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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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20화
20화
‘침착하자. 일단은 동조자가 없다. 혹시 기녀들 틈에 있을지도 모르니 방심은 금물이다.’
여인은 이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금(琴)을 뜯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금(琴)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지만 뭔가 한이 담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소리였다.
술자리에서는 보통 즐겁고 흥겨운 곡을 연주하기 마련이지 저렇게 어두운 곡을 연주하지는 않는 법이다. 그러나 여인은 아는 곡이 모두 이런 것들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 곡을 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금 소리가 계속 울리는데 유운무는 옆에서 금을 뜯든 말든 관심도 없이 시간이 갈수록 난장을 치고 있었다.
여인들을 마구 주무르는 것은 기본이요, 술상에 올라가 춤을 추기도 했고, 옷을 다 풀어헤치고 무공을 보여준답시고 엉성한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술이 취할 대로 취했는지 옆에 있던 여인들의 옷을 마구 벗기기 시작하더니 여기에서 그 짓(?)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니미, 저거 술 먹으니까 완전히 개잖아.’
그랬다. 강무진은 갈수록 개가 되어가는 유운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유운무가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괜히 자신까지 부끄러워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뭔가 있어 보이던 유운무가 이제는 다시 별거 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쳇!’
강무진은 기분이 좋지 않아 술잔을 홀짝홀짝 몇 번 비웠더니 어느새 술기운이 조금씩 올라왔다. 그래서인지 눈이 조금씩 흐릿해지며 유운무와 같이 저 지랄(?)을 하면서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헛! 내가 무슨 생각을……. 취했군. 취했어.’
강무진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러다 아직까지 한쪽에서 금을 켜고 있는 여인을 보게 됐다.
술에 취해서 그런지 아름다워 보였다. 음(音)은 하나도 모르지만 여인이 아름다워 보이니 금 소리도 자연히 아름답게 들렸다.
잠시 자신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정신 산란한 것들이 모두 정지되고 오로지 여인이 금을 켜는 모습만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흐음, 이런 곳에서 기예를 팔 여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쩝! 뭔가 사정이 있겠지.’
강무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인은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왜 날 유심히 바라보지? 혹시 내 정체를 눈치 챈 건가?’
여인은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두 사람을 살피는 것보단 금을 뜯는 데 더 집중을 했다.
그때 유운무가 어느새 왔는지 강무진의 어깨에 손을 척 하니 걸치더니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크크큭! 저 계집이 마음에 드는구나. 청기들은 원래 몸을 팔지는 않지만 내가 힘 한번 써보마. 크크큭!”
기루는 보통 청루와 홍루로 나뉘어져 있다. 청루의 기녀들은 금기서화(琴棋書畵)에 조예가 깊어 그들의 기예만을 팔고 몸은 팔지 않는다.
그에 비해 홍루는 오로지 몸을 파는 여인들만 있는 곳이었다.
이곳 월담루도 홍루이기는 했지만 유운무 같은 비싼 고객(顧客)이 올 경우 돈을 주고 청루에서 사람을 데려오기도 했던 것이고, 지금 금을 뜯고 있는 여인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예?”
강무진이 유운무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바라보자 유운무가 씨익 웃으면서 갑자기 소리를 쳤다.
“우리 앵화를 불러와! 앵화를 불러와라! 앵화아!”
‘앵화? 앵화가 누구야?’
강무진과 금을 뜯던 여인이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
유운무가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잠시 후 방문이 열리면서 한 여인이 들어왔다.
‘니미.’
그 여인을 보는 순간 강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욕지거리가 나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선 여인은 기루에 들어설 때 유운무를 알아보고 제일 먼저 유운무의 품에 안기던 그 50대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호호호! 오라버니가 웬일로 저를 찾으실까? 옆에 싱싱한 것들이 많은데 말이야.”
여인이 간드러지는 웃음을 흘리며 유운무의 옆으로 가자 그곳에 있던 여인이 재빨리 자리를 비켜주었다.
“자, 술 한 잔 받으시와요.”
여인이 주는 술을 단숨에 비워버린 유운무가 여인을 잡아끌더니 귀에 대고 뭐라고 속닥속닥했다.
그러자 여인이 금을 켜고 있는 여인과 강무진을 슬쩍슬쩍 번갈아 보면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호호호, 그건 걱정하지 마시어요. 감히 누구 청이라고요.”
“푸하하하, 내가 그래서 우리 앵화를 좋아한다니까.”
그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소란이 일면서 욕이 오가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가 이리 시끄러워?”
한창 흥이 나던 유운무는 갑자기 흥이 깨졌는지 불만스럽게 말했다. 이에 앵화라 불린 여인이 교태를 떨며 말했다.
“호호호, 신경 쓰지 마시어요. 제가 가서 잘 타이르고 올 테니까 흥을 잃지 마시어요. 호호호.”
그렇게 말하고 나서 여인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꺄아아아악! 놔! 이 자식아! 이거 못 놔!”
잘 타이르고 오겠다던 앵화가 비명을 지르며 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방 안에 있던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이에 강무진이 유운무를 바라봤다. 그러나 유운무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술을 마시며 옆의 기녀들을 주무르고 있었다.
‘쳇! 정말 파악이 안 되는 인간이군.’
