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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전설 89화

무료소설 패왕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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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왕전설 89화

 89화

 

그리고 흑룡문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흑룡문의 긴 담장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던 강무진은 앞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쪽을 바라봤다. 그곳은 흑룡문의 정문이었는데, 웬 사내 한 명이 문을 지키고 있는 두 사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는 제법 준수하게 생긴 외모에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신분이 높은 듯, 그가 뭐라고 소리를 치는데도 문을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은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 뭐라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내는 한참을 두 사람에게 뭐라고 소리치고는 곧 흑룡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문을 지키고 있던 사내 중 한 명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카악! 퉤! 나 참. 더러워서…….”

“에휴……. 참으라고.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그래도 명색이 소문주 아닌가? 문주님같이 뛰어나신 분 밑에 어떻게 저런 인간이 태어났는지 모르겠군.”

“그러게나 말일세. 듣기로는 친자식이 아니라는 소문도 있더군.”

“쉿!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말게나.”

“흥! 뭐가 어때서? 이유 없이 욕을 먹었는데 내 입으로 말도 못 하나?”

“어허! 이 사람이…….”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다가 강무진이 다가가자 두 사람이 대화를 멈추고 강무진을 내려다봤다. 방금 그 사내를 대하던 태도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강무진의 행색이 초라한 것을 보고 얕잡아보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무슨 일이오?”

“뭐 좀 물어보려고 합니다만…….”

“흠, 그럼 물어보시오.”

“이곳의 문주님이 창왕(槍王)이라고 불리는 관평대라는 분이 맞습니까?”

강무진의 물음에 두 사람이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강무진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허 참! 당신은 저기 보이는 호수가 동정호라는 것은 알고 있소?”

악양에 동정호가 있다는 것은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예? 아! 하하하. 그럼요.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다행이군. 난 또, 이곳에 와서 문주님에 대해 묻기에 그것도 모르고 있는 줄 알았소.”

“그럼 그분이 문주님이 맞는군요.”

“나 참!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군. 여기 위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안 보인단 말이오? 악양 흑룡문의 문주님이 그분이 아니면 누구란 말이오?”

사내의 말에 강무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제가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허면 그분은 지금 안에 계십니까?”

“그건 왜 묻는 거요?”

“그분을 만나러 왔거든요.”

“당신이 말이오?”

“네.”

강무진의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다시 한 번 강무진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초라한 행색에 얼굴에도 생기가 없어 병자같이 보였다. 도저히 문주인 관평대를 찾아올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내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주님을 알고 계시오? 그러니까 미리 약속을 하고 온 것이냐, 그 말이오.”

“아닙니다. 문주님은 이름만 들었지 아직 뵌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미리 약속을 한 것도 아닙니다.”

“허 참! 그럼 딴 데 가보슈. 문주님은 아무나 만날 수 없소이다.”

“에? 하지만 가서 말이라도 전해주시면…….”

“아, 글쎄 볼일 없대도 그러네. 당신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두 명 찾아오는 줄 아시오?”

“그게 아니라…….”

“어허. 이 사람이…….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닌가? 자네도 문주님한테 신세 좀 부탁하러 온 것 아닌가?”

“네? 그, 그거야 그렇지만…….”

“거 보게. 문주님의 명성과 우리 흑룡문의 힘을 빌리려고 자네 같은 사람이 하루에 수십 명도 더 찾아오네. 알아?”

“아니, 그래도 안에 기별이라도 좀…….”

“어허, 안 된다니까 그러네.”

그렇게 강무진과 문을 지키고 있던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아까 두 사람을 향해 소리를 지르던 그 사내가 나왔다.

“뭐야?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네? 그, 그것이……. 이자가 자꾸 문주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뭐? 아버님을?”

사내가 의외라는 듯, 강무진을 아래위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두 사내에게 뭐라고 윽박을 지르려다 뭔가 생각났는지 멈칫했다. 그리고 강무진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래, 아버님을 왜 만나려고 하지?”

사내는 강무진의 행색이 초라한 것을 보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초면에 하대였다.

‘흠, 이자가 그 꼬맹이가 말하던 그 인간 말종이로군.’

“잠시 신세를 지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래? 못 보던 얼굴인데 자네 혹시 외지인인가?”

“네. 이곳 악양은 처음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아버님을 만날 필요도 없지. 따라와. 나한테 잘 보이면 내가 다 해결해 주지.”

사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강무진의 대답도 듣지 않고 휑하니 앞장서서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무진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그 뒤를 따랐다.

그가 간 곳은 악양에서 알아주는 화양루라는 기루였다. 사내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부터 기루를 찾은 것이다. 게다가 자주 찾아오는지 그곳의 기녀에 대해서 줄줄 꿰고 있었다. 그녀들도 그 사내가 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갖은 아양을 다 떨고 있었다.

그렇게 커다란 방에 여인들까지 끼고 앉은 사내가 강무진을 보고 으쓱하며 말했다.

“이런 곳은 처음 와봤겠군. 그리 놀라지 말고 한잔하지.”

“아! 예…….”

사실 절강성에 있을 때 이곳보다 더한 곳도 가봤던 강무진이지만 그런 것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냥 조용히 술잔을 받았다.

