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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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29화
29화
강무진이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휑 하니 뚫려 있는 구멍이었다. 사람 하나가 들락거릴 만한 커다란 구멍이 벽은 물론이고 천장까지 곳곳에 뚫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렇잖아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낡은 오두막이 이제는 바람이 살짝 불 때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삐꺼덕 소리가 나고 있었다.
‘집이… 무너지겠네.’
강무진은 아직 정신이 완전히 들지 않은 혼미한 상태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헉!”
그러다 정말 오두막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
그 순간 강무진은 자신의 몸이 이상하리만치 가볍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분명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아수라패왕권까지 펼쳤었다. 게다가 그 후에 무리를 하며 유운무를 안고 움직였기 때문에 몸이 엉망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몸이 가볍단 말인가?
‘왜 이러지? 묵갑을 풀어서 그런가?’
강무진은 제자리에서 몇 번 통통 뛰어봤다. 몸이 너무 가벼워서 마치 깃털과 같은 느낌이었다.
‘거 참! 이유를 모르겠네.’
강무진이 그렇게 제자리에서 한 번 더 뛰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품에서 뭔가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책이었다.
“뭐야, 이건? 내 것이 아닌데.”
강무진이 의아해하며 그 책을 집어 들고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놀라움으로 인해 눈이 동그래졌다. 어찌나 놀랐던지 말까지 더듬거렸다.
“헉! 여, 여, 열화마결!”
책을 확인한 강무진은 누가 볼세라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이런 산중에 누가 있을 리가 없었다. 강무진이 그저 제풀에 놀라서 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잠시 두리번거리던 강무진이 다시 책을 보니 책에는 확실하게 열화마결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왜 내 품에 있지?’
강무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의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책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모두 화기(火氣)를 연공하는 방법들이었다.
전에 마홍이 강무진에게 알려주기를 열화마결은 화기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무공이라고 했다.
이에 강무진은 이 책이 열화마결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자신의 품에 있단 말인가?
강무진은 그 자리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금방이라도 오두막이 바람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이미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강무진은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 왔다 갔다는 것이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을 치료해 주고 열화마결까지 주고 간 것이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한 것일까?
열화마결은 패왕성의 사대비기 중 하나로 패왕성의 전대 성주인 적공후가 제자를 두지 않아서 지금은 아무도 연공하는 자가 없는 무공이었다.
그러니 이 비급은 패왕무고에서 나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패왕무고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
‘설마! 사부님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강무진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유운무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강무진은 사부인 적상군이 왔다 갔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자 또다시 의문이 들었다. 사부인 적상군이 왔었다면 왜 자신을 이대로 놔두고 갔단 말인가?
강무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손에 들고 있는 열화마결이 보였다.
‘그렇군. 이것 때문이군.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내가 열화마결을 익히는 것을 알면 가만두지 않겠지? 열화마결을 익히는 건 패왕성 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 스스로 힘을 키우라는 말인가?’
그렇게 대충 모든 의문이 풀리자 강무진은 열화마결을 품에 넣었다.
“킁! 킁! 근데 아까부터 어디서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나는 거야? 정신만 잃었다 하면 이런 냄새가 난단 말이야.”
적상군이 먹인 약의 냄새가 워낙에 지독해 아직까지도 강무진의 입에는 그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강무진은 계속 악취의 근원지를 찾아서 코를 킁킁거렸다.
그때 조금 강한 바람이 불면서 낡은 오두막이 곧 무너질 듯 삐거덕하는 소리를 내자 강무진은 기겁을 하며 뛰쳐나왔다.
“히에에엑.”
우르르릉!
그 순간 오두막이 폭삭 무너지며 내려앉았다.
“휴, 큰일 날 뻔했군.”
오두막 주위에는 수많은 복면인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누가 그들을 죽였는지 시체가 아주 끔찍할 정도였다. 가슴이 완전히 함몰되어 있는 자도 있었고 목이 몇 바퀴 꼬여 있는 자도 있었다.
그것을 보고 강무진은 사부인 적상군이 왔다 갔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더 확신이 생겼다. 사람을 저렇게 만들 정도의 위력이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적상군의 마력진패강기였기 때문이다.
‘일단은 항주로 간다. 가서 그들과 맞설 힘을 길러야 한다.’
마음을 정한 강무진은 패왕마전대가 있는 항주로 향했다.
긴 여행이었다. 가는 동안 강무진은 뭔가를 하기 전에 항상 몇 번씩이나 생각을 한 후에 행했다.
험한 강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신중함은 필수였다. 그것을 강무진은 유운무와 같이 지내는 동안 유우무를 보고 배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씩 유운무를 닮아가고 있었다.
강무진은 항주로 가는 동안 낮에는 사람들이 많은 대로(大路)로만 길을 갔고 밤에는 기루를 찾아서 묵었다.
살수들이 아직도 자신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쉽게 공격을 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을 대할 때도 항상 조심하면서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입을 닫았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북상을 하다 보니 항주까지 도달하는 데 근 일 년이나 걸렸다.
그동안 강무진은 틈틈이 열화마결을 익혔다. 열화마결의 앞부분은 기초적인 것들이라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쉽게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항주에 거의 다다를 무렵에는 몸 안에 약간의 화기가 생길 정도가 되었다.
