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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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87화
87화
게다가 초연이 비록 뛰어난 살수이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살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암습을 가하는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보다 무공이 뛰어난 고수들도 충분히 죽일 수가 있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이 이렇게 모습을 완전히 보인 상태에서 무공만으로 싸우는 것은 살수에게 굉장히 불리한 일이었다. 더구나 여사악의 무공은 초연보다 몇 단계는 더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연의 뒤에는 강무진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움직이는 데 제한이 있었던 것이다.
초연을 몰아붙여 가던 여사악은 그것을 단번에 눈치 챘다. 강무진을 보호하기 위해 초연은 피해야 할 상황에서도 막아서거나 무리를 하며 반격을 했던 것이다. 이에 여사악이 장을 뻗는 척하면서 허리의 검을 뽑아 강무진에게 날렸다. 그것을 보고 초연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놀라서 소리쳤다.
“안 돼!”
퍼억!
“끄윽…….”
강무진은 갑자기 자신의 얼굴로 쏟아지는 뭔가에 희미하던 정신을 조금 차릴 수가 있었다. 그러고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그러자 여전히 그의 얼굴로 쏟아지던 따뜻한 무언가가 그의 입으로 흘러 들어갔다.
“…….”
그것은 초연의 피였다. 초연은 여사악이 강무진에게 검을 날리자 자신도 모르게 강무진을 감싸며 그 앞을 막아섰던 것이다. 그러자 여사악의 검이 뒤에서부터 초연의 배를 뚫어버렸다. 초연은 자신의 배를 뚫고 나온 검을 두 손으로 꽉 움켜잡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검이 그대로 뚫고 지나가 강무진도 뚫었을 것이다.
“다, 다행이야…….”
초연은 자신이 검에 찔렸는데도 눈물을 흘리며 강무진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다치는 것보다 강무진이 무사한 것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강무진은 그런 초연을 보며 흐릿하던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이에 사력을 다해 움직이려고 했다. 초연을 저렇게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초연은 자신이 보호해야 할 여자였다.
‘움직여야 해. 움직여라. 크윽!’
그러나 강무진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만 미친 듯이 움직일 뿐,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강무진을 보면서 초연은 고통을 참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무리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크크크. 멍청한 것.”
여사악은 뜻하지 않게 너무나 쉽게 공격이 성공하자 그녀를 비웃으며 마무리를 하기 위해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초연은 등 뒤에서 다가오는 여사악과의 거리를 잡아내기 위해 고통 때문에 아득해지는 정신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여기서 자신이 정신을 잃으면 강무진도 끝이었다.
‘아직 아니야. 아직은…….’
그때였다.
“그만두세요.”
“응?”
여사악은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고운강의 상처를 살피던 여인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네가 감히 나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공자님의 뜻입니다. 공자님은 그가 살기를 바랍니다.”
“뭐?”
여인의 말에 잠시 고운강을 바라보던 여사악의 얼굴이 살짝 꿈틀했다.
“적을 그냥 보내란 말이지? 이자를 그냥 보내면 주군의 분노를 내가 다 감당해야 하거늘……. 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
그렇게 말하던 여사악이 순간 초연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그러자 여태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던 초연이 강무진을 안아 들고 몸을 날렸다.
퍼억!
“크윽!”
그런 초연의 몸에 여사악의 장력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초연도 그대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려 여사악을 보는 순간 입에 물고 있던 암기를 쏘아냈던 것이다. 그것은 아주 작고 얇은 바늘이었다. 초연은 이 한 수를 위해 여사악이 다가오기를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초연의 입에서 튀어나간 얇은 침은 여사악의 오른쪽 눈에 그대로 박혀버렸다.
“크아아악!”
여사악은 설마 다 죽어가던 초연이 이렇게 반격을 해올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 눈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 사이에 초연은 강무진을 안은 채 사력을 다해 그곳을 벗어났다.
만약 여사악이 다른 곳을 초연에게 당했다면 그녀가 그렇게 쉽게 도망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을 당했기 때문에 여사악은 강무진을 안고 가는 초연을 쫓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괴성을 지르며 괴로워하던 여사악은 순간 고운강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고통을 참으며 한쪽 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크윽, 저것이 말만 걸지 않았어도……. 그렇잖아도 늘 신경에 거슬리던 놈이었다. 그래, 이참에 죽여주마. 주군께는 그놈과 싸우다 죽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여사악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고운강을 향해 다가갔다. 한쪽 눈을 다쳤기 때문에 거리감이 없어 빨리 걸을 수가 없어 천천히 다가갔던 것이다.
고운강의 곁에 있던 여인은 여사악이 다가오자 그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다가오지 마세요.”
“크윽, 네년이 고 공자의 옆에 붙어 있더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어서 그의 상처나 보여라. 그가 죽으면 주군의 분노를 누가 감당한단 말이냐? 마침 내게 내상을 치료하는 좋은 약이 있으니 다행인 줄 알거라.”
여사악이 그렇게 짐짓 엄하게 말하면서 다가가자 여인이 잠시 망설이다가 주춤하며 물러났다. 그사이에 여사악은 어느새 고운강의 근처까지 다가가고 있었다.
여사악은 잠시 한쪽 눈으로 고운강을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옆에 있는 여인을 향해 장을 뻗었다.
퍼억!
“꺄악!”
그녀는 여사악을 믿지 않았으나 고운강을 생각하는 마음에 혹시나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여사악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으나 여사악의 무공이 너무 강했다. 대비를 하고 있었으면서도 그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어깨에 일장을 맞고 말았다.
‘쳇! 눈 때문에 공격이 얕았다.’