‘보아하니 촌놈 같은데, 일단 좀 잘해준 다음에 잘 이용해 먹어야겠어.’

강무진에게 술을 한 잔 따라준 사내가 자신의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기녀들을 보며 말했다.

“야야! 너희들은 왜 내 옆에만 붙어 있어? 빨리 저리로 가서 시중들어야지.”

“아잉, 하지만 우리는 공자님이 좋은걸요. 게다가 저 소협은 그동안 공자님의 친구 분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호호호. 그러게요. 게다가 냄새도 좀…….”

기녀들 말대로 강무진은 오랫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고 씻지도 못한 상태였다. 더구나 행색까지 초라하니 기녀들이 그런 말을 할 만도 했다. 그러나 강무진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스스로 술잔을 채워 한 모금 들이켰다.

“아니, 이것들이!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

그렇게 말하던 사내가 순간 은자 몇 개를 탁자에 탁 소리 나게 올려놓자 기녀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본 공자와 함께 온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은 나를 무시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금 저쪽으로 가서 시중을 들래? 아니면 다른 아이들을 부를까?”

사내의 말이 끝나는 순간 기녀들이 깜짝 놀라며 재빨리 강무진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어머! 아니에요.”

“호호호. 우리가 소협을 잘 몰라봤어요.”

“귀엽게 생겼네. 호호호.”

강무진은 기녀들이 그렇게 다가와 애교를 부리자 쓴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초연이 생각났다.

‘그래. 그녀를 처음 본 것도 이런 기루에서였지.’

이에 술을 몇 잔이나 연거푸 들이켜자 기녀들이 다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어머, 자존심이 상하셨나 보다.”

“호호호. 제가 한 잔 따를 테니 기분을 푸셔요.”

그렇게 강무진이 또다시 몇 잔을 더 마시자 사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술이 세군. 그래, 이름이 뭔가? 아!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모르겠군. 본 공자는 관옥상이라고 한다네.”

“관 공자시군요. 저는 강무진이라고 합니다.”

“좋은 이름이군. 무공은 좀 할 줄 아는가?”

그때였다. 강무진의 오른팔을 잡고 안기려던 기녀가 순간 놀라서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어머! 뭐야?”

그러자 강무진이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관옥상을 보며 말했다.

“사실 저는 최근에 적을 만나 한쪽 팔을 못 쓰게 됐습니다. 그래서 의원을 찾다가 흑룡문의 소문을 듣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간 것이었습니다. 비록 한쪽 팔이 이렇지만 가진바 무공이 좀 있으니 보여 드리지요. 너! 저리로 가서 이 술잔 두 개를 들고 팔을 벌리고 서라.”

강무진이 방금 자신의 팔을 보고 놀라던 기녀를 향해 말하자 기녀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강무진과 관옥상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관옥상이 실실 웃으면서 탁자를 탁 내려쳤다.

“뭐 하고 있어? 어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네? 네…….”

그제야 기녀가 두 개의 잔을 들고 한쪽 벽으로 가서 양팔을 펼치고 섰다. 그러자 강무진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좀더 팔을 들어 올려. 좀더! 그렇지.”

강무진의 말에 기녀가 팔을 거의 만세를 하다시피 올리자 강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보십시오.”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의 왼손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기녀가 들고 있는 잔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뭘 한 건가? 들고 있는 잔이 멀쩡하지 않은가?”

뭔가를 기대하고 있던 관옥상은 강무진이 허풍을 쳤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 그런 관옥상을 보며 한 번 씩 웃은 강무진이 술잔에 있던 술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 탁자에 소리 나게 술잔을 내려놓는 순간, 술잔을 들고 벽에 서 있던 기녀의 옷이 스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어머! 꺄악!”

사실 강무진은 처음부터 기녀가 들고 있는 술잔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기녀가 입고 있는 옷의 양쪽 어깨끈을 노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기녀가 알면 아무래도 겁을 먹고 몸을 움츠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잔을 맞출 것같이 하고서는 어깨끈만 끊어낸 것이었다.

“으하하하하. 이거 대단하군. 대단해.”

관옥상은 강무진의 뛰어난 암기술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굉장히 기뻐했다. 기녀의 그 얇은 어깨끈을 상처 없이 끊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관옥상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잘하면 더 유용하게 써먹을 수도 있겠는걸.’

“자자, 한 잔 더 받게나. 하하하. 내 평생에 그런 신기(神技)는 처음일세.”

“그렇습니까? 사실 이것 말고 잘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응? 그래? 이거 기대되는군. 그래, 그 잘하는 것이 뭔가?”

관옥상이 술을 따라 주고 나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강무진을 바라보자 강무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술을 한 모금 마신 후에 옆에 있던 기녀의 어깨를 잡아당기면서 가슴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어머!”

이에 기녀가 놀라서 강무진을 바라보다 강무진이 뭘 했는지 곧 인상을 살짝 쓰며 비명을 질렀다.

“아야!”

“크큭. 남자가 이거 하나 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응? 푸하하하. 그렇지. 그렇고말고. 이거 오랜만에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났군. 오늘 밤은 내가 거하게 낼 테니 같이 실컷 마셔보세나. 하하하하.”

그때부터 제대로 벌어진 술판은 밤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술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강무진이었다. 그리고 어디 술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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