비록 몇 달에 불과했지만 책에 나와 있는 것보다는 조금 빠른 성취였다. 적상군이 강무진의 엉망이었던 기의 통로와 혈들을 어느 정도 뚫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무진은 드디어 항주에 들어섰다.
항주는 경치가 매우 수려하고 아름다웠다.
누군가 항주를 예찬하기를 아침에 봐도 아름답고 저녁에 봐도 아름다우며, 맑은 날이나 비가 오는 날에도 항주는 아름답다고 했다.
사시사철 어느 때나 그 경관이 매우 뛰어나다는 뜻이었는데 강무진이 보기에도 그러했다.
그렇게 경치를 감상하며 강무진은 항주의 외곽에 있는 불왕래객(不往來客)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객잔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객잔 이름 때문인지 손님은 한 명도 없이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게다가 점소이도 없는지 손님이 왔는데도 아무도 나와보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한 사람만이 객잔 입구 안쪽의 계산대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이에 강무진은 그쪽으로 다가가 탁자를 탁탁 소리 나게 두드렸다.
“으음.”
그러나 사내는 일어나지 않고 귀찮다는 듯 그저 고개만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것을 보고 강무진이 다시 한 번 탁자를 두드리자 사내가 그렇게 엎드린 자세에서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흠냐, 장사 안 합니다. 음.”
“성에서 왔다.”
“으음, 장사 안 하다고요.”
“성에서 왔다고 했다.”
강무진이 다시 한 번 말하자 사내가 신경질이 난다는 듯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아! 정말! 성에서 오든 집에서 오든……. 응? 성에서?”
그제야 사내가 잠이 좀 깨는지 놀란 눈으로 강무진을 바라봤다. 패왕성에서 사람이 오기는 2년 만에 처음이었던 것이다.
“흐음, 성에서 왔다고 했소?”
“그렇다.”
사내는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강무진이 대뜸 반말을 하자 한쪽 눈썹이 살짝 꿈틀했다.
그러나 강무진의 신분을 모르니 일단 꾹 눌러 참으면서 다시 말했다.
“그것을 어떻게 믿소? 뭔가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이 있소? 요즘 하도 흑마련 쪽의 첩자들이 설쳐서 말이지…….”
이건 대놓고 강무진이 흑마련의 첩자가 아니냐고 묻는 말이 아닌가?
그런 사내를 강무진이 유심히 바라보자 사내가 조금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연락을 받지 못했는가?”
“무슨 연락? 성에서? 글쎄올시다. 목숨 걸고 열심히 싸우라는 말밖에는 연락받은 것이 없소이다.”
‘그들이 중간에서 연락을 끊었군. 하긴, 이곳 대원들이 대주님이나 나를 도와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겠지.’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강무진을 사내가 가만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눈이 선하고 맑아 보였다. 그리고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남색의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과는 달리 말투나 행동으로 봐서 아랫사람을 많이 대해본 것 같았다.
그런 것은 배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것이었다.
‘쳇! 성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을 보냈군. 어쩐지 오랜만에 왔다 했다.’
사내가 그렇게 강무진을 판단하며 한숨을 푹 쉬려는데 강무진이 탁자에 뭔가를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탕!
“이곳에 있는 패왕마전대 모두 모이라고 그래.”
강무진이 하는 말에 사내가 뭔 황당한 짓거리를 하고 있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강무진이 내려놓은 패를 보고는 놀라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그……. 대, 대, 대주패?”
강무진과 강무진이 내려놓은 대주패를 몇 번이나 번갈아 보기를 반복하던 사내가 못 믿겠다는 듯이 대주패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헉! 지, 진짜다! 이, 이런 애송이가 왜 대주패를 가지고 있는 거지? 대주님이 바뀌었나? 아니지. 그 인간이 대주 자리를 남에게 줄 사람이 아니지. 그럼……. 그렇군. 대주님의 심부름을 왔겠군.’
“저기, 혹시… 대주님의 심부름을 오신 거면…….”
사내는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조심스럽게 강무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러자 강무진이 살짝 인상을 쓰며 안쪽에 있는 빈 탁자로 가면서 말했다.
“심부름이 아니다. 당장 이곳에 있는 패왕마전대 전부를 불러들여.”
그러자 사내가 대주패를 들고 그 뒤를 따르면서 물었다.
“헉! 저, 전부 말입니까? 지금 시내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있고 작전 중에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 모두를 말입니까?”
“그래.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강무진이 의자를 빼서 앉으며 말하자 사내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아무리 대주패를 가지고 있다지만 아직 신분도 모르고 뭐 하나 확인된 것이 없었다. 이 상태에서 동료들을 모두 불러 모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기, 대주님과는 어떤 관계이신지……. 그리고 왜 사람들을 불러들이라는 것인지 이유라도 좀…….”
강무진은 사내를 잠시 바라보다 의자를 뒤로 젖히며 탁자에 발을 턱 하니 올렸다. 이어서 다른 쪽 발을 그 발 위에 턱 하니 포갰다.
사람을 앞에 두고 이런 자세로 앉는다는 것은 상대를 완전히 무시하는 아주 건방진 행동이었다.
“내가 대주다. 대주가 대원들을 보려고 하는데 이유가 필요하나?”
“헉!”
강무진의 말에 사내의 눈이 커다래지면서 헛바람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