방을 나갔으나 밥이 넘어갈 리가 없는 모두였다.
관옥상은 후원의 나무 옆에 서서 강무진에게 뒷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관옥상에게 다가간 강무진이 조심스럽게 관옥상을 불렀다.
“형님…….”
“왜 속인 거냐?”
“처음부터 속일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냥 시간이 좀 흐르고 나면 이야기할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네가 패왕마전대의 대주라고 하기에 설마 했었는데…….”
“형님…….”
“형님이라고 부르지 마. 누가 감히 패왕마전대주의 형님이 될 수 있어? 그동안 너도 겉으로는 형님, 형님 하면서 속으로는 나를 못나고 막돼먹은 놈이라고 비웃고 있었지? 그렇지 않아?”
“형님…….”
“다 필요 없어. 의형제는 여기까지다. 지금 네놈을 죽이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 하긴, 내겐 그런 능력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