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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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70화
70화
“자네와 손을 잡고 이곳이 평화로워진 이후로는 쓰지 않았었네만 이 조장의 부탁으로 다시 정보망을 움직였네.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지. 해서 자네를 급히 보자고 한 거네.”
“뭡니까, 그게?”
강무진이 묻자 구소단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말했다.
“지금 패왕성에 반란이 일어나 권력의 구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더군.”
“그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입니다. 이이책이 얻어 온 정보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렇군. 허나 그 자세한 실정은 모를 걸세. 패왕성에서 아직도 쉬쉬하고 있더군.”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지금 백방으로 정보를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흠! 내가 아우의 수고의 덜어주었으니 다행이로군. 우선 반란의 중심에 서서 지금 패왕성의 실권을 거의 장악한 사람은 도백광이라는 자일세. 원래는 패왕무고를 관리하던 자라고 하더군.”
“……!”
구소단의 말에 강무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백광이라면 강무진도 패왕무고에 들어갈 때 만나본 사내가 아니던가?
“놀라운 것은 그가 패왕성의 성주인 적상군을 죽였다는 사실이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구소단의 말을 듣고 있는 강무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네. 틀림없는 사실이네. 반란이 거의 성공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 성주인 적상군이 죽지 않고서는 성공…….”
그 뒤로도 구소단은 현 패왕성의 상황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강무진은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가 않았다.
‘그런가. 사부님이… 아니, 아버지가 죽었구나.’
강무진은 사실 여태까지 그럴지도 모른다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하면서 믿지는 않았다.
한 번도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라고도 부르지 못하고 사부라고 불러야 했던 아버지였다. 패왕성으로 자신을 데려오고 나서도 없는 사람처럼 던져놓지 않았던가?
그러니 정이 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왜 그가 죽었다고 하니 눈물이 흐르는 것인가?
-누구세요?
내가… 네 아비다.
-나를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왜요?
그것이 네가 살 수 있는 길이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사부님이라고 불러라.
구소단은 이야기하는 데 열중하다가 갑자기 강무진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다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황삼위도 그런 강무진을 보고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잠시 그렇게 눈물을 흘리던 강무진이 정신을 차렸는지 소매로 눈을 비벼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추한 꼴을 보여드렸군요.”
“아닐세. 오히려 내 앞에서 그렇게 눈물을 보여주니 고맙군. 나를 그만큼 믿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이 형님 앞에서만은 언제든지 눈물을 보여도 흠이 아니네.”
“죄송합니다. 이야기를 중간부터 듣지 못했습니다.”
“흠, 괜찮겠나? 우리 잠시 쉬었다가 내일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겠나?”
“아닙니다.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계속 이야기해 주십시오.”
“음, 그러지.”
구소단이 그렇게 말하며 목이 타는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강무진을 보며 물었다.
“패왕성의 성주와 무슨 관계인지 물어도 되겠나?”
“제가 숨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분은… 제 사부님이십니다.”
“허! 그랬군. 어쩐지……. 그랬었군. 과연 명장 밑에 약졸이 없는 법이지.”
의외였던지 잠시 놀라던 구소단이 곧 아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모두 들은 강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성에 있는 패왕마전대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거군요.”
“그렇지. 모두는 아니지만 일부 몇 명은 살아 있다고 하더군.”
“사모님과 적 소저도 무사하다니 의외군요.”
“내 생각에는 인질로 잡아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
“무슨 말입니까?”
“적상군의 아들이 패왕성을 빠져나와 쫓기고 있다고 들었네. 그를 다시 불러들여 잡기에는 그만한 인질이 없지.”
“그렇군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자네 혼자 상대하기에는 그들의 힘이 너무 크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모른 체할 수는 없습니다. 무슨 방법을 써서든 그들을 구할 겁니다.”
강무진이 굳은 결의를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구소단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에 산세가 험하고 높기로 알아주는 산이 다섯 개가 있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오악(五嶽)이라 불렀다. 그중 호남성에 위치해 있으며 그래서 남악(南嶽)이라 불리는 형산(衡山)의 깊은 산속에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워낙 산속 깊이 있어 사람의 발길은 아예 없었고, 사냥꾼조차도 오기를 꺼리는 듯, 오두막이 지어져는 있었으나 관리는 전혀 하지 않아 금방이라도 쓰러지려 했다.
그 오두막에 놀랍게도 사람의 기척이 있었다. 그들은 패왕성의 추격을 피해 이곳으로 온 척경과 적운휘였다.
척경은 방 안에 들어가 아직까지 멍하니 반쯤 넋이 나가 있는 적운휘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탁자 위에 올려놓은 음식에는 손도 안 댄 상태였다. 벌써 며칠째 저런 모습인지 모른다.
그들은 패왕성을 간신히 빠져나와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며 이곳에 숨어들었다. 패왕성에서는 이미 그들이 호남성(湖南省)을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여기도록 하기 위해 내상을 심하게 입은 적운휘를 데리고 필사적으로 호남성에서 강서성(江西省)으로 넘어가는 경계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또한 자신들이 항주의 패왕마전대를 찾아간다는 정보도 흘려놓았다. 그리고는 이곳 형산(衡山)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설마 자신들이 이곳에 있는 줄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적들의 추격에서 벗어났건만 문제는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내상을 치료한 적운휘의 상태가 계속 저 모양이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밥을 안 먹는 건 당연했고, 심지어 용변조차도 가리지 않았다. 이에 척경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는 적운휘를 달래도 보고 다그쳐도 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분명 정신을 완전히 놓고 있는 것은 아닌데 저러니 더 답답했다.