강무진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보니 인상이 험악한 사내 다섯 명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중 한 사내가 앵화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며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순간 강무진의 눈에서 불이 확 튀었다.
“그 손 놔!”
“응? 뭐냐, 너는? 술 처마시러 왔으면 곱게 처마시고 가라. 괜히 끼어들면 다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그 손 놔.”
강무진이 이번에는 눈에 힘을 팍 주면서 말했으나 그 사내가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피식 웃었다.
“어린놈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군.”
“손 놓으라고 했지!”
그때 강무진이 다시 외치면서 사내에게 한걸음에 다가가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쳤다. 사내는 설마 강무진이 이렇게 빠를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 그대로 얼굴을 얻어맞고 뒤로 넘어졌다.
콰당!
“이 자식이!”
그렇게 사내가 넘어지자 사내와 같이 있던 네 명의 사내들이 동시에 강무진에게 덤벼들었다.
강무진이 다시 그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고 하는데 뭔가 눈앞에서 번쩍하더니 누군가 강무진의 주먹을 잡아 뒤로 튕겨냈다.
“어!”
그러자 강무진은 제대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이에 강무진이 속으로 놀라면서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을 하려고 보니 그는 다름 아닌 유운무가 아닌가?
“넌 또 뭐야?”
사내 중 한 명이 소리치자 유운무가 그 사내를 노려봤다.
“헉!”
그러자 아까 강무진이 노려볼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사내가 헛바람을 들이켜며 그대로 딱 굳어버렸다. 유운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등 뒤로 뭔가 찌르르하는 것이 흐르면서 죽음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때 유운무의 몸이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사내의 몸이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더니 얼굴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퍼억!
그런 사내를 유운무가 사정없이 발로 밟기 시작했다.
퍽! 퍽!
나머지 세 명의 사내들이 유운무에게 덤벼들려고 했으나 유운무가 그들을 노려보자 모두들 겁을 먹고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그러자 유운무가 그런 그들을 놔두고 열려 있던 옆방으로 들어가서 의자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걸로 이미 쓰러져서 정신이 없는 사내를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우지끈!
그러자 사내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면서 피가 튀었다. 그래도 유운무는 멈추지 않고 부서진 의자를 계속 내려쳤다.
그것을 보고 그렇잖아도 겁을 먹고 있던 세 명의 사내들은 이제 공포로 이는 물론이고 다리까지 떨었다.
“대주님!”
보다 못한 강무진이 유운무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유운무가 무서운 눈으로 강무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놔라.”
“……!”
그 순간 강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놓았다. 그러자 유운무가 또다시 사내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더 내려친 유운무가 피가 묻은 부서진 의자를 옆으로 던져버리면서 말했다.
“안 건드리면 모르되, 건드렸으면 확실히 해야 한다. 난 패왕성의 유운무다. 볼일 있으면 이곳 월담루가 아니라 나를 찾아와라.”
유운무의 말을 들은 세 명의 사내들은 완전히 얼어서 입도 못 열고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역시…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일단은 좀더 지켜봐야겠어.’
유운무의 그 같은 행동을 방 밖으로 슬쩍 고개만 내놓고 보고 있던 여인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유운무가 몸을 돌리자 재빨리 고개를 쏙 집어넣었다.
방으로 돌아온 유운무는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앉는 강무진을 보면서 씩 웃더니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내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나 보군.”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강무진도 안 건드리면 모르되, 건드렸으면 다시는 못 기어오르게 완전히 끝을 봐야 한다는 것쯤은 여태까지 귀가 따갑게 들어왔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그러니 유운무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뭔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찜찜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운무가 밖을 보며 소리쳤다.
“뭐 하고들 있는 거야? 빨리들 들어오지 않고!”
유운무의 외침에 아까 유운무와 강무진을 시중들던 기녀들이 다시 우르르 들어왔다.
“금도 다시 뜯어야지.”
유운무가 금을 켜던 여인을 보고 말하자 여인이 다시 금을 뜯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개를 살짝 끄덕인 유운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아! 그럼 다시 한 번 가볼까?”
그때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한 유운무와 기녀들의 틈새에서 강무진은 그날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지 꿀꿀한 기분 때문에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엄청 마셨다는 것만이 기억날 뿐이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천장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방바닥까지 돌면서 덤벼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귓가에는 유운무와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금 소리가 들렸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낯선 방에 누워 있었다.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것으로 봐서 이미 날이 밝은 듯싶었다.
“끄응.”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세운 강무진은 순간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파왔다.
아직도 어젯밤의 일이 모두 꿈만 같았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강무진은 아픈 머리를 꾹 누르면서 어제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유운무가 술 먹고 개가 돼서 난장 쳤던 것과 잔인하게 그놈을 팼던 것이 생각났다.
‘쳇! 대주님이 그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나 보군. 나중에 마홍에게 말해 줘도 안 믿겠어.’
마홍뿐만이 아니라 평소의 유운무가 어떠한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 강무진이 실소를 흘리면서 몸을 돌리는데 옆에 뭔가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응? 헉!”
강무진은 순간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자신의 옆에 옷을 홀딱 벗은 여인이 등을 보이고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뭐… 뭐…….’
강무진은 급히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일단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