여사악은 지금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리감이 정확하지가 않았다. 지금도 사실 상대의 가슴을 노리고 일장을 날린 것이었다. 만약 한쪽 눈이 멀쩡했다면 그 거리에서 상대가 피한다고 해서 놓칠 여사악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든 상대가 어깨에 일장을 맞고 비틀하자 여사악은 다시 그녀를 향해 일장을 날려 끝을 내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 그의 발목을 잡자 그의 몸이 멈칫했다. 고운강이었다. 고운강이 있는 힘을 다해 여사악의 발목을 잡아 그의 움직임을 제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고운강은 그것마저도 힘겨운지 거친 숨을 내쉬며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흥!”
그런 고운강의 손을 여사악이 발로 차서 떨쳐내고는 고운강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퍼억!
“크윽!”
그렇잖아도 부상이 심했던 고운강은 여사악의 단순한 발길질에 피를 토하며 뒤로 굴러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느낌에 여사악은 재빨리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방금까지 여사악이 서 있던 곳을 검이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여인이 고운강을 안아 올림과 동시에 여사악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수십여 개의 얇은 침이 여사악을 향해 날아갔다. 평소의 여사악이었다면 이까짓 암기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여사악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데다가 암기들이 여사악의 멀쩡한 한쪽 눈을 노리고 날아오자, 놀라서 평소보다 더한 반응을 보이며 그것들을 피해내었다. 그래서 그만큼 동작이 컸고, 그 틈에 여인은 힘껏 경공을 펼쳐 그곳을 벗어났다.
“흥! 감힛! 벗어나지 못한다.”
여사악이 크게 외치면서 그런 그들의 뒤를 따랐다.
한편 초연은 강무진을 안고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저 강을 따라 미친 듯이 달렸다. 그런 초연의 뒤로 초연이 흘리는 피와 강무진이 흘리는 피가 흩뿌려졌다.
“헉! 헉!”
그러던 어느 순간 초연이 발에 뭔가 걸리면서 넘어졌다. 이에 초연의 품에 안겨 있던 강무진도 같이 땅을 굴러야 했다.
“끄으윽.”
초연은 고통에 신음했다. 아직 뒤쪽에서 배를 뚫고 나와 있는 검을 빼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넘어지자 검이 움직이면서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쳐왔다.
“헉! 헉!”
초연은 급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두리번거리며 강무진을 찾았다. 그녀에게는 이 상황에서도 강무진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강무진을 안아 든 초연은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그렇게 달리자 작은 나루터에 배가 한 척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사공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그 배에 올라타 강무진을 눕힌 초연은 그제야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강무진의 몸 위로 무너져 내렸다. 오직 강무진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여태까지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제는 강무진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쓰러졌던 것이다.
강무진의 몸 위에 쓰러져 있는 초연의 얼굴이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그러나 표정 없이 식어가는 그 얼굴에 때로는 즐거움이, 때로는 부끄러움과 같은 감정들이 일렁거렸다. 그녀가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와, 그렇게 해서 할머니하고 할아버지하고 만난 거야? 멋있다아. 나도 할아버지 같은 멋진 사랑을 하고 싶어.
-허허, 녀석. 살수는 사랑을 하면 안 돼. 더구나 여자는 더욱이 그렇지.
-하지만 할아버지하고 할머니는 했잖아.
-그, 그건…….
-깔깔깔깔. 나도 그런 사랑을 할 거야. 운명적인 사랑 말이야.
-이봐! 칠십이 호! 아직도 마음을 안 정한 거야?
-호호. 부대주님은 제 취향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럼 이만…….
-흠, 물이 오를 대로 올랐구만. 대주님의 편애만 없다면 벌써 해치웠을 텐데 아쉽군. 흐흐. 하지만 기다려라. 대주님만 없으면…….
-할아버지. 꼭 가야 해요?
-그래. 이것이 이 할아비의 마지막 임무가 될 것 같구나. 기다리고 있거라. 이번 일이 끝나면 같이 조용한 곳에 가서 살자꾸나.
-응, 기다릴게.
-봤느냐? 저자가 우리들의 목표다. 유운무만 처리한다면 옆에 있는 애송이는 문제도 아니지.
-흐음, 잘 생겼는걸.
-뭐? 너 눈은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냐? 저게 어떻게 잘 생긴 얼굴이냐? 생긴 걸로 따지자면 오히려 옆에 있는 유운무가 훨씬 낫다.
-깔깔깔깔. 뭘 흥분하고 그러세요. 부대주님도 충분히 잘생겼다고요. 다만 내 취향이 아닐 뿐이지. 하지만 저 애송이는… 귀엽네요.
딱 내 취향인데, 죽여야 하다니 아쉽군.
-똑똑한 놈이군. 우리가 노린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객잔이 아니라 기루로 갔다.
-어떻게 하죠?
-흠, 네가 들어가서 분위기를 살펴라. 금(琴)은 탈 줄 알지?
-네.
-좋아. 아무리 틈이 생겨도 절대로 손을 쓰지 말거라. 너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다. 분위기만 살피고 안에 다른 동조자가 없는지만 확인해라.
-네.
-이 자식이 내 순결을!
-이… 일부러 그, 그런 것이 아니오.
-닥쳐! 닥쳐! 조용히 하란 말이야!
-이게 아닌데……. 이게……. 이놈을 죽여야… 하는데… 흐응…….
-이름이 뭐야?
-하나 지어줘.
-응? 음…….
-초연(初戀)이 어때? 사실 나도 처음이었거든. 헤헤.
-응, 좋아.
-내가 지금 일이 있어서 절강성에 가거든. 거기 일이 무사히 끝나면 너를 데리러 올게.
-안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