“휴, 오늘도 식사를 안 했구려. 그러다 죽을 수도 있소.”
척경이 그렇게 말하면서 탁자에 앉았다. 그리고 탁자 위에 있는 적운휘가 먹으라고 놔둔 음식을 자신이 먹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포기하고 싶소. 아니, 포기하려고 했소.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안 되는군.”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을 계속 먹던 척경이 가만히 적운휘를 바라봤다. 여전히 삐쩍 마른 모습으로 퀭하니 정신을 놓고 앉아 있었다.
“휴, 사실 내가 당신의 어머니를 만난 것은 당신의 어머니가 적상군에게 시집을 온 날이었소.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지. 하아,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일개 수신호위에 불과했소. 그런데 말이오, 하늘이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내가 그녀를 호위하게 된 것이오. 후훗!”
척경이 그때를 회상하는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괴로웠소. 그녀가 적상군을 사랑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소. 그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문제는 그녀를 보고 있기만 해도 좋던 내가 그녀에 대한 감정이 점점 깊어져 어떻게 주체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오. 그녀를 만지고 싶고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소. 하다못해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려주고 싶었소. 하지만 수신호위는 호위 대상 앞에 몸을 드러낼 수도 없고, 대화를 해서도 안 되오. 그런데 어느 날 놀랍게도 그녀가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겠소? 하하하. 그때는 정말 얼마나 기쁘던지……. 그때부터요. 내가 수신호위의 규칙을 깨고 그녀 앞에 모습을 보이며 무슨 짓이든 하기 시작한 것은……. 즐거웠다오. 그녀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지.”
거기까지 이야기한 척경이 다시 기분 좋은 웃음을 짓다가 적운휘를 바라봤다. 적운휘는 여전히 멍한 상태 그대로였다.
“후훗! 그대가 어찌 알겠소? 나는 그렇게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그녀와 함께해 왔소. 성에서 그녀를 두고 나올 때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죽으려고 했소. 하지만 그녀가 마지막까지 눈물을 흘리며 그대를 부탁했기에 그러지 못했소. 그대의 내상이 치료되었을 때 이제는 정말 그녀를 따라 죽을 때라고 생각했소. 그런데 그대가 그 모양이니 차마 죽을 수가 없었소. 그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안고 갈 수는 없지 않겠소. 그런데 그게 다 이유가 있어서였소. 그녀가… 그녀가 살아 있소. 크흑, 그녀가…….”
척경은 순간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태어나 생전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이렇게 말을 많이 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여인을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온 척경이었다. 그녀를 사지에 놓아두고 오면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 있었으니 그 기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척경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놀랍게도 적운휘가 고개를 돌려 척경을 바라봤다.
패왕성은 워낙에 규모가 크고 사람들이 많다 보니 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물자가 들어간다. 그 물자 중에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연 음식을 만드는 식재료들이었다. 오늘도 식재료를 넣기 위해 여러 대의 수레가 물건을 가득 싣고 패왕성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나으리들.”
몇 대의 수레들이 성안으로 들어서면서 수레를 이끄는 노인이 성문을 지키고 있던 사내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 노인은 성이 왕 씨로 벌써 수십 년간 꾸준히 패왕성에 식재료를 대고 있는 상인이었다.
“어서 오슈, 왕 노인. 오늘도 물건은 확실하겠지?”
“그럼요. 당연한 것 아닙니까?”
사내들은 늘 보던 얼굴이라 그저 형식적인 검사만 하고는 왕 노인 일행을 안으로 들여보내려고 했다.
“응? 뭐야? 못 보던 얼굴인데.”
그때 사내들 중 한 명이 누군가를 보며 그렇게 말하자 왕 노인이 재빨리 그 사내의 옆에 와서 말했다.
“아! 저놈은 제 아들놈 친구올시다. 타지에 나갔다가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해먹을 것이 없다고 해서 제가 이렇게 데리고 다니고 있습죠. 이놈아! 뭐 해? 어서 인사드리지 않고.”
왕 노인이 그렇게 소리치자 젊은 사내가 굽실거리며 실실 웃음을 지었다.
“헤헤.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물론 계집들이 있는 곳에서요.”
젊은 사내가 뒤에 말은 입을 가리고 살짝 이야기한 후 다시 인사를 넙죽하자 사내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크크크. 녀석, 벌써부터 싹수가 보이는구나. 좋다. 넌 앞으로 이 장모가 아주 잘 봐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아이고, 감사합니다. 헤헤.”
“헐! 이 녀석이 아부만 늘어서는. 빨리 가서 일하지 못해!”
그때 왕 노인이 나서며 윽박을 지르자 젊은 사내가 쌩하니 수레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나으리들, 수고하십시오. 저도 이만…….”
“그래, 어서 가보시오.”
그렇게 수레는 성안으로 들어가 외성에 있는 주방의 뒷마당까지 갔다. 그러자 수레를 끌던 사람들 중 하나가 키득대며 웃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